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글 | 임민철(기쁜소식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22.08.17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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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 기쁜소식
갈라디아서 강해(21편 마지막 회)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바울은 구원받기 전에 율법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으신 것을 알았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율법과 규례를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뒤 바울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 전통을 좇던 사람들은 할례를 무시하는 그런 바울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구원받은 유대인들 가운데에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지방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뒤 교회에서 할례 문제로 인해 논란이 생겼습니다. 갈라디아 지방이 예루살렘과 가까워 유대 교회에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행 15:1) 
할례로 인한 논쟁이 끊이지 않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이 문제를 이야기해,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 의논해서 구원받는 것과 할례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정리했습니다.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게 하려 함이니라
유대에서 온 사람들은 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까? 그에 대해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갈 6:12) 
할례를 받는다고 내세워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전함으로써 일어나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의 성도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죄가 씻어진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유대인들의 핍박이 두려워 그것을 피하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핍박을 피하려고 하나님을 등지고 타협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하며, 갈라디아 지방까지 와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주장하는 그들도 율법은 지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갈 6:13)
만약 그들이 율법을 다 지키면서 할례를 말했다면 나름의 이유가 되겠지만, 율법을 범하면서 할례를 외치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등지고 육체를 자랑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할례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이렇게 자랑하려고 할례를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는 데에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엮여 있습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갈 5:3)
할례를 행한다면, 할례뿐 아니라 율법 전체를 행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주장한 유대인들은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이방 성도들의 마음을 다시 율법의 행위에 묶이게 해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궤계가 그 안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갈 2:11~12)
베드로가 구원받은 이방 성도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어떤 이들이 오자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에서 떠났다고 했습니다. 할례자들에게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고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피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리를 떠나자 함께 있던 유대인들도 자리를 피했습니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 2:13)
갈라디아 교회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받고 감사와 기쁨의 교제가 충만했는데 그것이 깨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은혜’보다 ‘유대인들의 비난’을 더 크게 생각한 어리석음이 갈라디아 성도들의 마음을 믿음에서 떠나 행위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핍박을 받으리요? 
하나님은 은혜와 행위가 섞이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창세기 40장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나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포도즙을 짜서 잔에 담아 바로에게 나아가 복을 받았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흰떡 세 광주리 위에 각종 구운 식물을 얹어서 들고 나아갔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흰떡 세 광주리만 들고 갔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포도주와 흰떡은 예수님의 피와 몸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찢기신 몸만 들고 가면 됩니다. 거기에 각종 구운 식물처럼 다른 것을 더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와 행위를 섞지 않았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갈 5:11)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한다면 그것은 ‘타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십자가 외에 자랑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것이요, 십자가를 전함으로 인해 생기는 핍박을 면하려 함일 뿐입니다. 
저는 구원받은 뒤 내가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눌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좋은 학력이나 환경이나 위치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면 역사가 더 일어나고 못 배운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무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갖추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들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마태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전해주신 예수님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을 것을 보고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마태의 집에 가서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그 자리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함께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훌륭한 사람들이나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시지 않았습니다. 흠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셨고, 그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존경받는 사람이나 인정받는 사람들을 만나셨다면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랑할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는 세리와 죄인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바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는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집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이 점점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죄인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왜 나에게 당신을 좇으라고 하시고 우리 집에 와서 음식을 잡수실까?’ 예수님이 자신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의사는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처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생각이 마태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이 못난 것, 세리가 되어 로마의 앞잡이가 된 것,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은 것, 그런 것들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악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고쳐주러 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와 주신 예수님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비난과 핍박을 피하려고 결코 타협하시지 않았고, 마태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전해주셨습니다. 
만약 구원받은 우리가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더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이루신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고 온전하고 거룩하게 된’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비난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죄를 짓는데 어떻게 의롭다고 말하느냐?’고 하며 행위를 덧붙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남겨주신 분명한 흔적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할례를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어떤 행위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성도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못났거나 혹은 잘나거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거나, 그 어떤 것도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에 더하여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십자가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바꾸어 말해, 십자가 외에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 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분명한 흔적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7)
우리 죄가 다 씻어져 하나님은 이제 우리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시지도 않습니다. 이 말씀을 믿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은 십자가의 흔적을 남겨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는데, 우리가 거기에 무엇을 더해서 구원을 이루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모르고 여전히 죄에 빠져서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는 복음을 전할 때 ‘아니다, 죄를 지으니 죄인이다’ 하며 핍박하는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핍박과 비난이 두려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죄를 씻었지만 날마다 죄를 지으니까 죄인이 맞다’고 하며 타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성경은 이처럼 분명히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는데도 죄인이라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유대인들이 자신을 자랑하려고 할례를 주장한 것처럼, 이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외에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를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려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사탄이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끊임없이 갈라디아 교회에 복음 외에 다른 것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것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는 복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갈라디아서를 주셨습니다. 
*임민철 목사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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