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
  • 김영삼(카메룬 선교사)
  • 승인 2013.09.16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교사 수기

 

“카메룬으로 정기휴가를 와. 비행기표도 응답받아서.”
2011년 카메룬 월드캠프는 2010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갖는 월드캠프였다. 2010년에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동안 카메룬에서 단기선교사로 지냈던 한국의 형제 자매들과 돕는 손길들을 보내주셔서 캠프의 준비, 개최, 진행 등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게 하셨다. 2011년에는 캠프 장소가 바뀌어 전년에 비해 더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캠프를 앞두고 둘째 아들은 카메룬에서 캠프 준비를 도왔고, 큰아들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러 한국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
캠프를 몇 달 앞두고 하루는 군에 가 있던 첫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카메룬 월드캠프 때 휴가를 나오려고 준비중인데, 많은 문제들이 있다고 했다. 큰아들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自隊) 배치를 받는 과정에서 소속이 국방부에서 법무부로 전환되어 교도소의 경비교도대원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함께 훈련받은 200명 중에서 두 명이 경비교도대로 배치받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들 말에 의하면, 군인으로 복무 중인 병사들 가운데에는 해외에서 살다가 군복무를 위해 귀국한 사례들이 비교적 많고 그들이 정기휴가를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는 사례도 많아서, 휴가 때 해외로 나가는 것이 비교적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무부에 속해서 복무하는 경비교도대원의 경우에는 대원들 가운데 해외로 휴가를 간 사례도 없고 가려고 하는 대원도 없어서 모든 것이 어렵다고 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이 이해는 갔지만 아들이 캠프에 참석해서 복음의 일을 돕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너, 월드캠프에 오는 거야. 비행기표도 응답받아서 와!” 하고 말했다.

