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작은 예수가 되어 진정한 행복을 찾은 우리들
[오피니언] 작은 예수가 되어 진정한 행복을 찾은 우리들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22.03.1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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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 기쁜소식
특집 단기선교사 이야기

 

단기선교사들이 한 해 동안 세상의 별이 되어 복된 삶을 살고 돌아왔다. 복음을 전하며 행복을 느낀 이야기, 그들이 전한 복음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한 간증들이 아름답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진정한 행복을 만난 그들만의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교회와 멀어져 살았다. 내 욕구대로 사는 것이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가슴 한편은 항상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다민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어렸을 때 집을 나가고, 어머니와 이혼하고 남남처럼 지내던 아버지의 부고 전화였다. 아버지를 증오하며 경멸했고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고 전화를 받으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정말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여태 그랬듯 이번에도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듬직하고 든든하게 집을 지키는 아들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너무 공허했다. 나약한 인간의 죽음을 보고 마음에 너무나도 큰 공허가 찾아왔다. 그때 내 마음을 채워준 건 단기선교를 다녀온 친구들의 간증이었다. 나에게는 없는 행복이 친구들에게 있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그렇게 행복을 찾고 싶다는 일념으로 단기선교를 하러 가기로 했다.

“하나님이 너를 위해 이미 다 준비해 놓으셨으니”
교회 목사님의 인도로 우간다로 갔다. 고등학교 때 가나에 가서 한 달가량 아프리카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큰 걱정은 없었지만, 막상 열악한 환경에서 1년간 지내려니 너무 걱정되었다. 공항에서 지부로 이동 중에 비친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알록달록 꾸며진 우간다의 도시를 보며 아프리카는 황토색밖에 없다는 편견이 깨져 자연스레 마음이 열렸다. 그러나 너무나도 더운 공기와 아프리카 생활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시시때때로 끊기는 물과 전기, 모든 것이 부족한 삶에 지칠 때쯤 카타퀴라는 마을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카타퀴는 우간다 북부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로, 외부인이 아직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베일에 싸인 곳이라고 했다. 우리 선교회 지부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한 달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부터 되었다. 
우간다 김형진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다. “다민아, 너를 그곳에 보내는 분은 하나님이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이미 다 준비해 놓으셨으니까 너는 가서 그것을 누리고 오면 돼.” 선교사님의 마음을 받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놓으셨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떠났다. 

많이 힘들었지만 복음을 전할 때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제프’라는 선교학생과 버스를 탔다. 8시간을 달려 ‘소로티’ 라는 도시에 도착 후 그곳에서 ‘보다보다’라고 불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려 카타퀴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누렸던 전기와 물은 전혀 없고, 평균 기온이 35도로 너무 무더워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성경을 들고 복음을 전할 때면 그런 것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타퀴에는 목회자모임CLF으로 연결된 피터 목사님이 우리 선교회 지부 세우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분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나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힘있게 복음을 전했다.
하루는 피터 목사님의 소개로 마이클 목사님의 마을에 방문했다. 그곳 역시 환경이 열악하고 가난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인간의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고, 자신들은 죄가 있어서 천국에 못 간다고 말했다. 나는 그분들에게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 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구원을 얻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러 번 재차 설명했고,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이해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럼 제가 얼마 전에 도둑질했는데 그래도 제가 천국에 갈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내가 “예. 당연히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씻어놓으신 사실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하자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너무 기뻐하고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
이어서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엄마에 대해 간증했다. 내가 우간다에 있는 동안 엄마가 뇌종양 수술을 받으셨는데,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에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선교사님에게 한국에 가야겠다고 통보하고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조금만 시간을 갖고 기다려보자. 지금 가도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조금만 지켜보자.”라고 했다. 엄마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있을 때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내 마음을 잡아주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 말씀을 받아들인 후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한국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다민아, 엄마 깨어났어.” “다민아, 엄마의 회복세가 빨라.” “엄마 퇴원해. 너무 건강해.” 말씀을 믿었을 뿐인데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고 건강해진 엄마의 소식을 들으며 ‘하나님이 우리 엄마를 지키셨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내게도 말씀하고 계셨다
사람들에게 엄마에 대해 간증하며 “하나님이 여러분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똑같이 두려워 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여러분을 도와준다고 하십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하나님은 간증하는 내게도 말씀하고 계셨다. ‘그래, 이곳에 전기가 없고 물이 없고 갖춰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뭐가 문제가 되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데 문제 될 것이 있나?’ 
여러 곳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계속 같은 마음이 들었다. 
‘비록 바퀴벌레와 같이 씻어도, 먹을 것이 없어서 개미요리를 먹어도, 너무 더워 잠을 자지 못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무엇이 문제가 될까?’ 그렇게 하나님은 당신이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다. 

