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 조혜자 (기쁜소식동서울교회)
  • 승인 2014.12.0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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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간증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교회를 섬겨도
마음의 갈증이 가시지 않았던 조혜자(80) 자매님.
이 시대의 진정한 선지자를 찾던 그는
십년 전 미국에서 비로소 진리의 말씀을 듣고
선지자를 발견했다.
남은 여생을 주님께 맡기고 복음을 전하는 그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왜 저는 최선을 다해도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까?”
남편은 장로로, 나는 권사로 오랫동안 지냈다. 서울의 중랑구 중화동에 교회를 개척한 후로는, 일단 개척했으니 교회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화동 일대를 다니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전도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갈증이 생기고 답답했다. 목사님들에게 “왜 저는 최선을 다해도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까?” 하고 물으면, 애통하고 회개하라고 했다. 철야하며 회개해도 만족은 없었다. 하늘산기도원, 도봉산기도원, 오산리금식기도원…, 기도원이라는 기도원은 다 찾아다니고 산으로 기도하러 다녔다. 옛날에는 삼각산이 무서워서 귀신이 나를 끌고 가는 것처럼 오싹한 기분이 들어 두렵기도 했지만, 열심히 산기도를 하러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마음에 평안은 없었다.
‘나는 왜 이럴까?’ 하고 너무 괴로운데, 주위에서는 “우리 권사님은 기도 잘하고 열심히 하는 분이야!” 하고 칭찬했다. 마음에 쉼은 없었지만 그 평판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장로였지만 “목사놈들, 도둑놈들이야” 하고 말했다. 그럴 때면 나는 주의 종을 불신하면 복을 받지 못하니 주의 종을 잘 섬기고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로교회를 다니면서 늘 주의 종을 잘 섬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래야 하는가 보다’ 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또, 어머니가 우리를 키우실 때 맛있는 것은 다 목사님께 가져다주셨기에 으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복음으로 시작한 미국에는 참된 선지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남동생이 1970년대에 미국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했는데, 가끔 한국에 오면 혼자 지내기 외로우니까 같이 미국에서 살자고 했다. 남편이 반대해서 생각도 못 했다. 시간이 흘러 영감이 돌아가신 후, 동생이 다시 와서 “매형도 없으니 미국 여행이나 합시다” 해서 한 달 동안 미국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가서 보니 미국이 아주 좋았다. 공기가 좋고, 땅이 광활해서 좋고, 사람들이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좋았다.
동생은 내가 미국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같이 살자고 했다. “나이 많은 내가 여기 와서 뭘 하고 살겠어?” 하니, 아들 내외와 함께 들어와서 돈은 아이들에게 벌라고 하고 우리는 여행이나 다니자고 했다.
한국에 전화하니, 아들은 사업 때문에 안 오려고 했지만 며느리는 오고 싶어했다. 모아 놓은 돈이 없었기에 살던 아파트를 팔아 돈을 마련해 미국으로 들어갔다. 미국은 복음으로 시작한 나라니까 복음과 참된 선지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참된 선지자가 없어 교회들이 부패하고 망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주일이면 필라델피아에서 유명한 교회들을 찾아다녔다. 교회 주보를 보고 ‘이 교회 말씀에는 깊이가 있겠다’ 하고 찾아가 보면 설교 내용이 늘 듣던 소리여서 화가 났다. 결국, 아들 내외와 함께 가까운 곳에 있는 한인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 성경에는 분명히 우리 죄를 다 씻어 놓았다고 했어.”
그렇게 보내고 있는데, 한국에 있는 넷째 딸인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셋째 언니가 이단 교회에 빠졌다고 했다. 한국에서 전도를 다닐 때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기에, 셋째 딸에게 전화해서 왜 잘못된 교회에 다니느냐고 나무랐다. 그런데 딸은 “엄마, 이단이 아니라 복음이 있는 교회야” 하고 말했다. 셋째 딸은 초등학생 때부터 나와 함께 철야기도와 산기도를 다니던 아이였다.
딸은 사업으로 돈을 잘 벌다가 부도가 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하루는 신앙 서적을 읽으려고 책꽂이에서 책을 한 권 뽑아들었다.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었다. 딸은 책 내용에 깊이 감동을 받아 몇 번이나 읽다가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고, 그 후 책에 소개된 구리교회를 찾아갔다가 2004년 잠실대전도집회에 참석해 구원의 확신을 얻은 것이다.