해외 휴가는 허락받았는데 비행기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얼마 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족이 다 해외에 살고, 모두 재외국민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휴가를 해외로 가는 것에 대해서는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 경비는 지원받을 수 없다고 했다. 군인은 정기휴가를 갈 때 자신의 주민등록상 주소지까지의 이동 경비와 일정 금액의 보조금을 부대로부터 휴가비로 지급받는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카메룬으로 휴가를 오게 되면 비행기표를 지원받는 게 당연하지만, 법무부에서는 국방부와 경우가 달라서 그게 안 된다고 했다. 해외로 휴가를 나간 사례가 없고, 그나마 몇 번 있는 경우도 가까운 중국이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아프리카의 경우는 비행기 일정이 비교적 변동이 많고, 특히 카메룬은 그 땅에 사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제도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원칙상 영주권을 가진 군인에 한해서만 비행기표를 지원하고, 예외로 영주권이 없는 나라에 대한 지원도 있지만 카메룬은 그 나라들의 리스트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아들은 비행기표 얻는 일을 진행하면서 소대장님들과 부딪히고, 선임들과도 갈등이 생겨서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통해서 아들이 하나님을 배우고 믿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의 일이니까 와라.” 하고 다시 말했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비행기표를 지원해 주라고 공문이 왔다.”
시간이 흐르고, 월드캠프 전에 한국에서 전도여행팀이 와서 전도집회를 가졌다. 집회 기간에 하루는 집회 강사로 오신 최원배 목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큰아들 이야기가 나와서 아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 후 최원배 목사님과 전도여행팀은 집회를 잘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다시 월드캠프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군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대에서 비행기표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아들은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어본즉, 카메룬에 오셨던 최 목사님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들은 법무부에서 일하는 분들로, 동부 아프리카에서 법무부 관련 회담이 있어서 케냐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최 목사님이 그분들에게 우리 아들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카메룬에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님의 아들이 법무부 산하 광주교도소에서 복무하고 있는데, 휴가 때 집에 가고 싶어하지만 부대에서 비행기표를 지원해주지 않아서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러자 한 사람이 그 교도대원의 서류를 본 것 같다면서 다시 고려해 보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비행기표까지는 지원해줄 수 없다고 확언했던 소대장님이 우리 아들을 부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상부에서 비행기표를 지원해 주라고 공문이 왔다.”고 소식을 전했다.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들이 법무부 산하 교도소에서 복무하게 되고, 법무부 관련 회담이 동부 아프리카에서 개최되어서 법무부 직원들이 한국에서 케냐까지 오고, 그것도 아들의 휴가 관련 서류를 검토했던 직원이! 그리고 때마침 전도여행팀이 한국에서 왔다가 최 목사님이 우리 아들 이야기를 듣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분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그리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아들 이야기가 나오고…. 마치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듯이 모든 일이 착착 들어맞았다. 만약 최 목사님이 비행기 안에서 그분들과 이야기하지 않고 ‘좀 쉬자’ 하고 잤어도 우리 아이는 월드캠프에 참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은 내 말을 듣고 일을 진행하면서 계속 막히고, 소대장님들과 부딪히고, 선임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안 된다는 쪽으로 마음이 흘러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소대장님에게서 ‘교정청에서 허락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 최원배 목사님의 전화를 받아 자초지종을 알게 된 것이다. 아들은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약속의 말씀을 이루고 계셨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형편에 반응하고 산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이야기했다.
얼마 후, 아들은 휴가를 받아 월드캠프에 참석해서 함께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부대장님, 죄수들도 복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차비를 주는데…”
시간이 흘러 큰아들이 복무를 곧 마치고 카메룬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되었다. 아들에게 비행기표를 어떻게 할 건지 묻자 ‘두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행기표 값을 마련해서 돌아가겠다’고 했다. 순간 내 마음에서 ‘아들이 전역하고 돌아오는데 비행기표 값이 없구나…’ 하고 걱정하다가 문득 다른 마음 하나가 올라와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어려운 형편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거야.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고 믿음으로 비행기표를 얻어 돌아와서 간증해라. 구원받은 사람은 모든 삶이 간증인데, 네가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인해 하나님을 경험한 간증을 했으면 좋겠다.”
아들은 내 이야기를 그대로 들었다. 처음에는 자기 생각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받아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부대장에게 찾아가서 제대할 때 카메룬으로 갈 비행기표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부대장은 역시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들은 “부대장님, 죄수들도 복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차비를 주는데, 하물며 2년간 나라를 위해 복무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저에게 돌아갈 경비를 주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하고 말했다. 부대장은 연신 그런 법이 없다고 했지만 아들은 다시 “법이 없으면 법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하고 말했다.
결국 부대장은 사무실에서 쓰는 경비의 일부로 아들의 비행기표를 마련해 주었다. 아들은 2011년 월드캠프 때 비행기표를 얻은 일로 하나님을 배웠고, 그때 일을 토대로 제대할 때에도 발을 내딛어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남겨줄 유산이라고는 하나님과 믿음뿐이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도 감사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세밀하게 도우시고 아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감사하다. 나는 자주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재산도 없다. 남겨줄 유산이라고는 하나님과 믿음뿐이다. 하나님과 믿음을 유산으로 받으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그것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 없다. 누구도 건들지 못하고 빼앗지 못하는 게 하나님과 믿음이다. 그러니 너희는 사람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만 기대하고 믿으며 살아라.”
1994년, 내가 선교학교에서 훈련을 마치고 전도지로 파송받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다. 전도지로 파송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무척 기뻤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다. 오바댜 1장 3절의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라는 말씀처럼, 나는 ‘교만하지 말아야지! 교만하면 안 돼!’ 하고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에서는 흐뭇한 마음이 두더지 머리처럼 올라왔다.
그날 점심시간이 되어서 다른 선교학생들과 함께 음식이 나오기를 서서 기다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한 형제가 와서 “김 형제, 큰일났다! 네 아들이 다쳤다!” 했다. 둘째 아들이 손목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아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제일 앞에 서 있었는데, 뒤에 서 있던 아이가 우리 아이를 확 밀어서 펄펄 끓는 물이 담긴 솥에 아이의 두 손이 들어간 것이다.

 
내 마음을 들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내 중심에 있던 교만을 적발하셨다. ‘뭐? 네가 잘해서 파송받아?’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도둑질한 나에게 엄하게 심판하셨다. 그리고 아이가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재앙에서 아이를 지킬 수 없음을 보며 나의 무익함을 알았다. ‘만약 아이의 얼굴이 끓는 물에 들어갔으면 어찌되었을까? 온몸이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다행히 한쪽 손목에 흉터가 조금 남았지만 상처는 잘 아물었다. 그때 나는 아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익한 내가 보이고, 반면에 우리 아이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 6:30~34)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우리 가정도 지켜 주시고, 교회도 지켜 주시고, 모든 것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구원받은 후 나의 삶이나 우리 가정을 돌아볼 때 그동안 재앙도 있고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난간이 되어 주셔서 모든 재앙과 어려움이 지나가게 하셨다. 신명기 22장에서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신 22:6~7)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 어미 새가 새끼나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어미 새는 반드시 놓아주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품고 사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닥쳐오는 많은 재앙들을 지나가게 하셨다. 그 하나님이 감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