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에스와티니 파송, 자네를 보낸 분은 하나님이야!
[라이프] 에스와티니 파송, 자네를 보낸 분은 하나님이야!
  • 글 | 강태욱(에스와티니, 기쁜소식만지니교회 선교사)
  • 승인 2023.04.06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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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4회)

말라위에서 선교에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와 훈련받으며 하나님이 내 마음을 바꿔주신 후 2015년 1월에 에스와티니로 파송을 받았다. 당시 하나님의 종이 해주신 말씀이 내 마음에 남아서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주고 있다. 에스와티니 선교 초기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7개월 가까이 훈련받고 여주와 부산에 있는 교회를 거쳐 2015년 1월 19일에 에스와티니로 파송받았다. 남아공 교회 최정숙 자매님이 한국행 비행기에서 에스와티니에 사는 윤경미 씨를 만나 전도하였고, 당시 남아공 교회의 홍석권 선교사님이 에스와티니에 찾아가서 윤경미 씨 부부에게 복음을 전해 두 사람이 구원받았다. 
2014년, 남부 아프리카 전도여행 중에 에스와티니 소식을 들으신 이헌목 목사님은 일정을 바꿔 에스와티니를 방문하셨다. 그때 데이빗 응캄파랄라 청소년부 장관님을 만나셨고, 한국 월드캠프에 그분을 초청하셨다. 캠프에 오신 장관님은 박옥수 목사님과 함께 국회로 가는 차 안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셨다. 그리고 오랫동안 앓고 있던 신장병을 위해 안수 기도를 받으셨는데, 다음날 깨끗이 낫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셨다. 
에스와티니에 돌아오신 장관님은 어딜 가든 한국에서 박 목사님을 만나 기도 받고 신장병이 나은 간증을 하셨다. 내각 장관 회의에서도 캠프 참석 결과를 총리에게 보고해, 2015년 1월에 에스와티니 정부가 박 목사님을 공식 초청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와티니를 복음으로 뒤덮을 뜻을 세우시면서 나의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내가 에스와티니에 파송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네를 도우실 거야 
2015년 1월, 박옥수 목사님이 에스와티니에 오셔서 이틀간 총리, 청소년부 장관, 교육부 장관, 보건부 장관과 면담하셨다. 교육부 관계자들과 마인드교육에 관하여 논의하셨고, 국립대 재학생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인드 강연을 하셨다. 그리고 출국하기 전 사역자 모임을 가지셨다. 그때 목사님이 내게 해주신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네를 이곳에 보낸 것은 나도 아니고 우리 선교회도 아니네. 자네를 이 나라에 선교사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야. 이곳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자네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네를 도우실 거야. 
우리에게는 두 가지 눈이 있어. 첫 번째는 내가 나를 보는 눈으로, 그 눈으로 보면 우리가 때로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부족해. 그래서 두 번째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봐야 해.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히브리서 10장 14절의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이미 온전하고 완벽해.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머리에 나사를 좀 풀고 담대하게 부딪쳐 나가면 하나님께서 돕고 역사하실 거야.” 
목사님이 해주신 말씀은 에스와티니에서 선교하는 내내 내 마음속을 맴돌고 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약속이 나를 이끌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조건이 나에게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완벽한 조건이 되셨기에, 복음의 일에 담대하게 부딪쳐 갈 힘을 얻었다. 

첫 번째 관문, 교사 마인드교육
에스와티니에 파송된 뒤 첫 번째로 부딪쳐야 했던 관문은, 교사 마인드교육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박 목사님이 교육부 장관을 만나셨을 때, 에스와티니에 마인드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교사들에게 먼저 마인드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제안하셨다. 나는 정부 고위 관료들과 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든 부분이 막막했다. 하지만 ‘나사를 좀 풀고 담대하게 부딪쳐 가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말씀을 힘입어 교육부 장관실을 두드렸다. 마인드교육을 소개하며 세계 곳곳에서 마인드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사례를 전했고, 박 목사님이 제안하신 대로 교사 마인드교육을 시작하자고 했다.
막상 부딪쳐 보니 여러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막막하고 불가능해 보였다. 에스와티니는 2015년 당시 저소득 국가로 지정되어 있어서 해외 원조 의존도가 높았다. 교육부가 교육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주최할 경우 UN이나 해외 NGO들로부터 재정 지원이 되는 프로그램만 진행했다. 행사 장소 대관, 식사, 티 타임, 심지어 차비까지 지원받고 있었다.
교육부 장관님은 마인드교육이라는 새로운 교과목을 도입하기 위해 우리가 재정적인 뒷받침을 다 해주면, 그 후에 교육행정가들이 교육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하셨다. 장관님과 의논하면 할수록 재정적인 문제부터 견해 차이가 너무 커서 교사 마인드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자꾸 올라왔다. 나는 정부에서 박 목사님을 초청해서 마인드교육의 필요성을 서로 공감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부딪쳐 보니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와서 악평했던 10명의 정탐꾼, 여리고 성을 마주한 이스라엘 백성들, 시온 성 앞에 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의 막막한 심정이 십분 공감이 되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으니까 교사 마인드교육이 안 돼도 다 이해하실 거야. 안 돼도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부담과 형편 앞에서 물러서려는 마음이 컸다.

