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의 지경을 넓히시어
하나님이 나의 지경을 넓히시어
  • 김정훈(기쁜소식영광교회)
  • 승인 2015.10.27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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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간증

 

 

나는 영광의 한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물을 긷고, 주말이면 산으로 달려가 땔감용 나무를 하면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어머니 혼자 평생 노점상을 하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집안 형편을 보니 ‘내가 공부할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공부와 담을 쌓고 삶의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가 바닷가로 고동을 잡으러 가시면 함께 갔다. 노점상을 하실 때도 내가 뒷일을 담당했다. 나의 학창시절은 공부했던 기억보다 어머니와 함께 일하고 장사하던 기억이 더 많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 중심에 똬리를 틀었다.

죽어라 모은 돈, 혹사시킨 몸 고치는 데 다 쓰고
사업을 하고 싶었다. 사업하려면 자금과 정보가 필요한데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규모 사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986년 서울로 상경했다. 처음으로 취직한 곳이 화곡동 상가 지하에 있는 가방공장이었다. 30평쯤 되는 지하에서 먹고 잠을 자며 가방을 만들었다. 그때 받은 월급이 8만원이었다. 월급을 타면 400원으로 땅콩쿠키를 사먹고 나머지는 모두 저금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방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미싱 연습을 했다. 평균 3~4년은 일해야 미싱사가 되는데 나는 3개월 만에 되었다. 미싱사가 되니 월급이 14만원으로 뛰었다.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모으기 위해 시계 좌판 만드는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주간 일이 끝나면 닥치는 대로 야간 일도 하고 철야도 했다. 돈을 모아 사업해야겠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일했다. 인생이 고달팠지만 그런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당시 점심 값 270원을 아끼려고 눈물을 삼키며 물로 배를 채우고 야간과 철야작업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병원에서 검사하고 나오는데 너무 허탈했다. “어떻게 위장이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았냐”며 의사가 환자를 나무랄 정도로 내 위장은 망가져 있었다. 인생무상을 느끼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죽어라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죽어라 혹사시킨 몸을 고치는 데 다 사용했다.

군대에서도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군대 문제가 찾아왔다. ‘3년이란 시간을 허비하면 언제 종자돈을 모아서 사업을 하지?’ 머리가 복잡했다. 고민 고민하다 돈을 주는 군대를 찾았는데 딱 안성맞춤인 곳이 있었다. 공군 하사관이었다. 지원서를 내고 보니 시험을 봐서 뽑는 것이 아닌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공부를 포기했지만 다른 길이 없어 시험을 쳤다.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기술하사관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기술하사관에 지원하려면 국가기술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곧바로 기술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해 자격증을 따고 입대했다. 하사관이 되어서도 지독하게 살았다. 월급은 100% 저축했다. 휴가에 필요한 돈은 동료들의 전투복을 세탁해 주며 모았다. 물이 나오는 새벽 4시부터 기상시간인 6시까지 전투복을 빨았다. 저녁 점호가 끝나면 내무반을 돌면서 “세탁! 세탁!”을 외쳤다. 동료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 세탁 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 별명은 자연스럽게 ‘세탁’으로 불렸다. 그렇게 모은 돈을 휴가 나가 교통사고를 내 다 날렸다. 정말 인생이 허무했다.
 그때까지 내 인생에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교회는 집에 돈을 쌓아둔 사람이 다니거나, 어디가 부족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나보다 잘난 분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찾는 것을 보면 뭔가가 있기는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적은 있었다.

내가 저곳에 갈 수 있다니…

 