죄 사함을 받고 기뻐 뛰던 보스코
하루는 ‘보스코’라는 친구 집에 방문했다. 한 달간의 전도여행 중에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이다. 왜냐하면 보스코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시큰둥했기 때문이다. 그는 ‘죄가 없다.’라고 말하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하지만 나는 천국에 가지 못해. 내일 죄를 짓고, 내년에도 죄를 지으니까”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히브리서 10장 12절, 14절을 읽어주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나는 ‘영원히’라는 단어를 계속 설명해 주었다. “영원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하는 완전한 단어다. ‘영원히’라는 단어에 너의 과거의 죄도, 현재의 죄도, 미래의 죄도 다 포함되어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의 죄까지 다 씻어놓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라고 했다. 그때 보스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내일의 죄, 내년의 죄가 이미 다 사라진 거네? 그럼 나 천국 갈 수 있네?” 보스코는 죄 사함을 받고 너무 기뻐서 나를 안고 펄쩍펄쩍 뛰면서 “나는 이제 온전해. 나는 온전해!” 하고 환호했다. 보스코가 정말 기뻐하는 모습에 나 역시 너무나 큰 행복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한 달간의 전도여행이 정말 행복했다.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더 행복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복음을 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 행복을 몰랐다. 그런데 우간다에서 원 없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 행복을 만날 수 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과 가정 불화, 방황했던 학생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단기선교사를 다녀온 친구들의 간증을 들으면 ‘왜 그렇게 행복해하지?’ 너무 궁금했다. 나 역시 단기선교사가 되어 그 행복을 마음에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진정한 행복을 향해 가고 싶다.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알려준 우간다. 그 우간다에 세상 끝날까지 소망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나는 교회 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계속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랐다. 교회에서 하는 복음의 일에 몸은 함께하면서도 마음은 함께하지 못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는 교회가 내 행복을 방해한다는 생각에 교회와 말씀을 소홀하게 대했다. 
그러던 중 교회 대학생들과 온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하면서 내 생애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엉터리 영어로 복음을 전했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 느낄 수 있는 벅찬 행복과 감사를 느꼈다. 이 일을 계기로 내가 가진 행복한 삶에 대한 기준을 다시 생각하며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나 스스로 행복한 삶을 이끌어 가기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단기선교를 가면 선교사님 가까이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과 신앙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비아까지 왔다. 그리고 2021년에 이어 올해 1년 더 단기선교사로 지내고 있다.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잠비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복음을 전했지만, 잠비아에서 처음 복음을 전했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심지어 영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적어놓은 대본과 복음 그림을 들고 무작정 이웃집을 찾아갔다. 손짓과 발짓을 하며, 말도 안되는 영어로 복음을 전했고, 아주머니가 이해했는지 복음을 받아들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듣는 사람의 태도나 반응과는 상관없이 내가 복음을 말하면서 기쁘고 감사했다. 
박옥수 목사님이 설교 중에 ‘왜 사람들이 목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날 문득 그 말씀이 떠오르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사람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또 박 목사님이 ‘손자를 너무 사랑해서 더 많은 음식을 사주고 싶어도 배가 부르면 더는 음식을 먹을 수 없듯이, 우리 마음이 복음과 예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 차면 그 안에 슬픔, 절망, 분노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도 이해되었다. 
1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 인상을 쓰며 내쫓는 사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며 싸움을 거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 마음이 감사와 믿음으로 채워져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교회가 가진 이 말씀과 복음이 너무 명확하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다른 지역 교회로 이동하면서 매일 복음을 전했는데, 그 여정 속에서도 복음과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매일 먼 길을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곤 했다. 한번은 정말 오랫동안 차가 잡히지 않았다. 내 모습이 딱했는지 현지인들이 나에게 돈을 쥐어주며 택시를 잡아보라고 했다. 나는 당차게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둘렀는데, 그 순간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구나’
나는 어떤 일을 할 때면 항상 ‘내가 잘해야 해. 내가 노력해야 해.’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부담스럽고 힘든 상황에 처하면 하나님께 구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기대를 걸었다. 잠비아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마음으로  청소년센터 건축을 위한 후원을 받으려고 회사를 찾아다녔는데, 거절당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후원도 받지 못하자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후원을 받지 못할 거야. 누가 우리에게 관심이나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후원을 받으러 나가기 전 사모님께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모님은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하셨다. 도구는 스스로 잘할 수 없고 주인이 도구를 잘 사용해야 한다. 도구가 자꾸 잘하려고 하다 보면 당연히 힘들고 지친다고 하셨다. 무겁고 지쳤던 마음에 소망이 생겼다. ‘내가 후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후원을 받기 위해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니 하나님이 이루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소망스러웠다. 
그날 우리는 새 힘을 얻어 여러 회사에 방문했고, 두 회사에서 건축 자재와 후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막막하고 숨이 턱턱 막히던 일들이, 내가 하나님 앞에 도구가 되어 발을 내디디니까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해결하시고 일하셨다.
잠비아에서 1년을 보내면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을 느꼈고, 하나님이 당신의 일들을 이루시는 것을 보면서 내 삶이 행복으로 채워졌다. 올 한 해, 다시 시작되는 단기선교 생활 동안 하나님이 어떤 일에 나를 도구로 쓰실지 소망스럽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교회와 마음이 멀어져 마음 둘 곳 없이 하루하루를 의미 없게 살다가 군대에 갔다. 군대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구원받았지만 육신적인 내 모습 때문에 예수님은 나를 안 도우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어려움을 주셨고 결국 예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전역일이 다가왔을 때 친구가 단기선교를 가자고 했다. 나는 단기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어주셔서 교회의 인도를 따라 잠비아에 갔다. 나는 신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선교사님은 1년 내내 우리에게 한 말씀만 강조하셨다. ‘신앙은 끝이 없는 마라톤이다. 마지막까지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다. 단기선교에는 성공과 실패가 없다. 신앙의 기본 훈련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해 동안 내 마음에 이 말씀을 품게 해주셨다.
잠비아에서는 청소년센터 건축 봉사도 하고, 현지인을 위한 아카데미와 청소년 캠프도 열었다. 사회 인사와 목회자를 만나는 일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도 선교사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다. 한국에서는 복음 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내 마음을 숨기고 살 때가 많았는데 잠비아에서는 마음껏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마음이 어려웠다. 나는 다시 형편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선교사님이 무전전도여행을 갔다 오라고 하셨다. 우리가 떠나기 전 선교사님은 ‘너희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먹을 것과 잘 곳을 예비하신다.’고 하셨다.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이 풍족하게 해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무전전도여행 첫날, 로마노 초모라는 택시 운전사를 만났다. 그는 아주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죄로 고통받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죽어야 하지만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오셨을 때 새 언약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예레미야 31장 31절에서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시고 34절에서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다. 초모는 스폰지처럼 말씀을 받아들였다.  
복음을 전하고 초모에게 물었다. “초모는 어떤 법을 믿을래?” “나는 내 죄를 가져가신 예수님의 새 언약을 믿겠어. 내가 그동안 이 복음을 몰라서 고통했구나. 예수님이 정말 감사하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복음이 너무 귀하고 내가 구원받은 것이 정말 감사했다. 그동안 내가 이 귀한 복음을 시들하게 여겼다는 마음이 들며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다. 
그후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믿음이 생겼다. 선교사님의 말씀대로 무전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굶지 않았다. 무전전도여행이 끝나고 내 마음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이끄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잠비아에 있으면서 피부병에 걸려 어려운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하나님이 내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라는 믿음을 주셨다. 그리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병을 낫게 해주셨다. 
내 마음이 형편에 따라 흔들리면서 신앙에 대해 헷갈리는 부분이 많았는데 선교사님이 신앙은 계속해서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는 것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어 감사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도우신다는 믿음을 가르쳐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 섬에서 일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2021년 10월, 선교사님과 단기선교사들이 미국 남부 카리브해 바베이도스 섬으로 전도여행을 갔다. 섬에 도착해 무더운 날씨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영어로 복음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전도를 나가기 전에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섬에 온 것은 우리가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섬에 보내셨기 때문에 이 섬에서 일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내 마음에 크고 작은 부담들이 하나 둘 하나님에게 옮겨지기 시작했다. 
막상 전도를 시작하자 우려했던 내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내가 사람들에게 영어로 인사하고 말을 걸면 반갑게 인사해주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었다. 하루는 길을 가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우리를 부르셨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할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집에 있다가 좀 전에 갑자기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짐을 챙겨서 나왔어. 너희들이 정부 직원인 줄 알고 불렀는데 너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한 분은 하나님이신 것 같아. 하나님이 너희와 만나게 하려고 나를 나오게 하신 것 같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감사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들을 향해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경험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성경세미나에 초청했고, 참석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살아서 일하는 현장을 경험하며 감사했다. 

