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우리 하늘나라에서 꼭 봐.”
“할머니, 우리 하늘나라에서 꼭 봐.”
  • 백도형 (기쁜소식수성교회)
  • 승인 2014.04.0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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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내리리이다 3

나의 삶과 함께했던 할머니

 
23년 전, 어머니가 나를 낳으신 후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1928년에 태어나 열여덟 살에 결혼해서 5남매를 키우셨다. 내가 태어난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후로는 장남 대신 둘째인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할머니는 나를 애지중지하셨고, 나도 할머니를 따랐다. 중학생 때까지는 한 방에서 지냈다.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는데, 어느 날 치매가 찾아왔다. 치매가 있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문제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으셨기에 우리 집에서 계속 모셨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할머니가 싫어졌다. 할머니는 남아존중 사상을 가지고 계셔서 나를 지나칠 정도로 아끼셨다. 내가 나이가 제법 든 후에도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이려고 하셨다. 시장에 가면 집에 잔뜩 쌓여 있는 음식들을 계속 사오셔서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식구들을 간섭하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미워했다. 할머니는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셨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잘 해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할머니에게 소리지르는 일이 많아졌고, 할머니 가슴에 못을 박는 못난 손자가 되어 갔다.

해외봉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겠노라고
2011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에 지원하면서 나는 우리 교회를 만났다. 그리고 2012년이 되어 예수님이 내 죄를 씻으셨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깨닫고 말라위로 떠나게 되었다. 출국 전에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셨지만, 죄가 있냐고 물으면 당연히 죄인이라고 하셨다. 나는 복음을 전할 줄 몰랐다. 그저 “할머니, 왜 우리가 죄인이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잖아. 예수님이 우리 죄와 형벌을 다 끝내셔서 성경은 우리보고 의인이래. 정말이라니까” 하고 말할 뿐이었다. 할머니는 우리는 죄인이라는 말만 반복하실 뿐이었다. 답답했지만, 해외봉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내가 말라위로 떠나던 날, 할머니는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1년 동안 보지 못할 생각에 서럽게 우셨다. 할머니는 내가 말라위에 있는 동안에도 눈물로 세월을 보내셨다고 한다.

“지코모, 패스터(목사님,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지낼 때 매달 한 번씩 치료를 받지 않으면 귀가 들리지 않았기에 말라위에서 귀가 걱정이 되고 불안했다. 나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예수님은 나를 무너뜨리시고 품으셨다. 그렇게 나는 1년 동안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다.
특별히 기억나는 마지막 무전전도여행. 잠시 교회에서 함께 생활했던 자매님의 어머니 집을 방문했다. 나이가 많으신 그분은 가난한 형편에도 정성스럽게 나를 대접하셨다. 종일 고된 일을 하면서도 나를 보면 웃어 주셨다. 친아들처럼 대하시는 그분에게, 밤늦게 촛불을 밝혀 놓고 복음을 전했다. 귀국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과 함께, 그동안 내가 불신이 가득한 삶을 살았기에 ‘이분이 구원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감사하게도, 자매님의 어머니는 구원을 확신하셨다. 세월의 흔적으로 남은 주름이 아름다울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지코모, 패스터(목사님, 고맙습니다)”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조금만 기다려. 내가 복음 전해 줄게.’

 
‘하나님, 할머니는 언제 구원받나요?’
2013년 1월에 귀국해서 가족과 재회했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엉엉 우셨다. 피곤했지만, 죄송한 마음에 하루 종일 할머니의 하소연을 들어 주어야 했다. 몸이 좋았던 할머니는 배만 볼록하고 앙상해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나는 예배당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 할머니는 정신이 좋지 않아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복음을 듣고 죄가 씻어졌다고 말씀하셔도 나중에 찾아가면 다시 죄인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쉽게 구원받을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달랐다. 이제 나는 믿음을 가질 수 없었고, 한계에 부딪혔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러서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을 들으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님이 꼭 구원하시겠다’는 마음이 일어나 조급함을 내려놓았다. 할머니의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어 안심했다. 그런데 12월 초에 폐렴이 재발하면서 할머니가 입원하셨다.

