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3장의 경작 가시와 엉겅퀴뿐인 인간
[설교] 창세기 3장의 경작 가시와 엉겅퀴뿐인 인간
  • 글 | 김재홍 (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20.10.06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0년 10월호 기쁜소식
옳음에서 벗어나 영의 세계로 (17편)

 

내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가시와 엉겅퀴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뒤 선과 악을 알게 되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선악을 아는 것은 죽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되면,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고 여기지만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선은 권장하고 악은 징벌한다는 권선징악 사상이 있는데, 동양이든 서양이든 소설에서든 영화에서든 권선징악 사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난 이후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악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다 버려져야 하는데, 인간은 그것을 선과 악으로 나눈 뒤 악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선은 버릴 줄 모르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하고 선악을 안 이후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7~10)
아담과 하와가 눈이 밝아 벗은 줄을 알았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었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실과를 주어서 먹었다’고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들이 보고 아는 것,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이 악합니다. 
창세기 3장 18절에 보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땅을 경작하지 않고 땅에서 나오는 것은 전부 가시와 엉겅퀴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인간 자체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것이 가시와 엉겅퀴로 다 뽑아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 선악을 구분하게 된 인간은 자기 보기에 악한 것만 버리려고 하지, 선하게 보이는 것은 버릴 줄 모릅니다. 
가시와 엉겅퀴밖에 없는 땅에서 먹을 만한 것을 얻으려면 땅은 반드시 경작되어야 하고, 새로운 씨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위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으로 살아야 먹을 만한 식물이 되지,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은 다 가시와 엉겅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은 마음, 선한 마음으로 살려고 하지 받은 마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하는 선善도 가시와 엉겅퀴
한 예로, 베드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과 부활할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16:21~23)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예수님을 위하려는 마음이니까 선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악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에게서 올라오는 좋은 마음이나 충성된 마음은 가시와 엉겅퀴이기 때문에 다 버리고 받은 마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난다’는 것을 받아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마음을 받지 않고 자신의 좋은 마음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품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는 좋은 생각을 품었지만 그 또한 가시와 엉겅퀴같이 쓸모없고 악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위로부터 받은 마음이 아닌 자기 마음으로 주를 섬기면 섬길수록 점점 더 주님을 대적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하셨으니 베드로가 자신의 좋은 마음, 충성된 마음도 다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그것들을 다 제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먹을 양식은 예수님께 받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절망을 주셨습니까? 소망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만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으면 정말 소망스러운 양식이 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서 나온 생각대로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네 속에서 올라오는 좋은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탄의 짓이다’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해야 할 일은 받은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면 그것을 받아야 하고, 부활을 말씀하시면 이해가 안 되고 불가능해 보여도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양식이 되고 소망이 가득 찹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으로 사니까 근심과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베드로의 충성된 마음
마태복음 26장에서도 자신의 좋은 마음을 좇는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마 26:31~33)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린다’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죽어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 속에서 올라오는 선하고 의리 있고 진실하고 충성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하셨으면 자신의 좋은 마음을 버리고 위로부터 오는 마음을 받아야 하는데, 베드로는 자신의 선하고 좋고 충성된 마음을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함께해야지 어떻게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더라도 난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을 거야!’ 
