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내게도 말씀하신다고 믿어져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내게도 말씀하신다고 믿어져
  • 권윤정
  • 승인 2013.05.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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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할 곳을 찾아서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갓난아이 때부터 복음이 있는 교회에 다녔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다. 내가 대학생이 된 후로 교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교회와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고, 결혼하면서는 더 뜸하게 교회에 나가다가 결국 교회를 떠났다. 3년 가량 방황하면서 교회를 찾았다. 복음을 전한다는 교회들을 찾아가 보았지만 마음에 쉼을 얻지 못하고 조금 나가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30대 초까지 교회에서 보냈기 때문에 친구도 교회 친구가 전부였다. 그랬기에 내가 그 교회에서 나온 것은, 가족 외에는 삶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온 것과 같았다. 외롭고 힘들었기에 하나님을 바랄 수밖에 없었고, 내 마음이 안식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야만 했다. 하나님께 나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며 교회를 찾던 중 인터넷으로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에서 박옥수 목사님 설교를 3~4개월 가량 들었는데, 설교가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복음의 역사였다. 이렇게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라면 나가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2010년 10월 중순, 기쁜소식강남교회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6개월 정도 조용히 다녀보고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면 그만 다니려고 했다. 그런데 교회에 간 첫날, 예배 안내를 맡은 어느 자매님을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7년 전에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분이었다. 굉장히 반갑고,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자매님을 만났다는 것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후 자매님은 나를 여러 부분으로 챙겨주셨다.
교회가 좋기는 한데 섞이지는 못했다. 처음 다니던 교회에서 한번 상처를 받고 나니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교회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쪽에는 의심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고 이따금 신앙교제를 나누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1년 여름 수양회에 참석했다. 나는 나름대로 교회에 정착했다고 생각해 친정어머니도 권해서 함께 갔다. 어머니는 수양회에 참석해서 굉장히 좋아하셨다. 30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당신이 노력하여 고통스러웠던 지난 날들의 눌림이 다 풀어졌는지, 무척 기뻐하며 엉엉 우셨다. 그 모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엇 때문에 저러시지?!’ 충격이 커서 하루 동안 말을 잃었다.
난 기도하며 ‘주님이 저에게 잘못되었다고 하시면 다 버리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우리 교회 어느 목사님과 상담을 나누기로 했다. 목사님께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며, 이제 내 마음은 텅 빈 공간이라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율법 생활을 하셨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나의 20년 신앙생활의 주체가 예수님이 아니라 나였던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복음에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다 찾을 만큼 외우고 있었지만, 나를 부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마음에 감사가 생겼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살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교회가 좋기는 하지만 이방인 같았는데, 그 후로는 마음이 교회에서 들려오는 말씀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성경이 읽고 싶어졌고, 모든 말씀이 달게 느껴졌다.(외적인 변화들을 이렇게 나열하지만, 마음에서 일어난 변화 자체는 말로는 설명을 못 하겠다.)

‘무얼 얻은들 행복할까? 나는 참 남편이 없었구나!’
전에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꽉 채워진 마음으로 내가 무언가를 찾으려 했고 행하려고 했는데, 수양회에 다녀온 후로는 비워진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섰고, 주님이 내 마음에 채워졌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마음에 찾아온 평안이었다.
하루는 예배 시간에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에 관한 설교 말씀을 듣는데,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8)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결혼생활이 겉보기엔 순탄한 편이었지만 늘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남편에게서, 돈에게서, 아이에게서….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여자이기에 ‘내가 탤런트처럼 예뻐지면 행복하려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의 참 남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얼 얻은들 행복할까? 나는 참 남편이 없었구나!’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 나도 사람들에게 “인생, 의지할 데가 어디 있어?” 하고 말했지만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사마리아 여자구나!!’
행복에 대한 목마름이 끝났다. 무언가에서 행복을 찾아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늘 시달렸는데, 내 마음이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너,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그런 거야.”
