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력,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
사고력,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
  • 키즈마인드
  • 승인 2015.10.1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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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요즘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기기의 발달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다양해졌어요. 그런데 디지털기기에 많이 의존하다보니 생각을 깊게 하거나 무엇을 기억해야 할 일이 많이 줄었어요. 그러다 보니 요즘은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고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도 생각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고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부족해 좌절하기 쉽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한 기업의 부회장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라고 한 바 있어요. 생각을 깊게 많이 해서 생기는 ‘생각의 근육’은 우리를 보다 가치있게 해주지요. 이번 호에서는 사고력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연습을 시작해 봐요.
 
 

사고력의 끝판왕을 만나 보자
-책상을 떠나지 않았던 세종대왕
키즈마인드 독자들이 사고력의 대표적인 인물로 제일 많이 꼽은 세종대왕.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위인이기도 해요. 조선시대.정치, 문화, 과학, 예술을 가장 발달시킨 지도자이기 때문이지요.
세종대왕은 늘 ‘어떻게 하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해요. 늘 신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사고하여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애를 썼지요. 또한 나랏일을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신하들과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 결정했어요.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도 좋아해서 즉위기간 학술 경연을 1,800회 정도 했다고 해요. 참고로 그 윗대 왕인 태종은 4회에 그쳤어요.
세종대왕의 업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글을 만든 것이지요.  세종대왕은 한자를 배우지 못한 백성들이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쉬운 우리 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우리 글자를 만들기 위해 연구했어요. 중국문화에 물들어 있던 신하들의 반대가 심할 것을 알고, 독자적으로 비밀리에 한글 연구를 했다고 해요. 그러한 깊은 사고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평가받는 한글이랍니다. 이제 세종대왕을 생각하면 책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떠오르지요?

-달밤에도 깊이 시름하던 이순신
이순신 장군은 1592년에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왔을 때 거북선을 이끌고 우리 바다를 지킨 영웅이에요. 36전 36승의 뛰어난 능력뿐 아니라 인품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어요.
이순신 장군은 젊은 시절 변두리 말단 관리직을 맡아 일할 때나 수군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나 깊은 사고력으로 혁신적인 업적을 이루었어요.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여기지 않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피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여 대처해 나갔지요. 일본군이 쳐들어오기 전, 나라가 평온할 때에 사람들은 아무도 전쟁에 대비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만약을 대비해 무기를 갖추고 군사들을 훈련시켰어요. 평소에 바닷길과 물의 흐름을 공부하여 전술을 짜두고,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전쟁이 일어나면 먹을 식량을 미리 준비해 두었어요. 전쟁이 있기도 전에 해전 전용 거북선을 만들어놓은 것만 봐도, 이순신 장군의 깊은 사고력을 짐작할 수 있어요.
반대파의 모함으로 최고사령관의 벼슬을 빼앗기고 옥살이를 할 때도, 이순신 장군은 자기의 신변보다 나라 걱정에 밤을 지새웠고,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아무 벼슬 없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웠지요.

-실패한 횟수만큼 사고력이 깊어진 에디슨
토머스 에디슨은 수많은 발명품으로 인류 문명을 크게 발전시킨 과학자로 알려져 있어요. 에디슨이 유명한 만큼 그의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일화들도 유명하지요. 에디슨은 어린 시절 수업에 집중을 못했고 엉뚱한 질문만 늘어놓아 학교에서 쫓겨나는 지경까지 갔어요. 그러나 그의 엉뚱함은 새로운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 호기심이 바탕이 되어 훗날 1,093개의 발명품을 만들어 낸 발명왕이 될 수 있었답니다.
에디슨의 업적 중에 가장 첫 번째 손꼽히는 백열전구.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할 때 전기를 빛으로 바꿔줄 필라멘트 연구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어요. 1,200회가 넘게 재료를 무수히 바꿔가며 실험하는 동안 기자들과 비평가들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실험을 이어나갔지요. 에디슨은 그러한 실패를 실패라고 여기지 않고, 안 되는 이유를 알아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라고 여겼어요. 그러는 동안 남들이 갖지 못한 사고력과 통찰력을 갖출 수 있었지요.
1879년, 에디슨은 전기를 이용한 빛으로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데에 성공했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에디슨은 단순히 전구만 발명한 것이 아니라, 전구가 상용화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부분과 전기 시스템까지 연구했다는 거예요. 에디슨의 남다른 사고력이 놀랍지요?

-남들보다 한 번 더 생각한 맥아더 장군

1950년,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 한국전쟁이 일어났어요. 국군은 북한군에게 밀려 부산까지 후퇴해, 나라를 곧 빼앗길 위험에 처해 있었어요. 이때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에게 빼앗긴 후방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인천항으로 상륙할 것을 보고했어요. 그때 모든 군사령관들은 인천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여러 조건이 상륙작전 하기에 최악의 지형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어요. 작전 성공률을 5,000분의 1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맥아더 장군은 그렇기 때문에 인천으로 상륙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북한군도 최악의 지형인 인천으로 공격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테니까요.
맥아더 장군은 결국 승인을 얻어, 함정 206척과 7만 여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인천 월미도에 상륙했어요. 그리고 2시간 만에 월미도를 장악하고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했어요. 북한군이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쳐들어오는 데는 81일이 걸렸지만,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이 38선까지 빼앗긴 땅을 되찾는 데는 15일이 걸렸답니다.
당시 전쟁영웅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퇴임을 앞두고 있어서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만약 인천상륙작전을 실패하면 평생 쌓아온 자신의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도 남들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남들이 하지 않은 생각을 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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