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손처럼 촉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들의 손처럼 촉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 김지호
  • 승인 2013.09.1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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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무전전도여행

 

“누구랑 가는 거죠?”
“다음 주에 동쪽 지방으로 무전전도여행을 가야 하는데, 누가 먼저 갈래?”
선교사님의 말씀.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언젠간 가게 될 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바빠서 갈 틈이 보이지 않아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다. 어차피 한번은 경험해야 하고, 단기선교사들 가운데 내가 맏형이기도 해서 먼저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누구랑 가는 거죠?”
“어거스틴이다.”
“헉!!”
교회에 사는 식구들 가운데 키가 가장 크고 나보다 한 살 어린 선교학생 어거스틴. 전도 스타일이 어찌나 격렬한지 전도를 나가면 사람들과 다투기 일쑤고, 전도를 나갔다 하면 그 긴 다리로 키갈리의 온 시내를 걸어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통에 항상 늦게 돌아오기에 함께 다니기 부담스러운 형제였다. 그것도 모르고 먼저 가겠다고 했으니 후회가 막심했지만 무를 수도 없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어거스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출발 당일, 걱정이 태산이었다. 둘 다 무전전도여행은 처음인 데에다, 어거스틴이 사람들과 자꾸 다투면 먹을 것은 고사하고 잘 곳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르완다는 인종학살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신앙심이 대체로 깊은데,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신앙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자주 부딪힘이 일어난다.
출발하기 전, 선교사님은 인간의 방법을 쓰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라고 당부하셨다. 드디어 5박 6일의 무전전도여행 출발. 우리는 지나가던 차를 잡아타고 동쪽 방향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신앙의 나라답게 어떤 사람이 목이 터져라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었다. 얼마나 소리를 쳤는지, 목이 다 쉬어 있었다. 어거스틴이 그 광경을 보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거짓 복음이라며 쟁론을 시작했다. 서로 “오야(아니야)!” “오야!” 하며 목소리를 높이니까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어거스틴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난생 처음 듣는 복음에 여기저기서 “오야! 오야!”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새 사람들이 어거스틴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 곳곳에서 “아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먼저 전도하던 사람도 기세가 한풀 꺾이더니, 나중에는 작은 소리로 “아멘” 하였다. 모두 르완다 토속어인 ‘키냐르완다’로 말했기에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복음 전하는 데 항상 소극적이었던 나는 어거스틴에게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르와마가나에서_ ‘이 맛에 전도하는구나!’
차를 몇 번 잡아타고 ‘르와마가나’라는 곳에 도착해, 몇 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내가 영어로 말하면 어거스틴이 통역하면서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영어에 서툴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도 서툰 내가 하는 전도는 내가 생각해도 듣는 사람이 지루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처음 들어간 미용실에서는 사람들이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거스틴은 그렇게 전도하면서 조금씩 느는 거라며, 들어가는 곳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
어느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처음에는 자신들이 해온 신앙생활과 다른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자 마음을 열고 구원을 받았다. 다시 다른 집으로 옮겨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집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들이며 굉장히 감사해했다. ‘이 맛에 전도하는구나!’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니 전도하는 게 재미있어졌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우리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어느 자매의 부모님 집에 가서 자매의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자매의 부모님은 구원받은 분들이었다. 할머니는 늙고 병든 자신에게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며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셨지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자 나중에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마음에 복음을 받아들이셨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점심부터 밥을 먹지 못했는데,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자매의 부모님이 저녁을 준비해주셔서 감사하게 먹고, 잠잘 곳도 마련해주셔서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카욘자에서_ “사람을 믿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다음날 ‘카욘자’로 이동했다. 카욘자에 있는 고등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는 형제님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데, 학교에 와서 복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만 마음의 죄를 해결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내가 먼저 복음을 전했다. 자꾸 복음을 전하다 보니 복음 전하는 것이 조금씩 늘었다. 역시 학생들도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 학생이 “인간은 항상 죄를 짓기 때문에 늘 회개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렇게 가르친 사람들이 잘못됐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너는 사람을 믿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하고 되물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학생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받았다. 교사인 형제님이 나를 다시 초청하고 싶다고 부탁하셔서 그러겠노라고 약속드렸다.
카욘자에도 우리 교회 형제의 부모님이 살고 계셔서, 그분들이 먹을 것과 잠잘 곳을 구해주셨다. 비록 아주 좁은 1인용 침대에서 둘이 자야 했지만, 은혜로운 안식처였다.

