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이야기
전나무 이야기
  • 원작/안데르센  그림/배은미
  • 승인 2013.12.2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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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예쁜 전나무 한 그루가 살았어요. 전나무가 사는 숲은 햇빛이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해서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어요. 주위에는 키가 큰
전나무와 소나무 친구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어린 전나무는 하루 빨리
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그래서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공기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딸기를 따러 가는 아이들이 전나무 옆에 앉으며 말했어요.
“와, 정말 작고 귀여운 나무다.”

전나무는 이 말이 제일 듣기 싫었어요.
이듬해가 되자 나무는 새싹을 틔운 만큼 더 자랐어요.
“나도 다른 나무들처럼 큰 나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새들이 내 가지들 속에 둥지를 틀고 바람이 불면 저 나무들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텐데!”
작은 전나무는 한숨을 쉬었어요. 전나무는 햇빛을 보아도,
새들을 만나도, 아침과 저녁으로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는 붉은

구름을 보아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요.
가끔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작은 전나무를 폴짝 뛰어 넘고 지나
갔어요. 그럴 때마다 전나무는 속이 상했어요. 하지만 겨울이 두 번 지나고 세 번째 겨울에 왔을 때는 전나무는 토끼가 뛰어넘지 못하고 빙 돌아서 가야 할 정도로 크게 자랐어요.
가을이 되면 나무꾼들이 와서 키가 큰 나무들을 베어 갔어요.
크고 화려한 나무들이 우지끈 쿵 하고 힘없이 땅에 쓰러졌어요.
나무들은 말이 끄는 수레에 실려 숲을 떠났어요. 그들은 어디로 가며 어떤 일이 생기는 걸까요?
봄이 되어 제비와 황새가 날아오자, 전나무가 물었어요.
“너희는 큰 나무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니? 혹시 만난 적 있어?”
황새가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어요.
“이집트에서 오는 길에 새로 만든 배를 보았는데, 배에 웅장한

돛대가 서 있었어. 내 생각에는 그게 전나무인 것 같아. 그들은
머리를 쳐들고 당당하게 서 있었어.”
“그럼 실려 나간 나무들이 멋지게 살고 있다는 거지? 나도 바다 위에 당당하게 서 있고 싶어. 그러려면 빨리 커야 할 텐데…….”
 
그때 햇빛이 속삭였어요.
“네가 젊은 것을 기뻐하렴. 젊은 생명이 있는 것이 좋은 거야.”
그러자 바람이 전나무를 안아주고 이슬이 눈물을 뿌려 주었어요. 하지만 전나무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오자, 어린 전나무들도 잘려 나갔어요.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나보다 훨씬 작은 나무도 실려 갔어.”

참새들이 재잘댔어요.
“우린 알지. 마을에 갔을 때 유리창 너머로 봤거든. 거긴 눈부
시게 화려한 곳이야. 나무는 따뜻한 거실 한가운데 심기고 황금빛
사과, 맛있는 빵, 장난감, 수백 개의 촛불로 예쁘게 장식되었어.”
“그래?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데?”
“그 다음은 우리도 몰라.”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훨씬 좋을 거야. 화려한 방에서 멋지게 치장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나면 더 좋은 일, 더 멋진 일이 생길 거야. 에휴, 궁금해.”
바람이 말했어요.
“우리랑 있는 게 좋은 거야!”
햇빛이 말했어요.
“풋풋하게 피어나는 네 젊음이 좋은 거라니까!”
그러나 전나무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오직 빨리 자라고 싶은 마음뿐이었답니다.
어느덧, 전나무는 짙은 녹색으로 자라 있었어요. 전나무를 본

사람들이 말했어요.
“참 잘생긴 나무네.”
전나무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맨 먼저 잘렸어요. 도끼날이 몸 속 깊이 박히자, 나무는 신음 소리를 내며 땅으로 쓰러졌어요. 행복은
커녕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그제야 전나무는 고향을 떠나는 것이 슬펐어요. 사랑하는 친구들과 주위의 작은 덤불과 꽃들을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전나무는 어느 집 마당에 내려지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

어요. 그때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정말 멋있군. 우린 이 나무면 됐어.”
그러자 하인 둘이 전나무를 커다란 방으로 옮겼어요.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고 큰 난로 옆에는 사자가 그려진 중국 도자기가 놓여
있었어요. 흔들의자와 비단 소파가 있고 그림책과 장난감이 가득한
커다란 탁자도 있었어요. 하인들은 전나무를 모래가 담긴 통 속에
세웠어요. 전나무는 온몸을 떨었어요. 이제 어떻게 될까요?
 