내 생각으로는 불가능했던 휴스턴 칸타타,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하셨다
11월에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준비를 위해 우리는 휴스턴으로 갔다. 미국 단기선교 활동의 꽃이라고 하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한다는 마음에 기뻤고, 코로나 이후로 2년 만에 하는 공연이라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형편은 내 생각과 달랐다. 공연이 열리는 5개 도시 중에서 휴스턴에서 좌석이 1만 석인, 가장 큰 규모의 토요타 센터를 대관했고, 성도 20여 명이 12만 5천 달러의 대관료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큰 돈을 어떻게 한 달 만에 모을 수 있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집마다 초청 편지를  배달하고, 후원을 받으러 다녔다. 온종일 다녀도 사람들이 자신들도 어렵다며 거부하고 후원하지 않아 마음이 어려웠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역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루는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후원을 못 받는다고 실망하지 마. 우리는 똑같이 하나님 안에서 복음의 일을 하고 있어. 하나님은 네 모습을 보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야. 네 안에 예수님을 보고 역사하셔. 다른 사람이 후원을 받아도 우리 모두가 받은 거야.”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고 소망이 일어났다. ‘오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해 두셨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후원자를 만났다. 형편이 어려워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음식을 후원하고 싶다며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는 분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수표를 써주는 직원도 있었다.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정말 감사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대관료를 다 모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홍보하며 토요타센터 앞에서 

