고창의 봄!
고창의 봄!
  • 박민희
  • 승인 2013.05.14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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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를 찾아서_ 고창은혜교회

 
 

 

 

 
주일 아침, 아담한 예배당에 성도들이 하나 둘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식사하셨소?” 예배당으로 들어오던 나이 든 자매님이 기자를 보고 정이 담긴 전라도 사투리로 말을 건넨다. 고운 옷들을 입고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그동안 방문했던 교회의 성도들에 비해 유난히 수줍음을 타는 고창은혜교회 성도들. 사진기자가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다.
예배가 시작되고 찬송을 인도하는 장년 형제가 나와 억양이 없는, 조금은 늘어진 듯한 전라북도 말투로 성도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함께 찬송을 부른다.
“…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찬송을 세게 부르든 조용히 부르든, 주님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아는 마음의 기쁨이 있다. 그 기쁨 속에서 찬송하며 자신이 받은 주님의 사랑을 잠잠히 떠올려본다.
찬송을 마치고 한 장년 형제가 나와
“쉬는 날 TV를 보려다가 그 생각을 꺾고 교회에 왔더니 페인트칠과 도배를 하고 있어서 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기쁜소식사에서 우리 교회를 취재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이 미리 준비하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며, 자기 생각을 좇지 않고 교회와 함께할 때 주님과 동행할 수 있음을 몇 가지 경험들을 통해서 배웠다고 간증했다.
이어서 김영욱 목사님이 열왕기하
7장에 나오는 네 명의 문둥이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 사마리아 성 밖에서 죽어가던 문둥이들. 그들은 아람 진으로 가 그곳에서 넘치는 양식을 보고 그 소식을 사마리아 성 사람들에게 전했다.
“우리는 고창의 문둥이들입니다. 성안에 있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실패자가 되어, 우리 영혼의 감독자이신 예수님에게 돌아가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받아 그 마음을 좇아서 삽시다.”
네 명의 문둥이가 가진 것은 아람 진에 양식이 넘친다는 복된 소식뿐. 그들 자신에게서는 나타낼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김 목사님은 고창은혜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그런 사람들임을 알자고 외쳤다. 형제 자매들은 목사님의 설교에 잠잠히 귀를 기울였다.
어떤 집은 활기가 넘치고 어떤 집은 좀 심심하다. 좋은 가족은 그런 외적인 모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엮인 정도의 의해 결정된다. 고창은혜교회 형제 자매들은 담담하지만 묵은 장맛처럼 서로 깊은 곳에서 흐르는 마음이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형제 자매들이 한데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 집사님은 키 때문에 잘 안 보이니까 위로 올라가라’는 말에 김 집사님이 뒷줄로 올라가고, 엄마의 품에 있던 어린아이도 얼굴이 잘 나올 뒷줄의 할아버지의 품으로 옮겨갔다.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영락없이 막 결혼식을 치르고 기념사진을 찍는 시골 어느 집안의 식구들 같았다.
 


 

 

 

 

