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받은 하나님의 선물
케냐에서 받은 하나님의 선물
  • 서승원
  • 승인 2013.09.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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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GBS방송국 이야기

 

아침.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다. 어두운 1층 복도를 스무 걸음쯤 걸어 로비로 나가면 아침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약간 쌀쌀하게 느껴진다. 킁킁, 코를 훌쩍거리고 목이 따끔거리는 게 감기가 온 모양이다. 지금 케냐는 겨울이 지나가고 있는데, 올 겨울은 유난히 꼬리가 길다. 3층 GBS 출입구에 이르러 지문인식기에 검지를 대고 문을 통과하면 오늘도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사무실 창가 끝자리에 있는 컴퓨터그래픽 파트, 내가 일하는 곳이다. 30초 후 아내가 사무실에 들어온다. 7개월 전 둘째를 가진 아내의 몸이 많이 무거워 보인다. 3층을 힘겹게 오른 아내가 의자에 앉으며, 씩 웃는다.
아침 8시, 업무 시작.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한 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총각 시절 영상선교부에서 지금 GBS의 사장님인 허용 장로님과 아내 민정옥 자매님이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지금 우리 부부도 나란히 일하다 보면 보기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10년간 치과 간호사로 일했던 아내와 나는 2010년 3월 6일 결혼하고 9일 만에 케냐로 왔다. 케냐에 와서 컴퓨터를 처음 배운 아내는 궁금한 게 참 많다. 이메일에 파일 첨부하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제법 수준 있는 그래픽 작업을 한다.
요즘 GBS는 유럽의 ‘챔피언스리그’ 방송 준비로 사무실이 북적인다. 케냐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축구다. 넓은 잔디와 공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허술한 나무 벤치를 골대 삼고, 맨발에, 심지어는 장화를 신고 일하다 말고 나와서 축구를 한다. 키콤바 중고시장에서 축구화가 가장 잘 팔리는 것을 보아도 축구의 인기를 알 만하다.
유럽의 챔피언스리그 기간인 요즘은 축구의 인기가 더 뜨겁다. 빈민가에는 20평 남짓한 창고에 42인치 TV가 놓여 있고, 그곳엔 좋은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1시간에 20실링(300원)!” TV 옆 벽에는 관람 가격이 적혀 있다. 유럽 축구 경기는 중계가 안 되기에, 사람들은 유료 케이블 TV가 설치되어 있는 이런 유료 TV 관람장에서 주말을 즐긴다. 그런데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공중파인 GBS에서 공짜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케냐 사람들에게는 분명 또 하나의 굿뉴스(good news)다.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경제가 여전히 침체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GBS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건 기회이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변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10개가 넘는 공중파 방송국들 간의 주파수 경쟁이 치열해 가끔은 힘겹지만, GBS를 설립한 박옥수 목사님의 메시지에서 ‘미래 중동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GBS’를 볼 수 있다.

GBS에서 일하면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었다. 1년 전 7월에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니, 퇴사 당했다는 말이 맞다. 나는 그 전에 가끔 힘들 때마다 ‘한국에 가야지…. 내가 젊은 나이에 왜 여기 있을까?’ 하고 후회했다. 그 생각들이 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 한번 주저앉으니 일어설 힘이 없었다. 복음을 위해 케냐까지 왔는데, 나태하고 게을러진 내 모습에 상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퇴사 조치는 사장이신 허용 장로님이 방황하는 나를 위해 내린 극약처방이었다. 두 달 동안 집에만 있으면서 성경도 보고 설교도 들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성경을 덮으면 화가 나고 후회가 내 마음을 뒤덮었다. 나는 마음이 바뀌어서 좋은 간증을 들고 일어나길 바랐지만, 결국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말 못하겠습니다. 안 바뀝니다. 성경도 보고 설교도 들었지만 그때뿐입니다. 이젠 한국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였다.
케냐 교회의 김욱용 목사님은 “우리 마음은 바꿔야 할 게 아니라, 버려야 할 거네.” 하며, 내 마음이 버려져야 할 더러운 것임을 성경 안에서 말씀해 주셨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힘이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 세워주길 바랐다. 기도했다. “마음을 버리는 것도, 힘을 주시는 것도 주님이 해주세요.”
다음 날, 전주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한 아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은 “네 마음이 다 죽었구나….” 하며 말씀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 4:19)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 해답을 히브리서 11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히 11:11)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에서 잉태할 힘을 얻었다는 말씀이 내게 일어설 힘을 주시겠다는 말처럼 내 마음에 들렸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

 
일어설 힘조차 없는 나에게 하나님은 나를 통해 무수히 많은 생명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내 마음이 크게 떨렸다. 저녁이 되어 방송국에서 돌아온 아내와 이 말씀을 나누면서 너무 행복했다. 아내가 나보다 더 기뻐했다. 그리고 장로님께 찾아가 GBS에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1년이 지났다. 가끔 딸 가일이가 아플 때면 어떻게 하지 못하는 형편에 화가 나지만, 변하는 나 말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과 미쁘신 주님을 기억한다. 그리고 조금은 부족한 게 좋은 거라고 하신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젠 전과 달리 작은 일 앞에서도 아내와 함께 기도한다. 기도하다 보면 주님이 우리가 갖지 못했던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GBS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 부부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우리 부부가 케냐에서 받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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