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교회에서 참된 안식을 찾았다
참된 교회에서 참된 안식을 찾았다
  • 이미경 외 3인
  • 승인 2015.09.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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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구원받은
둘째 이미경 자매 (기쁜소식벌교교회)
내게 약속의 말씀을 주셔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교회에 나갔다. 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성경을 알면 알수록 죄가 커졌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죄고, 미워하는 것도 죄고, 탐내는 것은 도둑질과 같은 죄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착한 아이였지만 혼자 있으면 술 드시고 온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몰래 훔치는 아이였다. 어느 장로님이 “하나님의 눈은 불꽃 같아서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도 다 살핀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가책을 무척 많이 받았다.
 고등학생 때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누구처럼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많이 고민했다. 자주 싸우시는 부모님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다. ‘존경하는 담임선생님처럼 살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마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 뭔가 있을 거 같았는데, 그것도 허무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사는 게 뭐지?’ 하고 항상 의문이었다.

“천국은 거듭나야 가는 곳이야”
스물넷에 결혼했고, 어려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 아이가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얼마 후 시어머니가 사고로 다치셔서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 했다.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섬겼다. 화장실에 가시는 것은 물론 목욕과 운동까지 일거수일투족을 도와드렸다. 사람들은 나를 칭찬했다. 그러나 나는 위선자였다. 혼자 방에 있으면 ‘저런 어머니를 평생 어떻게 모시고 살아야 하지?’ 하고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죄 때문에 새벽기도에 나갔다. 기도하고 돌아와도 여전히 죄가 나를 따라왔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는데, 나는 온전해지지 않았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고 하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신 음성을 들으라고 해서 성령이 함께하는 참된 교회를 찾고 싶었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구역예배에 가다가 한 아주머니(정경순 자매)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교회 참 열심이네. 그런데 천국은 거듭나야 가는 곳이야.”라고 했다. ‘맞아.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어떻게 거듭나야 하지?’ 알 수 없었다.
 하루는 그분이 유방암에 걸린 주인집 아주머니 댁에 놀러오셨다. 어머니가 그 집에 가고 싶어 하셔서 모시고 갔다. 나는 그냥 나올 생각이었는데, 같이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머니도 장애아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주머니에게 마음이 열렸다. 아주머니는 ‘하나님이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인생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죄를 씻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아주머니와 나중에 다시 만났다.

이걸 몰라서 지금까지 고생했구나
아주머니는 잡지를 한 권 주셨다. 월간 <기쁜소식>이었다. 책을 펼치자 어느 내용 중에 세 가지 질문이 쓰여 있었다.
 1. 당신은 죄인입니까?
 2. 당신은 예수님을 믿지만 여전히 마음에 죄가 있는 죄인입니까?
 3. 당신은 죄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거듭난 의인입니까?
 이 질문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나는 분명히 2번에 속해 있는데, 3번이 되고 싶었다. 책에 쓰인 질문이지만 이렇게 물은 분이라면 나를 거듭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나를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과 만나게 해주고 싶어했다가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자 직접 복음을 전해주셨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안수하면서 세상 죄가 다 넘어갔고,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씻으셨다고 했다. 말을 듣고 보니 세상에 이미 죄가 없었다. 너무 쉬웠다. ‘이렇게 쉬운 복음을 맨 처음 갔던 교회에서 전해주었다면 그때 구원받았을 텐데, 이걸 몰라서 지금까지 고생했구나.’ 허무하기도 했다. 1987년 10월의 일이었다.
 죄 때문에 늘 지옥에 갈 것이 두려웠는데, 그날부터 다리를 쭉 펴고 편히 잘 수 있었다. 교회에 나가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내가 찾던 참된 교회였다. 지금까지 존경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구원받은 후 그동안 얽혔던 모든 문제들이 실타래 풀리듯 다 풀렸다. 어머니를 미워하던 마음이 끝나고 인생의 무거운 짐과 의문이 풀렸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다 죄를 씻음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형편은 똑같았지만 내 마음에는 죄를 씻어준 하나님이 계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이 계셔서 감사했다.