내가 말씀을 선택하도록 도우셨고
그때, 목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는 자네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밖에 없어!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이미 온전해졌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머리에 나사를 좀 풀고 담대하게 부딪쳐 나가면 하나님께서 돕고 역사하실 거야.” 
내가 형편을 받아들여서 안 된다고 물러서려면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버려야 했다. 말라위에서 선교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내 생각을 하나님 말씀과 종의 인도 위에 세워 놓은 결과가 큰 고통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뱀의 유혹을 따른 결과는 온 인류가 죄로 인해 멸망받는 것이었다. 회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토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내 생각과 기준,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세계를 토해낼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마음을 분명히 정하기를 바라셨다. ‘어렵고 안 된다는 형편을 받아들일 것인가, 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일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계속해서 부딪칠 것인가?’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내가 보는 세계와 내 생각을 부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훈련을 계속 시키셨다. 안 된다는 형편을 받아들이려면 나는 말씀과 하나님의 종의 이야기를 모두 버리는 것을 선택해야 했는데,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 분명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말씀을 선택하도록 도우셨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다. 
마인드교육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는 것은 목사님이나 교회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뜻을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받아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의 뜻이 마음에 커지니까 형편이 꼭 가짜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로 내 마음에서 싸운 것은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하나님이 이런 나를 통해 이 귀한 복음의 역사를 이루실까?’ 하는 의심이었다. 나를 보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역사하시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보는 눈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내가 거룩하고 온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조건으로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한 사람이었다.
첫 번째로 마인드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확신, 두 번째로 복음의 역사를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 이 두 가지가 마음에서 확실해지니까 늙어서 단산하였으나 믿음으로 이삭을 잉태할 힘을 얻었던 사래처럼 나에게도 불가능한 형편에 부딪쳐 나갈 힘이 생겼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사 마인드교육을 미루시는 장관님을 계속 찾아갔다. 형편은 일을 진행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마음에 커지니까 눈앞에 보이는 형편이 가짜처럼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장관님이 ‘교사연합회가 주관하고 교육부가 후원해서 교사 마인드교육을 하면 좋겠다’고 하며 교사연합회에 찾아가 의논해보라고 하셨다. 교육부가 주관하면 모든 비용을 교육부에서 준비해야 하는데, 교사연합회가 하기 원하면 행사를 주관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교사연합회는 교육부의 허가를 받은 교사들의 연합회로 교사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활동들을 하며, 교육적인 목적의 워크숍을 개최하고 학기 중에도 교사들을 초청해서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다. 교사연합회 대표와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교사들을 위해 마인드교육 첫 워크숍을 3일 동안 진행하기로 했다.

말씀이 승리한 첫 열매
에스와티니에 파송받아 교회를 개척한 2015년 1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있었던 말씀과 형편의 싸움에서 말씀이 승리한 첫 열매였다. 그리하여 4월 29일부터 3일간 교사연합회 간부들과 현직 교사 500여 명을 대상으로 교사 마인드교육의 막이 올랐다. 초청 강사인 이헌목 목사님은 박옥수 목사님의 첫 번째 마인드교육 교재인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를 읽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후, 마음의 세계에 대해 강연하셨다. 이어서 복음을 전하셨을 때 교사들 모두 의롭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마인드교육을 주최한 교사연합회 측에서도 처음에는 교사들이 이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구심이 있었다가 교사들의 뜨거운 반응에 매우 흡족해했고, 회장과 사무총장 및 간부들 모두 ‘교사들의 마인드가 변해야 올바른 교육을 통해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 뒤 2회, 3회 교사 마인드교육을 이어가면서 1년간 3,000여 명의 교사들이 참석했고, 나중에는 교사들이 회비를 내고 자발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 교사들 중에는 우리와 교제를 이어나가면서 우리 교회의 성도가 된 교사들도 있다.
그 후 교사위원회가 반정부적인 성향이 강해져서 교사들을 지속적으로 교육하지 못했지만, 최근에 정부 고위공무원 마인드교육에 참석한 교육부 차관이 마인드교육의 가치를 바로 알고 우리를 초청해 교육부 고위 간부 대상 마인드교육을 매주 하고 있다. 지금은 교육부와 정식으로 교육감, 교수 및 교사들에게까지 마인드교육을 실시할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처음에 교사 마인드교육을 진행하려고 했을 때, 만약 어려운 형편을 보고 안 된다고 하는 내 생각을 믿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에스와티니에서 만난 첫 도전 관문에서 형편과 말씀 중 말씀을 선택해 하나님의 역사를 맛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이곳에서 선교하는 동안 형편과 말씀의 갈림길 앞에 설 때가 많다. 때로는 형편을 따라갈 때도 있지만 그 결과는 고통과 절망임을 늘 깨닫고, 그 길에서 돌이켜 말씀을 따라갈 때 경험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늘 벅차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한다. 

