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3.02.0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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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 시절

시골 산골,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만 살았던 나의 유년 시절은 부끄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하나에서 열까지를 세지 못했다. 동네 어른들이 하나에서 열까지 세면 떡을 준다고 하는데, 제대로 세지 못해서 떡은 얻어먹지 못하고 놀림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책을 잘 읽지 못해서 늘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 했다. 나는 읽지도 못하는 책을 다른 아이들은 외우기까지 하는 걸 보면 신기했다.

마음에 자극을 받아 공부를 열심히 해서 6학년 때는 반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년간 농사일을 도왔고, 이듬해 설에 세뱃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공부에 매여 살았다. 공부하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는 강박관념에 늘 책을 끼고 살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소가 먹을 풀을 베고 농사일을 돕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친구들은 시간이 나면 놀았지만,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고 꼴을 벴다.

 

큰형의 죽음

중학교 3학년 때 큰형이 경운기 사고로 죽었다. 형 나이 21살이었다. 형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집안을 꾸려나가던 형이었기에, 형의 부재는 우리 집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서울에 돈 벌러 가 있던 작은형이 시골로 돌아왔다.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작은형은 한 살 많은 동네 누나와 연애를 하더니 아이를 낳았다. 보수적이었던 우리 집안에 형수가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성깔이 있는 형수를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난했지만 화목한 집안이었는데, 집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여자를 조심해라. 여자 잘못 들어오면 집안 망한다.”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자연스럽게 여자를 조심해야겠다는 법이 마음에 새겨졌다. 여자는 집안을 망케 하는 요상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지원했다. 공군 하사관으로 갔는데, 훈련소에서 1등을 해 참모총장상을 받았다. 6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하사 계급장을 달고 송정 공군비행장에서 근무했다. 군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에 다녔고, 주말이면 집에 가서 농사일을 도왔다. 

나는 시골의 유교적인 가정에서 착하게 살았기에, 그리고 동네 어른들에게서 착하다는 말만 들었기에 내가 착한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살다가 군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을 접했다. 그들이 죄를 짓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더러운 놈들, 어떻게 인생을 저렇게 함부로 사냐?’ 하고 판단했다. 판단하는 만큼 내 삶을 단정하게 했다. 하지만 뒤에서는 동료들이 행하는 죄악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즐겼다.

   
 

중사로 진급하고 스물여섯 살에 첫 미팅을 했다. 처음으로 한 여자를 만나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있는 말 없는 말들을 짜내서 열 장씩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다가, 한달에 한 번씩 주말에 여섯 번 정도 만났다. 그런데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대해서였는지, 어느 날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만난 이성이었기에 많이 좋아했는데, 남들 다 하는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매몰차게 차인 것이다.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 일로 방황하다가 처음으로 장로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1986년 6월 21일

대전 교육사령부에 3개월 동안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부대 안에서 이상한 사람들(지금 이충학 목사, 김범섭 목사, 조성화 목사 등)을 만났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죄가 더 많아졌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했다. 하루는 같은 내무반에서 교육받던 동기가 그 모임에 참석하고 와서는‘내 생각이랑은 안 맞지만 말씀은 맞다’며 한번 같이 가보자고 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장로교회 외에는 다 이단이다’라고 들었기에 거절했지만, 친구가 몇 번 권해 함께 한밭중앙교회에서 있었던 집회에 참석했다.

   

송정 비행장에서 정비사로 근무하던 시절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내 속에는 죄가 있었지만 창피해서 그 사실을 나타낼 수 없었다. 설교가 끝나고 당시 선교학생이었던 양정학 목사님과 상담을 나누었다. 둘이 대화를 하다보니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계속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분은 항상 성경을 펴서 이야기했다. 점점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늘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인간은 자기 한계를 넘으면 악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지금까지 선하다고 생각한 것은 다 내 한계 안에서였구나.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 악이 나올 수밖에 없구나… !’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란 말씀이 그대로 믿어졌다. 내가 100% 죄인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고, 구원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음날, 복음을 들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는 말씀이 마음에 임했다. 내 죄가 사해졌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 마음에는 늘 불안감과 열등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항상 습관적으로 손에 책을 들고 있어야 편안했다. 그런데 복음이 마음에 임하면서 나를 짓누르던 모든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기쁨과 큰 평안과 행복이 마음 깊이 물밀듯 밀려왔다. 1986년 6월 21일, 내 인생에 새로운 삶이 시작된 날이었다.

