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씨앗
[오피니언] 씨앗
  • 글 | 윤준선(기쁜소식한밭교회)
  • 승인 2024.07.04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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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 기쁜소식
자연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섭리_11편

 

화려했던 봄꽃이 시들고 떨어지면 그 자리에는 열매가 자라난다. 햇살을 먹고 자란 열매는 점점 먹음직스런 자태를 드러낸다. ‘열매가 연다’고 해서 또는 결실의 내면을 ‘열어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계절, 여름. 사람은 과실에 온 관심을 두지만 정작 식물은 열매보다 더 중요한 것을 열매 안에 숨겨 두었다. 식물이 온 정성을 들여 만든 열매 안에 숨겨둔 씨앗.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온전한 정보 보관소, 씨앗
씨앗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 태초에 창조된 식물은 수명을 다하고 사라졌지만, 다시 그것과 동일한 개체를 만들어낼 정보를 담아둔 곳이 바로 씨앗이다. 씨앗은 작고, 관심을 끌 만하지도 않고, 이렇다 할 가치가 있어 보이지도 않지만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어떻게 작은 씨 안에 커다란 나무를 담아둘 생각을 하신 걸까? 
씨 안에 담긴 정보는, 적절한 때에 해독 과정을 거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준다. 씨 안에 압축된 정보를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면 가지도, 잎도, 꽃도, 열매도 생긴다. 식물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낯설겠지만, 이미 씨앗 안에 담긴 정보가 그것들을 모두 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또 씨를 만들어낸다. 태초의 식물은 씨앗 안에 압축되고 보존되어 변하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까지 지구 안의 생태계를 유지하게 해 준다.

시간을 넘어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종자금고와 우리나라 경상북도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종자보관소는 유엔이 인정한, 국제적으로 두 곳밖에 없는 종자 보관소이다. 지구 최후의 날을 대비해 재건을 위한 종자를 보관해두는 곳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살아있는 가장 오래된 씨앗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대추야자 씨로, 무려 2,000년 전의 것이다. 이 씨가 발아에 성공해 성숙한 나무가 되었다. 씨앗은 시간을 초월한다. 씨앗은 보기에는 변화가 없는 정지된 상태 같고, 죽은 것 같기도 하다. 씨앗은 그런 상태로 무언가를 기다리도록 만들어졌다. 씨앗이 기다리는 그 무엇을 만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죽은 것 같고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대추야자 씨처럼, 씨는 100년, 500년, 1,000년을 기다려도 죽은 것 같은 모습을 하다가 2,000년이 지나 삶을 다시 시작할 조건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을 틔우고 식물의 모습을 갖추어 나간다.

발아의 조건
씨앗은 장기 보존을 위해 건조한 상태로 유지된다. 사람이 공기 중에서 살아가듯이 세포 안의 환경은 모든 것들이 물 안에 존재한다. 씨앗으로 보존되는 동안 건조 상태를 유지하고, 이 과정에서 씨앗은 활동을 멈추고 잠이 든다. 장기 휴면 프로젝트가 가동하는 것이다. 
씨앗이 휴면기를 마치고 다시 하나의 성숙한 생명체로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수분, 온도, 산소다. 이 조건이 발아하기에 알맞게 맞춰지면 씨앗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먼저 적당한 수분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다음 세포 안의 단백질과 같은 많은 물질들이 실제 일을 하려면 필요한 조건이 온도다. 온도가 낮으면 움츠러들 듯이 단백질도 일을 하기에 최적의 온도가 있다. 이제 수분과 온도 조건이 맞춰졌으니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그런데 씨앗이 싹을 틔우고 흙을 뚫고 나와서 햇빛을 보기까지는 아직 여정이 남아 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해야 에너지가 공급된다. 광합성을 하려면 흙을 뚫고 나와 빛을 만나야 가능하다. 그렇기에 씨앗이 극복해야 할 첫 관문은 땅 속이라는 환경이다. 씨앗은 빛을 만나기 전 단계인 흙 속에서, 이때를 위해 탄수화물과 같은 성분을 씨앗 안에 보관하고 있다가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광합성을 통해 이미 저장되어 있는 에너지를 세포가 일을 하는데 다시 이용할 수 있도록 변형한다. 
이때 산소가 필요하다. 산소는 탄수화물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부산물을 받아서 물로 변한다. 광합성을 통해 빛이 가진 에너지를 탄수화물 속에 저장하는 과정과 반대 과정을 통해, 탄수화물 속의 에너지를 세포가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한다.
이제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씨앗이 살아 움직일 시간이다. 껍질을 뚫고 잎과 뿌리가 나오고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떡잎은 위로 뻗어나간다. 얼마의 거리를, 시간을 지나야 할까? 기약이 없지만 저장해두었던 에너지를 소진할 때까지라도 여정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가두고 있던 흙을 뚫고 나와 처음 빛을 만나게 된다. 
빛 알갱이가 떡잎을 만나는 순간 식물의 세포 안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된다.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어둡던 곳에서의 시간은 끝나고 빛과의 삶의 시작을 위해 모든 것을 재정비한다. 땅을 헤치고 나오느라 숙이고 있었던 떡잎은 고개를 들고 두 잎을 활짝 펼친다. 그리고 엽록소를 만들기 시작한다. 광합성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 씨앗 안에 저장해둔 에너지원이 아닌, 빛이 주는 에너지로 삶을 시작한다.

 

썩지 아니할 씨, 말씀
식물이 열매 안에 숨겨둔 씨앗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태초에 창조된 식물 자신은 씨앗 안에 고스란히 담겨 시간을 이기고 살아남는다. 그리고 자신 안에 감춰진, 처음과 같은 식물을 드러낸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썩지 아니할 씨는 보잘 것 없어 보인다. 인간의 선과 같은 썩어질 씨에 가려 썩지 아니할 씨를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썩지 아니할 씨는 떨어져 싹 틔울 곳을 기다린다. 발아의 조건이 만족해야 긴 잠을 끝내고 생명체로의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썩지 아니할 씨는 인간의 선이 끝난 누군가의 마음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한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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