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고통스러워 술을 드셨습니까?
무엇이 그리 고통스러워 술을 드셨습니까?
  • 신형철(기쁜소식강동교회)
  • 승인 2016.02.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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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간증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니며 신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로 살다 승천했다고 가르치는데, 어느 날 성경에 보니 마가복음 3장 31절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라는 말씀이 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해 따지며 묻다가 성모 마리아 모독죄로 신부 서원도 파기 당하고 강제로 출교 당했다. 그때부터 신을 불신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안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며 어려워지자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렸다. 소망이 없어 내 마음대로 살았다.

내 평생 잊을 수 없었던 사건
1976년, 나는 자원해서 군에 입대해 수색대에서 저격수로 복무를 시작했다.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해안선 방어에 투입되었다. 하루는 야간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중 새벽 4~5시쯤 해안선으로 올라오는 인영人影을 발견했다. 인영들이 우리 측 지시에 불응하고 도망가는 것을 보고 간첩이라고 판단해 상부에 보고한 뒤 지시에 따라 총을 쏘았다. 날이 밝은 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가보니, 네 사람이 죽어있었다. 시신을 확인한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사살한 사람은 내가 평소에도 잘 알고 지냈던 마을 이장 부부와 자녀였다.
 그 마을에서는 10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굴을 땄다. 그곳은 위험 지역이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굴 따는 것을 허락하고 그 외 시간에는 출입을 통제했다. 그런데 이장님 부부가 굴을 더 따려고 새벽에 해안선을 돌아 들어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상급 부대에서 사건의 진위를 조사한 결과, 평소 우리의 근무 위치를 알고 있던 이장이 잠복근무 위치가 바뀐 것을 모르고 접근했다가 발각되었고, 순간 당황해 도망하다 사살된 것으로 판명났다.
 마음은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는데, 그 일로 나는 경계근무 우수자로 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한 달간 아무 일을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을 마주칠까 겁이 나서 내무반에서만 멍하니 있었다. 내 마음에서 신이라는 존재를 죽였다. 그때부터 술을 마셨고, 늘 술에 취해 살았다.

구원받고 달라진 아내
제대한 후에도 마음을 잡지 못했다. 마음에서 죽였던 하나님을 원망하고 술로 스스로 위로하며 살았다. 그러다 외항선을 타며 선원생활을 했다. 출항하면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으로 돌아왔다. 선원생활이 그나마 나를 위로해주어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후 어머니의 권유로 선원생활을 끝내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이미 술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나 때문에 늘 괴로워했다. 우리 부부는 싸우기만 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와 아내는 나를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그 효과도 잠시뿐, 퇴원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술을 마시고 병원에 입원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술을 끊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았다. 나도 모르게 교회를 찾아가기도 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교회에서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치유의 은사를 받으라고 했다. 어떻게 하나님께 매달리고 어떻게 치유의 은사를 받아야 하는지 몰라 답답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말들이 나에게는 헛소리로 들렸다.
 다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아내가 찾아와 퇴원하자고 했다. 전과 달리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아내는 구원받았다고 했다. 기성 교단에서 이단시하는 박옥수 목사님의 교회라고 하는 말에 나는 일체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내게는 기성 교단이든 이단이든 교회는 다 똑같이 하나님을 팔아 장사하는 종교 장사꾼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는 아내가 교회에 가자고 했다.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해서 따라가 보았다. 설교 위주로 예배를 진행하고 헌금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예배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김욱용 목사님이 내 팔을 잡고 말씀하셨다. 구약시대에는 양에게 안수해 죄를 넘기고 그 양을 번제로 드려서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셨다. 신약시대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우리 죄를 넘긴 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말씀이었다.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기성 교회에서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다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가 다 사해져서 의인이 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이래서 기성 교단에서 이단시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말씀이 마음에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아내는 교회에 꾸준히 나갔고 교회 사람들이 가게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양수 목사님 가족이었다. 아내는 박양수 목사님의 어머니인 한차임 자매님에게서 복음을 듣고 교회와 연결됐다. 나는 누가 찾아오든 아무 상관 하지 않고 살았다.
 어느 날 김욱용 목사님이 찾아와 아내가 일주일 간 수양회에 갈 거라고 하셨다. 가게도 바쁘고 아이들도 셋이나 있는데 수양회에 간다고 하니 순간 화가 치밀었다. 김 목사님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가게 밖으로 끌어냈다. 그때 문득 도대체 이 교회는 어떤 말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지 가서 확인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아내 대신 내가 수양회에 갔다.
 수양관에 도착해 예배에 참석했다. 내가 생각했던 예배와 달랐다. 내가 가보았던 교회처럼 두 손을 치켜들고 흔들거나 대답 없는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울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말씀만 들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하고 한두 명씩 성경을 펴놓고 조용히 대화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며 3일을 보내다 문득 내가 도대체 왜 여기에 와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왕 왔으니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장영철 목사님과 상담했다. 그때 들은 말씀이 로마서 8장 1절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였다.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예수님이 내 죄를 씻으신 사실을 몰라서 여태껏 나 자신을 정죄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내 죄 값을 치르고 죽으셨고, 내게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사망의 몸에서 예수님이 나를 건져내신 것이다. 말씀이 믿어져 구원을 받았다. 그 후로 교회에 가서 간증하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며 말씀을 듣고 지냈다. 다시 술과 함께 보낸 20년 구원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사탄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교회에서 내 간증에 대해 형제자매들이 떠들어대는 말과 비난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마음 깊숙이 누르고 나를 포장한 채 지냈지만 결국에는 교회를 떠났다. 사람들에게 나는 여전히 기피해야 하는 살인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에는 ‘구원’이라는 단어 하나만 남았을 뿐 하나님도 예수님도 없었다. 교회를 떠나 다시 술에 취해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하루에 1.5리터짜리 술병을 두세 병씩 비웠다. 목사님과 교회형제들이 찾아왔지만 내 마음은 강퍅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2014년, 기쁜소식강동교회에 새로 부임하신 허인수 목사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목사님 부부 앞에서 횡설수설하며 온갖 패악을 부렸다. 나는 술로 인해 피폐해져 있었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머리 맡에는 늘 술병이 굴러다녔다. 지칠 대로 지친 아내와 아이들은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다.

