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1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1회)
  • 김양미
  • 승인 2013.02.01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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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라이프

 

   

 

   
 

의사가 되거라

강성채 목사는 소위 모태교인이다. 처녀 적부터 교회를 다닌 어머니를 따라서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장남에 장손인 어린 성채를 무척 사랑했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갈망했다.

“어머니는 유난히 공부에 욕심이 많았어요. 당신이 가난한 시골집의 장녀로 태어나서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공부를 많이 못 한 게 한이 맺히셨나봐요. 이모부가 의사였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는지 저에게 ‘너는 커서 꼭 의사가 되라!’고 주입시키듯 말씀하셨어요 . 넉넉지 않은 살림에 초등학생 때부터 과외까지 시키셨지요.”

의사! 학창시절 강성채의 유일한 꿈이었다. 자신의 꿈이었다기보다 어머니의 꿈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생 시절에는 성적이 아주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전북대 의대는 무난하게 갈 만큼 공부를 했다. 대입 학력고사 시험이 있었던 1983년 겨울, 시험을 마치고 성채 학생은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시험을 망쳤기 때문이다. 의대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를 얻지 못한 것이다. 주위에서 재수하라고 권했지만 재수까지 해가면서 의대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의사가 본디 자신의 꿈도 아니었기에, 당시 인기가 좋았던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지금 죽으면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대학생이 된 후 청년 강성채의 마음에 의문이 찾아왔다. 자기 영혼의 문제였다.

“제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지금 죽으면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났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없었어요. 그 문제를 들고 교회에 열심이던 어머니께 물었지요. 어머니가 ‘너는 세례 받았으니까 천국 간다’고 하시길래 ‘내 마음엔 죄가 있는데, 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하고 되묻자 ‘그러니까 열심히 회개를 해야지’ 하시며 목사님을 찾아가보라고 하셨어요.”꼭 답을 얻어야만 하는 문제였기에 청년 강성채는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갔다.

“제가 다닌 교회는 대학부만 200명이 되는, 전주에서는 큰 교회였어요 . 목사님께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확신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물었지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회개기도를 더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어요. 젊을 때는 확신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며, 산기도도 해보고 금식기도도 해보라고 권하셨어요.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마음이 답답했어요.”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영혼의 문제를 꼭 풀고 싶어서 청년 강성채는 교회를 다니는 대학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물었지만, 누구에게서도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답을 찾아보리라 결심하고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려고 산에 있는 기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사흘 만에 내려오고 말았다.

“내 영혼의 문제는 해결하고 싶고, 답은 얻을 수 없고 … . 회의가 찾아왔어요. ‘이렇게 살아도 지옥에 가고 저렇게 살아도 지옥에 갈 거라면 무엇 때문에 율법을 지킨답시고 샌님처럼 사냐?’ 그동안 당구장 한번 안 가고 산게 억울했어요.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려고 휴학한 후, 하나님을 다 잊겠다고 작정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당구장에도 갔어요. 살고 싶은 대로 살았지요.”

 

제대를 5개월 앞두고

기다리던 입영통지서가 나오지 않자 청년 강성채는 통신병으로 지원했다. 당시에는 전자공학과를 2년 이상 다니면 통신병에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그는 1986년 10월 논산훈련소에 들어가 훈련을 받은 후 춘천 인근에 있는 부대에 배치받아 군생활을 시작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잊고 살려고 했다. 그런데 제대를 5개월쯤 앞두고 그의 마음을 뒤엎는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 소대원 다섯 명이 군 휴양지에 가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제일 졸병이 바로 위 고참에게 얼토당토않은 일을 가지고 대들었어요. 다른 고참들이 아무리 휴양지 술자리지만 도가 지나치다고 여겨 그 후임병을 때렸어요 . 그런데 잘못 맞아서 쓰러져, 긴급히 헬기로 수도통합병원으로 옮기려 했지만 도중에 죽고 말았어요. 때린 네 사람은 영창에 가고, 우리 내무반은 쑥대밭이 되었지요. 그때 제가 제일 고참이었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몰라요. 죽은 후임병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나도 언젠간 저렇게 죽을텐데 … ’ 하는 마음이 드니까 너무 두려웠어요. 죽으면 나는 지옥 간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거든요.”

