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빛이 있으라 하시매
[오피니언] 빛이 있으라 하시매
  • 글 | 윤준선(기쁜소식한밭교회)
  • 승인 2024.01.11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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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 기쁜소식
자연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섭리-5

 

과학의 발전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의 원리를 드러냈다. 지동설이 맞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우리가 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에 오류가 있음을 가르쳐준다. 성경 속 많은 말씀과 비유가 자연현상을 인용하는데, 현대에 우리가 얻은 과학 지식이 성경을 새롭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번 호에서는 빛에 대해 생각해본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곳. 무엇인가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은 곳이다. 무엇도 어두움을 걷어낼 수 없는 그곳에 필요한 것은 한 줄기 빛이다. 어두움을 이기는 유일한 존재, 빛. 하나님의 창조 계획의 최우선 순위는 빛이었다. 빛을 창조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빛은 무엇인가
빛을 빛으로 인지하는 것은 어두움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적으로 어두움은 빛이 없는 상태로 정의된다. 어두움을 경험하면서 빛이라는 존재가 어두움에 가려진 세계를 드러내준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빛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을 때엔 빛이 우리 눈에서 나와 사물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빛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빛이 우리 눈이 아닌 외부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 눈은 외부에서 들어온 빛이 상像을 맺고 빛이 가져온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곳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빛은 무엇일까?
빛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뉴턴이다. 떨어지는 사과와 중력을 연상시키는 뉴턴은 또 광학이라는 영역을 탄생시켰다. 햇빛을 프리즘에 쏘아주면 햇빛이 무지갯빛으로 쪼개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시 무지갯빛 가운데 한 가지 색(예를 들어 보라색)만을 프리즘에 쏘면 보라색을 가지는 빛만 굴절되어 나온다. 또 쪼개어진 빛을 하나로 모아주면 다시 백색의 빛으로 변한다. 햇빛은 하나의 빛이 아닌 여러 종류의 빛의 혼합체인 것이다. 그런데 무지갯빛으로 쪼개진 영역 밖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온도계를 두니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무지갯빛 영역 밖은 프리즘으로는 보이지 않는 빛의 영역인 것이다. 햇빛에 가시광선可視光線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빛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 것은 전자기학의 아버지 맥스웰 덕분이다. 전기장과 자기장의 이론을 통합하고 전자기파를 예견한 맥스웰은 전자기파의 속도가 약 30만km/초라는 점과 그 당시 측정된 빛의 속도가 거의 같다는 점을 통해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빛은 전자기파(흔히 전파, 전자파라고 부르는)였던 것이다. 우리가 빛이라고 부르는 가시광선은 다양한 주파수를 가지는 전자기파 중 사람의 눈으로 인식 가능한 범위의 것을 의미한다. X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라디오파 등은 모두 전자기파를 파장의 길이에 따라 분류한 한 식구이다. 
그 뒤 빛은 아인슈타인을 만나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것을 알게 된다. 빛은 또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한다. 상반돼 보이는 중력의 거시 세계와 원자의 미시 세계에 대한 이해가 빛을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다. 빛을 향한 여정으로 빛을 이해하게 했고, 빛을 통한 여정은 우주를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빛, 에너지, 정보
그러면 빛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지구를 비추는 가장 가깝고도 절대적인 빛의 근원, 태양을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지구를 태양계 안에 두어 태양 주위를 공전하게 하시고, 태양으로 하여금 빛을 만들게 해서 지구를 비추게 하셨다. 지구에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창조하셨는데, 생명체가 생명 활동을 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는 생명체 안에 화합물의 형태로 보존되고 필요할 때 사용되는데, 이 화합물을 만들어낼 때 빛이 필요하다. 빛 속의 에너지가 형태를 바꿔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화학 에너지로 저장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한다. 식물과 몇몇 미생물들이 광합성을 통해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 빛을 생명 활동을 위한 화학 에너지로 바꾸고, 이 화학 에너지가 먹이사슬을 통해 다른 생명체에게로 이동해 생물계를 살아 있게 만든다. 태양 안의 에너지를 빛에 담아 우주의 최고 속도로 우주 공간을 이동하게 하고, 지구 안 생명체가 광합성을 통해 생명 활동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과정 하나하나가 놀라운 설계이다.
인류가 생산하는 에너지의 25퍼센트를 조명을 위해 사용하고, 인간의 감각 정보 중 시각이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인간에게 보는 영역은 필수불가결하다. 본다는 게 뭘까? 보는 것은 빛, 눈, 뇌의 합작품이다. 태양을 떠난 빛은 지구에 도달하고 지구 위 물체를 만난다. 일부는 물체에 흡수되거나 물체를 투과하고 일부는 반사되는데, 반사된 빛이 우리 눈을 만나게 된다. 눈 안의 볼록렌즈 같은 수정체를 통해 한 곳으로 모아진 빛은 빨강, 초록, 파랑의 색깔을 인식하는 수용체를 만난다. 수용체는 각각의 색깔을 가지는 빛에 따라 반응하는 안테나 같은 것이다. 그리고 수용체의 반응을 시신경 세포가 뇌에까지 옮겨주고, 시각을 관장하는 뇌는 시신경 세포가 전해준 전기신호를 우리가 본다고 하는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슬러 생각해보면 어떤 물체가 가지는 고유의 색깔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가 반사하는 특정 빛(전자기파)을 뇌가 색깔이라고 하는 것으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물체에 색을 덧입혀주는 것과 같다. 빛은 이렇게 우리 밖의 세계를 우리 안에 넣어준다.
빛에 대한 이해는 빛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무선 통신이다. 모스 신호를 이용한 인류 최초의 무선 통신에서 시작해 우리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시청이 가능한 복잡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자기파에 송신하고자 하는 정보를 같이 실어 보내주면 수신기에서 받은 전자기파에 실린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고 우리는 휴대폰, 라디오, TV를 통해 듣거나 보는 것이다.

소경을 보게 하시 듯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 

흑암으로 가득 찬 천지에 하나님이 빛을 만드셨다. 어두움을 벗기고 하나님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고 싶으셨다. 빛은 하나님의 세계를 가지고 사람을 비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사람이 빛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온다. 한 번도 보는 세계를 경험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은 보고 느끼며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보는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보이는 세계를 이해하도록 설명하지 않으셨다. 이해하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른 세계다. 예수님은 그가 소경으로 난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그가 보는 것이다. 그에게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다. 비록 소경은 아닐지라도 마음의 세계에는 어두움 밖에 없다. 내가 보고, 듣고, 판단하는 ‘나’라는 세계 안에서만 살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그것만을 의지하고 그 한계 안에서 산다. 마치 하나님의 세계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경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고 경험한 적 없는 하나님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시길 원하신다. 우리에게 인간의 세계가 아닌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하고 싶으신 하나님. 빛은 하나님의 세계를 가지고 우리 마음에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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