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을 축복하시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형제들을 축복하시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 김영삼 (카메룬 선교사)
  • 승인 2013.11.15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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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통역을 위해 카메룬으로 함께 온 마울롬
영어권이었던 나이지리아와 가나를 거쳐 불어권 나라인 카메룬에 왔을 때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통역할 수 있는 토고 교회의 마울롬 형제와 함께 카메룬으로 왔다. 나를 통역해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나라에 같이 따라와 준 형제가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가 마울롬을 위해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은 빚진 자의 마음이 되었다. 형제가 통역만 하고 끝난다면 의미가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형제의 삶에 보상해 주시면 복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마울롬 형제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울롬은 토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나를 따라왔기에, 먼저 중단한 공부를 다시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를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마울롬이 나를 위해 통역해 주는 것의 대가로 학교에 보낸다는 게 좀 불편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울롬을 학교에 보내 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지금까지 우리를 돕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나와 함께 복음의 일을 하는 형제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했다.
먼저 마울롬 형제의 간증을 소개한다.


마울롬 형제 이야기

‘선교사님들이 이곳에 온 것이 정말 내 삶을 망치려는 것일까?’
2005년 10월, 나는 카메룬으로 오기 위해 고향인 토고를 떠났습니다. 그때 내 나이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나에게 카메룬으로 선교하러 가시는 김영삼 목사님의 통역(영어-불어)을 위해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나는 가족을 돌아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선교학교에 들어간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버리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는 왜 선교학교에 들어가는 거지? 우리 가족을 부양하고 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왜 복음을 위해 살기를 원하시는 걸까?’ 속에서 아버지와 교회에 대해 반감이 올라왔습니다. 선교학교에서는 받는 돈이 없기 때문에 학비가 필요해서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아버지는 늘 같은 소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라.” 나는 공부할 교재(敎材)도 없고 수업료도 내지 못해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내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이 보였고, 교회를 향해서 마음을 닫았습니다.
그 후로는 내가 일찍 구원받은 것을 후회하고, 아버지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런 집안에서 태어난 나 자신을 탓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선교학생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살았지만 내 마음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살면 내 미래는 불행해지고 망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아버지의 도움 없이 성공할 수 있는 길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에 갑자기 카메룬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카메룬으로 오기 전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교회가 나를 구원받도록 이끌어 주었어. 나는 교회를 통해서 영생을 얻었어. 선교사님들이 자신의 나라와 친척을 떠나 이곳에 온 것이 과연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망치게 하기 위한 것일까? 뜨거운 햇빛, 말라리아가 있는 이곳에 온 것이 정말 내 삶을 망치려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요한복음 2장 5절 말씀이 내 마음을 붙들어 주어서 김영삼 목사님을 따라 카메룬으로 왔습니다.

 

