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위선에 속고 있는 한국 교회와 정통 복음주의의 선
제5편 위선에 속고 있는 한국 교회와 정통 복음주의의 선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3.01.1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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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킬 박사인가 하이드인가?

"지킬과 하이드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가공 인물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인간형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파스칼은 '인간은 천사도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천사 같은 표정을 하면서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경향신문, 1984.6.23)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영국 소설가 로버트 스티븐슨이 1886년 간행한 괴기소설이다. 존경 받는 지킬 박사가 인간 속의 선과 악이라는 이중성을 약품으로 분리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연구한 결과 악한 하이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낮에는 지킬 박사로 밤에는 하이드로 살아가는데, 하이드가 점점 강해지더니 마침내 지킬 박사가 아닌 하이드로만 살아가게 된다. 결국, 하이드가 된 지킬 박사는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게 쫓기게 되자 체포되기 전 유서에 모든 것을 고백한 후 자살로 생을 마친다.

사람들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선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기를 원하며, 자신의 악한 모습은 가능한 한 감춘다. 그런데 드러난 선한 모습이 우리 자신일까? 아니면 감추어진 악한 모습이 우리 자신일까?  

"나무 조각 위에 칠해진 페인트와 그 나무 조각 자체가 별개이고, 단단한 바위 위에 낀 푸른 이끼와 그 바위는 서로 다르듯, 어떤 사람의 외적 모습과 그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호라티우스 보나르, God's Way of Peace, Chapter 1)

 19세기 영국의 정통 복음주의 전도자이자 찬송가 작시자인 호라티우스 보나르(Horatius Bonar)는,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롬 2:28)라는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외적 모습은 그 사람의 실상이 아님을 위와 같이 증거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역시 사람들이 외적인 선한 모습으로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은 자기의 실상을 가리는 사기(詐欺)임을 분명히 지적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까를 신경 쓰는 사람일수록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내면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지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칭찬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그들이 계속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려고 하겠지요. 아, 이 얼마나 거짓된 사기입니까! 만일 그들이 당신의 속마음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마틴 로이드 존스, John 5:44, 1930.9.14)

 

특히, 더 심각한 것은 사람 앞에 선한 모습으로 서고자 하는 것은 결국 내면을 보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셨고,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고 충고하셨으며,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라고 경고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내면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계신다. 그렇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 모습으로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면의 악한 모습은 숨겨두고 겉으로 드러난 자기의 선한 모습을 자신으로 착각하고 살아갈 수 있지만,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한국 교회의 수많은 교인들조차 불신자들이 가진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 안에는 하나님과 마음이 흐르는 참된 그리스도인보다 외형적으로만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 유사(類似) 그리스도인이 많은 것이다.

 

유사(類似) 그리스도인들이 활개 치는 한국 교회

"가짜가 진짜보다 더 멋지고 빛나는 것처럼 오늘 한국 교회에도 수많은 유사 그리스도인이 활개를 칩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자신을 검증해야만 합니다. 그릇된 구원의 확신에 안주하다가 돌이킬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17세기의 청교도 목회자 매튜 미드(Mattew Mead)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類似)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The Almost Christian Discovered> 라는 저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했는데, 이 책을 <유사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을 낸 출판사는 위와 같이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한국 교회에 상당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이 책에 대해 기독교 인터넷 신문 2001년 2월 1일자 '목회 단상' 코너에 서평을 쓴 이 모 목사 역시 한국 교회 안에 교인은 물론, 목사나 장로들 중에도 유사 그리스도인이 많음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그들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그들 중 아무도 스스로를 유사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 안에는 분명히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목사나 전도사도 있고, 장로나 권사, 기타 직분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고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박 모 교수는, 2011년 한 기독교 베스트셀러 저자와의 만남에서 겉모습에 치중하는 한국 교인들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며 개탄했다.

 "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은 다 갑각류야. 겉모습은 엄청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어 보이는데, 실상 그 속은 연약한 살로 가득 채워진 갑각류 ….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더 집착해. 새벽기도, 십일조, 술 담배 안 하기 등등 …. 속이 허할수록 밖으로 드러내는 이런 신앙 행동 양태에 더 집착하지. 왜 그런지 알아? 겉이 무너지면 속까지 다 무너지기 때문이야." 