아름다웠던 구원의 순간
12월 16일,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수업을 마치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할머니는 여느 때보다 심각해 보였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이야기를 듣고 앞이 캄캄해졌다. 우리 교회(기쁜소식수성교회)의 조규윤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잠시 후, 이전에 나에게 믿음의 말씀을 전해주셨던 기쁜소식대구교회의 윤종수 목사님이 병실로 찾아오셨다. 할머니는 의식은 있지만 어떤 반응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윤 목사님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의식을 깨우면서 복음을 전하시기 시작했다.
“할머니, 그동안 예수님을 믿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건 우리 공로로 받는 게 아닙니다….”
목사님은 이사야 53장 6절, 히브리서 10장 10절 등의 말씀을 이야기하며 복음을 전하셨다. 목사님이 기도하고 돌아가신 후, 가족들이 있어서 눈치가 보였지만 나도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마침 가족들이 자리를 비워 다시 복음을 전했다. 할머니는 몸으로 표현하시지는 못했지만 잠시 눈을 뜨셨다. 그동안 여러 번 전했던 복음, 그 순간에는 할머니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계셨다. 할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의 죄가 이렇게 눈처럼 희게 씻어졌네.’
다음 날 새벽에 할머니는 극적으로 돌아가셨다. 그 순간 놀랍게도 어떤 감정적인 마음도 들지 않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만 올라왔다. 산소마스크를 내 손으로 벗겨드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평생 할머니에게 행한 불효로 마음에 한이 맺혔을 텐데,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가 구원받으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깊은 평안을 주었다.
할머니의 구원을 확신하기 전 나는 늘 죽음의 순간에 대해 걱정했다. ‘주변에 가까운 분들이 돌아가신 적이 없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그 슬픔과 한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확신하고 믿으니 예수님이 계셨고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할머니에게 행한 불효로 마음에 한이 맺혔을 텐데,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가 구원받으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깊은 평안을 주었다.
장례식장에서 친척 분들이 “도형아, 너 교회에서 산다매? 목사할 거야? 예수한테 완전히 빠졌구나” 하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약한 내 마음을 잡아주셨다. 전에는 그런 어려움을 겪을 마음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일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 저 예수님 믿어요. 교회가 저를 살렸어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친척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몸이 땅에 묻히던 날 하늘에서 흰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따뜻한 날에 묻어드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지만 내 마음에는 감사가 가득할 뿐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할머니의 영혼이 생각되었다. ‘할머니, 할머니의 죄가 이렇게 눈처럼 희게 씻어졌네. 진짜 감사하다. 우리 하늘나라에서 꼭 봐.’
할머니를 보내드리면서, 아직 구원받지 않은 우리 가족들도 하나님이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다는 마음이 들어서 한없이 평안했다. 다만 시간 문제일 뿐. 나는 하나님을 위하거나 복음을 위하는 사람이 아닌데, 우리 가족 가운데 나를 먼저 구원하셔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가장 불행했던 나는 이미 가장 행복한 학생이 되어 있다

 
할머니를 보내드린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봄이 되었다. 나도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올해 나는 우리 학교의 IYF 회장과 대구 경북 자메이카 댄스팀 팀장도 맡았다. 단지 예수님을 만났을 뿐인데, 정말 큰 복을 받고 있다. 나는 정말 부족하고 은혜가 필요한 사람인데, 교회에서 전해주는 말씀대로 이제는 학업도, 신앙도, 취업도 다 잘할 수 있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장 불행한 학생이었던 나는 이미 가장 행복한 학생이 되어 있다.
전에 나는 내 세계 안에서 살면서 고통하고 방황했다. 모든 일에 실패하고 좌절했다. 그런 나에게 예수님이 다가오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예수님은 당신을 대적하는 나를 품으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어째서 나 같은 인간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난다. 복음을 전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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