내게 말씀을 주시며 가족을 이끄셨다
우리 가족은 2남 3녀다. 내가 구원받은 후 언니에게 복음을 전했다. 언니는 복음을 들은 후 엄마의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을 따라 다른 종교에 빠졌다. 절망적이었다. 하나님이 사도행전 5장 36~39절 말씀을 주셨다. ‘진리가 아닌 것을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다’는 말씀처럼, 언니가 간 곳은 진리가 아니기에 좇다가 말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8년 뒤 언니는 교회로 돌아왔다. 남편은 내가 구원받고 3년 뒤인 1990년에 수양회에 참석해 구원을 받았다.
 여동생에게도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말씀 듣기를 싫어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수로 내려온 여동생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 동생을 너무 사랑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저에게 약속을 주세요. 제가 소망을 갖고 기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가 자기 소유로 주님을 섬겼다’는 누가복음 8장 2~3절의 말씀을 주셨다. 동생이 예수님을 섬기고 복음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해주겠다고 하셨고, 약속대로 일하셨다.
 막내 동현이는 올해 구원받았다. 동생이 벌교 집에 올 때마다 목사님도 모시고 가서 계속 교제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작년 6월 서울 대전도집회 소식을 앞두고 아침에 성경을 읽다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 31:1)는 말씀을 보았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복되게 이끄신 것처럼 동생도 복되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서울에 가서 동생을 집회에 초청했다. 동생은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공연을 보며 특히 감동했다.
 이후 하나님이 동생에게도 일하셨다. 올 2월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이제 한밭교회에 나가기로 했어. 목사님과 이야기도 했어.” 약속 안에 있던 남동생이 대전 기쁜소식한밭교회에서 은혜를 입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감사했다.

 

 

이제 가족이 모두 복음 안에서
넷째 동생 병찬이는 어려움이 있으면 나를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면 “병찬아, 네가 갖고 있는 어두운 문제는 예수님을 만나면 해결되어서 아침처럼 밝은 삶을 살 수 있어.” 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번은 수양회 기간에 동생에게 “네가 수양관에 가서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이 네 눈물을 씻겨주신다고 누나에게 약속을 주셨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이 “하나님이 누나에게 약속을 주셨다면 가야지.” 하며 처음으로 수양회에 참석해 말씀을 듣고 기뻐했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 살고 있지만 다시 복음 안으로 들어오리라 믿는다.
 교회와 연결되면 복을 입을 것을 믿기에 동생을 기쁜소식김포교회에 부탁해 놓고 나는 한 번씩 연락하고 기도한다. 그동안 큰언니와 여동생과 막내도 교회가 돌아봐 주었고, 목사님과 형제 자매님들이 챙겨주셔서 은혜를 입었다. 교회가 있어 정말 감사하다.
 하나님은 가족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이끌기 전에 내 마음을 낮추어 구로하게 하셨다. 오래 전 어느 자매의 친정엄마와 가족들이 구원받는 모습을 깊이 살펴본 적이 있다. ‘자매님보다 내가 더 열심히 교회와 복음을 섬기고 사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자매님 가족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듣게 하셨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가족이 구원받는 것은 100퍼센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내가 뭔가 열심히 해서 가족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에 기쁜소식목포교회 헌당 기념 성경세미나에서, 박옥수 목사님이 압곡동에서 복음을 전해 한 분이 구원받고 그분과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눈 행복했던 시절을 이야기해 주셨다. 말씀을 들으며
“올 가을에는 내 입으로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나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와 마음을 나누는 행복을 주실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다.

두 번째로 구원받은
첫째 이영란 자매 (광주제일교회)
잃었던 모든 것을 다시 찾게 하셨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동생(이미경)이 구원받았고, 동생의 인도로 나도 얼마 후 구원을 받았다. 당시 내가 살던 벌교에는 교회가 없어서 순천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다. 친정 엄마는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너무 싫어하셨다. 엄마는 평생 절에 다니셨다.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비시는 분이었기에 딸들을 결코 용납하실 수 없었다. 동생과 나는 엄마에게 많이 맞았다. 나는 견디지 못해 교회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얼마 후, 은행에 다니던 남편이 친구를 따라 다른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왔다. 둘째를 낳았고 산후우울증에 걸렸다.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차라리 죽으면 편할 것 같았다. 하루하루 고통스러웠다. 교회에 다니는 벌교 동생이 생각났다. 말씀을 듣고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다. 교회에 찾아갔고, 목사님을 만나 말씀을 들었다. 종교와 신앙의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종교는 내가 이루는 것이고,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마음이 무너졌다. ‘그동안 내가 종교생활을 했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 말씀을 들었다. 떡 굽는 관원장은 떡만으로는 부족해서 각종 구운 식물을 얹었고, 술 맡은 관원장은 예수님의 보혈인 술만 가지고 나갔다. 내가 떡 굽는 관원장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두 시간 동안 상담을 받으며 많이 울었다.
 빈털터리가 되어 우리 가족은 벌교로 이사했다. 예전의 윤택했던 생활은 다 사라졌지만 말씀이 있어서 행복했다. 하나님은 내게 요셉이 총리가 되는 말씀을 보여주셨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채색옷을 입고 지내다가 옷이 다 벗겨진 채 웅덩이에 던져진 요셉의 모습이 내 모습과 같았다. ‘성경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었구나.’ 동생과 같이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으며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것이 내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윗이 시글락에서 잃었던 것을 정녕 도로 찾았던 것처럼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하나님이 도로 찾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벌교에서 남편도 구원받고 7년을 살다 다시 광주로 올라와 청소 용역 일을 시작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육체 노동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하나님이 돕는 자를 보내주셨고 말씀대로 잃었던 모든 것을 다 찾게 해주셨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세 번째로 구원받은
셋째 이성남 자매 (기쁜소식여수교회)
‘언니가 이걸 주고 싶었구나!’

