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나를 다 맡기면 되겠다
예수님께 나를 다 맡기면 되겠다
  • 김원장 (부산대연교회)
  • 승인 2013.10.1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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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길의 빛

마음에 ‘김원장’이 세워져 갔다
구원받은 고모를 따라 어릴 적부터 교회를 나오며 구원을 받았다. 단지 내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이 내 맘에 임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믿어졌다. 우리 집안은 친척들까지 포함해서 유교적인 분위기여서 어른들은 교회를 싫어하셨고, 교회에 다니는 나를 핍박하셨다. 아버지가 때리는 것이 무서워서 몰래 교회를 다니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생 캠프에 다녀온 후 아버지께 교회 수련회에 다녀왔다고 당당하게 말씀드렸다. 그날 나는 각목으로 심하게 맞고 집에서 쫓겨났다. 이후로도 교회에 가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는 때려서 안 되자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제발 교회에 안 가면 안 되냐?” 하고 비셨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하나님과 교회가 좋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IYF 활동을 하다가 2004년에 3기 단기선교사로 러시아에 갔다. 선발 경쟁률이 높았던 당시에 스무 살의 어린 나를 보내주는 교회가 감사하기도 했지만 내 신앙을 인정받은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1년의 단기선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월드캠프나 컬쳐 등의 IYF 행사에서 많은 일을 했다. 잘한다는 소리, 인정받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어느덧 내 맘 속에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김원장, 신앙을 인정받아 단기선교를 다녀온 김원장, 복음의 일 앞에 온 마음으로 봉사하고 일도 잘하는 김원장이 세워져 갔다.
바람 든 무처럼 나는 망가졌지만 마음의 그런 흐름을 느낄 감각이 전혀 없었다. 매일 교회에 가고 복음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사탄이 주는 마음을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악에 빠지고 하면서도 나를 믿는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남은 것은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김원장’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울러 부산대연교회 박영준 목사님의 인도로 부산 링컨하우스스쿨에서 교사로 일했다. 교사로 지내면서 감사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나를 믿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문제가 일어나고 주위 분들에게 간섭을 받고 교제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간섭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제점을 늘 내가 아닌 주위에서 찾으려고 했다.
박영준 목사님이 나태하고 교만한 나의 모습을 보고 강하게 간섭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인정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나를 무시하셨다. 그럴수록 목사님께 인정받으려고 더욱 애썼다. 열심도 내고, 다른 목사님들을 찾아가서 교제도 받고…. 목사님께 괜찮고 변화된 나를 보여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목사님은 나를 전혀 받아주시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교회에서 항상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섬긴 나를 ‘도저히 링컨 학교에 교사로 둘 수 없다’고 하시는 목사님이 너무 야속했다. 목사님과 교회에 대하여 온갖 불신이 올라왔다. 어릴 적부터 핍박 속에서도 교회를 다닌 내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학교에서 쫓겨나 집에서 방탕하게 살았다. 마음이 굉장히 어려워서 잘하지도 못하는 컴퓨터 게임을 하루 종일 했다. 교회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엉망으로 살다가, 다행히 사모님이 교회에 들어오게 해 주셔서 지하 방에서 지냈다. 당장 생활비가 없으니 일을 해야 했다. 전공이 러시아어(語)라 러시아어를 쓰는 직장을 잡아 다니면서, 박사 과정 입학 준비를 했다. 부산대학교에는 노어노문학 박사 과정이 없기에 언어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지원했다. 날 무시하고 받아주지 않는 교회와 목사님에게 뭔가 갖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석사 과정 때 담당 교수님과 박사 과정 진학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에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다.
시험도 잘 보고 전형 과정도 잘 통과했는데 불합격하고 말았다. 왜 떨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하나님께 원망만 나올 뿐이었다. 내가 하나님께 무슨 잘못을 그리 했는지, 왜 나를 무능력자로만 만들어 가시는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하루종일 한숨만 푹푹 쉴 뿐이었다.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남은 것은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김원장이었다.