 

 

무엇이 고통스러워 술을 드셨습니까?
하루는 큰딸이 박옥수 목사님께서 나를 한 번 만나고 싶어 하신다고 했다. 박옥수 목사님이 나를 어떻게 아시고 만나려 하시는지 몰랐다. 알고 보니 기쁜소식선교회의 영상선교부에서 근무하는 큰딸이 견디다 못해 박옥수 목사님께 내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박옥수 목사님은 과연 내게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목사님을 만나러 갔다. 그날도 나는 술에 취해 있었다.
 목사님은 나를 맞으며 물으셨다.
 “아버님, 무엇이 그리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술을 드셨습니까?”
 깜짝 놀랐다. 여태껏 사람들은 나를 알코올 중독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비난만 했지, 내 고통에 대해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목사님은 내 마음의 고통을 들어 주려고 하시는구나’ 싶어 조심스레 내가 평생 지고 있었던 고통들을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신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아버님의 고통은 저도, 그 어떤 사람도 위로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고통을 끌어안고 위로하시고 괴로움을 덜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속이 시원했다. 내가 왜 술을 마시는지, 내 마음속의 고통과 괴로움을 물어봐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구원받았던 때처럼 기뻤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강동교회의 함승훈 장로님과 교제하면서 마음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지만 술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며칠 후 내 마음에 죽음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술에 취해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도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자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었다. 허인수 목사님께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내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악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사탄이 나를 죽게 하기 위해 강하게 역사했던 것 같다.
 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주님이 주신 구원도 헌신짝 취급하고 주의 종과 교회를 대적했고, 내 생각에 빠져 주님을 멸시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때 ‘그럼 내 생각대로 살아온 삶을 버리고 참된 주의 종의 말씀을 따라 말씀에 이끌려 살다가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한 채로 한밤중에 허인수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앞에서 두 무릎을 꿇었다. 살면서 사람에게 무릎을 꿇어본 건 처음이었다. 목사님 앞에서 나는 내 무릎만이 아니라 마음을 꿇었다. 그때부터 나는 허인수 목사님의 인도 아래 매일 아침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고 교제하고, 형제들과 교회 일도 함께하며 지내고 있다. 가끔 내 생각이 올라오지만 말씀에 따라 생각을 쳐내고 마음을 꺾고 목사님과 교제하면서 주님의 인도로 살고 있다. 앞으로 주님이 나를 어떻게 이끄실지 소망스럽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십자가에서 당신의 피로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지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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