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설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 글 | 임민철 (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1.12.01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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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_12편

 

갈라디아서 3장 19~22절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이야기하고, 율법을 지키며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에서는 율법을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만약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데에는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이 사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율법이 먼저입니까, 죄가 먼저입니까? 죄가 먼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인간이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읽으면 ‘내가 이걸 모르고 살았네.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지!’ 합니다. 실제로 살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계속 미워합니다. 그러고는 “하나님, 제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합니다. 

악을 행하는 데 담대한 인간을 위해 주어진 율법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살까요? 전도서에 그 답이 나옵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만약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손가락이 한 마디씩 잘려나간다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금방 알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늘 느끼며 살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해도, 추하고 악하게 살아도 징벌이 바로 오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멸망으로 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어기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거스르고 대적하며 사는지 깨닫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착하게 살게 해주는 법이 아니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는 법도 아닙니다. 율법은 더러운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읽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신앙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을 보면 율법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딤전 1:8~10)
여기에서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고, 불법한 자나 경건치 않은 자나 거룩하지 않은 자를 위해 세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지으며 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죄에 빠져 살면서도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니까 담대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하나님이 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복을 주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악하게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율법을 지키며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우스운 생각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로마서 7장에서는 율법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
율법을 알기 전에는 ‘내가 살았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어도 징벌이 바로 오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별 문제 없는 줄 알고 담대하게 삽니다. 그런데 율법이 이르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우리가 지은 죄를 드러내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내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이르기 전에도 죄를 지었고 죄로 인해 죽은 사람이었는데 전혀 모르고 있다가, 율법이 이르자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 7:10)
사람들이 율법을 접할 때, 처음에는 그것을 잘 지켜서 생명을 얻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생명이 아니라 사망을 가져다줍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11)
죄가 계명으로 우리를 속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속였습니까? 이미 죄를 지은 죄인인데, 앞으로 율법대로 살면 죄를 이기고 의롭게 될 거라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하는 법이 아니라 우리를 죽게 만드는 법입니다. 죄인이면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는 법입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율법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 7:13)
선한 율법이 우리에게 사망이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죄를 드러내기 위해 선한 법으로 우리를 죽게 만든 것입니다.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이처럼 죄를 드러내기 위해 주신 율법을 잘 지켜서 복을 받으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가에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는데, 그때 못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등이 연못가에 자리를 잡고 연못 물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연못 물이 움직이면 제일 먼저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병자들이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는데도 연못 물만 쳐다보고 있지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병으로 걸을 수 없어서 연못 물이 움직인다 해도 못에 들어갈 수 없고, 그를 못에 넣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연히 그는 연못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 소망 없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연못 물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연못 물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병을 나으려고 한 병자들은 자신이 잘하는 데에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거기 사로잡혀서, 자신들의 병을 얼마든지 고쳐주실 수 있는 예수님이 가까이 오셨는데도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연못 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38년 된 병자만 예수님을 만나 병이 나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요, 죄로 인하여 죽은 사람인 것을 알게 해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율법의 임무입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여 우리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로 이끌려고 하십니다. 연못에 들어갈 수 없었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병이 나은 것처럼, 죄인인 것을 깨달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죄와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십니다. 
우리는 다 죄 가운데에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반듯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롬 3:5)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롬 3:7)
로마서 3장에서는,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해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내가 어찌 심판을 받겠느냐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죄를 막 지어도 괜찮겠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 죄를 짓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이미 죄를 지어서 다 사망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불의한 것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우리가 거짓된 것이 하나님의 참되심을 풍성하게 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거짓말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거짓말쟁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거짓말쟁이인 사탄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기에서 건져내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불의하고 거짓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 죄를 깨끗이 씻으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말씀대로 살아서 의롭게 되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담대하고 당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신앙이 어렵다고 여기는 이유는, 자신이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내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같은 맥락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지금까지 믿음 없이 살았으니까 오늘부터는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성도를 믿음으로 살게 이미 만들어 놓으셨으니 그렇게 살라는 말입니다. 
율법이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이미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교회가 거듭난 성도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은 성도가 이미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믿음으로 살겠다고 각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그 믿음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자신에게서 모자람과 연약함을 느끼면, 그만큼 예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서면 됩니다. ‘나는 미련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은 지혜롭고 온전하시다.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들으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어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누리며 사는 삶이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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