마음이 행복해지면서 전도가 시작되었다. 전에 다니던 교회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 역시 남편과 함께 그 교회에서 나온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여서 이따금 안부를 물으며 지냈는데, 내 마음이 변한 후 한번은 통화를 하면서 “나는 정말 행복하고 좋아.”라고 말했던가 보다. 친구는 그 이야기가 자기 마음에 깊이 남았었다며, 얼마 뒤 내게 전화해 엉엉 울면서 자신의 형편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결혼한 후 남편의 직장 문제도 있고, 어린 아들 둘에 시달리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편치 않아 무척 힘든 모양이었다. 나처럼 교회에서만 지내다가 나왔기에 세상 친구도 없고, 고립된 모양이었다. 남편 없는 사마리아 여인, 친구도 이전의 내 모습과 비슷했다.
“너, 돈이 있고 주변 환경이 바뀌면 행복할 것 같아? 아니야.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그런 거야.”
“네 말이 맞아. 나 좀 도와줘!”
친구는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형편 가운데 있었고,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자매님들과 함께 친구 집을 찾아갔고, 친구는 몇 달 후부터 집 근처에 있는 기쁜소식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흘러 친구는 2012년 여름 수양회에 참석했다. 우리 남편도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아직은 교회에 마음을 열고 있지는 않기에, 친구 남편이 수양회에 가는 것은 기대도 안 했다. 반대만 안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도 이틀 시간을 내어 중간부터 참석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교회에서 봄에 음악회가 있어서 친구 부부를 초청했는데, 그때 친구 남편은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을 받아 마음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남편은 한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라는 첫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질문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무너진 마음에 성경 말씀이 그대로 임해 친구 남편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친구는 갑자기 변한 남편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이어서 친구도 나와 같은 변화를 맛보았다.
친구 부부는 함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섯 살, 세 살, 두 아들과 함께. 친구는 말하기를 ‘스스로 하려고 애쓰던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삶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과의 관계도 서로 마음이 흐르게 되고, 큰아들은 엄마 마음이 불안정했던 까닭인지 늘 불만 가득한 눈빛이었는데, 교회에 다니면서 사슴처럼 눈빛이 순하게 변했다. 시어머니도 2012년 겨울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보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아 그 후로는 고부 사이도 좋아졌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이끄시고 계셨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했다.

 
‘그래, 동생 마음에 복음이 심겨질 때까지 성경공부를 하자.’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의무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 나하고 가깝게 지내던 후배 여자 직원이 있었는데, 남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자신은 가끔 교회에 가며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는 동생이었다. 나는 의무실에서 성경을 펴놓고 지내는데, 동생이 종종 찾아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한번은 동생이 베리칩 이야기를 꺼내기에 성경에 기록된 666 표식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눈 후 “그런데 너, 천국 갈 자신 있어?” 하고 물었다. 동생은 “나는 하나님은 믿는데, 오늘 죽는다면 천국 갈 자신 없어.” 하고 대답했다. 오래 전부터 동생이 일이 생겨서 “언니, 어떡하면 좋아?” 하고 물을 때마다 성경공부를 하자고 권했지만 동생은 그러자고 하고는 그냥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정말 성경공부를 하자고 했다.
2012년 초부터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낯을 가리는 친구라 교회에 가는 것이나 목사님을 만나는 것이 싫고, 나하고만 성경공부를 하자고 했다. 한두 주에 한 번씩 점심시간에 한 시간 가량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다. 빨리 복음을 전해주고 싶어서 마음에서는 불이 나지만 강요할 수는 없고, 또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몰라 나도 성경을 많이 공부했다.