카바론도에서_ 그 가족은 우리에게 안방을 내주었다
다음날은 ‘카바론도’로 갔다.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다. 한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자, 처음에는 백인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신기해서 주인 아주머니가 환영했지만 복음을 듣고는 표정이 변했다. 아주머니는 고집스런 어투로 “오야(아냐)! 오야(아냐)!” 하셨다. 어거스틴이 아주머니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다시 복음을 전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을 조금씩 열더니 구원을 받으셨다. 나중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뜨려고 하자, 아주머니가 가지 말라고 하며 자리에 앉히는 재미있는 광경까지 벌어졌다. 오후 늦도록 점심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는데, 아주머니가 “르완다 음식 좋아해요?” 하고 물으셨다. “물론이죠!” 아주머니는 밥과 감자튀김과 콩 요리를 산더미처럼 준비해주셨다.
점심을 잘 먹고, 카바론도에 사는 어거스틴의 친구가 소개해준 집으로 전도를 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주인 아주머니가 시원한 음료수를 주셨다. 우리는 그 집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그 가족의 친구들도 복음을 들으러 왔다. 도중에 떠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저녁 식사를 대접해주셨다. 그 가족은 나와 어거스틴을 위해 안방을 내주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카부라에서_ 순수한 ‘이든’과 ‘페드릭’
다음날 아침, 간단히 식사를 하고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정도 걸어야 도착하는 ‘카부라’로 향했다. 전기도 없고, 정말 아프리카 같은 곳이었다. 어거스틴이 카부라로 간 것은, 거기에 어거스틴의 친할머니와 삼촌이 살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은 어거스틴을 정말 오랜만에 만난 듯 어거스틴과 나를 아주 격하게 반겨주셨다. 할머니 집에 잠시 머문 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집을 나셨다. 백인이 나타났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따라왔다.
그 동네는 마토케(동부 아프리카에서 나는 요리용 바나나) 농사를 주로 하는 곳이어서 마토케 나무의 행렬이 끝이 없었다. 그래서 집과 집 사이가 너무 멀어서 정말 많이 걸어야 했다. 피곤하고 배도 고프고,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어거스틴이 자꾸 나에게 사람들에게 간증하고 복음을 전하라고 해서 신경질까지 부렸다.
몇 집 들르지 않았는데 금방 날이 저물어버렸다. 전기가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빛에 의지해서 길을 걸어 밤이 깊어서야 우리는 어거스틴의 할머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웃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집 아주머니 역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곧 받아들여 구원을 받으셨다. 아주머니에게는 고등학생인 ‘이든’과 ‘페드릭’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다 신앙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자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어머니까지 합세해서 긴 시간 성경 말씀을 전해주자 마침내 구원을 받았다. 이든과 페드릭은 무척 순수하고, 한국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해하며 나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어했다.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이든과 페드릭의 집에서 함께 잠을 잤다.

