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와 함께하는 항해
GBS와 함께하는 항해
  • 안토나인 아냥고 오도요 (국제 뉴스팀 기자)
  • 승인 2013.12.16 2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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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GBS방송국 이야기

 

끝없는 바다 위를 항해한다. 언제 파도가 올지, 언제 육지에 도착할지 모르는 망망대해. 2009년 GBS의 시작이 그랬다. 방송국으로서 모양을 갖추지 못했던 그때, 내 마음에 일어났던 의문도 많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금의 이곳으로 이끌어 주셨다.
나는 국제 뉴스를 담당하는 기자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의 크고 작은 소식들이 매일 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이고, 그것을 간추려 정리하는 일이 내 하루 일과다. 세상에는 많은 소식들이 있지만, 아름다운 복음의 소식을 매일 전하는 방송국은 지구촌에서 GBS가 유일할 것이다.

 
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기 전까지 혼돈스러운 신앙생활을 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부모님을 따라 케냐의 제칠일안식일교회(SDA)에 다녔다. 우리 가족은 일과를 거의 교회와 함께했고, 나와 언니는 청년회에서 교회를 섬겼다. 율법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였고, 그것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반복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제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교회가 강요하는 안식일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젊음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식일교회에서 배운 것들이 이미 내 삶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고, 내 인생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하루는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IYF 아카데미라고, 쉽고 저렴하게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처음 IYF센터를 방문했을 때 나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좋은 건물을 가진 큰 단체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로 컴퓨터, 불어, 피아노, 중국어 등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케냐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기에 접수를 결정했고, 그 해 월드캠프에도 참석했다.
2008년 8월 17일 아침, 이날은 내가 새로운 인생을 선물받은 날이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은 내 모든 죄를 사하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처음 듣는 말씀이었다. 아니,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구원받은 후 내 삶은 기쁨과 평안으로 바뀌었다. 이후 나는 교회에 연결되었고, 말씀을 듣는 것이 기뻤다.
IYF 아카데미에 계속 다니던 중, 2009년에 교회의 주선으로 GBS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교회의 축복 속에서 오랫동안 서로 의지해왔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꿈 같은 신혼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역경이 찾아왔다. 결혼한 후 3년까지 아이가 없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4년째 되던 해에 우리 부부는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마음에서 두 가지 상황을 가정했다. ‘만약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면 난 계속 아이 없이 남편 곁에 머무를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문제라면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되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은 내 나팔관에 문제가 있는데 수술만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내 문제는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내 상태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을 계속 피해 다녔고, 엄마와 친정 식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남편도 내 상태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결혼 5년이 되었을 때 ‘내가 자살해서 죽으면 남편이 재혼해서 행복해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매주 금요일에는 GBS의 아침 모임 시간에 성경공부를 한다. 어느 금요일 아침, 무거운 마음으로 모임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말씀이 내게 찾아왔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출 23:25~26)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임신 3개월’이라는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 전하고 있었다. 내가 삶 속에서 만나는 어려움은 죽음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나는 은혜로 아이를 가졌고, 우리는 아이의 이름을 ‘글로리아’라고 지었다. ‘우리 가족에게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의미로. 나는 말씀과 하나님의 교회 앞에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교회의 기도와 믿음이 나를 치료해 주었다.
GBS는 아직도 거친 바다와 싸우며 항해하고 있다.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풍랑이 얼마나 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항해하고 계시며 우리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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