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정하신 곳 네팔
주님께서 정하신 곳 네팔
  • 박준규
  • 승인 2008.03.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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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정하신 곳 네팔.2004년 서부아프리카 토고 로매교회에서 주님의 은혜와 목사님의 사랑 안에서 지내고 돌아와 2007년 대학졸업 후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오성균 목사님께서 나에게 '네가 복음을 위하는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셨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서 믿음을 가지고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회사에 면접을 보면서 매우 이상한 질문들을 많이 받았고 같이 면접을 들어간 사람들 마다 마음이 상해 불평을 하면서 나왔다. 면접볼때 나에게 '너 이성적 가지고 이 회사 올 수 있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들을 때 옆에 같이 면접 본 사람은 전 학년 4.5의 과 수석졸업이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지면서 '너 이 회사에서 뭘 할 수 있어?' '너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야' '너 이 회사에 이력서를 넣은 포부를 이야기해봐' 라고 묻는 질문들 마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등등의 이야기 했는데.. 나에게는 정말 할 말이 많았다. 분명 면접 보기 전에 저는 실력도 모자라고 아무것도 잘 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무슨 질문에도 답할 수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오 목사님 마음에 주신 주의 마음을 생각하고 '종에게 보이심 없이 행하심이 없다' 라는 성경이 생각 나면서. 종에게 보이신 일은 분명히 이루어 진다는 마음이 들어져 '내가 프로그래머가 되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그 후에도 당황스러운 질문들이 계속 되었지만 마음에는 자유함이 생겨 내 마음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아프리카로 나를 이끄신 주를 생각할 수 있었고 불어를 배우게 하고 영어로 말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할 이야기들이 생각났다.”박목사님과 도 장로님 이 형모 장로님 등등 수많은 존경하는 분들이 그 이유와 함께 생각이 났고 처음에는 아무 할 말도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그 자리에 막 말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면접 관이셨던 유 상무님께서 나에게너 토고 갔다 왔네? 영어 할 줄 알아? '조금 말만 합니다' 그랬더니 너 네팔에 갈 수 있어? '예?'갈꺼야 말꺼야? 내 마음속에서 주님께서 보내시면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 목사님께서도 주님께서 너의 있을 곳을 옮기시는 거야 넌 따르기만 하면 된다 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면접에 끝나고 같이 면접을 본 사람들은 모두들 '형 어떻게 사람들이 그럴 수 있어 네팔을 가라니 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것도 신입사원에게...' 다들 너무하다며 나를 위로 했지만 내 마음에 가진 믿음이 있어서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다만 주께서 어찌 하실지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을 뿐이다.그리고 나서 다음날 떨어질 줄 알았던 면접이었는데 전화가 와서 붙었으니까 금요일부터 출근 하라는것 이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이 회사는 LG텔레콤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 중에 과금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금도 유지보수를 하고 있는 큰 회사이다. 정말 주의 은혜로 들어갔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몇 일 후에 유상무님께서 부르셔서는 너 네팔 가야겠다...사실은 그때 면접 보면서 물어본 것은 네가 정말 우리 회사에 다닐 마음이 있는지 마음을 떠보려고 한 말이었는데. 너말고 내 마음에 정해놓고 뽑은 네팔에 갈 사람이 회사에 입사하지 않기로 했다. 너 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고 네가 가야 하겠다. 갈 수 있겠냐? 그리고 내가 정말 미안하다.' 라고 하셨다. 그 전날 오목사님과 황 사모님 두 분다 매우 기뻐하시면서 네팔에 가라고 가서 복음을 섬기라고 하셨다. 분명하게 주께서 나를 네팔로 인도하시는 것이 보였다.그래서 가겠다고 이야기 했고 지금 나는 네팔에 있다.