3개월쯤 지났을 때 동생이 “언니, 다 알겠는데 안 믿어져.” 하고 말했다. 목사님을 모시고 와서 동생과 상담을 나누게 하고 싶지만 동생이 부담스럽다고 하니 그럴 수도 없고,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하루는 구역 예배에 참석해서 구역장 형제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어찌해야 할지 물었다. 그러자 형제님은 “어찌하긴요? 마음 닫지 않고 성경공부를 하겠다는 게 어디예요? 1년이든 2년이든 하면 되지요.”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그래,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결국 하나님이 해주시면 되지. 동생 마음에 복음이 심겨질 때까지 편안하게 성경공부를 하자.’
내가 전할 수 있는 복음의 말씀은 이미 다 전했기에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내가 우리 교회에 와서 발견한 것이 이게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복음을 받아들일 것 같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뒤, 동생이 “언니, 이렇게 쉬운 걸 왜 사람들이 못 믿어?!” 하는 것이었다. 동생 마음에 복음이 심겨진 것이다. 동생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았다. 우리 마음이 서로 흐르고 있었다. 회사에서 신앙 안에서 함께 마음을 나누는 유일한 자매. 그 동생이 없었으면 나는 회사에서 정말 외롭게 지냈을 것이다.
2011년에 수양회에 다녀온 후 난 주님께 두 가지를 기도했었다. 나는 전도를 못 하니 전도할 사람을 붙여 달라는 것과 친구가 없어서 외로우니 친구를 달라는 것.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한 사람 한 사람 나와 연결해 주시고, 그 사람들은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아저씨가 구원받고 보여주셨던 평화로운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입사 때부터 회사 회장님 어머님의 개인 간호사로 잠깐씩 일하면서 만난 사모님의 운전기사 아저씨. 그 후로 10년 동안 가까이 지낸, 내게는 작은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체구가 장사시고 밝고 유머가 많았던 아저씨였는데, 2012년 8월에 갑자기 쓰러지셨다. 음식을 먹다가 숟가락을 툭 놓고 쓰러지신 거였다. 뇌종양이었다. 담배를 많이 피워 폐암이 생겼는데, 폐암이 전이되어 뇌종양이 생겨 몸의 오른쪽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였다. 내게도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쓰러지고 한 달 보름이 지난 작년 9월 중순, 우리 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고대구로병원으로 찾아갔다. 그 전에 전화로 “기사님,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사셨잖아요. 이제는 기사님을 위해, 기사님 영혼 하나만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이 마음에 남았는지 내가 목사님과 함께 가겠다고 하니 허락하셨다.
병원에서 만난 아저씨는 내가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마음이 낮은 분이었다. 30분 남짓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셨다. 그 복음이 아저씨 마음에 그대로 심겨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저는 하나님을 알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저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셨는지는 정말로 몰랐네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2개월 뒤, 아저씨는 항암치료를 받던 중에 잠깐 시간을 내 회사 근처에 힘들게 오셨다. 아저씨는 내 손을 붙잡으며 “내가 다른 건 모르고,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가져가신 것밖에 모르겠어. 난 그 동안 그걸 몰랐었어.” 하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 후로도 아저씨와 종종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2013년 2월 어느 날, 아저씨는 6개월 동안 모든 항암제를 썼지만 차도가 없어서 공기 좋은 강원도로 가겠다고 하셨다. 잘했다고 말씀드리고, 가시기 전에 뵈려고 양천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병실을 방문했다. 목사님은 다시 복음을 전해주셨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 나는 목사님에게 ‘아저씨는 거듭나셨지만 아내 되는 분은 함께 복음을 들었지만 마음에 심기지는 않았으니 아주머니를 위해서도 복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아저씨는 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아주머니도 첫 번째 만남 때와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아주머니 역시 복음의 말씀들을 마음에 받아들이시고 계셨다.
2주일 후, 아저씨는 돌아가셨다. 적어도 몇 개월은 더 사실 것 같았는데…. 복음을 전하신 목사님께 문자메시지로 아저씨의 소천 소식을 알리니,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구원해주심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답신을 보내주셨다. 아저씨가 구원받고 돌아가신 것이 너무 감사한데, 목사님이 더 기뻐하시는 메시지를 보면서 길거리에서 펑펑 울었다. ‘이 기쁨 때문에 목사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을 위해 사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구원받은 기쁨은 세상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없이 컸다.
