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義와 빛의 아들들
하나님의 의義와 빛의 아들들
  • 관리자
  • 승인 2017.04.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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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4

복권 당첨과 하나님의 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옛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그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얻어야 할 삶의 목적이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 옛 정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정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길을 가는 사람에게 “잠시만요, 오늘 당신에게 의가 이루어질 겁니다. 하나님이 의를 이루실 겁니다.”라고 한다면, 이야기한 사람을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이게 무슨 말이야?’ 하거나 웃으며 아무 반응 없이 지나가거나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들어본 적도 없고, 우리 정서상 그 가치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스라엘을 방문한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로또복권 일등 당첨과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를 택했고, 그들은 이 땅에서 돈으로 인생을 편히 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날에는 종교적인 유대인들을 상대로 똑같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부분이 후자를 선택하며, 내가 하는 질문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 ‘하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 묻는 사람이고, 그 다음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고 묻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그렇게 묻는 얼간이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닭을 먼저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바보 같은 질문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혹시 당신도 기자요? 세상에서 거짓말을 가장 잘하는 족속들이 기자들이오.”라고 하며 핀잔을 주었다. 아무튼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외국인들과 달리 당연히 하나님의 의를 선택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라고 하면…
2천 년 전 세례 요한이 있던 시절,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애썼다. 그들은 소문난 랍비나 성경 박사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려고 했다.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인생의 모든 가치가 결정되며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었다고 여기며, 하루하루 율법에 매여 살았다.
세례 요한 자신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의 일부분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며 유대 광야를 두루 다녔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서 그에게 모든 의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마음의 기쁨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로또복권에 당첨되거나 월드컵 경기에서 자기 나라가 승리하면 환호하며 마음에서부터 감동이 올라오지만, 메시아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옛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라고 하면 어떤 기쁨보다 더 큰 기쁨과 감동을 느끼며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메시아가 와서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고,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며, 우리가 거룩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카도쉬, 카도쉬, 카도쉬
‘의’는 히브리 말로 ‘쩨덱’이라고 한다. 마치 운석이 지구에 없는 돌인 것같이 이 ‘의’는 우리가 이 땅에서 만들 수 없는 것이며, 복음의 진리를 통해서만 인간에게 올 수 있는 하나님의 것이다.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시 85:11)
성경에서 하나님을 ‘거룩 거룩 거룩하신 분’으로 세 번 거룩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는데, 그것은 가장 거룩하다는 말도 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카도쉬, 히브리 말로 ‘거룩하다’는 이 말은 인간에게 해당하지 않는 하나님에게만 사용하는 고유한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 ‘쿠다쉬누’, 즉 우리가 거룩해졌다는 말씀을 증거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과의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그 일은 지금도 유대교인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되어 “어찌 인간이 거룩해질 수 있나? 그렇다면 의가 이루어졌단 말인가? 어찌 거룩한 하나님이 인간 속에 거하실 수 있나? 그러면 우리 속에 죄가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메시아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때 가능한 일이다.”라고 하며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부인하고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신 하늘나라의 법을 예수님이 완벽하게 이루시고, 죄의 값을 다 치러 영적인 모든 숙제를 마치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했다는 의미다. 만약 여기에 우리의 어떤 것을 섞거나 보탠다면, 그것은 마치 지성소 위에 뿌려진 속죄 희생의 피 위에 페인트를 덧칠하는 것과 같다.

성찬의 참된 의미 - 성화가 아니라 단번에 거룩해지는 것
유월절이 시작되는 예비일 저녁,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에서 유월절 저녁 식사를 하셨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는데, 떡을 떼시며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의 참된 의미는 우리가 거룩함을 받는 것을 뜻한다. 이 부분을 히브리서 10장에서 정확히 설명해 준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예수님의 몸을 드리심은 곧 거룩함을 위함이다. 우리에게는 원래 거룩함 자체가 없는 반면에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예수님의 몸은 거룩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떡을 ‘내 몸’이라고 하며 나누어주실 때 누구든지 그 떡을 받은 자는 거룩함을 받은 것이라는 말이다. 즉, 우리에게는 없고 예수님 당신에게는 있는 유일한 거룩함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여 점점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받는 순간 우리 모습과 상관없이 단번에 거룩해지는 것을 강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옛날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바리새인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받으며 거침없이 변론을 이어갔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몸이 드려짐으로 이미 단번에 거룩해진 사실을 거부한다면, 떡을 받고도 믿지 않았던 가룟 유다의 길로 가는 것과 일반인 것이다.

