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심판을 막아주는 역청
[설교] 심판을 막아주는 역청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4.07.05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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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창세기 강해(17편)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고 난 뒤에 방주 안팎에 역청을 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청은 방주의 나무 틈 사이로 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출애굽기에도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바로가 히브리인의 아들이 태어나면 전부 나일강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차마 강물에 던질 수 없어서, 갈대 상자를 만들어 그 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한 뒤 모세를 그 안에 넣어 강가에 있는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역청을 칠한 이유는, 갈대 상자 속으로 물이 스며들어오면 모세는 죽을 수밖에 없기에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뒤 방주에 역청을 칠하라고 하셨습니다.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서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이 평안하게 물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역청이 하나님의 심판인 물로부터 방주 안의 사람들을 격리시키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흘린 피는 죄로 말미암는 멸망으로부터 우리를 막아 줍니다.
우리가 받을 모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받으셨기 때문에, 이 땅에 죄에 대한 심판과 저주가 임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에서 우리를 격리시켜 줍니다. 세상이 다 심판을 받을지라도 그 피(방주의 역청)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역청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종교인들과 달리 간음한 여자나 사마리아 여자, 죄인들이나 세리들과 자주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이나 세리들과 자주 만나셨던 것은 그들의 죄에 같이 빠지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죄에서 건져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보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 사이에서 지내면서 그들과 가까이하셨지만 그들의 죄에 참예하거나 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죄악과 분리된 분명한 담이 있어서, 예수님의 몸은 죄인들 속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과 같이 살고 있었지만 죄의 유혹이 예수님의 마음에 침범해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 제사장 같은 종교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에게는 죄악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마음의 담, 다시 말하면 마음에 역청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죄인들과 가까이하면서 죄에 쉽게 물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의를 유지하기 위하여 죄인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고, 죄인들과 함께 먹지 말아야 했으며, 죄인들과 함께 앉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죄악으로 더러워져 있어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은 깨끗하게 보이지만 속에는 사람의 시체가 썩어서 냄새나는 무덤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죄악에 빠진 사람들과 떨어져서 자신들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나타내려고 했지만, 그들 마음 중심은 이미 죄악으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죄악으로부터 그들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마음에 죄악이 들어올 때 막을 수 있는 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방주를 잘 만들었을지라도 역청을 칠하지 않았다면, 나무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와서 방주 안에 물이 가득 차 결국 방주가 침몰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칠해져서 죄악을 막아 주지 않는다면, 마음 틈 사이로 언제 흘러들어왔는지 모르게 죄악이 들어와서 마음이 죄에 빠져 더럽고 악한 것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 틈에서 사셨지만 죄악이 예수님 마음 안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마음을 더럽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죄악을 가로막는 분명한 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같이 지내면서 그들을 가까이 접하셨지만 그들의 죄가 예수님을 더럽힐 수 없었듯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미칠 수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 심판의 비가 40일 동안 내려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만물이 죽임을 당했지만, 방주 안팎에는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역청이 칠해져 있어서 물을 막아 주었습니다. 그것처럼 온 세상이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때 예수님의 보혈 아래 있는 사람들은 보혈이 심판을 막아 주어서 심판이 결코 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 모든 죄를 사했을 뿐 아니라, 심판에서 우리를 격리시켜 놓았습니다.
추운 겨울날, 밖이 아무리 추워도 따뜻한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고 있으면 추위가 우리를 춥게 할 수 없습니다. 따뜻한 코트를 입고 있으면 코트가 추위를 막아 줍니다. 그것처럼 온 세상이 심판을 당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의 안팎에 역청을 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깥 부분에 칠한 역청은 물이 들어오는 것을 능히 막아 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함을 확인하십니다. 안쪽에 칠한 역청은 노아와 그 가족들이 ‘혹시 물이 새어들어오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칠해진 것입니다. 밖에 칠한 역청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피해 있다는 사실을 보고 아시게 했고, 안에 칠한 역청은 노아의 가족들로 하여금 ‘우리는 안전하구나’라고 믿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도 보시고 우리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시고 우리에게 “죄가 없다. 눈같이 씻어졌다. 죄를 기억지 아니하겠다. 의롭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고 ‘내 심판은 끝났구나. 내 죄가 심판을 받은 표로 피가 흘려졌구나. 나는 이제 온전하고 깨끗하게 됐구나. 거룩하게 됐구나’ 하고 믿음으로 마음이 죄에서 해방을 받아 자유와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있습니까? 그 보혈이 여러분이 받을 모든 심판을 끝냈고,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했으며, 다시는 심판이 여러분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막는 담이 됐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받을 모든 심판을 받게 하셨고, 우리를 심판과 하나님의 형벌에서 온전히 격리시켜 놓으셨습니다.
아직까지 죄 때문에 두려워하며 심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심판은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심판은 예수님이 당하셨습니다. 다시는 심판이 우리에게 미칠 수 없도록 영원하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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