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을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 김광운 (베냉 선교사)
  • 승인 2014.02.0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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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2회)

 

처음 밟은 베냉 땅
2001년 2월, 베냉에 처음 들어갔다. 나같이 못난 사람에게 한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
 
신 하나님과 교회 앞에 눈물겹게 감사했다. 토고의 국경을 넘어서니 베냉 땅이었다. 한 번도 밟아 보지 않았던 땅, 한국에서는 들어 보지도 않았던 땅을 밟았을 때 내 마음에는 감사가 넘쳤다.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는 코코넛 나무들, 그리고 차안에서도 대서양이 보이는 곳, 이곳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웠다.

‘내가 베냉에 복음 전하러 왔지,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왔나?’
가나와 토고에 있던 두 분의 선교사님이 우리 가족이 가기 전에 먼저 베냉을 방문해 우리가 살 집을 구해 놓았다. 방이 네 개 있고,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큰 거실이 있는 집이었다.
우리 부부는 매일 오전과 오후에 전도를 나갔다. 그런데 베냉은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여서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었다. 수도 코토노에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먼저 그들을 만나 영어로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교회에 연결되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베냉에 복음 전하러 왔지,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베냉 사람들만 만나기로 마음을 정했다. 막상 베냉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 다시 언어가 문제였다. 불어를 배우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몰랐다. 가정교사를 둘 형편도 안 되었다.
하루는 서점에 가서 영불(靈佛)사전을 산 후 ‘지옥은 불어로 뭐라고 하지? 천국은 뭐라고 하지?’ 하고 단어를 하나씩 외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불어는 영어와 어순(語順)이 비슷했다. 불어를 배우는 데 성령이 스승이 되어 주었다. 나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었다.
조금씩 말을 배워 가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는데, 아주 잘 알아들었다. 힘을 얻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한 사람 한 사람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직접 복음을 전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베냉에서는, 겨우 배운 불어로 서툴게 복음을 전하는데도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감사했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에 복음이 들어가면 그들이 다니던 교회를 과감하게 등지고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양에서 온 백인, 돈 많은 나라에서 온 백인, 사람들은 그 백인에게서 돈을 얻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나에게서 돈이 아니라 복음을 얻고 하나님을 만났다.

호롱불을 켜놓고 모임을 가지고 옆집에서 물을 사서 써야 했지만…
베냉에 간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집주인이 전화, 수도, 전기를 모두 끊어버렸다.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집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주인은 “집을 계약할 때 1년치를 선불로 내고 매달 세를 내야 하는데, 왜 몇 개월 동안 돈을 내지 않아요?” 하였다. 돈을 내지 않아서 다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집을 계약할 때 서로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1년치 돈을 냈으니까 1년 후에 월세를 내는 게 맞지만, 베냉에서는 1년치를 선불로 낸 후 매달 세를 내야 하는 것이다. 주인은 몹시 화를 내면서 당장 나가라고 하며 돈을 내라고 했다.
줄 돈이 없어서 저녁에는 호롱불을 켜놓고 모임을 가졌고, 물은 옆집에서 사서 써야 했다. 그런 일들 외에도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동안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잊고 살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때 우리는 매달 한 번씩 가나에 가서 모임을 갖고, 가나 교회에서 주는 생활비를 받아서 한 달을 생활했다. 하루는 가나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아내가 머리가 몹시 아프다고 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말라리아에 걸렸던 것이다. 약을 먹였지만 낫질 않아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힘이 없을 때 꿀을 먹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에게 꿀을 주려고 했지만, 아내는 눈이 돌아가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급히 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은 후 아내를 태우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밤늦게 병원에 도착했는데, 병원 에서 아내에게 투여할 약을 사오라고 했다. 나는 이곳저곳 찾아다녀 약을 사서 의사에게 가져다주었다.

