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안에 행복이 있었다
예수님 안에 행복이 있었다
  • 정상섭(기쁜소식양구교회)
  • 승인 2016.02.26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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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간증

 

 

1969년에 나는 강원도 양구의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군 복무를 마치고 스물두 살 때 양구에서 아내를 만나 인천으로 이사했다. 누나가 근무하는 방직공장에 취직해 기계 고치는 일을 했다. 한 달 동안 죽어라 일하고 받는 월급이 38만 원이었다. 아들 둘을 낳고 보니 행복하게 살려면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옮겨 아파트 승강기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다. 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인정을 받았다. 사장님은 내가 일을 잘한다고 김포 근처에 있던 공장 운영을 맡기셨다. 그 회사에서는 한 달에 300만 원 가량의 월급을 받았다. 일한 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되자 욕심이 생겼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몸이 피곤하고 아프고 힘들어도 쉬지 않고 일했다.

돈은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돈을 많이 벌게 된 뒤부터 사람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주변 사람들의 실수나 부족함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과의 싸움도 끊이지 않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미움이 점점 커져 분노로 바뀌었다. 마음에 가득 찬 분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운 날이 연속되었다.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미운 사람은 늘어나고 몸은 지쳐갔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어지자 몸에도 병이 찾아왔다. 몸의 왼쪽 편이 이유 없이 아팠다.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매일 인천에서 서울을 오고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하다는 한의원 박사님들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몸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대학병원에도 갔다. CT부터 MRI 촬영은 물론 대한민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는 다 받았지만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구해오신 산삼도 먹고, 홍천에 장침으로 유명하다는 분에게 무서울 정도로 큰 침을 한 달 동안 맞아보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 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 몸이 약간 좋아지는 것 같아 용인에 있는 대형마트 물류센터에 지입차를 가지고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그때도 돈을 많이 벌었다. 나는 아내에게 경제권을 맡기고 일만 했다. 내가 가족에게 돈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었다. 해외 여행도 보내주고 놀고 싶은 대로 놀게 해주고 갖고 싶은 것도 넘치게 갖게 해주었다. 아내와 자식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내와 자식을 돈으로 다 망쳤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인 줄 전혀 몰랐다.
 살림을 잘하고 가정적이었던 아내가 언제부턴가 술을 좋아하고 유흥을 위해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집을 자주 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돈을 가지고 가출했다. 아내를 찾아보니 대형 호프집을 차려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 아내에게 호프집을 정리하고 같이 잘 살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 몰래 호프집에 나가 일했다.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부부 싸움이 계속되자 몸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병명도 없는 통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급기야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이 들었다. 수면제에 의존하기 시작하자 삶이 더욱 힘들었다. 나중에는 수면제 없이는 잠을 전혀 잘 수 없는 중독자가 되었다. 수면제를 끊을 방법이 없었다.
 그 무렵 회사에서 여주로 발령을 받아 이사했다. 이사와 동시에 아내도 호프집일을 접고 미용사 일을 시작했다. 삶이 달라질 줄 알았지만 아내는 여전히 술을 끊지 못했고 가정도 돌보지 않았다. 나 역시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방탕하게 살았다.
 아내와의 싸움과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이 심해져 복용하는 수면제 양이 점점 늘었다. 수면제를 더 이상 먹으면 죽을 것 같아 한 달 동안 약을 끊었지만 몸이 아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톱으로 온몸을 켜는 것만 같았다. 너무 힘들어 다시 수면제를 먹었다. 더 이상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어 직장도 그만두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구나’
‘나는 이제 죽겠구나! 끝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집에서 누워 지낼 때, 누나가 찾아왔다. “상섭아. 누나 집으로 가자. 누나 집에 가서 좀 쉬면 나아질 거야.” 방법이 없던 나는 인천 누나 집으로 갔다. 누나는 장로교회 권사고 매형은 장로였다. 누나는 나를 위해 매일 간호해주었다.
 어느 날 누나가 나에게 교회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서면 불면증도 사라지고 몸이 좋아지고 건강해진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누나와 매형을 따라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갈 때마다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았다. 새벽에도 나가 내 몸을 고쳐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하지만 몸은 호전되지 않았다. 기도 받을 때만 잠깐 기분이 좋아질 뿐이었다. 설교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전혀 와 닿지 않았다. 기도하며 울부짖는 분위기가 오히려 지옥 같아 보였다. 너무 싫었다.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통증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누나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하다 누나가 발견하여 살았다.
 누나와 동생은 내가 죽을 것 같아 걱정한 나머지 나를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혹독했다. 감옥에 있는 것처럼 갇혀 지내야만 했다. 면회도 되지 않았다. 담당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독방에 가두고 침대 위에 사지를 묶어놓았다. 그런 장면을 목격하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해서든 병원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여기서 나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다. 하루는 가족들이 면회를 왔다. 감옥 같은 병원생활이 싫어 제발 나를 내보내 달라고 했다. 의사는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했지만 나는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죽을 거라며 가족들에게 퇴원시켜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다행히 퇴원하여 누나 집으로 다시 갔다.