거듭 말하지만, 유사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거짓 그리스도인일 뿐더러 영원한 세계에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유사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머무는 것은 참으로 불행하고 무서운 일이기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는 말씀처럼, 반드시 확인해야 된다. 그런데 유사 그리스도인을 분별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표식은 무엇일까? 앞서 소개했던 매튜 미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유사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자신을 잘못 판단합니다. 자신이 선하지도 않은데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매튜 미드, The Almost Christian Discovered, Chapter 8)

즉, 어떤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자신을 선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는 유사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사람은 다 거짓되되"(롬 3;4)라고 끊임없이 선이 없는 인간의 악한 모습에 대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 마음 안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지난 호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에게 선이 전혀 없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철저히 강조한다. 그런데 왜 한국의 수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전혀 다른 '인간에게도 선이 있다'는 마음을 품은 채 거짓된 유사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가? 이는 한국 교회 안에 선(善)에 대한 개념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 만연된 그릇된 선의 개념

본지 편집부에서 대표적인 한국 교회들을 평균10여년 다녔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중'교회에 다닐 때 선은 무엇이라고 배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선은 올바르고 좋은 행동들'이라고 대답했다. 선에 대해 그렇게 여기기에 한국 교회 교인들 대부분은 인간에게도 선이 있다고 생각하며 선을 추구하고 있다. 찰스 스펄전은 그처럼 선해지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여러분은 선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찰스 스펄전, The Treasury of the Bible, Chapter 25)

 즉, 스펄전은 인간이 선해지려고 하는 그 자체가 이미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을 행하려고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과 다른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수많은 교인들은 자기 마음이 하나님과 같은지, 혹은 자기가 갖고 있는 선에 대한 기준이 하나님과 같은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세상적인 선의 기준을 따라 세상이 추구하는 것처럼 선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기준의 선과 선행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선과 선행은 세상이 가르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선과 선행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마 19:17)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선한 일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으시고, 위와 같이 선한 이가 하나님이심을 가르쳐주셨다. 왜냐면 선한 일을 가르쳐주어도 그는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환자에게 병에서 낫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의사를 만나게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청년의 마음에 자신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서 '살인이나 간음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소개하셨다. 사람들은 실제 살인하지 않거나 간음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살인자요 간음자로 생각하지 않는데, 예수님은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요일 3:15)도 살인이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마 5:28)도 간음이라고 하셨다. 인간 중 누가 미움이나 음욕을 품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기에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 143:2)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눈에는 인간들 모두가 살인자이고 간음자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속은 악하고 음란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게 보이는 위선된 삶을 살 수 있다. 반면에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시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석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자신의 주석에서 마태복음 19장을 주해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하나님만 선하시다는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원천적으로, 처음부터, 변함없이 선하지 않다. 그의 선하심은 그 자신에게서 또한 그 자신으로부터 나오며, 피조물 가운데 있는 모든 선은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선의 원천이시다. 그는 가장 위대한 선(善)의 전형이요 본보기이시다."(매튜 헨리,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Matthew 19)

 다시 말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후 3:5)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경건의 모양은 꾸밀 수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경건의 능력이 있으시다. 그래서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삼상 2:2),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사 45:24) 라는 말씀처럼, 온 우주만물에 하나님만이 거룩하고 선하신 것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의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시 4:6)

다윗 역시 선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이 하나님을 소개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행 13:22)고 하시며 다윗을 기뻐하셨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이 선하시기에 하나님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이 사실에 대해 나무의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하셨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6~18)

 즉, 하나님만이 좋은 나무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은 나쁜 나무이기에 나쁜 열매만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행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통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그렇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면 모두 선하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았다면 모두 악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사30:1)라고 경고하셨다. 실로 하나님은 당신으로 말미암을 때만 선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신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반복적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으로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인간은 "행악의 종자"(사1:14)로 악할 뿐임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선

