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의 길에서 안드레의 길로
빌립의 길에서 안드레의 길로
  • 김광운 (베냉 선교사)
  • 승인 2014.07.04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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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7회)

 

대서양에서 갖는 세례식
서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대서양과 접하고 있어서, 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할 때면 해안으로 난 도로를 따라 넓은 바다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다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기도 한다. 종종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그물을 끌어당기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바다를 접한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에는 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말이면 해질 무렵에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와서 더위를 식힌다. 우리도 교회에서 대서양까지 20~30분이면 갈 수 있기에 종종 바닷가에서 세례식을 갖는다. 보통 주일에 바닷가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형제 자매들이 구역별로 준비해 온 음식을 먹은 후 세례식을 갖는다. 세례식을 가질 때면 형제 자매들이 무척 기뻐한다. 하지만 세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이 긴장한다. 세례식을 갖기 전에 세례문답 시간을 갖는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세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세례식이 끝날 때마다 ‘이번에도 새롭게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내가 손을 얹고 세례를 줄 수 있었구나…!’ 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했다.

‘말라리아면 괜찮지만 간질이면 어떡하지?’
한번은 세례식을 갖기 위해 바닷가로 가서 예배를 드릴 때였다. 한창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몇몇 형제들이 내 딸을 손으로 받쳐 들고 뒤쪽으로 갔다.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을 마친 후 아이를 뉘여 놓은 곳으로 가서 보니, 아이가 정신을 잃고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경우지?’ 그런 증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딸이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형제 자매들에게 물으니, 말라리아 증세라고도 하고 간질이라고도 했다.
‘말라리아에 걸려서 이런 증세가 나타나나? 말라리아는 이런 증세가 없는데…. 말라리아면 괜찮지만 간질이면 어떡하지?’
마음이 아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세례식을 할 때마다 가졌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속에서 다 깨져버렸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일이 닥쳐야 합니까? 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허락하십니까?’
서둘러 세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딸을 소파에 뉘였다. 딸이 또 정신을 잃고 몸을 떨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눈동자까지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힘이 쭉 빠져서 두 발로 걸을 수도 없었다.

 
‘난 빌립이었구나…!’
자동적으로 ‘하나님,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때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빌립과 안드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빌립은 200데나리온 어치의 떡이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빌립은 예수님을 계산에 넣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계산해서 대답한 것이다. 그때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로 가지고 왔다. 두어 사람밖에 먹을 수 없는 그 음식을 예수님에게 가지고 왔다는 것은, 그가 문제 앞에서 예수님을 넣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을 더하여 계산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예수님 앞에 들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이 말씀을 듣기도 하고 설교하기도 했는데, 그날 내 마음을 보니 나는 교회 안에서 안드레의 마음이 아니라 빌립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내 모습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내가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몹시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혹시 말라리아가 아니고 간질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드레처럼 예수님을 넣고 계산한다면 예수님 앞에서는 말라리아나 간질이나 똑같은 것인데, 나는 빌립처럼 예수님을 넣지 않고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빌립과 같은 내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끄러웠다. 마음에서 탄식이 올라왔다.
‘교회에서 말씀을 전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론가였구나…! 믿지 않고 살아왔구나…! 난 빌립이었구나…!’
주님이 내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 주시니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주님이 딸아이를 치료하시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간질이었다. 의사가 치료해야 한다고 했지만 모든 방법을 끊고 주님의 능력만 바라보았다. 그 후 하나님이 딸아이를 완전히 낫게 하셔서 지금은 그런 증세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형제 자매들이 막대기 같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되겠구나!’
우리 마음에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믿음을 갖기만 하면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올해 초에 박옥수 목사님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요한복음 11장 40절 말씀을 신년사로 전해 주셨다. 우리 교회에서 오래 전에 새 예배당을 지을 땅을 샀지만 건물을 짓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년사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아! 믿지 못하니까 건축을 시작하지 못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일단 기초공사부터 시작했다.
새 예배당 부지는 지대가 좀 낮아서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고이는 곳이 많았다. 또 땅이 질어서 기초를 세우려면 바닥에서 흰모래가 나올 때까지 2~3미터를 파야 했다. 흰모래에 콘크리트를 쳐서 기초공사를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걸린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거의 건축 장비 없이 공사를 해야 하기에 건물 기초공사를 하기 위해 구덩이 하나를 파는 데에도 며칠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일들이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갔다.
그런데 하루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힘이 다 빠져버렸다. 갑자기 형제 자매들이 사는 형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를 봐도 돈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과 함께 공사를 마칠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공사를 계속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민수기 성경에서 다른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 아론의 그 지팡이가 우리 형제 자매들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막대기, 그러나 그 마른 막대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막대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막대기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되겠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아무것도 없는 형제 자매들을 통해서 예배당이 지어지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막대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중요하기에, 기초에서 지붕까지 3개월 안에 건물이 세워지겠다는 마음을 주님이 주셨다.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이야기하자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건물이 3개월 만에 지어질 수 있어?’ 하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기적처럼, 정말 기초에서 지붕까지 3개월 만에 예배당 건물이 지어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것처럼 나도 인도하실 것이기에
아프리카에 살면서 나는 믿음이 없는 나를 본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목회자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았다. ‘어떻게 저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하며 실망이 되었고, 나도 믿음의 사람이 되려고 했다.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서 자식을 준다고 하셨을 때 그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대답했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성경에서 살펴보았다.
창세기 17장 19절에서 하나님께서 아직 나지도 않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름까지 지어 주시는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도 자식의 이름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 주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분명히 자식을 주시려고 하시는구나’ 하고 마음이 믿음 편으로 기울어졌고, 마침내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구나!’ 하고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신 것이다.
나는 믿음이 없었기에 믿음을 가지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셔서 지금은 믿음이 없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음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의 이름까지 지어 주시면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나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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