“제가 찾던 바로 그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었어요”
12월 23일, 드디어 토요타센터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1만 석이 가득찼다. 많은 사람이 공연을 보고 기쁨과 행복에 젖는 모습을 보며 감격스러웠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한 시민이 나에게 와서 이야기했다. 
“몇 년 전에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나중에 또 보고 싶었는데 공연명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집 앞에 편지가 한 통 놓여있어서 보았는데, 제가 찾던 바로 그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었어요. 너무 기뻤습니다. 오늘 공연도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정말 기뻤다. 
지금까지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전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펼쳐진 복된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마음이 들었다. 휴스턴 칸타타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직접 보며 “하나님은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 내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내게 항상 일하신다.”로 내 마음이 옮겨졌다. 대관료를 채워 주신 하나님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푸에르토리코는 중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미국의 자치령으로 인구는 320만 정도이며, 면적은 제주도의 5배 정도다. 6.25 전쟁 때는 6만 1천여 명의 장병을 보내 함께 싸워준, 참으로 고마운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군 소속으로 싸웠기에, 한국에는 푸에르토리코가 참전한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먼저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복음 전하세요”
푸에르토리코의 최은성 선교사님은 페루에 3기 단기선교사로 다녀오신 대선배님이셨다. 선교사님은 단기선교사 시절 박옥수 목사님이 영상교제 시간에 전해주셨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자주 해 주셨다.
“여러분, 단기선교사를 가거든 먼저 언어를 배우세요. 그리고 그 언어로 복음을 전하세요. 그리고 복음을 전한 아름다운 간증을 갖고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선교사님은 ‘단기선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정말 많이 강조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스페인어 실력은 부족했지만, 복음 이야기를 대본으로 작성하고 외워 계속 복음을 전했다. 일반교회에서 성경세미나도 하고, 줌(Zoom)으로도 성경세미나를 했다. 기독교 라디오에 출연해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전했다. 단기선교사로 지내는 동안 복음을 전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반교회에 강사로 가서 스페인어로 성경세미나를 인도한 일이다. 수도 산후안과 인접한 카구아스의 포도나무교회에서, 우리는 교회 교인들과 목사님 등 30여 명 앞에서 복음을 전했다. 교인 중에는 6.25 참전용사인 94세의 ‘라파엘 리베라’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무척 감격스러워하셨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비참하고 처참했던 전쟁 당시의 모습으로만 한국을 기억하고 계셨는데, 그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참된 복음을 들고 당신의 교회까지 와서 전해주는 모습에 감격해 하셨다. 
코리안캠프나 아카데미로 연결된 친구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친구들 대부분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어 우리를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에게 인도하신 걸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거나 돌아가시는 등 아픔이 많은 친구들이 우리를 만나 기뻐하고, 교회와 연결되어 IYF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며 감사했다. 