6개월 동안 아저씨와 가진 세 번의 만남. 그것은 정말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아저씨가 생각나고 그리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아저씨가 구원받고 내게 보여주셨던 그 평화로운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아저씨가 하늘나라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다. 이제 홀로 남은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은데, 지금은 경황이 없으실 것 같아서 잠시 기다리고 있다.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동생
아직은 복음을 강하게 거부하시는 친정아버지 다음으로 기도를 많이 한 회사의 남자 후배. 3년 전, 내가 책상에 성경을 펴놓은 걸 보고 “누나, 교회 다녀?” 하고 물어서 이야기를 시작한 동생. 1년이 흘러 내가 여름 수양회에 참석해서 변한 후, 하루는 그 동생이 사색이 되어 내게 왔다. 혈압을 재어보니 너무 높아 응급실로 후송했다. 혈관이 부풀어 있다가 터지는 뇌동맥류였다. 동생은 2주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 정말 죽다가 살아난 것이다.
다시 1년이 흐르고, 재발의 가능성이 보인다며 병원에서 재수술을 하자고 했다. 큰 고비를 겪었기 때문인지 동생은 시한부인생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보냈다. 수술 2주일 전, “목사님을 한번 만나볼래?” 하고 묻자 그러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내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목사님과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였지 구원받지는 못했다. 수술은 잘되었다. 동생은 하나님께 감사해 하면서도 교회에 가는 것은 싫어했다. 너무 안타까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1년이 더 흘러 올해 초, 동생은 갑자기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 많이 어려워했다. “서울 올라오기 힘든데, 우리 교회 목사님 한번 뵙고 갈래? 신앙 이야기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해봐.”하고 권했다. 동생은 그러겠다며, 우리 교회에 함께 와서 목사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은 한참을 생각한 뒤 목사님에게 “제가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길을 보여주세요.” 하고 말했다. 목사님은 히스기야 왕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히스기야 왕이 한 이 고백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목사님은 차근차근 설명하셨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병 하나에 모든 게 무너져내렸던 동생. 그리고 몸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받은 히스기야 왕. 그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가 동생에게 곧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히스기야 왕이 받은 구원은 동생의 마음에도 그대로 임했다.
1%의 기대도 갖지 않았는데, 내가 그토록 애쓸 때에는 꿈쩍도 않던 동생이 내가 손을 놓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구원하신 것이다. 너무나 행복해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리 역할이라도 할 테니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얼마 전에는 회사 경비 아저씨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우연히 피검사 시트가 남아서 아저씨를 검사해 드렸는데, 결과가 안 좋길래 왜 그런지 이유를 묻자 “사실 오늘 고대구로병원에 가서 위암 초기 진단을 받고 왔네요.” 하며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죽 하셨다. 그분 역시 하나님이 당신을 만나게 하시려고 고통을 주신 것임을 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새로 온 청소하는 아주머니. 아주머니와 친해지면서 죽음 앞에 있다는 아주머니의 친정어머니에게도 곧 복음을 전하러 가려고 한다. 내가 일하는 곳, 나는 그곳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리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그곳에서 당신의 뜻대로 당신이 준비하신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면서 여러 일로 바쁘지만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서 마하나임 사이버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작년 겨울에 들은 사도행전 강의 때 말씀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10)

 
타락한 도시 고린도, 그곳에서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같이 내게도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하나님, 저는 전도하는 데 너무 서툴지만 다리 역할이라도 할 테니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나는 마음이 약해서 내 앞에 펼쳐지는 형편을 보고 실망하거나 근심할 때가 너무도 많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것 같지만, 그런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계, 살아 계신 그 하나님이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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