 
다음날 아침, 의사에게 아내 상태를 물어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아내가 죽었다고 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아내는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했기에,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한 아내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아이들이 엄마를 볼 수 없구나!’
나는 아이들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하나님, 이렇게 하시려고 아프리카에 보냈습니까?’
박옥수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전화 상태가 좋지 않아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화장(火葬)을 하여 조그마한 항아리에 아내의 뼈를 담은 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렇게 하시려고 아프리카에 보냈습니까? 복음 전하러 베냉에 갔는데, 이게 뭡니까?’
아프리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말라리아는 아내보다 내가 더 자주 걸렸다. 그랬기에 내 안에서 아프리카를 향한 마음이 완전히 끝나버렸다. 수양관이 있는 대덕산에 아내를 묻었다.

나는 오르바였다
지금의 아내와 재혼한 후, 박 목사님 사택에서 모임을 가질 때 룻기 말씀이 생각났다. 룻과 오르바의 모습을 보니, 한계 앞에 서자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냈다. 룻은 한계를 만나도 나오미를 계속 좇았지만 오르바는 나오미를 따르다가 돌아서버렸다.
복음 앞에서 살아온 내 모습이 보였다. 나도 한계를 만나기 전에는 복음이 좋고 교회가 좋았다. 하지만 한계를 만나자 복음이 내 마음에서 떠나고, 다시는 아프리카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한계를 만나기 전에는 ‘아프리카처럼 복된 땅이 어디 있나? 복음 전하기에 너무나 좋다. 사람들이 구원받으면 우리 교회로 나오네…’ 하고 굉장히 감사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한계를 만나자 ‘아프리카 너무 싫다. 말라리아로 사람이 죽는 곳, 무섭고 가기 싫다!’ 하는 마음으로 흘러갔다.
나는 오르바였다. 하나님은 내 모습을 보여 주셨고, 내 마음을 다시 아프리카로 갈 수 있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셨다.

“죄를 씻는 방법을 정확히는 모르는 것을 보니, 당신 마음에 죄가 있습니다.”
다시 베냉으로 와서 새 집을 얻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은 15명 가량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모임을 갖고 있었다. 주님이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지키고 계셨다.
하루는 형제들과 함께 새로 얻은 집에 설치할 교회 간판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어떤 사람이 멈춰 서더니 무슨 행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교회 간판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하고 ‘혹시 성경공부를 하고 싶으면 저녁에 오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 중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저녁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을 마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자,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그의 이름은 ‘사이제누 클로드’로 목사요, 선교사였다.
“아, 목사님이시네요. 그러면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어떻게 사함받았는지 아십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예, 잘 알지요. 그들이 죄를 지으면 짐승을 데리고 와서 그 짐승의 피로 죄를 씻었고, 때로는 물로 씻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어떻게 죄를 씻는지 잘 모르면 신약 성경에서도 어떻게 죄를 씻는지 잘 모릅니다. 당신은 죄를 씻는 방법을 알고는 있는데, 정확히는 모르네요. 전화번호를 알지만 한 자리만 틀려도 원하는 사람과 통화할 수 없지요. 전화번호를 정확히 알아야 원하는 사람과 통화할 수 있는 것처럼, 죄를 씻는 방법도 정확히 알아야 죄가 씻어집니다. 당신은 죄를 씻는 방법을 알지만 정확히는 모르는 것을 보니, 당신 마음에 죄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다음 주에 우리 교회에서 성경세미나가 있으니 꼭 참석하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사실 성경세미나 계획은 없었지만 클로드 때문에 성경세미나를 가졌다. 그리고 그가 성경세미나에 참석해서 구원을 받았다. 마지막 날에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클로드에게 간증하는 시간을 주었다. 몇 명 되지 않던 형제 자매들이 그의 간증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현지인 목사가 구원받고 간증하니까 이만저만 기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에 했던 말씀을 전하십시오. 아니면 우리 교회를 떠나 주세요.”
클로드 형제가 구원받았지만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의 교인들이 150명 가량 되었기에 우리 교회에 쉽게 나올 수 없었다. 하루는 클로드 형제가 나에게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강사를 구하고 있다’고 하기에 나를 초청하라고 했다. 형제는 무척 기뻐했다. 그 부흥회 때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지만 나중에 우리 교회로 연결된 사람은 몇 안 되었다.
클로드 형제가 구원받고 자기 교회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자 장로들이 형제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목사님,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하니까 십일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전하지 말고 전에 했던 말씀을 전하십시오. 아니면 우리 교회를 떠나 주세요. 2주 안에 결정하십시오.”
클로드 형제는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목회하던 교회를 떠났으니 월급을 받을 수 없고 당장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진리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형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놀랍게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형제의 전도를 받고 한 사람 한 사람 구원받아 교회 안으로 이끌려 왔다. 하나님이 룻을 위하여 보아스를 준비해 놓으셨던 것처럼, 마음에서 한계를 넘은 형제에게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전도자로 세워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겠다!
베냉에 교회가 시작된 지 2개월 만에 선교학교를 시작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 한 명으로 선교학교를 시작했다. 선교학교가 생기면서 수업 시간에 성경을 묵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우리를 돕는 사람도 우리와 가까이 지내는 선교학생들이어서 선교학교는 여러 모로 복되었다.
선교학교를 하면서 나를 가르치신 목사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선교학교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나는 선교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 나 자신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전도자로 세울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나를 가르치신 박 목사님의 마음을 보면 그들을 전도자로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번은 두 명의 선교학생이 무전전도여행을 다녀와 간증을 했다. 그들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신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창세기 41장에서 애굽 왕 바로가 요셉에게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는 당장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운 일이 생각났다.
‘바로는 어떤 것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자마자 사람을 세우는구나! 그가 과거에 죄수였던지 이방이었던지 그런 외형을 보지 않고 요셉을 세웠구나!’
아프리카에 복음의 일꾼들이 필요함을 알지만 선교학생들을 세우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보내지 않고 있었는데, 당장 세워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선교학생들을 전도자로 세워 다른 도시들에 파송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아홉 개의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
사실 형제 자매들도 선교학교에 들어오기를 두려워한다. 삶이 많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돈도 없고 소망도 없이 어렵게 살지만 선교학교에 가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선교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그 생각을 넘어서 들어온 사람들이 훈련을 받고 전도자가 되어 힘있게 복음을 섬기는 것이다.