 

날씨까지 주관하며 우리를 돕고 이끄신 하나님
우리 단기선교사들은 선교사님의 인도를 받아 TV방송 출연, 잡지 표지모델 선정, 공모전 수상 등 다양한 활동에 참가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갑자기 내 이야기를 다큐로 제작해 굿뉴스코 페스티벌 때 내보내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출국하기 전날까지 사흘간 영상을 촬영하고 다음 날 새벽 급히 짐을 싸 공항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선교사님은 ‘단기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깊이 교제가 되는데, 이번에는 교제할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고 하셨다. 
그런데 130년 만에 미국 동부에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우리가 탈 비행기가 결항되고 말았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틀간 더 교제를 나눴고, 푸에르토리코 서열 2위인 국회의장님이 우리에게 표창장을 주시는 모습도 영상으로 촬영했다. 그 외에 교육부 장관 표창, 수도 산후안 시장 표창도 받았다. 
푸에르토리코에서 복음을 전하다 만난 어느 현지인 친구는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와 재혼한 의붓아버지와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의붓아버지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면서 굉장히 슬픈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그나마 한국 대중문화로 위안을 얻고 살았는데, 코리안캠프에 참가했다가 구원받았다. 지금 그 친구는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 밝게 살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푸에르토리코에서 전한 복음은 언제부턴가 내 마음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별거하시는 게 부끄러웠던 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날 무시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닫고, 과거를 숨기고 살았다. 아버지를 향한 섭섭함과 ‘이젠 내가 내 삶과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고독감이 내 삶 깊숙이 스며들어왔다. 
아버지께 마음을 닫고 살던 내게, 선교사님은 아버지께 편지를 써 보라고 권하셨다. 그동안 내 마음에는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버린 채 떠났다.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절망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선교사님과 교제하는 동안,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항상 아들인 내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잘 지내는지 알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발견했다. 그 마음을 발견하면서 내 마음 속 절망들이 사라졌고, 내 마음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평안이 생겼다. 한없이 보잘것없는 내게 복음과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주시고, 내 마음 속 절망을 제하시고 사랑과 평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좌측 위부터 아래로 국회 상원의장, 미국 교육부 장관, 푸에르토리코 교육부장관과 단기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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