횡성 공군부대에 있을 때였다. 나보다 4개월 고참(유정환, 현 기쁜소식원주교회)이 식사 시간에 배식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라고 물었다. 줄을 선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식당에서 뭐하는 거야? 재수 없게!’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내 심장은 뛰고 있었다. 고참이 나에게 가까워질수록 두근거림은 커졌다. “저 알고 싶어요. 예수가 누군데 일요일마다 내로라하는 똑똑한 사람들까지 ‘주님’을 불러대는지 알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용수철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나중에 보니 그 고참 혼자 식사하고 있어서 나는 조심스럽게 식판을 들고 고참 앞으로 이동했다. 옆사람이 들을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알고 싶었어요.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싶었어요.”
 그는 내게 언제 시간이 있냐고 묻고는 자기 근무처를 알려주면서 꼭 찾아오라고 했다. 얼마 후 고참의 근무지를 찾아갔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난생처음 성경을 접했다. 그는 성경을 이곳저곳 찾아가며 죄에 대해 설명했다. 정말 신기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처음 듣는 성경 말씀에 단 한마디도 거부하거나 이유를 달 수 없었다. 고참이 하는 이야기 모두가 상식적이었고, 논리적이었다.
 한두 시간 말씀을 듣고 돌아오는데 넝쿨식물이 나무 전부를 휘감은 것처럼 죄가 나의 온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덮어버렸다. 죄를 뒤집어쓴 내 모습이 신기했다. ‘시커먼 성경이란 놈이 신묘막측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오라는 말이 생각나서 밤에 찾아갔다. 고참은 처음처럼 반갑게 맞으며 또 성경을 펴고 열변을 토했다. 말씀을 듣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고참은 웃지 말고 신중하게 들어보라고 말하는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성경이 너무 신기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듣기만 할 뿐인데 첫 번째 대화에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로 덮이고, 두 번째 대화에서는 나를 점령했던 죄들이 신기하게도 사라져가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것이 너무 신기해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내 모든 죄가 흰 눈보다 희게 씻겼고, 영원한 속죄가 마음 판에 새겨졌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며 횡성 공군부대 밤하늘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한번 가리키고 하늘을 한번 가리키며 “내가 저곳을 갈 수 있다니…”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조종사들에게 복음을 전해 봐라
구원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 비행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광주 비행장은 횡성과 달리 복음을 핍박하는 것이 아주 심했다. “너하고 같은 교회 다니던 사람들은 다 다른 부대로 쫓겨 갔다”는 말을 들었다. 구원받고 1년이 안 된 때였기에 그 말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성경을 보면서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한 후로는 입을 열 수 있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조종사들에게 복음을 전해 봐라”는 음성을 계속 들려주셨다. 나는 전투기를 정비하는 정비사였기에 ‘조종사들이 정비사가 하는 말을 듣겠나?’ 싶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이길 수 없어 무작정 조종사 아파트를 찾아갔다. 근무를 서고 있던 초병이 “어디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이야기하러 왔다”고 말했다. 초병이 잠시 기다려 보라며 아파트에서 내려오는 조종사를 부르더니 “기지교회(부대 안에 있는 교회)에서 나왔는데 이야기하러 왔답니다”라고 전달했다.
 그 조종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10여 분이 지나서 “이제 올라오세요” 하며 나를 숙소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종사 10여 명이 이야기를 듣고자 둘러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바로 복음을 전했다. 10여 분이 지났을 때 조종사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한 명 두 명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나자 2명만 남고 모두 나가버렸다. 그 중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돈이 벌리자 세상에 빠져들었다
1992년에 전역했다. 구원받고 난 후에는 삶의 목표가 완전하게 달라졌기에 꼭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직장생활을 하기보다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사업을 구상하다 집수리와 보일러 시공 사업을 시작했다. 손재주가 있어 일을 쉽게 배웠고, 사업은 순조로웠다. 그렇게 지내다 당시 광주•전남 지역에 버스가 처음 생겨 사업을 접고 교회 버스를 운전했다. 2년 정도 교회 버스를 운전한 후 교회의 인도를 따라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 12월에 결혼하고 고향인 영광으로 이사했다. 한 평쯤 되는 사무실을 얻어 보일러서비스 사업을 했다. 심야전기 보일러 사업이 성공할 것 같아 시작했는데, 예상대로 아주 잘 되었다. 처음으로 큰돈을 만졌다. 점점 씀씀이가 커져갔다.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술은 절대 한 모금도 마시면 안 된다고 가르치셔서 군대에서조차 마시지 않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돈이 벌리는 만큼 세상에 빠져드는 속도도 빨랐다. 이미 내 삶에 교회의 음성은 없었고, 복음을 위한 삶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억대의 빚만 남은 상태였다. 망한 자가 되어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형제들, 왜 그렇게 살아요?
한번은 기쁜소식송정교회에서 광주 지역 장년회 연합 모임이 있었다. 함께 축구를 한 후 바로 교회에 모였다. 당시 기쁜소식광주은혜교회의 목사님이었던 박영준 목사님께서 “형제들, 왜 그렇게 살아요?”라고 하더니, “축구를 했으면 목욕도 하고 밥도 먹자고 해야지요.”라고 하셨다.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장년들을 안타깝게 여겨 하신 말씀이었다. 목사님의 음성이 내 마음에 강하게 울렸다. ‘왜 그렇게 사냐고 하신 것은 그렇게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는 세계가 있을 텐데, 그럼 그런 세계를 이미 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마음도,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삶의 영역을 내가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일이 다 나의 영역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보여주시면 “나, 그거 안 해봐서 모르는데” 하지 않고 그것을 내 삶의 영역이 되게 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새로운 일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게 하시겠다는 믿음으로 도전했다.
 2000년, 기쁜소식영광교회를 지을 때였다. 교회 건축 봉사를 하던 중 한날은 어떤 분이 집 짓는 것을 보러 예배당에 들어왔다. 그분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 보니 집을 짓고 싶어 했다. 내가 집을 지어주겠다고 해, 그날 계약했다. 예배당 지을 때 봉사했던 경력이 다인데, 전혀 해보지 않은 건축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나중에 집을 다 짓고 나니, 서울에 사는 집주인의 동생이 와서 형에게 ‘그림 같은 집을 아주 잘 지었다’며 좋아했다.
 건축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었지만, “형제들, 왜 그렇게 살아요?”라는 말이 내 삶을 바꾸는 시작점이 되었고, 그 안에 이미 길이 있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이 주신 길이면 되게 하시겠다. 내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일들에 한발 한발 내디뎠을 뿐이다.