‘내가 간첩이라고?’
카메룬으로 가면 학업은 완전히 포기하고 복음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카메룬으로 가는 길에 학생증을 찢었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이 그걸 보시고는 “너는 왜 네가 네 삶의 주인이 되어서 너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너 자신을 하나님의 결정 앞에 내려놓거라.” 하셨습니다.
카메룬에서 지낸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목사님이 나를 불러서 “너, 나와 함께 복음 전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복음을 위해 살고 싶지 않아?” 하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힘주어서 “아니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후로 나를 간첩이라고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나를 보고 세 번이나 간첩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관한 창세기 말씀을 읽으면서 비로소 간첩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풍요롭게 살고, 나머지 형제들은 가나안에서 기근을 겪으며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어했습니다. 요셉의 원함대로 나머지 형제들이 요셉에게 속해서 사는 그 은혜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목사님과 같이 살고 있었지만 항상 내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토고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달력에서 하루하루 지워지는 날짜를 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교회에서 모든 것을 받았지만 내 마음은 교회와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난 정말 간첩이었습니다. 이 마음의 위치를 발견했을 때 내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교회와 복음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의 장래를 주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마울롬, 너 대학 갈래?”
하루는 목사님이 나에게 “마울롬, 너 공부를 계속하지 않을래?” 하고 물으셨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진심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좇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또 “마울롬, 너는 네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나는 요셉 안에 있었기에 더 이상 나의 계획이나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전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대학교에 입학 서류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굉장히 기뻤습니다. 룻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했던 나오미의 마음이 목사님의 마음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는 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1년 학비가 자국 학생인 경우에는 5만 세파프랑(약 12만 원)인데, 외국인은 30만 세파프랑(약 70만 원)을 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서는 굉장히 큰 돈입니다. ‘대학에 가는 건 좋은데, 이 비싼 학비는 누가 내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 부담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목사님, 난 대학에 갈 수 없어요. 학비가 없어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마련할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그냥 흘러갔습니다.
다음 해 어느 날, 목사님은 다시 “마울롬, 너 대학 갈래?”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이게 하나님의 뜻인가? 그래, 하나님의 뜻이다. 하지만 학비는 누가 부담하지? 목사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만약 내가 너를 학교에 보낸다면 그건 우리 둘 모두에게 저주가 된다. 너를 학교에 보내는 분이 하나님이어야 해. 그리고 우리가 진행하는 이 일이 욕망이 아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어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학비를 카메룬 학생과 똑같이 낼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속으로 ‘목사님은 아프리카를 모르셔. 목사님,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아프리카라고요! 여기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요!’ 하고 외쳤습니다.
목사님은 나를 자꾸 떠미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카메룬에 있는 토고 영사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영사님은 5만 세파프랑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상호협력의 법을 토대로 20만 세파프랑까지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해에는 20만 세파프랑을 내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거야?’
다음 학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은 학비가 너무 비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간증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데, 학교에 다니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하나님이 길을 내실 거니 5만 세파프랑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방향으로 추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난 다시 속으로 ‘하나님이 길을 내실 거라고요? 목사님은 너무 쉽게 말씀하셔.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가능하냐고? 이 일은 100% 불가능해!’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10만 세파프랑이나 혜택을 받았는데, 다시 더 혜택을 받으라고 하니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목사님은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거야? 차라리 학교를 안 다니고 말지.’ 내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그냥 부담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목사님은 나를 또 미셨습니다. “가라. 가봐.” 결국 어쩔 수 없이 교육부 장관님에게 학비를 감면해 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기대와 달리 장관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장관님은 카메룬의 모든 대학에 ‘모든 학생이 정상적으로 학비를 내게 하라’는 공문을 보내셨습니다. 혹을 떼려다 더 붙인 결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공문을 본 순간 다 끝났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젠 정말 불가능하다!’ 그리고 장관님께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했습니다. 편지를 안 보냈으면 20만 세파프랑을 내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텐데, 그것마저 안 되게 되었으니….
나는 공문을 떼어 가방에 넣은 후 집에 와서 그것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때 다윗이 불탄 시글락을 살피면서 소망을 찾아낸 것처럼 내게도 소망이 생겼습니다. 공문에 외국인은 얼마를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다만 카메룬 학생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대학 행정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먼저 담당 직원에게 내 신분증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외국인과 내국인은 신분증 색깔이 다릅니다. 그분은 신분증을 보더니 접수증에 내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학비로 5만 세파프랑이라고 적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저는 토고 사람이에요.”
“그래서요? 여기에 국적을 쓰는 게 아니라 학비를 쓰는 거예요.”
“난 30만 세파프랑을 내야 해요. 난 토고 사람이에요.”
“당신, 지금 내 일을 나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접수증은 은행에서 세 번 더 검사를 거치기에 분명히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검사관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학비가 정말 5만 세파프랑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 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5만 세파프랑을 주는 제도를 만들어 실시했습니다. 그 장학금을 내가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료로 학교를 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해에도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건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은 이미 다 계획하고 준비해 놓으시고 내가 그 축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풍요로움이 나의 것이 되었다
룻이 보아스가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보아스의 발치에 눕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룻이 복을 받는 길을 알고 있었기에 룻을 그 길로 이끌었습니다. 나는 부담을 싫어하고 눈에 보이는 가능성을 따라서 살아왔는데, 내가 어떻게 복을 받는지 하나님의 종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아스의 발치 이불 쪽으로 밀어넣은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인도로 보아스의 아내가 될 수 있었고, 예수님의 족보를 잇는 데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의 족보를 잇는 일을 이루시려고 우리를 당신의 역사가 있는 부담스러운 곳으로 밀어넣습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소망이 없고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 안에 나를 위한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3년 동안 학비를 내지 않고 대학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고, 이후 2년간 대학원 과정도 무사히 마치고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 삶 속에 역사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후 하나님은 나에게 아내를 주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자녀도 주셔서 지금 복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 2:5)
내가 이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주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요셉의 마음을 만나면서 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을 받아들일 때 요셉의 풍요로움, 지혜, 평안이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교지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몇몇 가지 각인시켜 주신 것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자주 느낀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며 살 뿐인데,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베푸실 뿐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을 베푸시는 것을 본다.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고 형제 자매들과 신앙 교제를 나누지만, 하나님은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무익함을 보게 하신다. 성령이 일하심으로 형제 자매들이 바뀌는 것이지 나는 무익한 자임을, 최근에 있었던 한 가지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또 가르쳐 주셨다.

