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라이프]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글 | 김성태(기쁜소식강릉교회)
  • 승인 2023.05.10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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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나는 나 자신을 교회를 위하는 자로 여기고 살았다. 그런데 교회가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나를 위해서 기다려주고 희생하고 있었다. 나는 주의 종을 섬기는 자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연약한 나를 주의 종이 말씀으로 품고 마음으로 낳아주신 것이었다. 
 

우리 집은 불교를 믿는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대처승으로 강원도 평창 쪽에 작은 암자를 가지고 계셨고, 아버지도 조계종 승려로 계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시집살이가 너무 고되어 개신교로 개종하신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부터다. 교회가 좋아서 따라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시집살이로 너무 힘들어하시니까 외갓집에서 세 번이나 와서 어머니를 데리고 간 기억이 있어서 ‘나라도 어머니 말을 잘 들어야 어머니가 우리를 버리고 가지 않겠구나.’ 하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교회에 다니면서 어린 마음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죄를 사해 달라고 울며불며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이 죄를 씻었다고 말하면서 왜 저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는 예수님이 씻었지만 지금 내가 짓는 죄는 기도하면서 씻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억나지 않는 죄들은 어떻게 하지?’ 하고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기도할 때면 ‘생각나는 죄는 용서해 달라’고 하고, 마지막에 ‘내가 부지중에 지은 모든 죄도 사해 달라’고 하며 기도를 마쳤다.

내 죄도 예수님이다 지고 가셨구나
어머니는 교회 일을 열심히 하셨고, 직분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목사님들의 삶을 보면서 실망하시고, 교회가 교인 수와 재산을 계산해서 교회를 교환하는 모습에 회의를 느껴 참된 교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셨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제칠일안식일교회에 나가셨고, 나도 어머니를 따라갔다. 군에 있을 때까지 그 교회에 다녔다.
2000년에는 어머니가 작은어머니와 강릉에서 열린 박옥수 목사님의 집회에 가셨다가 구원받은 후 교회를 옮기셨다. 나도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보았다. 예배가 끝나자 신앙상담을 하자고 하며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한참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다시 그런 상담을 받게 할 거면 어머니 혼자 버스 타고 교회를 다니시라’고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1년 정도 지나 맹장 수술로 3일 정도 입원했을 때 한 목사님이 오셔서 내게 말씀을 전해주셨고, 퇴원하는 날 작은아버지 가게에 갔다가 한 번 더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았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이 말씀을 듣는데 ‘내 죄도 예수님이 다 지고 가셨구나. 예수님이 죄를 씻는 일을 이미 다 이루어 놓으셨구나. 이제 기억나지도 않는 죄를 위해서 다시 기도할 것이 없구나.’ 하며 속이 후련했다. 그동안 죄에 매여서 항상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삶의 목표는 돈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집이 어려워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기억들이 있다. 누가 내 삶의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식구들이 배곯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했고, ‘돈, 돈, 돈’ 하며 돈을 좇아서 살았다. 구원받은 후에도 나의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대학을 2년간 휴학하고 아버지와 함께 레미콘 트럭을 각각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다. 동생도 같이 레미콘 차량을 운영하면서 집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유일한 재미는, 일이 끝나면 삼부자가 앉아서 캔맥주를 마시고 자고 일하러 가는 것이었다. 
대학에 복학하자 교회 자매님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세계 여러 나라의 대학생들이 한국에 모여서 갖는 월드캠프에 참석하라고 권했다. 자매님들은 돈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나를 하나님의 축복 안으로 인도하려고 학교 식당에서 밥도 사주면서 나를 월드캠프에 참석하게 이끌어 주셨다. 그때는 그런 자매님들이 얼마나 귀찮고 싫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 마음에서 누구보다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다. 결국 나는 월드캠프에 2003년에는 버스 운전사로, 2004년에는 학생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수양회에도 참석해 말씀을 들으면서, 돈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조금씩 알게 하셨다.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2005년에는 교회의 인도로 귀한 자매와 결혼하고, 이듬해에는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에 함께했다. 땅을 구매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지만, 매일 저녁 기도회를 하며 건축비를 헌금하고 땅을 구매해 박옥수 목사님을 모시고 기공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예배당은 하나님이 지으신다’고 하셨는데, 건축하면서 어려울 때마다 그 말씀이 어려운 형편을 뛰어넘을 힘을 주었다. 
한번은 건축비가 모자라서 어려움을 겪었다. 내 마음에도 한계가 찾아와서 이제는 더 이상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기도회 시간에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말씀이 마음에 들렸다. 극심한 가뭄 때에 사르밧 과부가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에 있을 때, 하나님이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 말씀하셨다.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3~14) 
이 말씀이 내 생각과 부딪혔다. 건축 헌금을 더 하다가는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게다가 그 무렵 큰딸이 밤새 아프면서 내 마음은 더욱 강퍅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의 말씀이 내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사르밧 과부가 자신의 방법으로는 결국 아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엘리야의 말씀대로 했을 때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잖아. 지금 내 생각에는 망할 것 같지만, 엘리야의 말씀대로 사르밧 과부에게 일하신 하나님이 내 삶에도 일하고 은혜를 베푸시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정하니 너무 평안했다. 
다음 날 보험을 해지하고 통장 잔고를 다 비웠다. 그 후로 하나님이 한 번도 돕지 않으신 적이 없었고, 이 말씀으로 어려운 형편을 넘게 하셨다.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예배당 건축이 끝나고 교회 안에서 6년을 살았다. 그때 셋째와 막내가 태어났다. 막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혼자서 교회 뒤 계단을 내려가다 일층에서 지하로 떨어져 두개골이 이마부터 머리 뒤까지 반으로 금이 가는 일이 있었다. 의사가 다행히도 두개골 안쪽으로 피가 난 흔적이 안 보인다면서 일주일 정도 입원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아내가 목사님이 해주신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말씀을 하는데, 하나님이 아이를 지키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아이는 병원 안에서 공을 차면서 놀았다. 퇴원할 때 의사가 혹여 두개골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크면서 잘 지켜보라고 해서 한동안 조심하기도 했지만,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고 축구를 엄청 좋아하는 건강한 아이로 자랐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 안에 계신 것이 감사하다.