거센 비바람처럼 부대를 휩쓸고 지나간 사고는 하나님을 잊고 살려고 했던 강성채 병장의 마음에 다시 하나님을 찾게 만들었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물음이 마음 속에서 다시 강하게 소용돌이쳤다. 마음 깊은 곳에서 기도가 흘러나왔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 친구가 전도사라고 했는데…

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일주일 후, 옆 부대 소속의 사병 둘이 무선장비 사용 교육을 받으러 강성채 병장이 복무하던

부대로 왔다. 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조경원 일병(지금 아프리카 가나 선교사)이었다. 그는 통신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자대(自隊)에 배치되었는데, 부대장이 쓸 만한 사병인 것을 보고 전문교육을 더 시키려고 옆 부대로 2주간 교육을 보낸 것이었다.

 

   
 

“첫날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다가 군대에 왔냐고 묻자 한 사람은 오토바이 수리공이었다고 하고, 한 사람은 전도사를 했다는 거예요. 전도사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죠. 그날 점호를 마치고 침상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어요. 그래서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침상 끝을 보니까 조 일병이 누워 있었어요. ‘저 친구가 전도사라고 했는데, 내 마음의 문제를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올라왔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막 잠들려고 하는 조 일병을 깨워,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밖으로 나오라고 했어요. 낯선 부대에서 고참이 나오라고 하니까 조 일병이 바짝 얼어서 나왔지요. 내 이야기를 죽 했어요. 살아온 이야기, 지옥 가는 게 두렵지만 죄가 있어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죄를 씻을 수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 나는 굉장히 심각하게 묻는데, 조 일병은 웃는 거예요.”

다음날부터 두 사람은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통신부대에는 통신장비를 싣고 다니는 ‘박스카(box car)’가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 일병은 강 병장에게 인간에게 죄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어떻게 씻으셨는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복음을 들으면서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죄가 사라졌어요. 얼마나 감사하던지 … ! 말할 수 없는 평안이 마음에 몰려왔어요.”

조 일병은 그렇게 강 병장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며칠 후 자기 부대로 돌아갔다.

 

등불을 켜서 어디에 두겠는가?

제대가 가까워질수록 강성채 병장은 전공인 전자공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제대하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조경원 일병에게서 부대 통신라인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강 병장님, 언제 제대하십니까?”

“한달 남았어. 1월 19일에 제대해.”

“아, 그래요? 1월 19일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날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어디서 보면 되겠는가?”

“대전으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대전은 왜?”

“대전에 있는 한밭중앙교회에서 수양회를 합니다. 거기 꼭 참석하시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대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강 병장은 제대한다고 마음이 분주해서 그 약속을 잊어버렸다. 드디어 제대하던 날, 강 병장은 고향 전주로 가기 위해 춘천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때 불현듯 ‘내가 누구하고 제대하는 날 어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 ?’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기억을 한참 더듬다가 대전에서 조 일병과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 생각나, 전주로 가는 표를 끊지 않고 대전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그리고 대전에서 조 일병을 만나 한밭중앙교회에서 열리고 있던 수양회에 참석했다. 그날은 4차까지 있는 겨울 수양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지금도 그날 들은 말씀이 기억에 생생해요. 그날 밤, 박옥수 목사님이‘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눅 8:16)는 말씀을 전하셨어요. 목사님은 ‘어렵게 불을 켜서 누가 빛을 발할 수 없는 곳에 두겠습니까? 등경 위에 두지요. 여러분 마음에 성령의 불을 지펴주신 하나님께서 왜 여러분을 어두운 곳에 두시겠습니까? 어찌 여러분을 향한 뜻과 계획이 없겠습니까?’ 하고 말씀하셨어요.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지요. ‘아, 내가 구원받은 게 우연이 아니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겠구나!’ 제대하고 무얼 할까 생각이 분주했는데, ‘내가 내 뜻대로 살 사람이 아니구나. 이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지요.”

