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유업을 이을 주인인가, 종인가?
[설교] 유업을 이을 주인인가, 종인가?
  • 글 | 임민철 (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2.01.14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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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14편)

 

갈라디아서 4장 1~7절
갈라디아서 4장은 아들이지만 종처럼 사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주인이지만, 어렸을 때에는 종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리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어리다, 작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마지막 부분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며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종이든지 자유자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격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맏아들이고, 우리는 그 뒤를 이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신분이 어떤 사람이든지, 부족하거나 연약하거나 육신의 욕망에 이끌리며 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의 마음으로 사느냐, 종의 마음으로 사느냐?’는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들이면 모든 것을 물려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종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산 것이 아니라 종살이를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믿음을 갖지 못하면 그와 같이 삽니다. 믿음으로 살면 아들로서 살고, 믿음이 없으면 구원받았는데도 종으로 살게 됩니다. 
한번은 어떤 자매가 저를 찾아와서 몸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기도를 받아 병이 낫고 싶어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 “자매 병이 나을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매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병에 끌려가는 종으로 저를 찾아왔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매는 이미 병을 이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으면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이 없으면 종으로 삽니다. 종은 잘해야 하고,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몸이 아픈 자매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내가 왜 병이 들었겠어? 내가 세상을 좋아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되었으니까 병이 들었겠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종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주인의 마음을 갖고 사느냐, 아니면 믿지 못해 종의 마음을 갖고 사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갈 4:1)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우리가 받은 구원은 너무 놀랍습니다. 저는 ‘목사는 성도들에게 주인으로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헌금 안 해요? 왜 기도 안 해요? 왜 전도 안 해요? 그러면 하나님의 복을 못 받아요.” 목사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하면 복을 받고 전도해야 복을 받는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고 전도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았기 때문에 기도하고 전도한다면 기도나 전도가 즐거울 것입니다. 
사무엘하 9장에 므비보셋이 나옵니다. 그는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이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요나단이 다윗을 지켜주며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버리지 말라.”라고 하며 다윗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왕위에 오른 뒤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찾았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윗이 므비보셋을 불러 약속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내가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반드시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그러자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절하며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재산을 주고, 왕자처럼 자기 상에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므비보셋을 왕자로 선언해준 것입니다. 이제 므비보셋은 다윗이 말한 대로 왕자로서 살 수도 있고, 자신이 말한 것처럼 ‘죽은 개’로 살 수도 있습니다. 므비보셋에게는 다윗이 한 약속도 있고, 다윗을 죽이려고 한 사울의 손자로서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위치도 있습니다. 왕자처럼 왕의 상에서 먹을 자격도 있고, 늘 부끄러운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위치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어느 쪽을 선택했습니까?
후에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이 도망갈 때, 그가 왕의 아들이라고 믿었다면 종 시바에게 “나도 왕과 함께 가야 한다. 나를 데리고 가라.”라고 명령하면 됩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시바가 양발을 저는 그를 두고 혼자 다윗에게 가서 므비보셋을 무고했습니다. 그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까지 므비보셋이 수염도 깎지 않고 발도 씻지 않고 옷도 빨지 않고 지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므비보셋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을 때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저는 절뚝발이여서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종 시바가 나를 속이고 왕께 저를 참소하였나이다.”
이렇게 말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내 아비의 온 집이 왕 앞에서는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다윗이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왕자와 같은 자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마음이 여전히 ‘자신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이 므비보셋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구원받아야 한다고 전도할 때 ‘죄를 씻어야 한다’고 합니까, ‘죄가 이미 씻어졌다’고 합니까? 구원받으라는 말은, 죄를 씻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가 이미 씻어졌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이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믿음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오늘부터 믿음을 가진 신실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가 모든 것을 가졌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있으니, 이제 그 사실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믿으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고, 믿지 못하면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잘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얻을 것이 사라지거나 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잘하지 못해도 당당합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아들이라는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살 자격이 없어서 그런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자격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신앙이 어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주인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누리며 삽니까? 아니면 ‘내가 이렇게 사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실까? 내 마음이 이 모양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실까? 하나님이 벌을 주시면 어쩌지?’ 하며 눌리는 마음으로 삽니까? 후자의 마음으로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서 종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해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이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갈 4:4) 그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에 빠진 채 율법 아래서 사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로마서 8장 3절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혼선에 빠지는 것이, 자신이 연약해서 죄에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연약한 것이 아니라 율법이 연약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죄에 빠지는 것은 율법을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하는 욕망이 율법보다 강한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을 알지만, 욕망이 율법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미움에, 음욕에, 탐욕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율법이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서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육신에 넘기셨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기 위해 여자에게서 나고 율법 아래서 나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속량이란, 죄의 값을 지불해 죄에서 건져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육체에 우리 죄를 짊어지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죄의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율법 아래 있던 인간을 속량해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냥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지 말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2장 3절에서는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큰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담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구원받고도 여전히 자신에게 매여 종처럼 눌리면서 삽니다. ‘나는 부족해, 나는 연약해, 나는 형편없어….’ 그러나 므비보셋이 사울의 손자요 양발이 절뚝발이였던 것처럼, 우리는 원래 형편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속량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연약함에 매여 눌려서 사는 종이 아니라 유업을 이을 주인입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6~7)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자격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엄청난 사실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우리가 주인의 삶을 삽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죄를 씻어 달라고 하지 않고 죄가 씻어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만 하지 않고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잘하면 하나님이 돕고 잘못하면 돕지 않는, 그런 세상의 이치가 작용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미 주셨습니다. 
성도가 병이 들면 자신이 믿음이 없고 잘못 살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보응하시면 우리 몸에 성할 곳이 없습니다. 주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 살기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종은 잘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얻어맞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요,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습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주인이면서 종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하늘의 권세와 능력을 얻은 주인으로 담대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또 은혜를 입히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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