내게 행복을 안겨줄 것만 같았던 ‘김원장’에게 내가 속은 것이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하신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0)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동안 그렇게 믿어 보려고 애썼던 말씀이었다. 간섭을 받고 교제를 받을 때 이 말씀을 깨달아 보려고 읽고 또 읽었는데, 이해는 가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때 내 속에 선한 계획이 있고 나름대로 귀한 마음들이 있었기에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속의 생각들이 선하게 보이든 귀하게 보이든 결국은 나를 어렵고 어둡게 만드는 것을 볼 때, 나를 어렵게 하고 어둡게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믿어졌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이라는 말씀도 마음에 다가왔다. 내가 믿었던 내 마음들이 나를 속인 것이다. 내가 기대하고 믿었던 김원장, 내게 행복을 안겨줄 것만 같았던 김원장에게 내가 속은 것이다. 내가 싫어졌다. 회사에서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았지만 그 돈도 내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지금 맘을 바꿔 예수님께 나를 다 맡기면 되겠다
얼마 후, 교회에서 목사님이 ‘창세기 41장에서 애굽 왕 바로는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고, 그로 인해 바로와 나라 전체가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당시 초강대국인 애굽의 절대자 바로, 그의 말에 한 민족이 사라질 수도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그가 어떻게 이민족이자 강간미수범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새파란 요셉에게 모든 걸 맡길 수 있었을까? 이는 바로가 자신이 치리하는 애굽의 비참한 말로를 보았으며, 그런 비극을 막을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자신과 가족, 온 나라를 요셉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부정했고, 애굽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자신을 온전히 요셉에게 드린 것이다.

 
나는 바로보다 훨씬 못한 사람인데도 나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다. 믿을 만하고 잘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있었던 탓이다. 바로의 마음이 사모되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맘을 바꿔 바로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예수님께 나를 다 맡기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나를 버리고 예수님께 나를 다 맡겨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내가 내 문제를 지고 고생할 이유가 없었다.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면서 “너, 그 문제 나한테 넘겨. 그것도, 그것도…. 그냥 전부 나한테 맡겨. 내가 다 복되게 해줄게.”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난 내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버렸다. 그 순간부터 내 문제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문제였다. 내 삶은 예수님의 삶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 삶을 복되게 하실 의무가 있었다. 잘살고 싶은 생각도 빼버렸다. 내가 나를 위해서 돈을 모으거나 뭔가를 준비하는 것보단 예수님께서 나를 좀 더 쉽게 이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위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너도 이제 결혼할 때가 되었으니 돈을 좀 모아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예수님이 내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게 훨씬 풍족하고 복될 것이란 마음이 들어 물질들을 주님께 드리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요
그즈음, 회사에서 러시아 파견 근무 이야기가 나왔다. 3개월의 짧은 기간으로, 조건도 괜찮았다. 러시아에 다녀오면 대우도 달라지고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도 있었다. 그 일을 목사님과 상의했는데, 목사님은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 너무 달랐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가 느껴져서 감사했다. 하나님이 한국에서 내게 더 하실 일이 있는 듯했다.
다음날 회사에서 파견 근무를 못 간다고 말씀드리자 상사의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이후 나를 대하는 회사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두 달 후,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 곳도, 모아놓은 돈도 없었지만 그 즈음 청년회에서 들은 말씀으로 하나님은 내게 또 약속을 주셨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나 보기에 나는 무명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내게 유명하다고 말씀하시고, 나 보기에 나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라고 하셨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선이 딱 그어졌다. 그동안 내 생각을 따라 힘들게 살았기에 다시 내 생각을 따라갈 이유가 없었다. 소망과 감사가 넘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나는 유명한 자요,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는 자였다.
하나님이 내게 그렇게 말씀하신 이후, 형편은 청년 실업자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유명한 사람이요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하는 사람인데, 왜 당장 다음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걱정해야 하는가?’ 난 그저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나를 마음속에 그려보며 행복해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오, 발음이 정말 좋네요! 이렇게 발음 좋은 분 처음 봤어요!”

 
직장에 가지 않으니 교회와 함께하면서 많은 일들을 했다. 학생회, 대학생 모임, 합창단…. 그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마침 교회에서 집회를 가져 아침저녁으로 말씀을 들으며 주님 안에 있는 나를 볼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이어 부산에서 열린 2013 월드캠프에 마음을 쏟았다.
직장을 알아보는 일은 뒤로 미루었는데, 캠프 중에 아는 형제가 전화해서 어느 회사의 정보를 알려주며 ‘너한테 꼭 맞는 회사로, 교회와 가까워서 복음을 섬기기에도 좋으니 네가 꼭 이 회사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간곡히 권해 못 이기는 척 인터넷으로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러고는 캠프 일이 바빠서 잊고 지냈다.
캠프 첫 주를 보내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월요일에 회사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아무 준비 없이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 회사로 이끄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러시아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서 가볍게 인사말을 나누었는데, “오, 발음이 정말 좋네요! 이렇게 발음 좋은 분 처음 봤어요!” 하였다. 그 전에 봤던 면접들은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 회사에서는 나를 뽑으려고 작정하고 면접을 보는 것 같았다. 조건도 전에 일했던 회사와 비교할 수 없이 좋고, 나를 믿고 일을 맡기려고 했다. 회사 위치도 교회에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면접을 본 후 수요일에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다. 전혀 모르던 회사, 합격할 능력이 없는 나, 하나님이 은혜를 입히시려고 나를 그곳으로 이끄심을 알 수 있었다.

