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일품인 배추와 시금치
맛이 일품인 배추와 시금치
  • 이동희 (기쁜소식울진교회)
  • 승인 2014.04.0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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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내가 일하는 사무실 옆 텃밭에 겨울 김장을 위하여 배추씨를 뿌렸다. 그런데 속이 채 차기 전에 겨울이 와버려 좋은 것들만 골라서 캐고, 속이 덜 찬 것들은 밭에 그대로 두었다.
지난 겨울엔 세찬 추위가 지나가고, 울진엔 눈이 많이 내려서 텃밭에 남겨둔 배추들 위에는 1미터나 되는 엄청난 눈이 쌓였다. 봄이 되어 그 많던 눈들이 다 녹아 사라지자 텃밭에서 모습을 드러낸, 생기 넘치는 배추들! 서로 의지하여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모양이다. 보온재 하나 없이 어떻게 겨울을 이겨냈을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캐서 김치를 담가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어찌나 단지! 어찌 그리 고소한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자꾸만 손이 갔다.
내 입을 행복하게 해주는 친구가 하나 더 있다. 늦가을에 뿌린 깨알 같은 씨에서 싹을 틔운 녀석들. 겨우내 자신을 낮추어 땅에 납작 붙어서 조금이나마 바람을 피하며 땅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 생명을 이어간 녀석들, 시금치! 그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도 나는 배추와 시금치의 달고 고소한 맛을 음미하며 감탄한다. 겨울을 지나면서 힘들고 죽을 것만 같았겠지만 녀석들은 그 모든 상념을 떨치고 의연하게 지나왔다. 어두운 겨울의 터널을 지났으니 이제 여유를 부릴 만도 한데, 오늘도 성실하게 알찬 잎들을 내민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속에서 한 차례 더 속이 여물어졌다.
자연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배추와 시금치는 자신의 생명을 땅에 맡기고, 땅에게 숱한 은혜를 입어서 그 잎들을 알차게 피워냈으리라! 기다리고 기다리며, 교만하지도 방자하지도 않으며, 원망이나 불평이나 짜증 없이 모든 변화에 순응했으리라! 녀석들의 이런 아름다움이 달고 고소한 맛을 만들어내는 비밀이 아닐까. 덕분에 내 입은 연신 즐겁다.
나의 삶에서 달고 고소한 맛들을 나는 어떻게 낼 수 있을까? 어디에서 그 맛을 가지고 올까? 부담, 어려움, 고난, 환란…. 그런 것들이 내 인생을 달고 고소하게 만드는 재료들임을 생각하게 된다. 난 여태껏 설탕이나 가미해서 단맛을 내는 얕은 인생을 살았지만 말이다. 생명의 기운이 온 땅에 가득해서 나의 몸과 마음까지 들썩이게 하는 아름다운 봄날에, 나는 자연의 가르침에 깊이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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