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설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 글 | 임민철 (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1.08.18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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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_9편

 

갈라디아서 3장 1~7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어야 한다’라는 잘못된 생각과 싸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1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헛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요구하고, 그렇게 못 했을 경우에는 사망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의 삯인 사망을 지불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율법의 마침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님은 율법을 마치셨는데,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잘못된 가르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인다고 한 말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에서 떠나도록 꾀는 자가 있습니다. 바로 간교한 사탄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한 것은, ‘율법대로 살려고 하면 살 수 있겠다’는 자신을 세우려는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히 3:7~10)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한 40년 동안 그들의 마음이 항상 미혹되어서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미혹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늘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는 자리 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형편이 주어지면 하나님을 찬송했다가, 나쁜 형편이 닥치면 금방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대적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출애굽기 19장에서 그들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법을 다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았고, 하나님이 ‘독수리가 그 새끼를 날개 위에 업는 것처럼 너희를 인도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복을 받은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그렇게 미혹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율법을 다 지켜서 복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탄이 넣어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거짓된 생각에 미혹된 것처럼,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도 사탄에게 미혹되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사탄이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의 마음을 꾀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내가 잘해서 의롭게 되고 싶다’는 욕심을 부추겨서 믿음의 길에서 떠나 넘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 12절에서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율법에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하니까, 사람들이 ‘그래, 내가 이런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각오나 결심과 상관없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합니다. 로마서 7장 19절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선하게 살려고 했다가 도리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그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자신이 잘해서 의롭게 되고 싶은 욕심에 미혹되어 죽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아서 우리를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말을 따라 범죄했고, 그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출생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듯이, 사람도 사탄의 꾐에 넘어가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합니다.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을 것처럼 속이는 사탄의 간교한 꾐에 빠져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까? 언제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며 그 뜻을 따랐습니까? 그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따라 그들을 인도하셨고, 은혜로 그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이 사탄에게 미혹된 것처럼, 오늘날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미혹되면 ‘구원받았으니까 율법을 지키며 살면 좋은 거 아냐?’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2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잘해서 의롭게 되었습니까? 만일 그가 자신의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습니다.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이 율법을 잘 지켜서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다 씻어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으면서 다시 율법을 지킨 행위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이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도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무엇을 잘한 행위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여, 육체로 마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육신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해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2~13)
육신대로 산다는 것, 육신을 기대하며 산다는 것은 육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육신과의 싸움에서 집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죽고 예수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서 악한 생각, 미운 생각, 음란한 생각 등이 올라올 때 내가 살아 있다고 여기니까 ‘왜 이런 생각이 올라오지?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데…’ 하고 그런 생각과 싸우는 것입니다. 
죄악된 생각이 올라올 때 ‘나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는데 사탄이 나를 미혹해서 잘못된 길로 가게 하려고 그러는구나.’ 하며 ‘죄악된 생각아, 나는 죽었어. 네가 내 안에 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말해 봐.’ 하면 그런 생각들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마음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으니까 더럽고 악한 생각이 올라올 때 ‘왜 이런 생각이 올라오지?’ 하고 그런 생각들을 밀어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쓰다가 결국에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면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육신적인 사람이야.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 나는 구원받은 것도 아닌가 봐.’라는 생각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육신에서 져서 육신대로 사는 삶입니다. 만약 우리가 육신에 끌려다니고 있다면 그것은 육신에게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사탄은 죽은 우리를 끌어내 우리를 미혹시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나를 끌어내서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미혹해 ‘네가 말씀대로 살면 얼마나 좋겠어?’라고 합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11)라는 말씀이 이 이야기입니다. 우리 가운데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데, 사탄이 계명을 들이대며 ‘율법대로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를 속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을 주관하며 인도해 주신다
사탄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속였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았으니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온전히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사탄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그에 대해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으면서, 성령을 의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신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어리석은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갈 3:3~5)
하나님이 거듭난 성도 가운데에서 능력을 행하시는 것이 우리가 온전하게 살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까? 우리가 온전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와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로마서 5장 6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예수님은 우리가 온전할 때가 아니라 연약할 때, 경건치 않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 행위와 아무 상관없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속의 은혜를 듣고 믿음으로 우리가 의를 얻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를 얻었습니다. 우리 행위와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율법을 마구 어기면서 살아도 괜찮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우리 삶을 예수님이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예수님이 담당하십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그 안에 사시는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면 예수님이 그 삶을 주관하며 인도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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