충성된 마음으로 보이지만 뽑아내야 할 가시와 엉겅퀴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뽑아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린다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신 후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가는 형편없는 자들이지만, 예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고 붙들어 주시겠다는 소망스런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이 마음을 받으면 역시 양식이 되고 소망이 됩니다. 반대로 베드로가 가진, 죽어도 부인하지 않겠다는 충성된 마음은 금방 무너져버려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 주님을 위하겠다는 마음은 다 사라지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베드로의 충성된 마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가시와 엉겅퀴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를 부인할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형편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이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나를 부인하고 떠나가도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마음을 받으면 양식이 되고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선, 옳음을 버리지 못한 베드로 
베드로는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뽑아버려야 했는데 버리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선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선악을 구분하니까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선악의 기준이 예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을 받아서 사는 복된 삶을 가로막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도, 복음을 위해야겠다는 마음도 악하고 쓸모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좋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순간순간 교회가 주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종이 주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내 좋은 마음과 충성된 마음으로 살면 그 사람의 마음밭에는 가시와 엉겅퀴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선악의 기준에서는 남을 위하고 돕는 것은 선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는 것은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악한 것은 버려야 한다고 여기지만 선한 것은 버릴 줄 모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그러한 인간의 의를 다 버렸고, 그때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인간의 선이나 의가 있으면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구원받은 후에도 똑같은 법칙이 적용됩니다. 우리에게서 올라오는 모든 것이 가시와 엉겅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예언을 대적하는 베드로의 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한 베드로의 충성된 마음은 무성하게 자란 가시와 엉겅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으면 죽음을 넘어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인류를 구원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마땅히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셔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했습니다. 그 말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지 마옵소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이루지 마옵소서!’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의 짓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가랴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대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고 하셨는데 베드로가 죽어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한 말은,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한번 엉터리로 만들어 보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게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베드로가 흩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이 폐해지고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크게 대적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선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그 길을 가서 죽었습니다. 인간의 선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인간에게서 나온 것은 다 가시와 엉겅퀴로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생각이 악했고, 수천 년이 지나서 베드로에게서 올라오는 생각도 악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해야 했습니다. 자기 속에 예수님을 부인할 마음이 없고 부인하지 않을 것 같아도 ‘내 판단은 틀렸고 나를 믿을 수 없다. 주님의 말씀이 그렇다면 그렇다’ 하고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좋은 마음도 경작되어야
땅에서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기 때문에 먹을 만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땅을 경작해야 합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창 3:18~19)
경작자가 땅을 갈아엎고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한 뒤 농사를 지어야 먹을 것을 얻지, 그냥 두면 땅 스스로는 절대로 먹을 식물을 낼 수 없습니다. 
땅과 같은 우리 마음에도 경작자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땅과 같아서 늘 경작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잠 24:30~32)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에는 가시덤불이 퍼지고 거친 풀이 땅을 덮습니다. 게으르고 미련한 자는, 마음이 경작을 받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게으르고 미련한 자는 마음이 경작 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즉, 마음에서 간섭 받기를 싫어하고, 마음을 꺾기 싫어하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하나 들어오면 그 생각을 버릴 줄 모르고 그 마음으로만 살아갑니다. 이것이 게으른 자의 밭이고, 지혜 없는 미련한 자의 포도원입니다. 
가시덤불과 거친 풀로 가득한 밭에 농사가 되겠습니까? 이것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땅은 좋은 식물을 낼 수 없습니다. 사람도 자기 생각과 판단을 버리기 싫어하고, 자기 보기에 좋은 마음만 믿고 사는 사람은 가시덤불과 거친 풀 같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마음을 다 덮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열매 맺는 삶을 살지만, 자기 좋은 마음으로 주님과 복음을 위하려는 사람은 겉모습은 주님과 복음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대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주를 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주를 위해 살려고 하는데 왜 신앙이 잘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내가 선하게 살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왜 천국에 못 가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구원받은 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선한 마음이나 충성된 마음으로 신앙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좋은 마음이 있다 해도 그 마음을 기대하지 말고 지금 교회를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때 신앙이 복됩니다. 
경작자가 없으면 쓸모없는 땅이 되는 것처럼, 마음을 경작해 줄 사람이 없으면 쓸모없는 신앙인이 됩니다. 경작자가 있어도 경작자에게 경작할 권한을 주지 않는 사람 또한 쓸모없는 신앙인이 됩니다. 경작권을 주면 좋은 식물이 자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가시와 엉겅퀴와 잡초만 우거져 있습니다. 경작자에게 경작권을 주지 않는 성도의 마음은 교회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가시와 엉겅퀴로 마음이 덮여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신의 마음 전부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고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시려는 마음이 분명히 있는데 그 마음을 가로막는 것이 베드로의 좋은 마음, 충성된 마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안에 주님을 위하려는 좋은 마음, 충성된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주님이 주시려는 마음을 가로막는 가시와 엉겅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땅을 경작하지 않고 좋은 식물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범죄한 인간의 마음을 경작하지 않고는 영적인 아름다운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신앙이 안 되는 것은 나의 좋은 마음, 충성된 마음에 기대를 두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에게 충성된 마음, 복음을 위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문제삼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나의 좋은 마음에 기대를 두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나 하나님의 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성도는 받은 마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주님의 마음을 계속 흘려주고, 하나님의 종은 말씀을 통하여 주의 마음을 계속해서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