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신앙은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 김재홍(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18.06.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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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모세처럼 살려고 노력하면 신앙을 실패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
신앙생활을 할 때 사람들이 모세의 길, 즉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고, 참된 신앙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세처럼 살아야지!’ 하고 노력한다. 그런데 모세처럼 살려고 하면 신앙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세처럼 살려고 노력했을 때 잘되지 않으면 ‘모세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지, 나 같은 사람은 육신적이라서 안 되는구나’ 하고 쉽게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에는 모세가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을 살기를 포기하고 그 후에는 육신을 용납하고 죄악의 낙을 누리고 살면서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형제 자매들이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육신적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종들이 모세처럼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하고, 끊임없이 복음을 향하여 힘 있게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목사님들과 달라. 목사님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종이니까 그렇게 살지, 우리는 그렇게 못 살아.’ 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본다. 모세와 믿음의 종들이 복음을 향하여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 ‘나도 저렇게 믿음으로 살면 되겠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안 돼’ 하고 육신의 안일함 속에 머무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십자가에서 다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구원받은 후의 신앙은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기에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다 사해졌다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어떤 부족함이나 문제도 십자가에서 다 온전케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나 자신의 부족함이나 육신적인 부분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죄뿐 아니라 신앙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사실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세가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세처럼 되려고 하는 행위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그 길은 참된 신앙의 길이 아니다. 내가 모세처럼 되려고 노력하면 신앙이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볼 때 모세와 달리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기에 고난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미 다 이루어 놓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볼 때 여전히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도 말씀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주님이 여러분을 모세처럼 고난을 더 좋아하는 참된 신앙인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다 이루어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렇듯 신앙은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한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내 판단인가, 말씀인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판단을 믿을 것인가, 말씀을 믿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말씀의 판단을 믿는 사람은 고난을 더 좋아하도록 해놓으셨다는 것을 믿고 나가서 말씀이 일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판단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믿음의 삶을 실패한다. 신앙을 믿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행위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신앙이 쉽다는 사람이 있고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잘못된 종교인들은 이런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한다. 또한 잘못된 목회자들은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을 더 좋아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고 설교하면서도 교인들에게 ‘그렇게 살라’고만 강요하지 이미 다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의 삶을 가르치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다 이루어진 세계 안에 있다. 내 안에서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변화한 것을 믿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바꾸려고 하면 10년, 20년이 걸려도 안 된다. 신앙이 십자가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나 자신을 보지 않고 주님의 판단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지고 의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연약함을 온전케 하셨고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뜻을 정하게 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사탄이 믿음으로 살면 어려움을 당할 것 같고, 복음을 위해서 살면 핍박을 받고 손해가 날 것 같은 생각을 넣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도록 뜻을 정하려면 많은 어려움을 넘어야 한다. 우선 환관장이 이를 허락해야 했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구했을 때 환관장이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초췌해지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기에 안 된다고 했다. 그때 다니엘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감독자에게 열흘 동안 채식을 주어 시험해 보라고 구한다. 반대가 있고 불가능해 보여도 다니엘이 뜻을 정했기 때문에 부딪쳐 나간다. 믿음의 삶을 살려면 뜻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뜻을 정하는 것도 내가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뜻을 정하려고 하면 행위가 된다. 주님 앞에 헌금을 하거나 복음을 위해 희생하려고 할 경우 어려움을 당하고 손해가 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갈등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뜻을 정하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다
모세는 어떻게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을까? 모세나 다니엘이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실 때 이미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 주셨다.
여러분이 거듭날 때 주님은 이미 여러분을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말씀의 판단을 믿길 원하신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다.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새로운 피조물은 없다. 십자가에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하도록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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