 
고창엔 조선 단종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읍성(邑城)이 남아 있다. 예배를 마치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읍성을 둘러보며 인터뷰를 한 후, 교회로 돌아와 김영욱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2003년에 첫 사역지인 함열에 파송되었다가, 교회가 익산은혜교회와 합해지면서 광주은혜교회의 부사역자로 6개월을 있었습니다. 그때 제 영혼을 돌아보는 교제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 후 고창에 와서 행복했습니다. 망한 자의 마음으로 왔기에 ‘나 같은 사람도 써주는구나’ 하고 모든 게 감사했습니다.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7년이 되었습니다.”
7년 동안 어떤 일이 목사님 마음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작년 7월에 박옥수 목사님과 교제하는 자리에서 목사님이 저에게 ‘복음만 전하자’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에 그리 말씀하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말씀 앞에서 제 생각을 끝냈습니다. 제 마음에 선이 그어진 후 교회가 달라지는 걸 봅니다. 형제 자매들이 전에는 자기 테두리 안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마음을 옮겨 한 걸음씩 형편을 뛰어넘습니다. 사람들도 저와 상관없이 교회에 찾아와서 구원을 받습니다. 교회에 안 나오던 분들도 한 분씩 나오기 시작하고요. 교회가 피어나고 있어서 즐겁습니다. 우리 교회에 봄이 온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주님 앞에 기도하지만 아직 은혜를 입지 못한 부분도 있기에 주님 앞에 계속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마음의 흐름. 목사님은 주위 사람들과 어떻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지 물었다.
“저는 뭐든지 이야기하는 스타일입니다. 매주 갖는 사역자 모임에 가면 가장 먼저 입을 엽니다. 일주일을 믿음으로 살았든 살지 못했든 그대로 이야기하고 지역장 목사님의 인도를 받고 싶은 겁니다. 교회에서도 형제 자매들에게 있는 대로 이야기합니다. 제가 사역자 모임에서 꾸중을 들은 이야기도 그대로 하고요.”
이번에는 목회자로서 교회 성도들이 꼭 얻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어린시절에 밝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면서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교회를 만나 행복했고, 남을 품을 수 있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도 저처럼 복음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구원받지 않은 가족들이 구원받아서 가족이 함께 교회에 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김영욱 목사님이 꿈꾸는 삶은 어떤 것일까?
“2년 전 고향에 갔다가 25년 만에 옆집 친구를 만났습니다. 내가 목사라고 하니까 ‘너, 말도 못 하던 놈이 목사냐?’ 하고 놀랐습니다. 얼마 후, 창원에서 단기선교사들의 귀국발표회가 있어서 친구를 초청했는데, 아내와 아이들 둘과 함께 와서 공연을 보고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같이 저녁을 먹자는 걸, 강릉 공연에 동행해야 해서 부득이 헤어졌습니다. 그날 친구가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내가 너를 만나 너무 행복하다, 너를 만나고 자꾸 좋은 일이 생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의 연락처를 부탁하니 자세히 보내주었습니다. 친구가 벌써 다른 친구들에게 ‘영욱이가 목사인데 진짜 좋은 일 하더라’ 하고 전도를 다 해놓았습니다. 저는 재미없는 사람인데, ‘아, 내게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화제를 돌려 자녀는 몇이며 어떻게 양육하는지 묻자, 고 3인 딸과 중 3인 아들이 있는데 딸은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왜 딸이 아프리카에 사는지 궁금했다.
“우리 딸이 초등학생 때 월드캠프에 참석한 아프리카 학생들이 우리 집에 민박을 왔는데, 그때 한 친구가 우리 아이들에게 천 원씩을 줬어요. 딸이 그 돈을 받고 아프리카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어요.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아프리카에 가겠다는 것을 말렸지요.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링컨하우스스쿨에 가고 싶어했지만, 제가 ‘돈도 없고 교회 형제 자매들도 어렵게 살기에 보낼 믿음도 없다’고 했어요. 그러자 딸이 고창여고에 시험을 쳐서 합격한 후 ‘아빠, 어떻게 해요?’ 하고 또 물어요. 그래서 ‘너, 학교 가지 말고 아빠하고 1년 동안 복음 전하며 살자.’ 했어요. 딸이 제 말대로 입학 접수를 안 했는데, 그 즈음 카메룬에서 선교하는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형님이 딸 이야기를 듣더니 아프리카에 보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딸이 카메룬에 간 지 3년째인데, 지금은 현지인처럼 지낸대요. 아프리카에서 무슨 소망을 갖겠어요? 복음의 일을 하고 싶어해요. 아들 녀석은 의료인이 되어서 의료봉사팀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고요. 아이들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복음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지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김 목사님은 극구 안방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방에서는 녹음하기가 불편해 결국 부엌 탁자에 앉아서 했는데, 안방에서 하자고 요구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에 깨끗하게 도배한 방과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새 장롱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안방 문을 여니 두 사람 누우면 알맞을 공간에, 흔히 볼 수 있는 값나가지 않는 새 장롱이 놓여 있었다. 그걸 꼭 보여주고 싶어하는 목사님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작은 것에서도 큰 행복을 느끼며 사는 목사님이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고창은혜교회 사람들은 목사님도, 형제 자매들도 첫인상이 덤덤했다. 그런데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맛이 짙어지고, 그 맛이 풍겨내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젖어들었다. 고창 땅을 뒤덮은 봄기운이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벚꽃나무에 꽃잎들을 화사하게 피어나게 한 것처럼, 고창은혜교회 형제 자매들의 마음을 뒤덮고 있는 믿음의 봄기운이 고창 시민들의 마음도 덮어 그들로 화사하게 피어나게 하기를, 돌아오는 길에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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