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한편 손 마른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님
[설교] 한편 손 마른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님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2.11.23 11: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2년 11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4편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쉼을 얻었다. 문둥병자도, 눈먼 소경도, 38년 된 병자도, 딸이 죽은 야이로도, 간음한 여자도, 풍랑이 치는 바다에 있던 제자들도…. 
구약시대에 안식일이 되면 일하지 않고 쉬었던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모든 짐을 벗고 쉬게 된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이 우리 짐을 대신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와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쉼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의 내용을 7회에 걸쳐 소개한다.

 

부모가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귀찮은 일, 미운 일이 많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고집이 생겨 안 될 일인데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엄마에게 미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아이가 다 예쁘고 귀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운 짓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미운 짓을 하는 아이를 위해서 희생합니다. 아이가 더 자라서 제멋대로 행동하면 부모가 자녀를 내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넌 내 자식 아냐!” 하고 집에서 내보내도 부모는 자식 사랑을 멈추지 못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해서, 똑똑하고 자랑할 만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된 행동만 일삼아도, 세상이 용서하지 못할 죄를 지어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사랑이 미움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자식에게 미운 구석이 많아도 사랑이 미움을 이기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부모의 그 사랑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 그 마음을 부모들에게 넣어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미운 짓 하는 모든 것을 이길 사랑을 하나님께 받고 아버지가 되었고, 세상의 어머니는 못되고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들을 다 감쌀 수 있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 자랍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삶에 나타나고 우리 마음에 닿으면서 거친 마음이 다듬어지고 못된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다른 사람을 조금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어 가십니다. 


그를 병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예수님의 마음
마태복음 12장에 한편 손 마른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2:9~10)
이 사람은 한편 손이 말라서 쓰지 못하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가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에게 같이 일하자고 하겠습니까? 어떤 여자가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겠습니까? 손을 쓰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는 삶을 살아야 하니 그의 마음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컸을 것입니다. 
몸이 불편한 그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안 고치는지 보자’ 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비난할 조건을 찾으려고, 예수님에게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저 사람 손을 고쳐 주고 비난을 받을 게 아니라 나중에 고쳐 주자.’ 하고 하루를 미루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받을 비난이나 당할 핍박을 개의치 않고 그 병자와 마음을 같이하셨습니다. 병에 시달리고 병으로 인해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그를 고치시려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율법에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아닌 날에는 악을 행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항상 선을 행하시는데 안식일에도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며 그 사람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를 병에서 자유하게 해주고 싶으신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정말 고맙습니다. 고마운 일들과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우리 안에 감사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겸손해집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의 도움과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 마음에 감사가 넘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는 사람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돌로 때려서 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를 비난하시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죽음에서 건져내시고 새 삶을 주셨습니다. 성경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 살았습니까? 그런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 ‘하나님, 왜 날 사랑하십니까! 왜 나 같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십니까!’라는 마음이 듭니다. 
중풍병자, 문둥병자, 눈먼 소경…, 예수님은 그들을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당신의 아픔으로 느끼시고, 그들 마음의 괴로움을 당신의 괴로움으로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읽으면 예수님이 우리 또한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여러 면으로 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 속에서도 우리가 쉴 수 있도록 예수님이 안식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병이나 고통스런 문제나 죄가 있다고 해봅시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에는 우리가 그 병과 싸우고 문제나 어려움과 싸워야 하고, 죄를 해결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모든 것을 예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예수님의 문제가 된다면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신앙생활은 우리가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하려고 하면 신앙이 잘못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죄를 씻으려고 하기 때문에 평생 애써도 죄를 조금도 씻지 못합니다. 죄는 예수님이 씻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저절로 죄에서 벗어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든지,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든지, 어떤 죄를 가지고 있든지 예수님께로 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면 우리를 쉬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룰 수 없는 약속을 하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어떤 문제나 병이나 어려움이나 죄를 가지고 있든지 예수님이 우리 짐을 대신 지셔서 우리를 편히 쉬게 하십니다. 마음에 죄가 있고 근심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나를 쉬게 하셨다’는 약속을 믿고 쉬어야 합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돼지우리에서 입고 있던 누더기를 걸친 채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왔습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먼저 보고 멀리서 달려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탕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아버지는 탕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아버지가 즐기자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즐길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아버지가 갖추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눅 15:23)
아버지가 즐기자고 하니 사람들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불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입니다. 맏아들은 화를 내며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들어가자고 권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렇게 말하는 맏아들에게 아버지가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 15:31)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이미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았다고 항변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제일 좋은 옷이 탕자 것이고, 아버지의 반지도 탕자 것이고, 아버지의 신발도 탕자 것이고, 아버지의 음식도 탕자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돼지우리에서 고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실을 몰라서 맏아들처럼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혹은 돼지우리에 있던 탕자처럼 괴로워하고 힘들어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의 더러움을 씻긴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씻으셨습니다. 아버지가 탕자에게 새 옷을 입힌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다 주었는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안 주었다며 불평하고 있는 맏아들의 모습, 그것이 오늘 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눈을 떠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의 더러움을 씻어준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쉴 수 있고,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 문제, 가정 문제, 장래 문제, 건강 문제, 경제적인 문제, 어떤 문제 앞에서도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 지혜, 은혜, 모두 우리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