빛의 아들들, 에세네파 사람들
옛 유대의 한 종파 가운데 스스로 금욕적인 삶을 살며 율법을 좇아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1947년, 한 베두인 소년이 잃은 양을 찾아 헤매다 쿰란 지역에서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에 무엇이 있나 해서 돌을 던졌는데,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성경 사해사본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된다. 지금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소년이 발견한 것은 여러 개의 질그릇 항아리였다. 그 속에 두루마리 양피지에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한 이사야 성경의 필사본이 들어 있었다. 그 발견을 시작으로 그 지역을 발굴하여 ‘사해 문서’라 불리는 많은 성경 필사본들과 유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항아리에 두루마리 성경을 담아 동굴에 숨겨두었던 사람들이 과거 유대교의 한 종파였던 ‘에세네파’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히브리 말로 ‘이씨임’이라고 부르는 에세네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약 160년 전 ‘마카비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이 그리스로부터 자유를 얻을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소위 ‘암흑기’라 불리는 시대에 나타난 소수의 극단적인 금욕주의 종파가 바로 에세네파다. 그들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자신들만의 신앙을 지켜갔는데, 특별히 예수님 시대에 와서 쿰란 동굴 지역에 대대적으로 정착하면서 에세네파의 전성기를 맞는다.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는데, 그들을 가리켜 당시 사람들은 물론 그들 스스로도 ‘빛의 아들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삶은 철저하게 금욕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했기에 오직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지원하여 모인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주로 흰옷을 입고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틈이 나는 대로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었고, 성경을 필사하고 랍비들의 이야기를 두루마리 양피지에 기록했다. 또한,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에 대해 토론하며 지냈다. 에세네파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임을 자처하며 죄악된 삶을 철저하게 버리고 율법적이고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동체 이름은 ‘엨하드 공동체’ 즉 ‘하나의 공동체’였다. 이들은
‘미크베’라는 세례 장소를 공동체 곳곳에 만들어서, 물로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해 물 안에 들어가서 세례를 행했다. 또한, 그들만이 준비한 순전한 음식들과 정결한 포도주를 담은 잔을 대하며 살았다.
에세네파의 구성원들은 도를 닦으려고 속세를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곳곳에서 나름대로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가족도 버리고 재산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말세에 관계된 예언서들을 자주 접했는데, 빛의 아들들인 자신들이 어두움의 세력을 이긴다는 믿음을 강조하고 지키려 했다. 이들의 삶은 성경 말씀과 함께했는데, 각자 맡은 바 할 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경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이씨임’들, 곧 에세네파 사람들의 흔적을 보면서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로, 거기에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빛의 아들들’이 바로 에세네파 사람들을 가리킨다. 물론 빛의 아들들을 천사나 다른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황상 살펴보면 금욕적이고 철저한 성경 묵상과 율법적인 삶으로 ‘의’에 이르려 했던 ‘이씨임’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기에 에세네파의 이름이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데, 그들은 ‘빛의 아들들’이라 불리며, 세속적인 삶을 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로부터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받았다. 당시 사람들의 한편 뇌리에 그들은, 그들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에세네파 사람들도 자신들이 성경과 늘 함께하는 것, 율법을 지키고 금욕적으로 살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세우며 살았던 것이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에세네파 사람들이 참된 신앙을 위해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모여 지내던 때에, 그들의 공동체 근처 유대광야의 어느 곳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외쳤다. 그들이 열심을 내던 그 시대에 예수님이 그 땅에 함께 계셔서 그들의 구원자로 모든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사실과 무관하게 자기들의 노력으로 ‘의’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또 애썼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과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았지만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에세네파 사람들이 추구한 세계를 아셨기에,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를 언급하시며 ‘불의한 청지기처럼 자신의 악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의義 앞에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바꾸는 것이 빛의 아들들이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자기를 희생하며 금욕하고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보다 훨씬 지혜롭다’고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400년의 암흑기에는 하나님의 참된 종이 없었기에
말라기 이후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던 400년의 암흑기 동안에는 하나님의 참된 종이 없었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성경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주석을 달아 믿는 많은 종파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바리새파도 이 시대에 왕성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종교적인 특권을 누리며 어느 곳에서든지 회당의 상석에 앉아 성경을 가르치고 대했다. 실제로 바리새인 중에는 하루종일 성경만 대하고 연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자신이 성경을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진짜 말씀이신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펴서 이야기하실 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 구원자인 예수님을 배척했다.
에세네파도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여, 기원후 67년에 예루살렘 폭동을 진압하려고 편성된 로마 타이투스 장군의 특별군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사해사본은 이들이 죽기 전에 로마군에 의해 자신들이 진멸될 것을 알고 자신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 성경 필사본과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필사본 성경 등을 보존하기 위해 그것들을 질항아리에 넣어 쿰란 지역의 동굴들 속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그 두루마리들의 실체가 밝혀졌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보물 중 하나로 사해사본 가운데 이사야 필사본을 뽑는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자신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쓰고 금욕하며 노력하는가?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내 마음을 버리고, 성경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을 바꾸며, 무엇보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마법에 걸려 이 시대의 또 다른 영적 에세네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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