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라이프]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 글 | 오영신(독일, 기쁜소식프랑크푸르트교회 선교사)
  • 승인 2021.09.0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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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9회)

유럽에 와서 많은 은혜를 입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유럽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 것이다. 월드캠프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은 광야와 같은 유럽에도 길을 내리라는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 앞에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11년 2월,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언어, 문화, 환경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마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았다.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 감사해서 내 모습과 형편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루는 예배당 건물의 길가 벽에 큰 간판이 있는 것을 보았다. 독일어로 ‘기쁜소식선교회’라고 적혀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간판을 크게 만들지 않는데 우리 교회는 한국식으로 크게 만든 것 같았다. 간판을 보며 ‘우리가 기쁜소식선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선교회의 정신과 믿음이 없이 산다면 정말 악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회와 하나님의 종들이 걸어온 길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살아온 길인데 비록 교회에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어도 내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나를 이끌었다. 

이제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겠구나
독일에 온 그해 6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국에서 선교하는 형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급히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갔다. 어머니를 오랫동안 뵙지 못해서 슬펐지만 독일로 이동한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에 갈 수 있고 장례도 치를 수 있어 감사했다. 나는 미국에 살 때 비자에 문제가 있어서 한국에 한 번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삼 형제 가운데 어머니 속을 가장 많이 썩인 아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런 아들을 위해서 정말 많은 사랑을 베풀고 기도해 주셨다. 어머니의 기도로 내가 복음 전도자가 되어 정말 감사했다. 이제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 무덤 곁에 나란히 묻히신 어머니께 눈물겨운 감사를 드렸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 동안에는 효도하지 못했지만 복음 전도자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고 계십니다”
유럽에서는 1년에 한 차례 박옥수 목사님을 초청해서 월드캠프를 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행사다. 내가 독일에 온 2011년에는 독일 쾰른에서 월드캠프를 개최했다. 나는 독일어를 못하지만 단기선교사들과 함께 쾰른에 가서 월드캠프를 홍보하고 사람들을 초청했다. 나에게는 유럽에서 처음 하는 월드캠프였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감사한 마음과 함께 하나님이 유럽에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캠프를 준비했다.
몇 달간 준비가 끝나고 캠프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신 박 목사님을 모시고 캠프 장소로 갔다. 유럽 사역자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박 목사님이 한마디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따라갑시다.”
짧은 한마디가 마음에 크게 다가왔다. 박 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수많은 캠프와 집회를 할 텐데 목사님은 어떠한 마음으로 캠프를 하시는지 궁금했다. 그날 말씀을 들으면서 목사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캠프 기간 내내 하나님이 앞서서 이끌어 주는 것을 보면서 캠프는 우리가 무엇을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믿음으로 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 후로 많은 캠프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해에 배운 대로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것을 믿고 진행했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날짜만 비어있었다
2012년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월드캠프를 하자고 유럽 사역자들이 결정했다. 독일 사역자들과 함께 8~9시간 차를 타고 자주 베를린에 가서 캠프 장소를 알아보았다. 장소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캠프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하지만 하나님이 앞서서 행하실 것을 믿고 틈만 나면 베를린에 가서 장소를 물색했다.
드디어 베를린 시내에 7백 석 규모의 극장을 발견했다. 월요일 아침에 장소를 계약하러 가려다가 한국에 계신 박옥수 목사님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말씀드렸다. 박 목사님은 월드캠프를 내가 사는 도시에서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예" 하고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자 눈앞이 아찔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장소가 문제였다. 베를린에서 장소를 구해 보니 독일에서 장소를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최소한 1~2년 전에 계약해야 장소를 사용할 수 있기에 행사 날짜가 임박해서 장소를 구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다. 
마침 부사역자가 있어서 이야기했다.
“형제, 큰일 났다. 박 목사님께서 우리 도시에서 캠프를 하라고 하시는데 장소를 어떻게 구하지? 혹시 아는 장소 있어?”
“예. 목사님, 좋은 장소가 있습니다.”
“어딘데?”
“차로 15분 정도 가면 강 건너 만하임에 로젠 가르텐이라는 아주 좋은 공연장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장소입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둘이 바로 차를 타고 그곳에 갔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날짜가 비어 있을까? 갑작스레 모든 계획이 변경되어서 정신이 없었다.
로젠 가르텐에 도착했다. 공연장이 너무 아름다웠다. 주위 경관도 아름답고, 박 목사님과 합창단을 모시고 행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관계자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날짜를 문의했는데 그 날짜만 행사가 비어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하나님이 캠프를 앞서 행하셨다.
당장 계약하고 싶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행사장은 모든 면이 좋았지만 그라시아스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공연하기에 무대가 좁았다. 오케스트라 전문 공연장이어서 뮤지컬을 하기에는 좀 좁았다.
당시 합창단 무대 감독인 박충규 목사에게 전화했다. 박충규 목사는 나와 친한 친구였다.
“충규야, 독일에 빨리 와서 무대를 점검해줘라.”
박충규 목사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날아왔다. 공연장 무대를 보더니, 처음에는 좀 힘들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더니 조금만 방법을 바꾸면 충분히 공연이 가능하겠다고 했다. 정말 감사하고 기뻤다. 바로 공연장을 계약했다. 