에이즈에서 구원받은 야닉
많은 죄악과 성적(性的)으로 문란한 삶에 노출되어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 속에서 올라오는 죄악의 욕구를 제어해줄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죄를 지으면서 산다.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부분에 선이 그어져 있지 않고, 자주 말씀으로 가르치지만 여전히 마음의 선이 흐린 것을 보았다.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욥 20:12)라는 말씀처럼 죄악인 걸 알지만 그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들.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그 순간 달게 느껴지는 쾌락 때문에 그것이 독인 줄 모르고 버리지 않고 혀 밑에 감추고 사는 그들을 보면서 고통이 되었는데, 주님이 교회 안에서 한 부분 한 부분 선을 그어주심이 감사하다. 보통 선교학생을 받을 때 에이즈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기본적인 건강진단서를 떼오게 하는데, 최근에 입학한 두 형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월드캠프가 끝나고 정신없이 지내던 중에 얼떨결에 선교학교에 들어와서 검사를 하지 못한 것이다. 얼마 전, 선교학교에서 사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 입학한 야닉 형제가 받은 세 번의 검사 결과 모두 양성으로 나왔다. 깜짝 놀라서 형제를 큰 병원으로 보내 정밀검사를 받게 했다.
결과가 일주일 후에 나오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야닉 형제는 물론 우리 모두 마음이 어려웠다. 야닉은 마음에서 이미 에이즈 환자가 되어서 고통했고,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나도 형제의 앞날을 생각하니 착잡했다. 나중에 형제가 하는 간증을 들었는데, 자신이 평생을 에이즈 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서는 비참한 모습으로 이미 죽어 있었다고 했다.
일주일 지나고,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에이즈가 아니었다. 우리는 다 환호성을 질렀고, 형제는 눈물을 흘렸다. 간증하는 형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제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서 제 삶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다시 생명을 주신다면 복음만을 위해 살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보너스입니다. 복음만을 위해 살 것입니다.”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고 있었지만, 그것은 달콤한 것이 아니라 독이었다. 말씀은 진리다. 비로소 형제의 마음에 악이 악으로, 독이 독으로 깨달아져서 마음에 분명한 선이 그어졌다. 형제는 이 일을 통해서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형제 자매들의 마음에 죄에 대해 선이 그어져 변화받는 모습을 볼 때,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정결케 하시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감사하다. 이런 일을 사람이 어떻게 깨우쳐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형제 자매들에게 말씀으로 죄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게 하셨다. 우리가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예수님 안에서는 ‘예’밖에 없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후 1:19)라는 말씀처럼, 예수님 안에서는 ‘예’밖에 없다. 나는 통역하던 형제에게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했지만, 내가 교회 안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예’가 되게 하셨다.
올해 초에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통해서 우리를 ‘이 시대의 D. L. 무디’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카메룬의 D. L. 무디가 되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이루실지 기대된다. 믿음의 종과 교회가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내 삶 속에서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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