네팔에 온지 8개월 만에 GNC 단원들과 전도여행을 함께할 수 있었다.아래는 그 여정의 기록이다. 27Feb08 우린 오늘 누아곳 사또바떼로 향한다.회사업무와 여러 형편에서 벗어나는 불가능해 보였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7기 네팔 GNC 단원들이 네팔에 도착한지 이틀만에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나와 GNC 단원들에게 많은 기대를 품게 하였다. 지금은 네팔 말도 할 수 없지만 얼마 후면 네팔말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이들을 생각할 때 주님의 은혜와 능력에 놀랍고 감사하다. 단원들은 그곳에서 복음 전할 준비를 한다 네팔어로 번역한 짧은 문장들을 수정하고 외우느라 바쁘다 꾸불 꾸불 아슬 아슬한 산길을 따라 지붕 위까지 사람들을 꽉 채운 버스는 예정보다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를 발견하자 마자 반갑게 웃으며 손 흔드는 사또바떼 교회 식구들을 보면서 긴 시간 먼지와 좁은 자리에서 땀과 함께 흐르던 불편했던 마음은 사라져 갔다. Goodnews Satobate Church 이 간판을 보며 마음이 푸근해 진다.8시간 걸려 도착한 이곳에서 만난 것은 멋진 경치도 좋은 건물도 아닌 2시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터 일부러 찾아와 우릴 반겨 주시는 그들의 마음이었다. 산속에서는 늦은 시간인 8시 30분 한명 두명 모여든 형제 자매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은 그곳의 달고 맑은 물 만큼이나 시원하게 마음을 적셔 주었다. GNC 단원들의 자기소개에 이어서 너무 감사하게 나에게도 소개의 시간이 주어졌다. 일에 매여 있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 순간을 너무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가슴이 뛴다. 이어지는 박병길 전도사님의 말씀 속에 우리 마음은 주님께로 모아져 가고 꿈 같은 네팔 시골의 첫 밤은 깊어간다.28 Feb 08 새벽공기를 마시며 일어나. 기지개를 피며 바라본 사또바떼의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다. 동화 속 깊은 산속요정의 마을 같은 키 작은 네팔 사람들의 본래의 모습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일찍이 일어나 옆 마을로 가는 길은 네팔 산길의 맛을 조금 보여준다. 쌀 조금 계란 한판. 손에 들고 있는 그것들은 아이들에게 작은 행복을 주리라. 분명 우기에는 많은 물이 흐를 것이 분명한 계곡에 노여진 다리가 마을을 이어 주었다. 카트만두에서 8시간 떨어진 사또바떼 그곳에서 1시간 반정도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큰 마을이라는 뜻의 툴로가오 이곳에도 복음 안의 가족들이 있다. 이 다리는 복음 안의 형제 자매들을 이어준다.예수님이 우리와 하나님을 이어주듯이 깊이 경사진 오르막길 해발 3천m의 이곳은 우리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송글 송글 맺힌 단기들의 이마 위 땀들을 식히려는 듯 시원한 바람이 스쳐지나 간다. 바위에 올라서 눈에 들어온 툴로가오의 모습은 멀리서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가족들의 마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딸 손자 손녀 며느리 사위…. 한국에서 이제는 보기 힘든 모습이 이곳에 있었다. 우리들은 그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에 사로잡혀 금방 가족이 되어 그들 속에 스며들어갔다. 박 전도사님을 “ 아가 왔니?” 하시는 할머니께선 왜 색시와 함께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눈만 마주쳐도 부끄러워 하던 아이들 손에 사탕을 쥐어주며 사진도 찍었다. 별다른 큰 관심거리가 없는 이곳에 IYF 댄스와 태권도 사범이었던 GNC 7기 단원 이진욱 형제의 시범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다. 난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전하기 위해 성경을 꺼내 든다. 하나님과 마음이 연결되길 바라면서 손에 든 마이크는 떨렸지만 목소리 만큼은 힘이 실렸다. 사람들과 만나 작은 쪽지에 네팔어 발음을 적어 복음 말씀을 전하던 단기들의 눈 속에 그들을 둘러싼 네팔 사람들로 행복이 스며든다. 한국에서 많이 볼 수 없던 별들이 우리를 비출 때 GNC 단원들의 입에서 저절로 찬송이 흘러 나왔다. 멀리 옆 산속의 마을들의 작은 불빛은 별이 내려온 것 같아 보인다. 너른 바위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네팔 식 저녁이 우리를 기다린다. 29 Feb 08 아침이 밝아온다. 옆에 잠들어 있는 개구장이 녀석이 내 목을 감싸안고 품속에 파고든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아이가 잠이 깰까 조심스럽다. 이른 아침 우린 툴로가오 가족들의 마음을 담고 떠나와야 했다. 멀어져가는 우리를 아쉬워하는 할머니는 별이 잘 보이던 그 바위 위에서 손 흔들어 주신다. 사또바떼로 가는 길은 이전 처럼 힘들지 않았다. 처음가는 길은 어려웠지만 이제는 마음에서 가까워 졌나보다. 