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
[설교]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2.01.17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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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_화목제(7편)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각오해도 죄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범하면 예수님이 즉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구원받은 성도가 자신의 연약함에 사로잡혀서 신앙생활을 등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일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나를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서부터 문제를 해결할 용기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화목제는 속죄제와 다른 점들이 있는데, 특히 피에 관한 부분이 다릅니다. 속죄제에서는 희생의 피를 대부분 제단 뿔에 바르지만, 화목제에서는 그 피를 제단 사면 바닥에 뿌립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다가도 바닥에 뿌려져 있는 피를 보면서 힘과 위로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가책을 받으면 죄를 안 짓게 되는가?
구원받기 전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거나 잘못된 습관이나 삶을 끝내려고 애써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짓고 가책을 심하게 받으면 이후로는 죄를 짓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심하게 자책하며 괴로워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도박에 빠져 있다가 구원받은 어떤 사람은,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끊은 사람과도 도박을 해보았다고 합니다. 끊어진 손가락으로 도박하는 사람이 각오가 부족해서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스스로 이렇게 해보았다 저렇게 해보았다 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성경을 펴서, 그 안에서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죄를 사함받고 싶으면 성경에서 ‘어떻게 해야 죄가 사해지는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기도에 응답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지’ 성경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병이 낫고 싶으면 ‘병을 낫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약속한 길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정확히 모를 때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만 애씁니다. 심하게 가책을 받고, 울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면 부끄러워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줄 알고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죄를 안 짓거나 적게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1)
여기에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길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손가락을 끊어낸 각오가 도박을 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가슴을 쥐어뜯고 머리를 벽에 박으며 슬퍼해도 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 외에 죄를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요일 2:1)
성도가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매여서 다른 죄를 또 짓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그 마음이 예수님과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이 없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예수님과 멀어진 상태에서 죄를 짓게 되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거리가 더 생기기 때문에 또 다른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범죄한 것을 기회 삼아 우리가 주님과 멀어지도록 우리 생각을 이끌어 갑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더 깊은 죄 속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그러한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요일 2:1~2)

우리가 죄를 범하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즉시 화목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에서 떨어진다면, 그 상태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각오하고 노력해도 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교회에서 어떤 성도가 잘못한 후 “한 달 뒤에 교회에 가겠습니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탄이 ‘네가 무슨 낯으로 교회에 가냐? 잠잠히 있다가 부끄러움이 조금 사라지거든 가라’는 마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기회를 잡아서 하나님과 그 성도 사이에 틈을 내려는 수작입니다. 그를 타락의 길로 끌어가려는 궤계입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우선 마음이 괴로우니까 얼마 동안은 교회와 떨어져 있으려고 하는데, 마땅한 생각 같지만 자신을 타락으로 이끌려는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거나 죄를 지으면 기도하기가 싫어지고 성경 읽는 것도 싫어집니다. 성도들을 만나는 것도 꺼려지고, 목사님도 피하고 싶습니다. 그런 것이 다 사탄의 작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더 깊은 죄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우리의 대언자요 화목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순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죄 문제를 대언자인 예수님이 즉각 해결해 주십니다. 그 일이 바로 화목제물인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럼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괜찮겠네’라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죄의 가책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하면 우리가 죄와 멀어집니다. 요한1서 2장 1절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치 않게 하려고 이 사실을 쓴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죄에 대한 가책을 주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굳게 결심하면 죄를 짓지 않을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죄를 지으면 더 큰 각오를 하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죄의 가책에서 벗어나게 하는 설교를 들으면 ‘저렇게 하면 교인들이 마음대로 죄를 지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한 발자국 더 앞서 나간 사람은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괜찮다고 설교한다’고 비방합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과 우리가 아무 막힘이 없이 화목하면 사탄이 우리를 유혹할 때 하나님이 그 유혹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이 깨끗해집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성도가 구원받은 뒤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았거나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구원받기 전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각오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삽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담이 사라질 때, 하나님과 화목해져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죄의 유혹을 이겨 주시는 것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과 화목할 때, 죄의 유혹을 받지만 마음에 살아 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한다는 사실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범죄할수록 우리를 더 끌어안으시는 주님
화목제물의 피는 제단 뿔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제단 사면 바닥에 뿌립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을 위해 흘려진 그 피를 밟고 갈 때마다, 우리가 실수하고 범죄할지라도 하나님과 화목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요한1서 2장 2절 말씀이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온 세상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된 삶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아담처럼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했고,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큰 은혜를 입고도 대부분 여전히 자기 생각을 따라서 살며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하나님을 쉽게 저버립니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겠다 싶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든 싫어하시든 상관하지 않고 따라갑니다. 
이런 우리이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과 멀어지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설 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하거나 범죄해도 쫓아내지 않고 우리 허물을 용납하시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언자가 되셨습니다. 
구원받은 뒤 잘못된 삶을 계속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을 더 읽고 기도를 더 하고 믿음을 더 가지려고 애써야 할까요? 아니면 ‘구원받은 내가 이렇게 살면 되나?’ 하고 자책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럴수록 화목제물인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거리낌 없이 서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범죄하는 우리 체질을 알고 계십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처럼 시험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형편을 잘 알고 계시며, 우리를 능히 도우십니다. 
화목제물의 피는 제단 사면 어디에나 뿌려졌습니다. 그 피를 밟지 않고는 제단 앞에 나올 수 없듯이,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밟아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목제물의 피입니다. 우리가 화목제물의 피를 밟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거함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했다고 내쫓으면 죄악에 휩쓸릴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할수록 집안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죄했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우리는 더 깊은 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할수록 우리를 더욱 끌어안고 감싸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화목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화목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때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죄를 이기게 됩니다. 겸손해지고 온유해지며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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