 

어거스틴의 고향_ 머나먼 곳, 아름다운 곳
다음날은 전도여행의 종착지인 어거스틴의 고향으로 출발했다. 어거스틴은 자기 고향 쪽으로 가는 차는 많지 않다며 걱정했다. 차를 잡아서 조금이라도 타고 가고, 아니면 걸었다. 아침 6시 반에 출발해서 11시가 되었을 때 어거스틴의 고향 마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 온 줄 알았는데, 다시 비포장 도로를 한참 걸어야 했다. 중간 중간 어거스틴의 친구들을 꽤 많이 만나고, 어느 친구의 집에서 점심도 얻어먹었지만, 어거스틴은 대체 마을 어느 곳에서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걸어야 되냐?”고 물으면, 어거스틴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니 그만 물으라고 했다.
4시쯤 되어서야 어거스틴이 “저기 보이는 언덕에서 우리 집이 굉장히 가깝다”고 했다. 그 언덕에서 2시간을 더 걸어, 날이 다 저물어서야 우리는 어거스틴의 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어거스틴의 친구를 만나 자전거를 타고 와서 망정이지, 3시간을 걸을 뻔했다.
그곳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내가 생각했던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경이롭기까지 했다.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없는 곳. 아이들이 나무토막과 병뚜껑을 이용해서 만든,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설명하기 힘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곳. 집을 지을 때 쓸 흙벽돌을 만들려고 진흙을 파내 마을 이곳저곳에 커다란 구덩이가 엄청나게 많은 곳. 문명과는 동떨어진 곳이었지만 ‘내가 언제 이런 곳에 오겠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어거스틴의 집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 침대 두 개, 옷가지 몇 개가 세간의 전부였다. 닭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의자에 앉자 바로 뒤에서 닭이 푸드덕거려 심장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깊은 시골에서 살았음에도 4개국어가 가능한 어거스틴 형제가 대단해 보였다. 그 마을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어거스틴의 가족은 농부인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나씩 있었다. 집의 농장이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어서 가족이 집에 있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날 저녁, 나는 어거스틴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아직 오시지 않은 아버지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복음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마을로 전도를 나갔다. 아무 불빛도 없는 곳에서 달빛을 의지해서 요리를 하고 씻기도 하는 그곳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나도 달빛 아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곳에 나와 같은 전도자가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 기울여 복음을 전하니 행복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전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어거스틴의 가족들과 찬송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나에게 나중에 또 꼭 와달라고 부탁하셨다. 밤늦게까지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오시지 않아 우리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전도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한번에 많은 것을 가르쳐준 전도여행
갈 길이 멀기에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차를 마시고 어거스틴의 아버지를 뵙고 난 후, 수도 키갈리로 출발했다. 마토케 등 농작물을 실어나르는 차가 종종 다녀 들어올 때와 달리 큰길까지 금방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토요일이어서 큰길에는 오가는 차가 별로 없었다. 신기한 것은, 차를 얻어 타지 못할 때마다 근처에 있는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나오면 금방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수요일에 머물렀던 집의 주인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를 만나 카욘자까지 한번에 올 수 있었다.

 
원 없이 걷고, 자전거를 얻어 타고 가다가 고랑에 빠져서 크게 다칠 뻔도 하고, 천장에 사는 쥐가 뿌린 배설물 세례를 받기도 하고, 반 대야의 물로 샤워를 하기도 하고…. 어거스틴과 함께한 전도여행은 힘들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어거스틴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시골 경험이 처음인 나를 위하며, 내 영어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통역해준 어거스틴이 고마웠다. 어거스틴은 물러터진 나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친구였다.
전도여행을 다니는 동안 나는 배가 부르면 마음이 좋았다가 많이 걸어서 힘들고 배가 고프면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해 놓으셨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믿음 없이 살았는지 돌아봐지며 부끄러웠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손이 무척 촉촉하다. 그에 비해 내 손은 메말라 있고 건조하다. 전도여행 때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은 그들의 손처럼 촉촉하고, 그들이 건넨 밀크티(milk tea)만큼 따뜻했다. 그에 비해 내 마음은 차갑고 메말라 있었다. 그들의 마음으로 인해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평안한 한 주를 보낼 수 있었다. 비로소 깨달았다. 나에게는 돈이 없지만, 나는 하나님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서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무전(無錢) 전도여행을 떠났지만, 나는 유전(有錢)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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