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칸타타로 행복한 사람!
크리스마스 칸타타로 행복한 사람!
  • 하상철 (기쁜소식강남교회 장로)
  • 승인 2013.12.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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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만난 사람

 

구원받고 교회와 함께하게 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십시오.
1995년 초,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전단지를 들고 전도하러 다니기에 “콜라 한 잔 드시고 하세요.” 하고 불렀습니다. 그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던 중, 죄인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단이라고 여겨 쫓아냈지요. 그 후로 그분이 수시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 그분이 ‘저 사람은 어차피 안될 사람이니 복음이나 전해 주자’ 하고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그때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듣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고, 그 후로도 6개월 정도 방황하다가 1997년 1월에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스물일곱 살 때였습니다. 
구원받은 후 회사에서 갑자기 내가 지내던 기숙사를 사무실로 쓴다면서 나가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교회 청년들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결혼해서 아내와 1년 정도 살다가 ‘세상에서 고생하느니 복음을 위해 고생하자’는 마음이 들어서 아내와 함께 의논해서 교회에 들어와 죽 교회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북미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을 올해 3회째 가졌는데, 순회공연에는 언제부터 동행했습니까?
2011년 1회 때부터 갔습니다. 그 해에 미국에 도착해서 보니, 그라시아스 합창단과 버스 한 대만 있었습니다. 합창단과 스태프들을 태울 차도 더 필요하고, 짐을 실어야 할 트럭도 있어야 하고, 먹을 것과 잠자리도 필요하고….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답답했죠.
공연 무대를 만드는 데 참고하려고 맨하탄에서 입석표를 사서 뮤지컬을 보았는데, 무대 세트가 굉장했습니다. 한참 보고 있는데, 두 사람이 나가면서 서서 보고 있던 우리에게 표 두 장을 주었습니다. 280달러짜리 표였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면서 ‘30만 원짜리 표를 사서 들어와서도 중간에 나가는데, 우리 공연은 누가 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순회공연은 어땠습니까?
칸타타 투어가 시작되던 날, 뉴욕 교회의 박영국 목사님과 몇몇 목사님이 트럭을 빌려와서 거기에 짐과 음식을 싣고, 교회에 있는 모든 차에 사람을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뉴욕 교회의 대학생들이 순회공연 기간에 학교를 쉬고 동행하면서 차를 운전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선교사님들 가운데에는 한국에서 신학생 시절에 공연 스태프로 일한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이 스태프로 일했고요.
드디어 첫 공연, ‘누가 오며, 얼마나 올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공연을 준비한 교회의 성도는 두세 명, 많으면 열 명인데, 장소는 큰 곳을 빌렸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오는 겁니다. 그리고 공연을 보면서 감격스러워하는 겁니다. 합창단이 ‘할렐루야’를 부를 때 다 일어서서 들었습니다. 첫 번째 도시, 두 번째 도시, 세 번째 도시…. 계속해서 놀라운 일들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시는 현장에 서 있으니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순회공연을 진행한 박영국 목사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분인데 정말 크게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공연을 할 마음을 가졌지? 어떻게 발을 내딛을 수 있었지?’ 깊이 생각하다 보니, 오래 전부터 박옥수 목사님이 그 길을 걸으셨던 게 생각났습니다. 목사님이 선교학교를 시작할 때, 방송을 할 때, 책을 낼 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시지 않았습니까. 박영국 목사님도 그 길을 따라 걸은 거지요.

 
버스를 운전하면서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이동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 도시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이 있는 도시로 가는 데 10시간이면 짧은 거리였습니다. 보통 17~18시간씩 갔습니다. 두 사람이 교대로 버스를 운전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운전하고 가면 도시에 도착해서는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쉴 수가 없는 것이, 공연을 찾아온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겁니다. 그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니까 공연장을 떠날 수 없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공연장에 1,000명이 왔다면 그 사람들은 다 복음을 들을 사람들인 겁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도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을 얻는 것이 보였습니다. 합창단이나 스태프들이나 순회공연 내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한 도시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면서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트럭에서 빵과 커피를 꺼내서 먹고, 점심은 공원에서 고기를 구워먹었습니다. 미국은 고기 값이 싸니까요. 이동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성탄 메시지는 어떻게 전해졌습니까?
처음에는 짧은 시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지를 맡은 박영국 목사님과 박방원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청종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들도 말씀을 전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공연이 더해지면서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믿어지고, ‘이 사람들이 언제 복음을 들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과 듣는 분들에게 은혜를 입혀 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순회공연을 다 마치고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순회공연을 마치고 뉴욕 교회에 도착했을 때 합창단이나 스태프나 다 지쳤습니다. 그런데 박영국 목사님이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모두가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말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목사님이 “왜 행복한지 아세요?” 하고 묻더니, 우리가 대답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신데, 우리에게 기쁨을 안 주시겠습니까? 저는 또 가라고 하면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다시 출발하라고 해도 할 수 있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다 “아멘!” 했습니다. 다시 짐을 챙겨서 가라고 하면 정말 모두가 갈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귀국해서 내가 본 것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걱정이었습니다. 결국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대전도집회를 비롯해서 바쁜 일들이 있기도 했고요. 내가 보았던 가슴 벅찬 광경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머리 좋은 사람도 많고, 글 잘 쓰는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저 같은 사람에게 그 놀라운 광경을 보게 하셨습니까?’ 하고 속만 태웠지요.