“자네가 사장 해!”
하나님은 회사 일에서도 세밀하게 은혜를 입혀 주셨다.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는 서울과 동해 두 곳에 법인이 있는데, 2015년에 서울 법인이 점점 어려워졌다. 목사님에게 사정을 말씀드리자 목사님이 “자네가 사장 해.”라고 하셨다. 사장을 한다는 것이 막연하고 쉽지 않아 보여서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뒤로 서울 법인의 상황이 악화되어 결국 동해 법인의 공장 경매가 진행되었고, 당시 관리부장이었던 내가 다른 주인이 생길 때까지 회사 운영을 맡게 되었다. 나는 어려울 때마다 목사님에게 나가서 교제를 받으며 회사를 운영했는데, 실적이 점점 생기니까 주거래 은행에서 회사 운영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어 생각지 못한 지원금을 받아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행 중이던 경매가 늦춰지면서, 나도 경매에 참여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우리 교회 목사님에게 말씀드린 뒤 입찰가를 정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경매일 하루 전인 2017년 11월 5일에 박옥수 목사님이 서울 대전도집회가 끝나고 해외 목회자들과 함께 강릉으로 오셨다. 그때 박 목사님의 인도로 입찰가를 다시 정하면서 근소한 차이로 내가 낙찰을 받았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조건도 없었는데, 돕는 자를 붙여 주시고 하나님의 종의 은혜를 입어 회사를 경영하게 하셨다. 

