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이사야 52장 7절)
박목사님은 복음으로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계시고 김기철장로님은 복음이 담긴 석화전을 통해 동남아에서 활약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여기시는 복음의 역사가 가득한 선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곳 서울제일지역에서도 류홍렬목사님을 모시고 관악문화원에서 갖는 집회가 무르익어가는데 목요일 저녁 복된 소식이 전해지고 구원이 공포되어 많은 분들이 구원을 받았다며 손을 들어 표시하셨습니다. 한 심령도 그냥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을 다시 초청했는데 기꺼이 죄사함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손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창세기 37장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풀어주시는데 너무도 쉽고도 깊은 복음이었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도 은혜를 입지만 구원받은 본 기자도 복음을 다시 들으면서 더이상 `나`라는 사람은 없고 예수님만이 살아계심을 듣게 되자 허탄한 욕망과 생각에 매여있는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오늘 공포된 구원의 소식을 간략하게 옮겨봅니다.
*창세기 37장 29절 ~ 36절
"구원을 받으려면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야 합니다. 하나는 함정 속에 빠져야하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아야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용납지 않고 반드시 심판을 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깨닫게 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에 사단은 `나는 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절대 내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에 자기 행위와 양심으로 구원에 대해 확신하려고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세상에 심판을 내리려 작정한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에 또 우리 스스로 할 수도 없기에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다 짊어지고 있기에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님께로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의인을 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벌함은 세상죄에 대한 징벌이지 예수님 자체는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심판을 받으셨기에 우리가 다시 받아야 할 심판은 없습니다. 이것이 "일사부재리의 법칙" 아니요?
야곱은 요셉의 옷의 피를 보고 죽은 줄 압니다. 사실 그 피는 염소의 피인데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 형벌을 받고 돌아가셨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죽었고 예수님이 사는 것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여러분의 시각으로 보면 멸망 그 자체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나는 이미 죽었고 예수님만이 살아있는 것이기에 의로우며 하나님의 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해변가에 갔는데 아니 조개가 움직이더라고요. 가서 살짝 집어 봤더니 그 안에 집게가 조개를 뒤집어 쓰고 다니더라고요. 집게가 조개를 뒤짚어 써 조개가 다니는 것처럼 보이 듯 예수님이 나를 딱 뒤짚어 쓰셔서 겉사람은 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내 속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누구의 음성을 들어야겠습니까? 그 주님의 음성을 그대로 듣고 그 마음으로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제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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