 

갑작스런 부대 이동과 제대

구원받고 1개월 정도 부대 안에서 갖는 모임에 함께하다가 송정으로 돌아가 송정중앙침례교회(지금의 기쁜소식송정교회)에 나갔다. 당시 나는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송정으로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88올림픽을 앞두고 ‘송정 전투비행대대’가 강릉으로 부대를 옮기게 되었다. 당시 강릉에는 우리 선교회에 속한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전도사님은 교회가 없는 곳에서는 신앙생활을 하기 힘들다며 나에게 제대할 것을 권했다. 나는 항공기를 정비하던 직업군인으로 그보다 좋은 직장은 없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다 군대 체질이라고 할 만큼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복음을 핍박했기에, 전도사님이제대를 권하자 내 안에서도 교회에 대해 의심이 일어났다. 그때 하나님이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뭘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무엇을 믿는 게 하나님을 믿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을 믿는 것인가? 다수가 진리인가?’

마침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말씀을 믿음으로 죄가 씻어졌는데, 내가 망하더라도 말씀을 믿어야겠구나!’ 하고 마음에 선이 그어졌다. 마음이 정해지자 하나님이 내 영혼을 축복하셨다. ‘사람이 뭐라고 해도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마음을 내 속에 심어주셨다.

하지만 제대하는 부분은 마음에서 결정할 수 없었다. 7월, 여름 수양회가 시작되었다. 수양회에 참석해서 열 분의 목회자와 제대하는 일에 대해 의논했다. 다 제대하는 게 좋겠다고 하고, 한 분만 ‘하나님의 뜻이면 부대에서 복음을 전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내 마음에 맞는 그 이야기만 받아들였다. 수양회를 마치고 기분 좋게 돌아갔는데, 한 학생 자매가 “형제님, 전도사님이 말씀하신 제대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하고 물었다. “하나님의 뜻이면 강릉에 가서 복음 전하면 되지.” 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자매가 “하나님이 형제님에게 조그만 일을 맡기셨을 때 순종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 큰 일을 어떻게 맡기시겠어요?” 하는데, 꼭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것 같았다.

제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항공기 정비 책임을 맡고 있었기에 바로 제대하지 못하고 6개월 후에 제대할 수 있었다. 교회 없이 6개월을 부대에서 지내는 동안, 원주에 있는 교회에 몇 번 가기는 했지만, 많은 시간을 말씀을 듣지 못한 채 보내면서 마음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한달 정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지낼 수 있었지만, 그 후로는 입이 다물어지고 점점 세상에 빠져 들었다. 전도사님의 말대로, 나는 교회 없이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이었다.

 

퇴직금을 도박으로 다 날리다니…

그 해 겨울에 서울 CCC회관에서 열린 수양회에 참석했다. 말씀을 들으면서 복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내겐 복음밖에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함께 제대한 친구를 따라 동인천으로 갔다. 교회로 가기 전에 직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직장을 알아보러 다니다가,하루는 친구가 나를 ‘파친코’ 도박장에 데려갔다. 한번 당겨보라고 해서 호기심에 했는데, 10만 원짜리가 당첨되었다. ‘돈 벌기 쉽네. 힘들게 일할 필요 뭐 있어?’ 하는 생각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도박장을 찾은 사람에게 주는 낚싯밥(당첨)에 걸려든 것이었다. 결국 친구와 나는 둘 다 퇴직금을 다 날리고 말았다. 오랫동안 군대생활을 해서 번 소중한 돈, 복음을 위해 드리려 했던 물질이었는데 ….

나는 구원받으면 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교회가 없으니까 죄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생각에서는 ‘도박장에 가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도박장에 앉아 있었다. ‘내 주위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권면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퇴직금을 한순간에 도박으로 다 날리고 나니 굉장히 허무했다. 상심해서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했다. 구원받고도 욕망에 이끌린 내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하루는 설교 테이프에서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신 사사기 16장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를 들었다. 삼손의 모습이 나와 똑같았다. 하나님의권능을 받았지만 들릴라에 빠져 지낸 삼손처럼 구원받았지만 욕망에 빠져 산 내 모습이 보이면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는 것 같았다.