2회 순회공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다시 갈 때 마음이 어땠습니까?
역사적인 현장에 다시 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작년만큼 사람들이 올까? 사람들이 작년처럼 뜨겁게 반응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1년 전과 똑같은 광경이 또 펼쳐졌습니다. 더 넓은 곳을 공연 장소로 얻은 도시가 많았으니까 관객은 더 늘었지요. 가는 도시들마다 마음이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정말 놀라운 광경들이 1회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는 모습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트로이트 같은 경우는, 빈집에 노숙자들이 들어가서 살면 난방비나 수도세를 집주인이 내야 하기에 집을 비우게 되면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다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곳은 영화에나 나오는 잿빛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곳 시민들이 공연을 보고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디트로이트에 “나는 칸타타 공연만 기다립니다.” 하는 분들이 있는데,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곳엔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외로운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이 칸타타 공연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옛날에 느꼈던 하나님을 느끼고요.

 
간혹 우스운 일이나 난감한 일도 만납니까?
2회 공연 때 미국에 갔더니, 그래도 제가 버스에 대해서 잘 안다고 박영국 목사님이 버스를 한 대 빌려오라고 해서 빌렸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운전사 없이 버스만 빌려 줍니다. 뉴욕 교회 버스는 저와 뉴욕 교회의 한 형제가 운전하고, 제가 빌려온 버스는 박영국 목사님과 박방원 목사님이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차를 몰고 뉴올리언스에 갔을 때 그곳은 남쪽이라 엄청나게 더운데 제가 빌려온 차가 에어컨이 안 되는 겁니다. 그 차에 탄 사람들이 무척 고생했습니다. 뉴올리언스 공연을 마치고 32시간을 달려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하니 거기엔 눈이 와 있었습니다. 이번엔 차에 히터가 안 되더군요. 운전하신 두 목사님은 물론 탄 사람들도 추워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감기에 걸리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얼굴 보기가 미안했습니다.

3회 공연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떠납니까?
미국 교회의 많은 형제님들이 칸타타 순회공연에 동행하려고 대형면허를 땄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다 칸타타에 순회공연을 따라가려고 기도합니다. 그러니 이제 나는 필요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라는 겁니다. ‘나는 영어도 못 하고 이것저것 둔한 사람인데, 하나님이 또 나를 써주시는구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에 ‘누가 나에게 시집이나 올까?’ 하며 막 살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열차가 역으로 들어올 때면 ‘여기서 한 발만 내딛으면 고통 없이 죽을 텐데…’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요. 하나님이 그런 나를 당신이 뜨겁게 역사하시는 현장에 계속 불러주시니….
올해는 특히 아내가 꼭 가고 싶어해서 동행했습니다. 미국에도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다 있기에, 아내가 괜히 숙박비만 더 들게 하는 건 아닌지 많이 걱정했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어려운 가운데 힘을 다해 공연을 준비하는 걸 아니까요. 다행히 식당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바쁘게 지내던지, 순회공연 내내 얼굴도 못 봤습니다.
아내도 공연장의 놀라운 광경들을 보고 싶은데, 저녁 공연 때 다음날 아침에 먹어야 할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서 공연장에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앉아있지 못해 안내하는 사람들이 일어서 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관객들이 앉을 자리가 없으니까 형제 자매들은 양보해 달라는 겁니다. 운이 좋으면 뒷자리에 서서 볼 수도 있지만, 미국은 그런 부분에 엄격해서 하는 수 없이 로비에서 공연장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저도 여러 번 공연장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양보해도 많은 사람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참 많은 사람들이 칸타타 공연을 보면서 행복에 젖었습니다. 어느 도시의 공연장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처음에는 작은 도시의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가 알아주는 공연이 되었지요. 이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그렇게 될 겁니다.”