사또바떼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네팔전통 결혼식이 있다면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제촉한다. 계단식 밭 사이로 노인 작은 길을 오르며 도착한 그곳엔 벌써 사람들로 발디딜 틈 찾기가 쉽지 않다.할머니 아줌마 아이들 모두가 집 난간에서 신랑 신부를 보고자 자리잡은 모습은 이체롭기 까지 했다. 순수한 그들의 마음은 우리에게 전해져 조금이라도 음식을 더 주려고 한다. 비록 밥에 돌이 있어 이빨이 깨져 고생해야 했지만 마음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랑 신부는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이불 하나를 놓고 식을 시작했다. 너무 긴장했는지 굳은 얼굴로 식장에 들어선다. 가마를 타고 오는 신랑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한다. 신부가 방에서 나와 신랑과 마주선다. 서로 목에 걸었던 목걸이를 교환하고 반지를 끼워 주고 자기시계를 풀어 신부손목에 건다. 신부는 신랑주변에 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가족들의 축복을 받는 일이 끝나면 신혼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에 형제 자매 집을 한집 한집 방문하시던 전도사님과 만나 들어간 집에서 아이들은 벌써 우리를 위한 우유홍차(둣찌아)를 준비하고 있었다. 말씀을 제일 잘 듣는다는 자매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이런 분들을 허락 하신 것에 감사하다. 그 자매님은 6기 단기 이민정 자매의 소식이 궁금한지 묻는다. 다시 이야기 나누고 싶다면서 기억을 더듬는다. 사또바떼 교회를 인도하는 시버형제님 가족과 저녁 예배를 함께 하면서 단기들의 간증과 함께 밤은 깊어져 간다. 교제를 나누는 시간은 행복하다.01 Mar 08 물이 나온다. 이곳에서 물은 참 맑고 달다.부스스한 머리를 감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맛있는 네팔 음식 달(국) 밭(밥) 떨까리(곡물반찬)를 먹고 예배를 준비한다. 1시간30분 거리의 툴로가오 형제들이 예배시간에 맞추기 위해 출발했으리라.한명 두명 모여들어 앉아 안부인사를 나눈다. 단기들은 율동 안무를 준비한다. 서로 방향을 맞추어 가는 것이 쉽지 않아보인다. 박유정 자매와 선기따 자매는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마음이 통하는지 연신 찬송을 함께 부른다. 예배시간이 되어 툴로가오 형제 자매님들이 도착했다. 멀리서 걸어왔는데도 아이들 얼굴에 힘든 것이 없다. 준비된 단기들의 율동에 모두들 웃음이 생기고 마음들이 풀린다. 대표로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앞에 나왔다. 잘하지 못하지만 너무 행복해 보인다. 이어 말씀시간이 되었다. 진지한 모습으로 말씀에 귀와 마음이 열리고 젖어 들어간다. 오후가 되어 만부아둘 형제님의 어머니와 복음교제를 하기 위해 찾아갔다. 어려운 시골 생활과 자기생각에 잡혀 귀신이 역사하고 있었다 전혀 복음교제를 할 수 없을 것처럼 우리 마음에 역사하기 위해 강하게 일하는 것이 보였다. 전도사님께서 돌아가면서 위해서 기도하자고 하시고 그렇게 여러 번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다. 술에 취해 네팔 표준말이 아닌 종족어 따망으로만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향하여 기도를 하는 중에 마음에 이분 구원 받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명기를 읽던 중에 대적이 아무리 강한 힘으로 우리보다 수가 많다고 해도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 이 할머니를 향하여 소망을 가지도록 했다.다음날 이른 아침에 복음교제를 하기로 하고 집에 돌아왔다. 사단이 그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우리마음에서 포기하는 마음을 주려고 어려운 모습을 보여준다 시면서 우리 주님께서 이미 이긴 싸움이기 때문에 복음교제를 하면 반듯이 구원 받으실 분이라며 소망을 이야기 하셨다.02 Mar 08 아침일직 복음 교제를 위해 전도사님께서는 그 집으로 향하셨다. 내 마음에 그 할머니의 구원으로 인하여 그 집 전체가 복을 받겠다는 소망이 들어왔다.카트만두로 돌아가기 위하여 짐을 정리하고 준비를 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오신 전도사님 마음속에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하고 오전에 한번뿐인 카트만두행 버스에 붐비는 사람들을비집고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네팔에 온지 몇 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GNC 단원들은 벌써 네팔 사람이되어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 많았던 시골 전도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 너무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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