“제가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면 회사에 복이 될 줄을 분명히 믿습니다.”
새 회사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좋은 점도 많았지만, 불편한 부분이나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날 이 회사로 이끄셨으니 내게 가장 복된 곳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난 여름, 2차 수양회와 실버 수양회 때 ‘리얼스토리’ 공연 연출을 맡았기에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회사를 두 번 빠졌다. 당연하겠지만, 사장님께서 조금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이러다가 또 잘리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게다가 포항에서 박옥수 목사님을 모시고 가지는 대전도집회 때 9월 11일 하루를 부산지역 연합 합창단의 일원으로 공연하러 가야 했다. 찬양하는 은혜를 놓치기 싫었지만 입사 두 달 만에 세 번이나 결근하면 당장 해고당할 것 같았다.
며칠 고민하다가 마음에 선이 정확하지 않아서 또 내 생각 쪽으로 마음의 추가 기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회사에 온 것이 하나님의 인도임이 또렷하기에, 그렇다면 회사에서 나가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사장님이 아무리 날 미워해도 쫓아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회사를 붙들고 싶기에 회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서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실상 나에겐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내가 잘하려는 생각 자체가 나를 믿는 마음이자 사탄에게 속는 마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자유가 왔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주시지 않으면 어차피 회사에서 버틸 수 없었다. 더 이상 미련 가질 것도 없고, 복음의 일을 하다가 쫓겨난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회사에서 쫓겨나게 하실 거였으면 애초에 이 회사에 보내시지 않았을 거란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정하고 출근하자마자 사장님께 면담을 신청해 내 마음을 말씀드렸다.
“사장님께서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제가 이 회사에 온 것은 제가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였다고 분명히 믿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악조건이 있더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회사의 업무 방침대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 저도 잘 알고 있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교회 일도 포기하기 싫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사에 올 때 하나님이 제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라면, 저로 인해 회사가 돈을 훨씬 많이 벌게 되고 부요케 됨을 믿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사장님께서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은혜를 입으면 오히려 회사에 복이 될 줄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오는 9월 11일에, 합창을 하러 집회에 하루 다녀와야 하는데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장님은 1초도 생각지 않고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다 이야기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다. 사장님과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잠깐이나마 하나님을 불신했던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포항 집회 때 부른 합창은 우리 능력을 넘어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아름다운 합창이었다.

굿뉴스코 동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 함께 복음의 일을 할 것이…

 
지금 나는 학생회 교사, 예배 찬송 지휘, 부산 지역 합창단원, 굿뉴스코 동문회 부산 지역 회장 등 많은 일들을 하며 은혜를 입고 있다. 리얼스토리 등을 준비해야 할 일이 생기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해야 할 때도 많았다. 한번씩 일들이 겹쳐 버거울 때도 있지만, 하나님을 앙망하며 소망을 얻어 사는 삶으로 마음의 거처를 옮겨버렸다. 하나님이 내게 역사하시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얼마 전 굿뉴스코 동문회가 출범했다. 처음 몇몇 사람이 모였을 때 ‘모임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도 했지만, 동문회 때 박옥수 목사님의 마음에 굿뉴스코 출신 학생들을 크게 두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많은 굿뉴스코 출신 학생들이 해외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잊고 세상에 휩쓸려 살고 있지만, 박 목사님은 ‘그때 해외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입히시고 일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얼마든지 우리 속에 일하실 수 있다’고 보고 계셨고, 우리를 잊지 않고 계셨다. 그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면 굿뉴스코 출신 학생들이 지금도 얼마든지 복음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마음에 가지고 계신 믿음을 보니 내 마음도 소망스러워졌다.
한때 하나님의 역사를 뜨겁게 간증했지만 지금은 힘을 잃은 부산 지역의 많은 굿뉴스코 동문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가 좀 들었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일어나 함께 복음의 일을 할 것이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우리에게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값진 굿뉴스코 경험을 주신 하나님께서 단지 1년의 경험으로만 끝내실 것은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잉태케 하신 하나님이 순산케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굿뉴스코 동문들을 복음의 역사가 마치는 날까지 그 마음을 강하게 일으켜 쓰실 것이 무척 기대가 된다.

구원받지 못한 나의 가족들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이룰 가정도
내 마음 안에서 살던 삶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는 삶의 차이가 극명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에 선이 확실히 그어져 감사하다. 바로가 요셉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을 때 바로의 가족도 요셉 안에서 복을 입은 것처럼, 아직 구원받지 못한 나의 가족들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이룰 가정도 예수님 안에서 복을 입을 것이 분명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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