다음날 교회(부천평강교회)로 찾아갔다. 창피해서 숨기려 했던 도박한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다 말해버렸다. 내 이야기를 듣고 오성균 목사님이 나를 잡아주셨다. 6개월 동안 교회에 머물게 해주셨다. 교회에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서 교만한 내 마음을 낮추시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하나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끌기 시작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

교회에는 새벽에 아파트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세차하는 형제들이 있었다. 목사님이 나도 그 일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하찮게 보여 거절했다. 나는 소방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길이 다 막혀 한달 동안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다. 막노동 일을 하면서 마음이 많이 낮아졌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고도 많이 나고 다치기도 했지만, 내게는 그런 것들이 찾아왔다가 그냥 지나갔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막노동도 평생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을 하는 동안 말씀 한 구절이 내 마음에 임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막노동은 새벽에 나가야 하고 저녁에 들어오면 피곤해서 자야 했기에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성경 읽을 시간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세차 일을 하던 형제가 그만두게 되어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갔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나면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전에 천하게 여겼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 되었다. 새벽마다 차를 100대씩 닦았는데, 그렇게 하면 한달에 250만 원을 벌었다. 당시에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물질이었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쉬웠다. 내 것(퇴직금)을 드리려고 할 때는 안 되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것을 드리는 것은 아주 쉬웠다.

 

<은혜 카인테리어>

얼마 후, 사역자 이동이 있어서 새 목사님이 오셨다. 목사님은 내게 세차 일을 그만하고 카센터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서 마음에 두지 않았다. 두 번째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가게도 없고, 돈도 없고, 가장 중요한 기술도 없었기에 ‘뭘 어떻게 하라시는 거지?’ 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세 번째 같은 이야기를 하실 때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내 형편 다 아실 텐데 왜 계속 말씀하시지?’ 생각하다가 마태복음 8장 말씀이 마음에 머물렀다. 한 백부장이 자신의 하인이 병으로 괴로워해 예수님께 나갔을 때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하고 말했다. ‘다른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되는구나!’ 하고 믿음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통해 내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겠다는 믿음이 생겨 카센터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부천 북부역 근처에 건물을 지으려다가 허가가 나지 않아 그냥 둔 공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쓰레기를 버려 관리가 안 되자 땅 주인이 내게 관리를 부탁하며 150평의 땅을 공짜로 사용하게 해주었다. 고물상에 가서 함석을 얻어다가 그 땅에 울타리를 치고 주차장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았고, 얼마 후 <은혜 카인테리어>라고 간판을 붙이고 카센터를 시작했다. 차를 고치러 손님들이 오면 다리가 덜덜 떨렸다. 첫 번째 손님이 몰고 온 차는 그랜저였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차 앞덮개를 열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기도가 저절로 되었다. 앞이 캄캄한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손님에게 “여기에 차를 두고 수리하는 동안 볼일 보고 오세요.”하고 말했다. 손님이 알겠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목사님께 전화하고, 주변 카센터에 전화해서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물었다. 주변 카센터 사람들은 다 내가 초보인 것을 알고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수리 방법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차들을 고치면서 수리하는 기술을 배웠다.

 

약속의 땅에서 새 삶이 시작되다

카센터를 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교회에 갔다. 목사님의 삶을 곁에서 자주보면서 복음을 섬기는 삶이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성도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서 들고 나오면 그것이 목사님의 문제가 되고, 모든 것이 어렵게만 보였다. 목회자의 길은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카센터 하는 것을 막으시더니 목사님을 통해서 목회자가 되라며 선교학교에 가라고 하셨다. 나는 안 간다고 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그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신명기 11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내 마음을 바꿔주셨다.

   

산골 아이로 착한 줄만 알았던 내게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시고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셨다.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9~12)

하나님이 애굽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낸 후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은 그 땅을 내게도 주겠다고 하셨다. 그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었다. 나는 축복의 땅은 문제도 없고 모든 일이 잘되는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축복의 땅은 비를 흡수하는 땅이었다. 다시 말하면, 물을 저축할 수 없기에 하늘에서 은혜의 비가 계속 내려야 하는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땅을 축복의 땅이라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되는, 부담 없고 형통하고 편한 길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길이 축복의 길이라고 하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축복이 아닌 하나님이 말씀하신 축복을 내 마음에서 처음으로 만난 순간이었다. 나는 선교학교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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