앞에서 계속 언급했듯이, 인간은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시다. 그럼에도 인간이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면, 그것은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욥 40:8)는 말씀처럼,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고 하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불의한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분명히 알아야 될 사실은, 오랫동안 인류는 인간의 선행을 추구해왔지만 "인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된 3420년 중,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268년 뿐이다."(듀런트, 역사학자), "1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종식되기까지 단 3주만 전쟁이 없었다."(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라는 세계 석학들의 말처럼, 실상은 끊임없이 전쟁과 함께해 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이 선을 추구하면 인류가 선하게 될 줄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신앙과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선을 추구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지난 2011년 1월 19일자 국민일보에서는 '거룩함이 무너져 내렸다. 기독 지성들이 말하는 추락한 한국 교회'라는 제목으로 이 모 기자의 기사가 실렸는데, 인터뷰에 응한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은 모 총장은 "한국 교회는 그동안 거룩을 빙자한 신앙의 위선을 쌓아왔다. 신앙을 너무 인본주의적으로 끌고 간 것이 문제이다. 율법적이고 도덕적인 설교와 봉사가 한국 교회를 망쳐놓았다."라고 했다. 즉, 한국 교회의 타락은 인간에게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촉구한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실로, 찰스 스펄전은 한 목회자의 경험담을 통해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찰머스 박사(Tomas Chalmers, 1780-1847, 스코틀랜드 신학자)는 목회 초창기에, 선행에 대한 설교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에 보니 교인들 중에 건전하고 정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행을 강조하는 설교는 오히려 비도덕으로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 귀에 못 박히도록 무엇을 해야 되고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보다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합니다."(찰스 스펄전, The Treasury of the Bible, Chapter 17)

결국, 인간의 선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3)는 말씀처럼, 참된 선이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대적하여 마침내 인간을 타락에 머물게 하는 사탄의 도구인 것이다. 즉,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64:6)라는 말씀처럼, 인간의 의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만든 치마와도 같이,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만드신 가죽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통 복음주의 전도자들의 가르침

위와 같이 인간의 선이 거짓됨을 잘 알고 있는 개혁주의자들과 정통 복음주의 전도자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의를 철저히 부인시키는 가르침을 고수해왔다.

 "인간의 행위들은 항상 선하고 매력 있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들은 죽을 죄들인 것이다."(마르틴 루터, The Heidelberg Disputation, 3항)

 "인간의 의는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이스라엘은 의의 법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의 자체이신 그리스도는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찰스 스펄전, The Treasury of the Bible, Chapter 24)

 "여러분, 우리가 근본 죄악투성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나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하는 일은 죄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박옥수 목사, 회개와 믿음, p.36,37)

 이처럼 자신이 행하는 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임을 분명히 알게 되면, 누가복음 10장의 강도 만난 자처럼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에 도달한다. 그때 사마리아인이 나타나 강도 만난 자를 위해 일을 하듯, 하나님은 자신이 무너진 사람에게 나타나 선하게 살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우리 안에 아무 선한 것도 없고, 소망도 없을 때, 그때 하나님은 풍성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주님께서 죄와 불행 속에 있는 우리에게 오시다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확실히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방법은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찰스 스펄전, The Five Points, Chapter 3)

결론적으로 인간은 스스로 선을 결코 행할 수 없기에 선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하도록 해주셔야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이 부분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라'(렘 32:39) 하시고, 이어서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리라'(렘 32:40)고 말씀하신다. 회심하지 않은 우리에게서는 선한 것이 없으며, 회심한 후에도 우리의 선함은 우리 자신이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항상 같은 결론이 따른다."(존 칼빈,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2권 3장 8항)

 박옥수 목사 역시 '우리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자신을 부인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가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이끌어 주시는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신앙은 내가 착하게 살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열심히 기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마약을 끊으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내가 마귀를 내쫓으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정말 쉽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여러분 마음을 이끌어 주셔서 죄와 어두움과 악을 이길 힘을 주시며, 두려움과 슬픔과 고통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발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박옥수 목사,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될까요?, p.358~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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