하인들과 하녀들이 들어와 전나무를 꾸미기 시작했어요. 가지마다 색종이로 만든 그물주머니를 걸고 거기에 사탕을 매달았어요. 황금빛 사과와 호두가 마치 전나무열매인 양 주렁주렁 달렸어요. 또 백
개가 넘는 빨갛고 파랗고 하얀 양초들이 나뭇가지 위에
놓였어요. 맨 꼭대기에는 큼직한 금색별이 달렸어요. 사람
들은 저녁에 불을 밝힐 거라고 했어요. 전나무는 생각했어요.

‘빨리 저녁이 되어 촛불이 켜졌으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숲 속 나무들이 나를 보러 올까? 참새들이 창문으로 날아올까? 나는 앞으로 쭉 이렇게 멋진
장식을 하고 서 있을까?’ 
전나무는 안달이 나서 껍질이 아플 지경이었어요.
드디어 양초에 불이 켜졌어요. 얼마나 휘황찬란한지 나무는 기뻐서 가지를 흔들었어요. 그 바람에 양초의 불이 잎에 옮겨 붙고 말았어요.
“어머나, 이를 어째!”
하녀들이 황급히 불을 껐어요.
‘어휴, 무서워!’
전나무는 이제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어요.
그때 양쪽 문이 열리더니 아이들이 달려왔어요.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나무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어요.
‘아이들이 왜 이러지? 무슨 일일까?’
어른이 나무에 달린 것을 가져도 좋다고 하자,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매달아 놓았던 선물을 하나씩 떼어갔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가지를 꺾어들고 흔들며 이리저리 춤을 추었어요. 이제 아무도 전나무에게 관심이 없고, 늙은 하녀만이 무화과 한 알이나 사과 한 알이라도 건질 것이 있나 하고 전나무를 살폈어요. 사람들이 몰려가고 전나무는 넓은 방에서 혼자 자야했어요.
다음 날 아침, 하인과 하녀들이 들어왔어요.

‘이제 다시 새 장식을 하려나보다.’
그런데 전나무의 기대와는 달리, 하녀는 전나무를 거실 밖으로 끌어내어 햇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두고 갔어요.

‘나를 왜 여기에 두는 걸까?’
전나무는 어둠 속 바닥에 기대어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롭고 슬픈 날들이
었지요. 전나무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졌어요.

‘바깥은 겨울이라 봄까지 나를 보호하느라 이곳에 세워두었을 거야. 고마운 일이지. 여기가 어둡지만 않다면 말이야. 그리고 외롭지만 않다면……. 숲 속에선 토끼들이 나를 뛰어넘어가기도 했는데, 이곳은 너무 외로워.’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오더니 전나무를 끌어냈어요.
‘이제 드디어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전나무는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맞았어요. 장미꽃들이
울타리 위로 향기를 풍기고 보리수나무도 꽃을 피우고 있었어요.
“난 이제 살아난 거야!”
전나무는 힘차게 외치며 가지를 죽 펼쳐 보았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가지들이 모두 시들어 누렇게 변하고 말라 버린 거예요. 전나무는 잡초와 쐐기풀이 우거진 마당 한 구석에 버려졌어요. 금색
별만이 아직 꼭대기에 매달려 밝은 햇살에 반짝였지요. 마당에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나무 주위를 돌며 춤추던 아이들이 놀고 있었
어요. 한 아이가 다가와 나무에 달린 금색별을 뽑았어요.
“못생긴 늙은 전나무 위에 이런 것이 있다니!”
전나무는 정원에 핀 꽃들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자기 자신도
바라보았어요. 전나무는 숲에서 지냈던 날들과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생각했어요.
‘다 지나갔구나! 지나갔어. 그때가 좋았는데…….’
그때 하인이 나와서 전나무를 조각조각 잘랐어요. 그러고는
단으로 묶어 커다란 솥단지 밑으로 던졌어요. 전나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불꽃이 탁탁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어요.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몰려와 구경했어요.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낼 때마다 전나무는 숲에서의 여름날과 별들이 반짝이던 겨울날,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떠올렸어요. 그 사이 전나무는 전부 타버렸어요.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중, 한 아이는 가슴에 금색별을 달고
있었어요. 전나무가 가장 행복했던 밤에 달고 있었던 별이지요.
그러나 그 시간은 지나갔어요. 나무의 일생도 이야기도 다 끝났어요.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 이제 모두 끝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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