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만 의지하는가, 자신의 의도 받아들이는가?
하나님의 의만 의지하는가, 자신의 의도 받아들이는가?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4.10.1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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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로열젤리만 먹는 여왕벌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의만 의지하느냐, 자신의 의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가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판단을 받아들이느냐, 내 판단을 받아들이느냐에 우리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여왕벌과 일벌은 똑같은 알에서 태어납니다. 똑같이 태어나지만 로열젤리만 먹으면 여왕벌이 되고, 로열젤리와 꿀과 꽃가루를 섞어서 먹으면 일벌이 됩니다. 여왕벌은 몸집이 일벌의 두 배 이상 크고, 수명은 30배 이상 오래 삽니다. 여왕벌은 일생 동안 약 200만 개의 알을 낳지만 일벌은 단 하나의 알도 낳을 수 없습니다. 

 
여왕벌이 로열젤리만 먹어야 되는 것처럼, 성도는 로열젤리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다가 형편이 어려우면 육신의 생각도 받아들입니다. 하 늘에 속한 삶을 살기 위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 어떤 것에도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형편을 섞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며, 따라서 그 육신의 생각을 한 가지라도 용납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얼굴에 다시 수색이 없었던 한나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브닌나가 그 사실로 한나의 마음을 격동시켜 심히 번민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간절하게 서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고통과 괴로움이 가득했습니다. 기도와 서원 같은 인간의 간절한 행동으로는 근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한 행위는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 2:1)라는 믿음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선한 행위를 도리어 악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후 한나는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을 듣고 그의 마음에 믿음이 들어왔고,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하고 마음에서 아들을 받았습니다. 그때 한나의 얼굴에 수색이 사라졌고, 고통이나 번민이 끝나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한나가 아들을 가졌기 때문에 괴로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편은 똑같았지만 마음에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한나처럼 “하나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줄로 믿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당신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하고 모든 것을 이루어진 ‘완료’형으로 받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말씀의 증거대로 늘 믿으며 하나님의 약속 위에서 살아갈 때에 무슨 소원이든지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의 비밀, 천국의 열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비밀을 알지 못해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하겠습니다’ 하고 막연하게 기다리며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날마다 죄를 씻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깨달은 순간, 우리 죄는 하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씻어놓으신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 사함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 질병 등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그 형상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 믿음의 비밀을 발견하지 못한 채 속아서 여전히 해결해 달라고 하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의 교훈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 21:19)
무화과나무는 꽃과 잎이 생기기 전에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잎사귀가 무성할 때면 열매가 익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잎사귀가 많은 무화과나무를 보셨을 때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볼 때는 봉사도 하고 헌금도 드리고 새벽기도회에도 나오는 등 충성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믿음은 갖지 않은, 율법과 행위 아래 잡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외형적인 모양은 따라 하고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중심에서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말씀과 다른 형편이 찾아오면 그 형편을 따라 반응하고 사는 것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나무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신앙의 현 주소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은 것처럼, 우리가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에게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구원받은 많은 성도들이 ‘구원받았으니 이제 좋은 열매를 맺어야지’ 하고 믿음의 열매를 맺으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열매를 맺으려는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이미 얻었으니, 다 이루었다”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어떤 행위와 상관없이 성도는 이미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고, 그 십자가의 능력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직도 형편이 바뀌어지면 믿음을 가지려고 하고, 자신이 애쓰고 노력해서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삶은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고,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이미 우리 안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고 예수님께서 다 이뤄 놓으신 은혜의 세계로 옮겨와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풍성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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