 

   
 

강성채 형제의 마음에 들어온 말씀은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인생 계획들을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강 형제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 곧 사로잡혔다. 그러려면 이런 말씀을 전해주는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회 문제가 정리된 것이다.

 

그러면 예배당에서 훈련을 받아라

전주에 내려간 후, 강성채 형제는 바로 전주평강교회(현 기쁜소식전주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에 가니 30~40명 되는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처음 예배에 참석해서 ‘이 교회는 가족 같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구원받은 걸 모두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어요. 한 부인 자매님이 제 손을 잡고 ‘형제님, 우리가 전북대에서 구원받은 학생이 일어나기를 오래 기도했어요. ’ 하고 말하는데, 정말 감사했어요. ‘내가 참된 교회를 만났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요.”

봄이 되어 강 형제는 복학해서 3학년이 되었다. 아침에 도시락 두 개를 싸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면, 도서관에 자리를 잡은 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때론 강의도 빼먹어가면서 성경에 빠져들었다. 당시 전북대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네댓 명 되었는데, 강 형제는 그들과 함께 전도하러 다니며 학교 내에서 집회도 했다.

“복학하고는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어요. 그런데 우리 과(科)에서 한 친구가 저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가 시험 때만 되면 예상문제들을 들고 와서‘너, 이것만 외워라. 그러면 F는 안 맞을 거다’고 했어요. 그 친구가 준 문제들만 달달 외워서 시험을 쳤는데, 대부분 거기에서 문제가 나와 평균 B학점을 유지했어요.”

당시에는 전자공학과가 인기가 좋아서 졸업장만 있으면 쉽게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강 형제도 럭키금성(현 LG)에 원서를 내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당시 전주 교회에 계시던 류홍렬 목사님이 ‘너는 언제 공부해서 대기업을 다 들어갔냐?’ 하고 놀라셨어요. ‘제가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하고 말씀드렸지요.”

얼마 후, 회사 연수원에서 보름 동안 연수가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신입사원들이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기뻐하며 들뜬 분위기 속에서 연수를 받았다. 그런데 강 형제의 마음은 기쁘지가 않았다. 왠지 자신이 이방인 같았다.

“구원받은 후로 늘 교회와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했기에, 처음으로 교회를 떠나 세상 사람들과 섞여 지낸 거였어요. 마음이 굉장히 허전하고 힘들었어요. ‘내가 여기서 돈을 얼마나 벌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해야지 돈을 많이 벌어도 이래가지고 살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어렵게 연수를 마치고 1991년 3월에 광주 지사로 발령이 났다. 당시 전주에서는 새 예배당(서전주교회) 건축을 마친 직후였다.

“새 예배당에서 잠깐 지내다가 발령 소식을 들었어요. 목사님께 광주로 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다지 기뻐하시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속내를 꺼냈지요. ‘목사님, 제가 광주에 가는 게 기쁘시지 않으면 저 안 가도 됩니다’ 하고는, 그동안 연수원에서 느꼈던 부분과 제 마음을 죽 이야기했어요. 목사님이 ‘너, 그거 진심이냐?’ 하시기에 ‘예, 진심입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그럼 한번 기도해보자’ 하셨어요. 그리고 다음날‘너, 어제 나한테 이야기한 마음 변치 않았냐?’ 하셔서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예배당에서 지내면서 훈련을 받으라고 하셨어요. 참 감사했어요.”

강성채 형제는 그때부터 교회에서 신앙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하여 선교학교에 입학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감사해요. 그때 직장생활을 했으면 제 인생이 많이 달라졌겠지요. 그날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내가 움직였다는 마음이 들어요. ‘통신병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의대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 같고요. 공부를 하지 않고도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복음을 위해 살도록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주셨다는 마음도 들고요.”

대학 1학년 때부터 마음을 뒤덮은 영혼의 문제. 무거운 숨을 내쉬며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청년 강성채를 구원해주셨다. 그리고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도록 그의 삶을 이끌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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