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대전도집회] 놋뱀을 쳐다보는 마음
[뉴욕대전도집회] 놋뱀을 쳐다보는 마음
  • 박미수
  • 승인 2009.04.17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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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뱀을 쳐다보는 마음



세미나 장소에서 나서면 왼쪽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건물로 보인다. 멋진 디자인도 아닌 그냥 네모반듯하고, 재질도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별로 멋있는 것 같지 않다고 하자, 옆에 있던 한국 분이 “우리가 초가집 짓고 있을 때 지었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죠!” 했다. 1931년에 완공된 건물이라고 하니, 80년 가까이 된 건물인 것이다. 뉴욕의 건물들은 대부분 크지만 낡은 건물들이 많다. 거리를 걷다보면 하늘은 빌딩 사이로 조금 보일 뿐이다. 지구상에서 아마 가장 하늘이 좁은 곳이 아닐까 싶다. 마치 사람들의 마음이 말씀과 멀어지면서 하나님은 멀리 조그맣게 보이고 세상의 형편들이 크게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성경세미나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세계에 눈을 뜨는 뉴욕 시민들이 있어서 소망스럽다.



청교도의 후예인 미국인들의 마음속에는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면, 진지하게 듣고 마음으로 화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뉴욕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단기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유대인들은 자기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준 것만으로도 불쾌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 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조차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어진다면, 이 세상에 오셔서 세리 삭개오를 찾아가시고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시고 38병자를 만나신 주님의 마음이 슬플 것이다. 단기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과 무시를 당해도 마음을 닫지 않고 계속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 너무 귀하다.

어제 보니, 행사장에 있는 피아노를 조율하고 있었다. 기타나 바이올린 등 현을 가진 악기들은 줄을 당기고 있는 힘 때문에나 줄을 때리거나 뜯으면서 줄을 감아 놓은 핀이 풀리거나 줄이 늘어나면서 음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연주하기 전 바이올린 등 현악기들은 피아노 소리에 음을 맞춘다.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기 위해서는 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도’라도 음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 조금 다른 것을 맞추어야 아름답게 어울리는 소리가 난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너무나 달라서 맞추어야 하는 수준이 아니라 버리고 새로 받아야 하는 것임을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배우고 있다.

어제(水) 저녁에는 민수기 21장 불뱀에 물린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불뱀에 물리고도 살아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죽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가룟 유다가 죄를 짓고 회개했지만 참된 회개가 아니었다. 예수님을 판 행위를 뉘우쳤지, 예수님을 팔게 된 원인, 즉 근본 사단에게 속아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뉘우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사단의 영역에 있었기 때문에 사단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었던 것이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 가운데 놋뱀을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생각을 버리고 쳐다본 사람은 생명을 얻고, ‘쳐다본다고 낫겠나? 약을 바르든지, 독을 빨아내든지 해야지.’ 하는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 강사 박옥수 목사가 “사단이 넣어준 생각에서 돌이킨 사람은 ‘쳐다보면 낫는다고? 하나님이 낫는다고 했으니까 낫겠네. 어! 나았네? 쉽다.’ 합니다.” 하고 말씀을 전하자, 청중들은 한참동안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오늘(木) 오전, 박옥수 목사는 창세기 40장에 나오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 대한 말씀을 전했다. 둘 다 죄를 지었고, 둘 다 감옥에 있었고, 둘 다 꿈을 꾸었는데, 한 사람은 복직하고 한 사람은 저주를 받은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가는지에 대한 말씀을 풀어서 전해 주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하는 말씀에서 보듯이 포도나무만 의지한 사람, 예수님의 보혈만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떡 굽는 관원장은 떡 되신 예수님도 의지하지만 자신의 것 가운데 좋은 것도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의 것과 내 것이 섞이면 하나님께서는 받으실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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