딸이 구원받고 교회를 옮기면서 사위의 심한 핍박이 시작되었다. 사위는 딸과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청년회 인도자를 비롯해 여러 직분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셋째 딸을 그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이국 땅에서 오랜만에 딸을 만나는 것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이단에 빠진 아이와 어떻게 싸울까?’를 생각하느라 복잡했다. 딸이 미국에 온 다음날, 식탁에 앉아 딸이 나에게 신앙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성경에는 분명히 우리 죄를 다 씻어 놓았다고 했어. 엄마는 지금까지 속고 산 거야.”
성경을 찾아가며 말하니 꼼짝 못 했다. 처음에는 딸이 찾아 주는 성경 구절들을 그냥 읽다가 나중에는 메모하며 읽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딸의 말이 맞는데….’ 혼란이 찾아왔다.


‘아,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하셨네! 돌이키면 되겠구나!’
한국에서 아이들이 셋째 딸을 기쁜소식선교회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미국으로 보냈지만 필라델피아에도 기쁜소식 교회가 있었다. 하루는 기쁜소식필라델피아 교회의 목사님이 나에게 뉴욕에서 하는 수양회에 함께 가자고 했다. 가서 뉴욕 구경도 하자고 하길래 호기심이 생겨 따라나섰다.
수양회에 가서는 복음반에서 말씀을 들었다. 강사 목사님이 성경을 찾아가며 말씀을 전하는데, 다 성경 말씀 그대로였다. ‘말씀은 맞는데….’ 딸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또 혼란이 찾아왔다. 전하는 이야기들이 다 성경적이었지만 오랫동안 해온 신앙생활을 선뜻 잘못되었다고 접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수양회가 마쳐질 때까지 그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지냈다.
나는 몰랐지만 수양회에 참석한 많은 분들이 내가 구원받기를 소망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구원받지 못하자 필라델피아 교회의 사모님이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사모님은 이사야 44장 22절 말씀을 편 후 나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말씀을 읽으면서 ‘아,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하셨네! 돌이키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신 것이다.
“사모님, 나는 하나님을 힘들게 믿었습니다.”
“모친님이 속아서 그렇지요.”
‘내가 속아서 그처럼 고통스럽게 믿었구나!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속아서 신앙생활을 고통스럽게 했구나!’
평생을 그렇게 살았기에 속은 것에 화가 났다.
마음은 돌이켰지만 복음이 마음에 분명히 자리잡지는 못한 상태로 수양회에서 돌아왔다. 그때부터 기쁜소식필라델피아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주일마다 복음을 전하셨다.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던 것 같다. 그 말씀들을 듣던 중에 비로소 복음이 내 마음에 흘러들어왔다. 모든 죄 짐을 벗고 구원을 받았다. 2004년, 그때 내 나이 일흔이었다. 내 평생 그처럼 행복한 적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발이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구원받기 전에는 이 시대에 선지자가 없는 것이 한탄스러웠는데, 구원받고 나니 선지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 땅에 박옥수 목사님을 세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 무척 기쁘고 감사했다.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어 정신없이 복음을 전했다
아들 내외는 일하러 가고 손자와 손녀는 학교에 가면 나 혼자 집에 남지만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다. 손자에게서 배워 인터넷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목사님들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보았다. 구원받기 전에도 성경을 자주 읽었지만 아무 힘도 얻지 못했는데, 구원받은 후로는 성경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요, 나의 힘과 능력이요, 나의 방패가 되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정말 좋아서 늘 주일이 기다려졌다.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미국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하기에 전도용 소책자를 나눠주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정신없이 복음을 전했다. 내가 교회를 옮기고 복음을 전하자 나에게 참 잘했던 아들과 며느리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머니는 불법체류자니까 한국으로 가세요” 하고 말했다. 그때는 나도 영주권이 없었고 셋째 딸 현선이도 불법체류 상태였기에, 아들은 밤인데도 ‘경찰에 신고할 테니 당장 나가라’고 했다.
아들 내외가 나 때문에 미국에 와서 자리잡은 것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사흘 후, 며느리에게 “내가 집 팔아서 미국에 오게 해주고 아이들 다 키워 주니까 이제 나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 하고 엄하게 말하자 며느리가 두려워했다. 마음이 아파서 그냥 안아주고 말았다.
그 후로도 가끔 한인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면 복음을 전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결국 지옥에 갈 테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면 며느리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한 집에 살지만 며느리는 점점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 아이들도 구원받아야 하기에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손녀에게 복음을 전했다. 손녀는 무척 좋아하며 “나, 할머니 교회 따라갈래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 내외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해 손녀는 두려워서 교회에 갈 수 없었다.