지역 신문사를 창간하다
2009년에는 지역신문사를 창간했다. 영광, 함평, 장성 지역에 신문을 배포하는 신문사로, 당시 제호는 ‘연합군민신문’(현재는 우리군민신문)이었다. 언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기자 출신도 아닌 내가 신문사의 발행인과 대표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는 우려하는 시선 말고는 없었다. 교회만 기뻐했다. 신문사의 꽃이라는 편집국장은 목사님의 추천으로 광주은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 이보배 자매가 맡았다.
 신문사를 하다 보니 복음을 전하는 데 유용한 면이 많았다. 먼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지역 군민들은 물론 국회의원, 군의원 등을 비롯해 기관장과 사업가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나의 지경이 넓혀졌다. IYF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있을 때면 그분들을 찾아가서 소개하고 초청했다. 신문을 매개로 복음의 일들을 열어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지역 신문을 창간한 것이 이때를 위함이구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IYF를 알고, IYF에서 하는 일들을 돕고 있다.
 사람들은 전문가가 해도 어려운 신문사 일을 경험도 없는 사람이 한다며 곧 신문사가 문을 닫을 거라고 말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지역 신문사가 여럿 생겼다 사라졌지만, 우리 신문사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은 하나님의 회사가 되었다.

 

 

하나님이 사장, 나는 출납 업무 담당자
몇 해 전에 박희진 목사님이 기쁜소식광주은혜교회로 이동해 오시면서, 광주 전남 지역이 바뀌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회에 필요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세우시겠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또한, 우리 선교회가 전 세계에서 월드캠프를 열고, 장차관포럼과 기독교지도자포럼 등을 열며 매년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선교회가 커지는 만큼 하나님이 복음의 일들을 뒷받침할 지체들도 예비하셨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복음의 일에 동참하고 싶고 물질도 후원하고 싶었다.
 올해는 그 마음을 따라 농공단지에 1,100평의 제법 넓은 대지를 구입해 제조업을 시작했다. 공장동이 2개이며, 사무실 건물이 별도로 있는 규모가 제법 큰 사업이다. 사업을 하려면 먼저 기획하고 이후 제품을 생산하여 영업하는 것이 기본 과정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사업을 하려고 계획하지 않았다. 이정도 규모로 일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가야 할 길을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당신의 종을 통해 나타내셨고, 그 말씀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왔을 뿐이다.
올 6월에 가진 공장 기공식 때 박옥수 목사님께서 방문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목사님께서 다녀가신 후 나의 사고와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목사님은 창세기 41장에 나오는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다.
 이 말씀은, 박옥수 목사님이 오시기 며칠 전에 박희진 목사님이 ‘바로가 요셉에게 모두 맡긴 것처럼 예수님에게 모두 맡기는 삶을 살라’며 내게 해주신 말씀이었다. 나에게 두 번 듣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박 목사님은 우리 회사를 “하나님의 회사로 삼으시고”라고 기도해 주셨다. ‘하나님이 이 회사를 기뻐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 회사를 이끌어 가시겠구나. 하나님이 이 회사의 주인이 되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 신분이 다 없어졌다. 내 마음에서 우리 회사의 상호는 ‘하나님의 회사’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나는 출납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직원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회사의 주인이고 집행자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 회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단지 교회에서 내게 흘려주는 말씀을 따라 출납업무를 담당할 뿐이다. 실제로 나는 회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의 일을 하며 살고 있다.

항상 무익한 종의 삶을 사십시오
올해 하나님은 내게 IYF광주전남지부장 직분을 주셨다. 행사도 많고, 나를 초청하는 곳도 많아 항상 바쁘다. 내가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면 내가 세워지기 마련인데, 박희진 목사님이 “항상 무익한 종의 삶을 사십시오”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 마음의 위치를 잡아주신다.
 회사도 커지고 직분도 생기면서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 가운데 두셨기에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공원을 산책하며 기도하고, 집에 와서 성경을 읽고, 아내와 함께 교제한다. 하나님과 사귀는 이 시간들이 내 마음을 지켜주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런 시간들과 하나님의 종의 인도함이 없다면 맨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처럼 타락의 길로 갈 것이다.
 최근에는 하나님이 교회에서 주신 집사 직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시며 복음과 교회와 종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시고,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 수 있을지 생각하는 습관도 생겼다.
광주 전남지역이 변하고 있음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 선교회를 통해 전 세계에서 복음의 장이 크게 열리고 있는 광경들이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사도행전을 계속 읽으며, 지금 우리 선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현 시대의 사도행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사는 영광에서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그 복음이 힘 있게 일어날 때 우리 회사도 복음과 함께 동행하며 성장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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