예수님과 교회와 마음을 같이 한다면
2020년에 박희진 목사님이 우리 교회로 파송되시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박옥수 목사님이 강원도 지역 교회들을 방문하러 와서 우리 공장도 방문하셨다. 목사님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구절을 말씀하시며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이 사업이 예수님의 사업이 되고, 모든 일에 예수님이 도우십니다. 형제도 예수님과 교회와 마음을 같이한다면 이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줄 확실하게 믿습니다.”라고 하셨다. 회사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말씀이 소망을 주었다. 나는 공장 위치가 안 좋아서 물류비도 많이 들고 기계도 안 좋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목사님이 기도하실 때 공장의 위치도 좋고 건물도 좋고 교통도 너무 좋다고 하셨다. 평소에 불평했던 내 생각도 완전히 바꾸어 주셨다. 그리고 얼마 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일이 없어서 어렵다고 하는데, 목사님이 다녀가신 후 나는 꾸준히 일할 수 있었다.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형편을 넘어본 간증이 있는가?
박희진 목사님은 형제 자매들과 마음의 싸움을 하시면서 내 마음을 다 드러내는 일을 하셨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구원 간증문도 쓰게 하시고, 복음 말하기도 하게 하시고, 무엇보다 ‘구원받고 나서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형편을 넘어본 간증이 있는가?’ 물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을 믿지 않고 사는 마음을 발견하게 하셨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화가 났다.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고, 하나님이 계시면 왜 힘들게 하냐고 목사님께 따져 물었다.
목사님과 계속 개인 교제를 하던 중 목사님이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형편을 넘어본 간증이 있으면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열왕기상 17장의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을 넘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이 “그때 그 말씀으로 형편을 넘었다면서, 그러면 지금은?” 하고 되물으셨다. 순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이 말씀이 내 삶에 힘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형편만 바라보고 사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아, 내가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목사님이 왜 성도들과 마음의 싸움을 하시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종교 생활을 하지 말고 문제를 들고 하나님과 연결되길 바라시고, 하나님의 종과 연결되기를 바라시는 목사님의 마음이 보였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작년에는 나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러시아에서 원유와 원자재를 저가에 중국과 인도로 보내면서, 중국에서 원자재 가격 이하로 완제품이 수입되어 사실상 공장 운영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그때 목사님이 룻기 말씀을 전해 주셨다. 그 가운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 말씀이 크게 들렸다. 저주 받은 모압 족속인 룻이 나오미를 붙좇아서 베들레헴에 갔을 때 예수님의 계보를 잇는 은혜를 입은 것처럼, 나는 영원히 저주를 받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였는데 예수님의 은혜로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룻이 나오미를 붙좇은 것처럼, 나도 목사님이 가시는 곳에 붙좇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목사님을 따라다니면서 신앙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 성막의 기명을 만들 때 하나님이 브살렐을 세워서 모든 지혜와 지식을 주셨지만, 오홀리압에게는 어떤 재주도 안 주고 브살렐과 함께하게 하셨다. 브살렐에게 주신 지혜와 지식이 그와 함께한 오홀리압에게도 전해지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잘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주의 종과 함께하기만 하면 주의 종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내게도 있겠다는 마음도 주셨다. 

‘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2022년 9월부터 박희진 목사님을 따라 태국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미얀마, 라오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열린 전도 집회에 함께했다. 복음을 위해 삶을 다 드리고 사는 선교사님들을 보며, 하나님이 주신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라’는 약속대로 하나님이 우리 선교회 안에 일하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복음을 섬기는 선교사님들의 모습이 내 모습과 너무 비교되어, ‘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공산 국가라서 종교 모임을 자유롭게 갖지 못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이 말씀을 사모해 모이고 복음을 섬기는 모습이 귀하고 아름다웠다. 
미얀마에 갔을 때에는, 현지 사역자들과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교회의 문이 닳도록 찾아와서 목사님에게 묻고 인도를 받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다. 전도팀이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챙겨 주는 모습 역시 그랬다. 나는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복음의 일을 할 때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을 때가 많았다. ‘신앙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며, 하나님의 종 앞에 자꾸 나가서 인도를 받고 배우면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를 그렇게 이끌고 인도하고 싶어하시는 목사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또한 전도여행 중에 나에게도 말씀을 전할 기회를 여러 번 주셨는데, 말씀을 전하면 전할수록 말씀이 진리인 것이 내 마음에 분명해졌다. 형편을 따라 내 마음은 수시로 바뀌지만 성경 말씀은 항상 동일하고 말씀이 진리인 것이 너무 감사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회사에 어려움이 있지만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하나님은 ‘정말 말씀만 믿고 갈래, 형편을 보고 따라갈래?’라고 물으셨다. 박희진 목사님은 사모님이 두 번 암에 걸리셨을 때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렘 29:11) 말씀 앞에 마음을 바꾸신 간증을 종종 해주셨다. 목사님 마음에 일하신 말씀을 내가 받으면 내가 목사님과 같은 마음이 되고, 목사님 속에 일하신 하나님이 내게도 일하시면 문제도 문제가 아니라는 마음이 들어 편안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구원받은 것이 감사하고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감사했지만, 사탄은 종종 내게 교회 때문에 내 시간도 뺏기고 교회 때문에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 마음을 주었다. 그런데 목사님을 통해 내 마음을 간섭하신 후 교회 덕분에 내가 가정을 이루고, 회사 일도 하고, 가족과 친척들이 교회 안에서 복되게 산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 
해마다 신년을 맞으면 하나님의 종이 한 해를 살아갈 말씀을 주신다. 우리 선교회뿐 아니라 나의 삶도 신년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이끄신 사실이 이제야 보인다. 올해는 네 명 문둥이의 발걸음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이 나의 발걸음 가운데에서 일하실 것이 감사하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 은혜를 입었지만, 아들이 죽자 엘리야를 원망했다. 그때 엘리야가 다시 아들을 살리는 것을 보면서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했다. 그것처럼 내 마음에 하나님의 종과 말씀을 세워주시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한 룻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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