“형! 그러다가 인생 다 망쳐”
아내는 나에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전화하자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다시 영상통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술집에서 남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매형 차를 몰고 인천에서 여주로 곧장 달려갔다. 미용실 개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개업을 못 하게 막고 싸움을 시작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아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혼하고 끝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마음에서 아내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내에게 속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이 여자를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칼을 사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아내가 일하는 미용실 주변을 돌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아내는 나를 피해 다녔다.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동생이 말했다.
 “형! 그러다가 형 인생 다 망쳐.”
 동생의 설득과 권유로 아내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결국 이혼했다.
 이혼한 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곳에 있으면 자꾸 아내 생각이 나니까 집을 팔고 고향으로 내려와라.”
 “어머니 내려갈 수 없어요. 이혼하고 인생 실패했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텐데 못 갑니다.”
 “이 동네에는 이혼한 사람이 많아서 아무 문제 안 된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나는 울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가족의 위로가 힘이 되어 고향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기쁜소식양구교회와의 만남
고향에 내려와서도 아내에 대한 미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허무한 마음을 채울 수 없어 방황하며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유흥생활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불면증 약을 처방 받으려고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결교회에 다니며 기쁜소식양구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다. 다니는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왜 다른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판단력이 없어서 이상한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가 성경공부 하는 교회가 괜찮은 교회인지 확인해보고 싶어 나도 그를 따라서 기쁜소식양구교회에 갔다.
 교회 주보가 있으면 달라고 하자 전도사님이 복음을 전해주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죄를 다 씻었기에 우리는 이제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하셨다. 거부감없이 말씀을 달게 듣고 왔다.
 크리스마스 때 식사 초대를 받아 다시 양구교회에 갔다. 전도사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했다. 전도사님은 나 자신을 믿고 살면 인생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며 복음을 자세히 전해주셨다. 이야기 가운데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이곳이 내가 진정 쉴 수 있는 곳이구나’
전도사님은 며칠 후 강릉에서 열리는 겨울캠프에 가자고 하셨다. 캠프라는 말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관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줄 알고 기분이나 전환하자고 따라갔다. 내가 기쁜소식양구교회에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매형과 누나가 그곳은 이단이라며 다니지 말라고 했다. 부모님도 반대도 무척 심했다. 갈등되고 의심도 들었지만 마음이 끌려 1차 겨울캠프에 참석했다.
 복음반에서 이한규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듣던 중에 날 때부터 행악의 종자로 태어나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과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들으며 내가 의인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단시하는 말 때문에 교회에는 좀처럼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전도사님이 3차 캠프 때도 같이 가자고 하셨다. 나는 안 가겠다며 교회 화목 보일러나 봐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모님이 전화해 몇 차례 나를 설득하셨다. 집에 있어도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니까 한 번 더 말씀을 들어보자고 하셨다. 마음이 이끌려 다시 3차 겨울캠프에 참석했다. 이번에는 말씀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아, 이곳이 바로 진리가 있는 곳이구나! 이곳이 내가 진정 쉴 수 있는 곳이구나! 내 마음을 잡아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캠프 기간 동안 나는 전도사님에게 의문나는 점들을 물었다. 인터넷에 왜 기쁜소식선교회를 이단시하는 말들이 있는지 물었다. 전도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복음을 대적하려고 거짓된 이야기를 흘리는 자들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단시하는 이야기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3차 캠프 복음반에서는 심성수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피를 흘리며 가시관을 쓰고 창에 찔려서 죽어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나 대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이었다. ‘예수님, 나 같은 게 뭔데 이런 더러운 죄인을 위해서 당신이 죽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 감격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말씀을 듣노라니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교회도 모르고 신앙도 모르고 살아온 나였는데, 마음에 말씀이 들어오자 어둠이 다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이 가득 찼다.  ‘내 인생은 지금부터구나. 나는 지금부터 사는 거구나.’ 3차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흙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주셔야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병이 하나님 앞에서는 먼지 같은 일이겠구나
나는 오랜 세월을 원인도 모르는 온몸 통증에 시달렸고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설교 말씀을 들으며 ‘수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에게 내 고통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나? 아픈 것이 인간에게는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먼지 같은 일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이 말씀처럼 나도 병에서 온전해졌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잠도 안 오고 몸도 아팠지만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말씀을 믿고 약을 끊었다. 이틀 동안은 잠도 안 오고 몸이 무척 아팠다. 그래도 온전케 되었다는 말씀을 믿고 교회에 가서 안수 기도를 받았다.
 신기하게도 3일째 되는 날부터 잠을 잤다. 몸도 아프지 않았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다. 세상에는 마약이나 수면제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하나님은 가능하셨다.
 수면제를 먹고 잘 때는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오후에 겨우 일어났는데, 지금은 아침에도 가볍게 일찍 일어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고 들었는데,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하나님은 온몸을 짓누르던 통증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시고 건강하게 하셨다.

 

 

나는 흙이고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부모님의 일도 도와드리고 남은 시간은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눈다. 교회 보일러에 쓸 장작도 패고 교회 차도 운행한다. 전도사님과 함께 심방도 다니며 전도도 하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죄와 병에서 구원받은 일을 간증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수면제 없이 잠을 잔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내 마음에 말씀을 세우며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나는 흙이고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내 삶을 교회와 하나님의 종에게 맡기고 남은 인생도 하나님이 이끌어 주실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다.
 얼마 전까지 내가 교회에 간다고 하면 호적을 파라며 절대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내가 변한 모습을 보고 이제는 교회에 잘 다녀오라고 하신다. 앞으로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고향 양구에 내가 아는 분들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나처럼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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