몇 년 후, 하나님께서 손녀가 교회에 갈 수 있게 일하셨다. 아들 내외가 그동안 돈을 잘 벌어 집을 사면서 대출받은 돈의 납입금을 매월 잘 냈는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벌이가 시원찮아져 은행에 돈을 내지 못해 결국 집에 차압이 들어왔다. 나는 교회로 들어갔고, 곧 방학을 맞은 손녀는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학생 캠프에 참석할 수 있었다. 손녀딸 유민이는 캠프 기간에 복음을 다시 듣고 마음에 분명한 믿음이 세워져 교회에 뿌리를 내렸다. 유민이 마음에 믿음이 굳게 세워진 후, 집 일도 잘 정리되어 3개월 만에 가족이 다시 한데 모여 살 수 있었다.

“당신은 죽은 자도 살리셨는데, 내 허리 아픈 것도 낫게 해주시겠네요”
구원받기 전에 나는 허리디스크로 고통을 많이 받았다. 3분을 서 있기 힘들었다. MRI를 찍어 보니, 척추 디스크가 마모되어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 있으면 다리에 힘이 없어 푹 주저앉게 되는 것이었다. 아픈 허리 때문에 푹신한 침대에도 눕지 못하고 소파에 앉지도 못했다.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병원에서는 척추뼈 사이에 인조뼈를 넣는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완벽하게 낫느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하여 나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구원받은 후로는 마음에 기쁨이 얼마나 큰지 허리 아픈 고통을 이기며 지냈다. 한번은 교회에서 목사님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는 말씀을 전하셨다.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구하면 들어주시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나님, 당신은 죽은 자도 살리셨는데, 내 허리 아픈 것도 낫게 해주시겠네요” 하고 기도했다. 단번에 바로 낫지는 않았지만 그 후로 하나님이 내 허리를 천천히 치료하셔서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다.
요즘은 무릎이 시큰거린다. 딸이 수술하자고 했지만, 허리를 고쳐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지 수술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내 몸을 다 건강하게 해주실 수도 있지만 ‘이것은 남겨두셨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걸어다닐 때면 늘 ‘하나님, 제 다리를 붙잡아 주세요. 하나님이 안 잡아 주시면 넘어져요’ 하며 다닌다.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구원받은 후 한국에 몇 번 오가다가 지난 4월 26일 영구 귀국했다. 아들 내외가 한국에 다녀오라고 해서 나오는 길에 ‘이제 한국에서 묻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살고 있던 큰 딸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니, 딸이 나를 편안하게 지내게 하려고 아파트를 넓은 곳으로 옮겼다고 해서 무척 고마웠다. 아파트 옆에 시냇물과 둑이 있고, 5월이면 장미꽃이 참 멋지게 피는 곳이다. 운동하기에도 좋다. 하나님이 좋은 아파트를 허락해 주셨다. 춥지 않을 때면 둑길에 나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씨앗에는 생명이 있기에 언젠가는 피어날 소망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린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 46:4)
‘내가 노년이고 백발인데, 하나님이 나를 안고 품고 지키신다고 하시네요….’ 나의 모든 삶이 걱정이 되지 않았다. 구원받기 전에 내가 가진 것들을 다 아들에게 주고 딸들에게는 아무것도 준 것이 없기에, 노년에 딸을 의지하는 내 모습이 한번씩 우울하고 초라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다는 마음이 그런 마음들을 밀어내 준다. 하나님이 주신 위 말씀이 나를 붙들어 준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우리 아이들 1남 4녀 가운데 셋째 딸과 넷째 딸은 구원받고 나머지 아이들은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구원받기를 주님 앞에서 늘 소망하며 사는데, 하루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사 54:13)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구원받게 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직 구원받지 않은 아이들도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해 주시겠다는 마음이 있어 기도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손녀는 토요일에 교회에 가서 자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오후에 전도한 후 집으로 가는데, 아들이 유민이를 차로 40분 걸리는 교회까지 데려다 주면서 목사님과 만나 짧게나마 이야기도 나눈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것을 아들도 알기에 심하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구원받고 지나온 삶들을 돌아보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핍박을 받는다는 사실이 생각된다. 셋째 딸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구원에 대해 모르는 주위 사람들이 나쁜 말로 나를 욕하기도 하지만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나님이 구원하시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기도하러 다니며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그 수렁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셋째 딸 현선이가 미국에 온 것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현선이가 당한 핍박과 어려움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현선이가 고맙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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