 

 

어려서부터 작은 언니(이미경 자매)와 나는 각별한 사이였다. 항상 나를 챙겨주는 언니가 좋았다. 1994년에 결혼한 후 수원에 살다 여수로 이사했다. 가게를 운영하며 바쁘게 살아 언니가 가끔씩 와서 집안일을 해주었다. 무척 고마웠다. 그런데 교회 이야기만 하면 너무 싫었다. 전화 통화 중에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어서 수화기를 살그머니 내려놓기도 했다.
 언니가 부탁했는지 기쁜소식여수교회 성도들이 가게로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은 수영을 하고 있는데, 나를 찾는 방송이 나왔다. 큰일이 난 줄 알고 나가 보니 교회 자매님들이 집회에 가자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 성도들도 무척 싫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 자유를 빼앗길 것 같았다. ‘나를 믿고 살아야지 왜 하나님을 믿어? 마음 약한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찾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교회 자매님들이 너무 귀찮게 찾아와서 미안한 마음에 가끔은 교회에 가 주었다. 예배 시간보다 30분 늦게 가서 끝나기 30분 전에 나왔다. 상담하려고 할 때는 도망치듯 나왔다.
 나는 아주 열심히 살았다. 시간을 아끼느라 새벽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집안일도 완벽하게 챙기고, 가게를 운영하며 숨이 찰 정도로 하루를 꽉 채워 살았다. 교회는 싫었지만 만약 내가 교회에 간다면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에게서는 항상 쉼과 자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2003년, 운영하던 PC방을 리모델링하며 난관에 부딪혔다. 한꺼번에 다섯 가지 문제가 발생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곧 망할 것 같았다. 주변에 나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는 누구보다 근면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사업에서도 성공이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다. 열심히 살면 내 뜻대로 다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떠올렸다.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가 요즘은 왜 전화를 안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 때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이 집회 마지막 날인데 한번 같이 가보자.”
 여수 시민회관에서 성경세미나가 있었다. 강사 목사님이 말씀을 마치고 “여러분 중에 마음이 어려운 분이 계십니까? 위로를 받고 싶으신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 라고 하셨다. 손을 들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못 들고, 언니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 뒤 교회에서 이어진 후속 집회에 참석해서 교회 사모님과 상담했다. 사모님은 내가 아픈 곳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고 하며 솔로몬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왕으로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이지만 전도서에서 그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고 했다. 나도 돈을 잘 버는 것이 성공인 줄 알고 살았는데, 사업이 잘 되어도 불안했다. 무슨 일을 해도 만족이 없었다. ‘내 마음이 솔로몬의 마음하고 똑같구나.’ 처음으로 내 영혼의 세계를 돌아보았다.
 사모님이 창세기 1장 1~3절 말씀을 전해주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 빛이 들어왔다.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시려고 화목제물로 죽어 나의 모든 죄를 씻으셨다는 로마서의 말씀들이 하나 하나 마음에 들어와 믿어졌다. “이제는 나에게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구나. 언니가 바로 이걸 주고 싶었구나!” 언니가 무척 고마웠다. 여수에 간 지 10년 만의 일이다.
 구원받고 10년이 흘렀다. 예전의 나처럼 남편은 아직 신앙에 무관심하지만 교회 일을 항상 적극적으로 도와 준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학생 캠프, 월드문화캠프 때에도 도와 주고, 딸과 아들을 단기선교 보낼 때는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설득했다. 이제 곧 남편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리라 믿는다.
 지금은 식당일로 바쁘지만 머지않아 나도 전도여행도 가고 봉사도 하며 교회를 섬기고 싶다. 돌아보면, 오랜 시간 무시를 받으면서도 나를 찾아와 준 언니와 우리 교회 자매님들이 감사하다.