불편해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겠다
우리 예배당을 짓기 전에는 보통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했다. 처음 얻은 집은 큰 도로 옆에 있었는데, 새로 이사한 집은 도로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도로변에 집이 있을 때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오토바이 택시를 잡아타고 시장에 가거나 일을 보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한참을 걸어나와야 오토바이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어딜 갈 때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하나 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는 집에서 나오면 어떤 오토바이가 좋은지를 살폈다. 밖으로 나오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성경 이야기를 할까?’를 생각하기보다 ‘어떤 오토바이를 사면 좋을까?’를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아는 비가 그치자마자 방주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비가 그치면 방주에서 빨리 나가고 싶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방주 안에 있으면 짐승들의 소리도 시끄럽고 배설물 냄새도 많이 나기에 금방이라도 나가고 싶었을 텐데, 왜 나가지 않았을까?’
말씀을 살펴보니,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방주 안에서의 삶이 불편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씀 앞에서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마음을 돌이켜서 오토바이 사는 것을 포기하고 불편해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어느 형제가 찾아와서 “목사님, 우리 가족이 선교학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렇게 하라고 하며, 올 때 오토바이를 가지고 오느냐고 물었다. 이곳에서는 형제들이 선교학교에 들어올 때 자신의 물건들을 가족들에게 다 나눠주고 온다. 선교학교에 가지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형제는 “예, 오토바이를 가지고 올 겁니다.” 하고 말했다.

 
형제가 선교학교에 들어오면서 교회에 오토바이가 생겼다. 하나님은 오토바이만 주신 것이 아니라, 능숙한 오토바이 운전사(그 형제)까지 주셨다. 비록 좋은 오토바이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려서 얻은 것이었기에 새 오토바이를 구한 것보다 훨씬 기뻤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불편한 것을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을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사는 것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불편한 것이 훨씬 많지만, 그만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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