이번에는 차에 문제가 없었습니까?
3회 순회공연을 앞두고 뉴욕 교회와 LA 교회가 부담해서 56인승 볼보 버스 두 대를 샀습니다. 중고차를 사려고 했는데, 버스 딜러가 ‘싸게 줄 테니 새 차를 사라’며 전시해 두고 사람들이 시승해 보는 4억 5천만 원짜리 새 차를 중고차 가격인 3억 5천만 원에 주기로 해서 계약했답니다. 새 모델의 차가 나오기에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이미 계약한 차를 딜러가 깜빡하고 다시 계약한 겁니다. 일이 꼬여서 차를 사는 일이 어려워지자 염려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박영국 목사님이 “저는 버스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버스, 새 버스를 주실 겁니다.” 했답니다. 결국 버스 딜러가 자신의 실수니 어쩔 수 없다며 신형 모델의 새 차를 같은 값에 주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새로 산 좋은 버스로 할 수 있었습니다.
 
3회 공연 때에는 박옥수 목사님도 함께했지요?
예, 처음으로 박 목사님이 몇 도시에서 성탄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전도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자주 표현하셨는데, 미국에서 그렇게 한 겁니다. 중간에 일정이 바빠서 한국으로 가셨는데, ‘이걸 두고 어떻게 가셨습니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곳이 있습니까?
내쉬빌에서는 빌렸던 공연장이 갑자기 취소되어서 새 공연장을 빌리는 바람에 광고할 시간이 4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2천 명 가량이 왔습니다. ‘5일 광고했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았습니다. 뉴올리언스 공연 때는, 공연 전날에 뉴올리언스에 들어가서 자고 다음날 공연을 해야 했는데, 허리케인이 온다고 해서 도시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바람을 불게 하셔서 허리케인을 몰아내셨습니다. 시장님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서 시민들에게 대피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뉴올리언스에 들어갔을 때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공연장의 좌석이 3천 석쯤 되었는데, 그 자리가 다 찼습니다. 그곳은 공연장이 정말 아름다워서 한참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공연장이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멋진 장소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합창단의 공 연을 보고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를 듣게 될 관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까?
저녁을 먹고 1시간 반 정도 후에 공연이 시작되는데, 밥을 먹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 보면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겁니다. 그런 광경을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무슨 마음으로 여기를 오는 거야?’ 노아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는 짐승들 같았습니다. 노아가 짐승들을 방주 안으로 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신 것처럼, 그 사람들을 하나님이 그렇게 이끄신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3회 순회공연을 마치고는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돌아오면서 박영국 목사님께 내년에도 불러주셔야 한다고 확답을 받고 왔습니다. 올해는 한국에서 여러 분이 순회공연에 동행해, 그분들이 돌아와서 뜨거운 마음들을 성도들에게 잘 전해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느꼈던 열기가 한국 교회에도 전달되는 것 같아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아내와 결혼하고 살면서 이번에 가장 은혜로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칸타타 순회공연 중 식당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는데, 저는 몰랐던 일들이지요.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젊은 사모님들이 ‘긴 여행을 하는 합창단과 스태프들에게 음식이라도 잘 먹여야 한다’며 어떻게든 한국 음식을 해주려고 마음을 쏟았답니다. ‘재료를 어디서 구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기보다 그렇게 마음을 쏟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답니다. 그리고 힘을 다해 일하고는 ‘내가 이 일을 했어!’ 하는 마음 갖는 것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답니다. 그냥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공연 때 아이를 돌볼 사람으로 교회에 남아야 하는 자매님은 공연장에 가고 싶어서 펑펑 운답니다. 칸타타 공연을 통해서 미국의 형제 자매들이 눈송이가 뭉쳐지듯 하나로 응집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체를 위하고 싶은 본성을 거스르고 복음과 함께 사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북미 칸타타 순회공연에 대한 꿈이 있습니까?
앞으로는 잠실경기장처럼 수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몇 년 안 되어서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공연을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퍼져나가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에 대한 이야기의 파급력이 굉장하니까요.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모르는 미국 사람이 없는 날이 오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상철 장로를 따라 북미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 깊은 곳까지 감동이 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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