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모두 친구
세상 사람들은 모두 친구
  • 오 헨리
  • 승인 2013.09.03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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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은 날쌔게 창문 안으로 들어선 다음 꾸물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자기 기술에 자신이 있는 도둑이라면 물건을 훔치기 전에 괜히 시간을 끌게 마련이다. 그 집은 개인주택이었다. 앞문을 판자로 가로막은 것이나 담쟁이덩굴을 손질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집의 여주인은 멀리 놀러간 것이 분명하다. 3층 창문에 불이 들어와 있고 또 가을로 접어든 점으로 볼 때, 이 집 남자 주인은 집에 들어왔고 곧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지금은 1년 중 마음이 가장 쓸쓸해지는 9월이기 때문이다.
 
도둑은 집안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손전등도 고무를 댄 신도 없었다. 그는 그저 주머니 속에 38구경 리볼버 권총 한 자루를 갖고 있을 뿐이며, 생각이 잠긴 듯이 껌을 천천히 씹고 있었다. 그는 이 집에서 ‘대단한 물건’을 훔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곳은 이 집의 남자 주인이 잠들어 있는 불빛이 희미한 방이다. 그 방에서 흩어져 있는 잔돈이라든지 시계나 보석 박힌 넥타이핀 같은 물건을 훔칠 수 있을 것이다.
도둑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가스등이 작게 켜져 있고 한 남자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화장대 위에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시계, 열쇠 꾸러미 그리고 실크 나비넥타이, 아침에 사용할 탄산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도둑은 화장대를 향하여 세 걸음 다가갔다.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는 갑자기 쩝쩝거리며 신음 소리를 내다가 눈을 떴다. 그의 오른손이 베개 밑으로 들어갔으나 더 이상 움직이지는 못했다.
“꼼짝 마.”
도둑은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주인 남자는 도둑이 들고 있는 권총의 둥근 총구를 바라보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자, 두 손을 들어.”
도둑이 명령했다. 주인 남자는 성실하고 점잖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약간 짜증스럽고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오른손을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왼손도 올려. 혹시 왼손잡이여서 왼손으로 총을 쏘려고 그러나? 둘을 셀 때까지 빨리 손을 들라고.”
 
도둑이 다시 말하자 주인 남자가 대답했다.
“이쪽 손은 들 수 없소.”
주인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째서?”
“어깨에 류머티즘이 있소.”
“류머티즘? 염증이 생겼소?”
“전에는 있었죠. 지금은 가라앉았소.”
도둑은 류머티즘에 걸린 남자에게 총을 겨눈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화장대 위에 있는 물건들을 힐끗 바라보고 나서 침대 위의 남자를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 역시 얼굴을 찡그렸다. 주인 남자는 기분이 상한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마시오. 도둑질을 하러 왔으면 어서 하시오. 훔칠 만한 물건들이 있잖소.”
 “미안하지만.”
 도둑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도 류머티즘으로 고생하고 있소. 내가 류머티즘을 앓은 지 오래라는 사실이 선생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신이 왼쪽 팔을 들지 않았을 때 벌써 쏘았을 것이오.”
“댁은 얼마 동안이나 앓았소?”
주인 남자가 물었다.
“4년 됐지요.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한 번 걸렸다 하면 류머티즘은 평생 동안 계속된다는 게 내 생각이지요.”
“방울뱀 기름을 사용해 보았소?”
주인 남자가 물었다.
“방울뱀 기름이라면 몇 통은 썼지요. 아마 내가 쓴 기름을 짜낸 방울뱀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토성까지 가는 거리의 여덟 배는 될 걸요. 그리고 그 방울뱀들의 방울 소리가 인디애나의 벨퍼라이소까지 울렸다가 메아리로 되돌아올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치즐럼 알약을 쓴다던데요.”
주인 남자가 말했다.
“그거 아주 엉터리예요!”
도둑이 말했다.
“5개월을 써 보았죠. 효과가 하나도 없었다고요. 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마로니에 열매가 최고인 것 같소.”
“댁은 아침과 밤 중에 어느 때 더 심합니까?”
주인이 물었다.

“밤이죠. 내가 가장 바쁠 때죠. 이봐요, 그 팔을 내려요. 그런데 선생은 블릭커스태프 조혈제를 써 보셨나요?”

“써 보지 못했어요. 댁의 통증은 이따금 갑자기 오나요, 아니면 계속 통증이 있나요?”
 
이제 도둑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무릎 위에 총을 얹어 놓았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오지요. 통증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을 때 찾아옵니다. 2층 집을 올라가다가 중간에 갑자기 통증이 나서 일을 포기한적도 있습니다. 글쎄, 제 생각에는 그 유명하다는 의사들도 이 병에 뭐가 좋은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수천 달러는 쓰고도 아무 차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상처가 부어오릅니까?”
“아침엔 붓죠. 비라도 내린다면 정말이지 몸서리가 쳐집니다.”
“나도 그렇다니까요. 조그마한 비구름 한 덩어리가 뉴욕 쪽으로 다가오기만 해도 나는 바로 알아맞힐 수 있어요. 그리고 이스트 린이 출연하는 극장 앞을 지나가려면 관객들의 열기에서 나오는 습기 때문에 왼쪽 팔이 욱신욱신 쑤셔 대지요.”
“정말 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 같지요. 젠장!”
“댁의 말이 옳아요.”
도둑의 말에 주인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도둑은 자기 권총을 내려다보더니 태연히 그러나 어딘지 좀 어색한 태도로 주머니 속에 찔러 넣으며 말했다.
“오포델록을 써 보신 적이 있소?”
“그 구정물 말입니까? 차라리 음식점 버터를 바르는 게 낫지요.”
“맞아요. 그것은 꼬마가 고양이에게 손가락을 할퀴었을 때나 바를 약이지요. 내가 통증을 줄일 처방을 발견했는데 얘기해 줄게요. 우리는 함께 그것과 싸워야 하니까. 오늘 제 일은 그만두지요. 나의 무례한 행동은 용서하십시오. 자, 옷을 입어요. 그리고 나가서 야식이라도 먹으며 이야기를 더 합시다. 아이쿠! 또 쑤시기 시작하는군!”
“지난 한 주일 동안 나는 남의 도움 없이 옷을 입지 못했다오. 지금 아들놈 토머스는 자고 있을 텐데…….”
“걱정마시오. 내가 옷 입는 것을 도와드리지.”
도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도둑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이 문득 주인 남자에게 떠올랐다.
“이런 일은 흔한 게 아닌데요.”
“여기 당신 셔츠가 있소. 빨리 침대에서 나오시오. 어떤 이는 옴베리 연고를 2주일 동안 썼더니 자기 손으로 넥타이를 맬 수 있게 됐다고 했어요.”
도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두 사람이 방문을 나설 때, 주인 남자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돈을 잊고 나왔군. 화장대 위에 두었지요.”
그러자 도둑이 주인 남자의 오른쪽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그냥 갑시다. 그 정도의 돈은 내게 있소. 내가 먼저 나가자고 했으니 내가 사겠소. 그런데 바위앵두나무 기름과 금누매 열매 정기는 써 보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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