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 가죽을 벗기고
[설교] 그 가죽을 벗기고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2.0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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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레위기 제사 강해_번제(4편)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속에 있는 내장을 꺼내 물에 씻은 뒤 불태우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겉모습을 벗기고 우리 안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다 꺼낸 뒤 깨끗하게 처리하셨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인
사람들이 자신의 악을 얼마나 잘 감추었는지 감추지 못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악하고 더럽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은 우리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고상한 척, 잘난 척, 깨끗한 척하고 죄를 지었어도 안 지은 척하는 것입니다. 
교양이나 지위나 체면이나 수양 등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려서 겉모습은 그럴 듯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괜찮아 보이는 자기 모습에 자신이 속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선하다고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는 똑똑하고 깨끗하고 진실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번제의 조건, 가죽이 벗겨져야 
다른 제사와 달리 번제에는 ‘가죽을 벗긴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굉장히 징그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의 가죽이 벗겨질 날이 있습니다. 육체의 가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악하고 더러운 것들을 덮고 있는 체면이나 교양이나 도덕 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덮고 있는 위선의 가죽들이 다 벗겨지고 속이 드러나야만 번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수송아지의 가죽을 벗기듯이 여러분의 겉모습이 벗겨지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낱낱이 드러나면, 그 악한 모습에 아마 여러분 자신도 깜짝 놀라고 당황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것저것 사용해서 자신의 속 모습을 감추고 삽니다.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가릴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깨끗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나타내며 삽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밀어냅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가 나옵니다. 그 자리에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그의 죄가 드러난 상태, 즉 가죽이 벗겨진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은 죄가 숨겨져 있는 상태, 즉 가죽으로 덮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만 예수님과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몸만 함께 있었지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사람과 전혀 다릅니다. 자신이 악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여서 그 의를 맛보며 사는 것을 기뻐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사마리아 여자, 38년 된 병자,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세리 삭개오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이 밖으로 드러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달리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들은 마음을 덮고 있는 가죽이 너무 두꺼워서 그들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선하다고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로 착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위선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했는지 알고 사랑하신 예수님 
죄가 드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숨길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후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신이 더러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깨끗하고 선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런 인간을 사랑하시는 주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 누군가가 나에 대해 ‘내가 저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안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이 우리의 어두운 면을 안다고 해도, 그 어두움은 아주 적은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속속들이 다 아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왜 우리를 사랑하시고 왜 우리를 붙드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죽을 벗기고 속을 다 들여다보신 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성도는 얼마나 평안한지 모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 속을 다 보지 않고 한쪽만 보고 은혜나 축복을 베푸셨다면, 또는 어떤 일을 맡기셨다면 우리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나에게 이런 허물이 있는데 만일 예수님이 이걸 아시면 어떻게 하지? 나를 쫓아내시지는 않을까?’ 이런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 자신도 미처 모르는 것까지 다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자유와 해방과 평안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속아서 실수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추하고 더러운 것을 아시고, 비열하고 옹졸하고 까다로운 것을 아십니다. 성경 예레미야 17장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했는지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 사랑 내 맘 여시고 소망을 주셨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위선적으로 살았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됨됨이를 알면 비웃고 욕하고 무시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착한 체, 잘난 체, 똑똑한 체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 사랑 내 맘 여시고 소망을 주셨네”라는 찬송을 아십니까? 우리는 대부분, 마음을 열어 자신의 속 모습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무시하고 멸시할 것이 두렵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예수님께 마음을 엽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를 위하시며, 우리를 버리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욕한다 해도, 예수님을 주먹으로 때린다 해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약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나 더러운 것이 있을지라도 예수님 앞에 서면 마음이 자유롭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참된 쉼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정확히 모르면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겠어? 나 같은 사람은 쓰지 않으실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다 끄집어내서 불태우듯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간음한 여자, 사마리아 여자, 십자가의 강도, 세리 삭개오처럼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던 이들을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위로나 쉼을 얻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참된 쉼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은 결코 선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우리가 선한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다 드러내면 모든 죄악을 예수님이 해결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번제에서 가죽을 벗기는 이야기입니다.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속에 있는 내장을 다 끄집어내서 물에 씻은 뒤 불태우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겉모습을 벗기고 우리 안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다 꺼낸 뒤 깨끗하게 처리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번제를 드릴 때에는 가죽을 벗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하게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더럽고 악하고 추한 면들을 속속들이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잘 모르고 들떠서 지내면, 예수님께서 한번씩 우리 속에 있는 더럽고 추한 부분을 끄집어내서 ‘네 속에 이런 게 있잖아?’ 하십니다. 그러면 들떴던 마음이 쑥 내려가고 “주님,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주님이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간구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삶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전하는 것보다 성도에게 즐거운 일은 없다
사람이 선행이나 양심 등으로 자기 마음을 아무리 잘 가린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은 더러운데 겉은 깨끗하게 행동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발려져서 모든 죄가 깨끗이 씻어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발려진 예수님의 피를 보고 하나님은 만족하시고, 우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가 다 씻어졌을 뿐 아니라, 이제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하시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깨끗이 씻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도록 당신의 일을 하나씩 하나씩 서툰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가 자신이 있는 학교에서, 마을에서, 직장에서 예수님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전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후로는, 우리 모습을 속속들이 알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구원받은 뒤 자신이 변한 것을 모르고 이전처럼 전도하는 것이 어려운 줄 알고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누구에게든지 성경 이야기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음이 정말 기쁘고 즐겁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전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변했습니다. 번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속을 다 드러내신 뒤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습니다. 다시는 정죄함이 없고,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이 사실을 전하는 것보다 성도에게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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