네 번째로 구원받은
다섯 째 이동현 형제 (기쁜소식한밭교회)
내 마음은 이제 천국이다

 

 

나는 6살 때부터 예수님에 대해 알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구원을 확신하기에는 항상 무엇인가 부족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나는 영생을 얻었다고 믿었지만, 죄를 짓고 살고 있어서 매일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어 불안했다. 현재와 미래의 죄는 어떻게 용서받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다닌 교회 목사님은 우리는 죽기 전까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셔야 한다고 했다.
 30년 전 둘째 누나가 먼저 구원을 받고, 어머니와 매형에게 말도 못할 정도로 핍박을 받았지만 누나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누나가 다니는 교회가 이단이어서 핍박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 매형이 진짜 이단인지 확인하고 싶다며 수양회에 따라갔다가 구원받았고, 어머니도 구원을 받으셨다. 얼마 후 셋째 누나도, 큰누나와 매형도 구원받았다. 신기했다.
 더욱 놀랐던 것은, 평생을 보이는 것과 자신만 믿고 사신 어머니가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믿음 생활을 시작하신 뒤로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감사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시는 것을 보았다.
 그 후 나에게도 하나님이 일하셨다. 작년에 직장에서 모두 내가 진급된다고 했기에 나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믿음이 좋은 둘째 누나에게 기도도 부탁했다. 누나는 “기도해 줄게. 대신 박옥수 목사님 성경세미나에 꼭 참석해!”라고 했다. 아내가 그 사실을 알고 만일 참석하면 이혼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참석했고, 김성훈 목사님과 만나 5분 정도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뒤 누나가 성경 한 구절을 이야기하며, 믿으면 말씀대로 된다고 했다. 알겠다고만 하고 무시했다. 내가 생각한 믿음은 기도가 바로 응답되는 것이었다. 말씀의 능력을 믿는다거나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에 누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결국 진급은 안 되었고, 나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른 길을 주시려는가 보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공허한 마음은 채울 수 없었다. 그 뒤 큰아이가 수학능력 시험을 보기 2주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해 고열로 몇 번 쓰러졌다. 시험 당일에도 몸이 아파 결국 시험을 망쳤다. 너무 힘들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응답이 없었다. 기도가 부족한 것 같아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하기 전인 2014년 12월 말, 고향에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누나가 ‘한밭교회 김성훈 목사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하루는 그 말이 생각나, 주일에 기쁜소식한밭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은 구원, 죄 사함, 거듭남, 의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모든 말씀이 다 믿어졌다. 그리고 목사님은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교회에 처음 온 나에게 기도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이제 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구원의 확신이 견고해졌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히브리서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구원은 내 행위에 대한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받는 것임을 알았다. 내가 살아 있는 것도 하나님 은혜다. 범사에 감사하다.
 내가 구원받은 후 둘째 아이도 나를 따라 교회에 와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들었다. 아내도 이런 기쁜 마음을 받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후배가 말했다. “아내가 남편을 전도하는 것은 쉽지만 남편이 아내를 전도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못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다 해놓았으니 너는 가서 말이라도 전해야 되지 않느냐?”라고 하셨다.
 하루는 아내에게 “여보, 교회에 같이 가지 않을래?” 하고 말을 건네자 아내가 “그래요.”라고 했다. 아내와 교회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기쁜소식선교회잖아?” 하며 거부했다. 아내에게 말했다. “20년 동안 누나가 나를 전도했지만 나도 의심이 많아서 가지 않았어. 그런데 가서 보니 이곳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교회인 것이 분명하더라. 만약 오늘 설교 말씀을 듣고 당신 입에서 ‘이단’이라는 한 단어만 나오면 나도 가지 않을 테니 가서 말씀을 들어보자.” 그날 아내는 예배에 참석했고,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과 두 시간 상담을 나누는 동안 구원받았다.
 이번 가을 학기에 마하나임사이버신학교에 입학했다. 말씀을 듣는데 복음이 말할 수 없이 좋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내 마음은 이미 천국이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 둘째 누나의 기도로 어머니와 함께 5남매 중 4남매가 구원받았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형을 위해 기도한다. 형의 구원도 하나님이 이루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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