“오 목사, 자네가 결정하게”
그날 밤 박충규 목사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박충규 목사가 그라시아스합창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을 시작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고, 앞으로 유럽의 합창제에 출전하려 한다고 했다. 유럽의 합창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1등을 하면 합창단 이름도 알릴 수 있고, 합창단이 공연하면 많은 관중이 몰려올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합창단이 공연하고 박옥수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는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
깜짝 놀랐다. ‘음악을 통해 복음 전할 생각을 어떻게 하셨을까?’ 음악의 본고장이 유럽이고, 유럽 사람들이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유럽에서도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하면 너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두 달 뒤면 어차피 합창단이 월드캠프에 오는데 독일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한 번 더 공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공연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보니 체코 프라하에서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서 차를 몰고 체코로 갔다. 프라하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에 체코 교회 사택으로 갔다. 당시에는 체코 목사님이 유럽의 지역장 목사님이셨다. 저녁 식사를 하고 둘러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내 마음을 말씀드렸다.
“목사님, 박충규 목사가 그라시아스합창단 계획을 이야기하는데 합창단은 음악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한답니다. 이번에 체코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하면 좋겠습니다.”
체코 목사님은 깜짝 놀라면서 생각해 보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체코 사모님이 말씀하였다.
“오 목사님, 의견은 좋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이번에는 독일에서만 하고 다음에 체코에서 준비해서 합시다.”
목사님께 의견을 물었다.
“오 목사, 자네가 결정하게. 나는 자네 결정에 따르겠네.”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목사님의 대답을 듣고 우리는 독일로 돌아왔다. 박충규 목사는 한국으로 돌아간 뒤 체코에서 공연할지 여부를 내게 계속 물었다. 빨리 답을 줘야 합창단이 비행기표를 준비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참 난감했다. 나는 한 번도 중요한 일을 결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결정해 주시면 따라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이사야 40장을 읽고 있었는데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하나님은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몇 년 전 이스라엘의 유대 광야에 가본 적이 있다. 그곳은 생명이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먼저 조건과 가능성을 생각했다.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일할 수 있지 아무 조건이 없는 광야에서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광야에서 예비하라고 하셨다. 그날 새벽, 이사야 말씀이 갈등 속에 있던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내가 체코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하자고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시간, 경비, 인력, 경험 등 그 어떤 조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을 계속 읽는데 이사야 43장 19절에서 확신이 들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하나님이 왜 나를 광야로 가라고 하시는지 이유를 알았다. 나에게 열심히 일하고, 개척하고, 도전하라고 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광야에 반드시 길을 내겠다고 하셨으니 나에게 가서 그것을 보라고 하신 거였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의지가 분명히 보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유럽에서도 그라시아스합창단의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을 
한 달 쯤 뒤에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체코 프라하에 도착해서 700~800석 되는 극장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했다. 다음날부터 독일에서 캠프가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체코에 갈 수 없었지만, 마음은 그곳에 있었다.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연을 보고 복음을 들었을까?’ 체코에 있는 한 사역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날 공연장은 거의 만석이었고 모든 관객이 뜨겁게 공연을 보고 복음을 듣고 돌아갔다고 했다. 
박 목사님도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하셨다. 목사님은 캠프 기간에 몇몇 사역자들에게 유럽에서도 내년부터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을 하라며 일정을 짜 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유럽 지도를 펴놓고 계획을 세웠다.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파리,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다음은 우크라이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너무 신기했다. 아직 계획일 뿐이었지만 하나님이 광야와 같은 유럽을 관통하는 길을 놓으시는 것을 보았다. 
월드캠프를 아름답게 마치고 내 마음에 남은 것은 유럽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복음을 전하기에 광야와 같은 유럽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광야에 길을 내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일하기를 원하신다
다음 해가 되었다. 박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유럽에서도 그라시아스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해야 하는 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진행되지 않았다. 한 해 한 해가 흘러갔다. 공연은 못 했지만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반드시 광야에 길을 놓으신다는 약속이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고 더 선명하고 강하게 새겨졌다.
미국에서 매년 그라시아스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나 역시 미국에서 10년 동안 살았기 때문에 미국의 상황을 조금 알고 있었다. 미국도 복음의 일을 하기에 쉬운 곳이 아니었기에 매년 들리는 소식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정말 놀라웠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미국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 소식을 듣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구나. 너희들도 이렇게 일해라. 내가 미국에서 일하는 것처럼 너희에게도 일할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국에 가서 직접 공연을 보고 싶었다. 우리도 언젠가 공연할 거니까 보고 배우고 싶었다. 박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아내와 같이 미국으로 떠났다.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절차를 밟는데 아내는 통과됐는데 나는 거부당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그러다가 새벽에 생각이 정리되었다. 사탄이 나를 막는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탄아, 나를 막아봐라. 그런다고 하나님의 약속이 막힐쏘냐?’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기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마음이었다.

먼저 하나님의 약속이 마음에 세워지는 것이 중요했다
아내는 미국에 남아서 합창단의 순회공연을 따라다니고, 나는 다음 날 첫 비행기로 독일로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서 마음이 참 평안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꼭 내가 미국에 안 가도 되고 다른 목사님이 가서 보고 배우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위에 다른 목사님에게 미국에 갔다오시라고 부탁했다.
지금 일이 잘되냐 안 되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먼저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세워지는 것이 중요했다. 말씀대로 되지 않는 모든 형편이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하고 약속만을 의지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이 유럽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의 길을 여셨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호에서 간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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