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아름다운 술람미 여인
온전히 아름다운 술람미 여인
  • 박영준(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5.09.04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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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교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신부新婦
아가서 7장은 내용도 짧고 특별히 두드러지는 일도 없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기도하며 7장을 계속 읽다 보니, 솔로몬의 눈에 비친 아름답고 완전한 신부의 모습이 완성된 교회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온전하게 그려진 신부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눈에 보이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경에는 교회를 나타내는 여러 모습들이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방주, 모세 시대의 성막, 솔로몬 시대의 성전…. 신약 성경에는 교회의 성장과 완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에 대해 설명하고, 빌립보서에서는 교회의 성장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따라가며 성장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교회의 완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노아의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세상에 심판이 찾아온 것을 생각해 보면, 교회의 완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지난 7월에 있었던 월드문화캠프 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장관님들을 모시고 현대자동차 공장에 견학을 간 적이 있습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자동차 부품들이 조립되어 3초마다 한 대씩 차가 완성되어 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나사못만 박고, 어떤 사람은 엔진만 점검했습니다. 그러한 작업 과정이 모두 합쳐져 차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완성된 차의 목적은 사람이 타고 목적지까지 빠르고 편하게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완성시키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방주가 완성되면서 당시 세상에 끝이 찾아온 것처럼, 교회의 완성은 다음 세계로 넘어가게 합니다.

 

 

서 있는 위치와 상관없이 똑같이 온전한 성도
차를 이루는 부품 하나하나가 품질검사를 거친 온전한 부품인 것처럼 교회를 이루는 성도 역시 다 온전하고 아름답습니다. 방주를 만든 재료는 잣나무인데, 어떤 잣나무는 노아의 식탁에 사용되고 어떤 잣나무는 화장실에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처럼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있는 위치는 각기 다릅니다. 어떤 성도는 존귀한 위치에 있고, 어떤 성도는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 위치와 상관없이 모든 성도는 똑같이 온전합니다. 
 므비보셋은 두 발이 절뚝발이였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가 다윗 왕의 왕자로 지낼 만한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은 그를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요나단과 맺은 약속 까닭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연약하여 주님의 일에 합당치 않은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답고 온전하게 보십니다.

네 발이, 허리는, 네 입은…
아가서 7장의 한 절 한 절은 술람미 여인의 몸의 각 부분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1절) 여기서 ‘귀한 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술람미 여인이 예수님의 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발은 복음을 전하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2절) 오순절은 밀을 거두는 시기로, 오순절에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허리가 밀단 같다는 것은 술람미 여인에게 성령이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절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라는 말은 술람미 여인이 생명의 젖줄이라는 것입니다.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5절) 갈멜산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싸울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곳이며,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곳도 갈멜입니다. 자주 빛은 왕권을 가리킵니다. 술람미 여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왕후가 되었다는 의미로, 성도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7절의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에서 ‘키’는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8절의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에서 콧김, 즉 호흡은 기도를 이야기합니다.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모습이 사과 냄새처럼 달콤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9절의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는 우리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은 각각 발, 허리, 눈, 입 등의 기능을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6~8) 성경에는 여러 은사가 나옵니다. 은사의 형태는 각각 다르지만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어디에서 일하든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합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 1:24) 하나님은 우리를 흠 없는 온전한 모습으로 즐거움으로 서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볼 때 우리 모습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교회에 들어와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눈에 온전합니다.

모두 연합해 교회가 완성되면…
우리가 발의 위치에 있든 입의 위치에 있든, 모두 연합될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방주가 완성될 때 세상에 끝이 오는 것처럼, 우리가 각기 위치에서 복음의 일을 하는 동안 교회가 완성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우리를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 이 땅의 것들은 지나가며, 잠시 후면 우리가 육체를 벗고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현재 어려움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 안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이 세상의 기쁨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아름다운 술람미 여인! 솔로몬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 하나님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입니다. 내가 보기에 싫은 모습일지라도 하나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 때 우리는 ‘나는 연약하다’는 생각을 믿지 않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받았지만, 므비보셋은 연약한 자기 모습에 스스로 사로잡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므비보셋의 길을 걷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한 우리 모습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 교회가 완성되어 주님의 세계가 펼쳐질 때 복된 날을 보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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