왜 너는 그 일을 안 하고 있느냐?
그 뒤 하나님은 또 한 번 형편과 한계를 넘는 훈련을 하셨다. 기독교 지도자 모임 CLF가 정식 출범하기 전인 2016년 3월에 박 목사님이 남아공에 방문하셨을 때, 사역자 교제를 가졌다. 목사님은 미국에서 있었던 복음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통해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구원받고 우리 교회에 나오려고 하는 것을 다니던 교회에 계속 가게 했는데, 목회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우리 선교회를 향해 마음을 열고 우리 선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해 집회를 열어 교회 전체를 얻은 간증을 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하나님이 도우신 간증을 들으면 부럽기도 하고 놀라워하면서도 먼 곳 이야기 같아서 나와는 상관없이 듣고 흘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날은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서도 그렇게 일하셔서 나라의 기독교계와 목회자들을 얻도록 역사하시는데, 왜 너는 그 일을 안 하고 있느냐?’라고 말씀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침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어서 교회마다 다니며 부활절 공연을 하고 복음을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에스와티니에서는 부활절 주간에 교파별로 본부 교회에서 주말에 3일간 수양회를 하기에, 큰 교회들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싶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너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인지도도 없는데 어떤 큰 비숍들이 너를 초청해 말씀을 전하게 해주겠어? 너는 아직 때가 아니야!’ 하고 사탄의 음성이 속삭였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매여 비참하게 살 바에야 말씀을 의지해서 부딪치면 설령 실패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배우는 게 있겠다는 생각에 어디든지 부딪쳐보기로 했다.
단기선교사들에게 그라시아스합창단의 부활절 칸타타 공연 영상을 보여 주면서 이 공연을 할 수 있게 준비해보라고 했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걸 어떻게 준비해요?”라고 물었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영상을 보면서 대사를 외우고 연기를 연습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큰 교회 목사님들을 찾아다녔다. 마침 우리 교회 가까이에 아주 유명한 비숍이 살고 있었다. 단기선교사 두 명을 데리고 노트북을 가지고 무작정 그분 집에 찾아갔다. 마침 비숍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우리를 소개한 후,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무슨 활동을 하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그라시아스합창단의 부활절 칸타타 영상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이것과 똑같은 공연을 해드리고 부활절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공연 영상을 보고 감명을 받은 비숍은 부활절 금요일 행사에 우리를 초청했다. 비숍뿐만 아니라 목사이기도 한 교육부 장관님에게도 부활절 칸타타 공연을 소개하자, 장관님도 부활절 토요일 행사에 우리를 초청했다. 부활절 주일에는 큰 교회 비숍의 초청을 받아 부활절 주간에 3일 연속 공연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정이 정해졌다.

너무 부족한 공연이었지만
일정은 확정되었지만, 무대 의상과 공연 소품을 어떻게 만들고, 공연 인원과 장비를 어떻게 옮겨야 할지가 문제였다. 모든 것이 막막했지만 이미 공연을 약속했기 때문에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승용차 한 대와 8인승 승합차 두 대를 준비해서 사람들은 차에 타게 하고, 십자가와 무덤 등 소품과 의상과 장비는 작은 트레일러에 싣고 다녀야 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가 준비한 것이 너무 형편없어서 부끄럽다. 십자가는 나무 기둥 두 개를 볼트와 너트로 고정했다가 풀 수 있게 했고, 예수님의 무덤은, 완성된 무덤을 만들어 옮길 차량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을 많이 하다가 돔형 텐트를 무덤으로 꾸며서 사용했다. 예수님이 부활하는 장면에서 무덤 안에 켜지는 빛은, 예수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직접 손전등을 켜도록 했다. 
드디어 첫 번째 공연 장소인 ‘하나님의 치유 교회’에 도착했다. 비숍과 목회자들과 교인 1,500명이 모여 있었다. 무대 소품을 조립해서 준비하고 공연을 시작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채찍질하며 갈 때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님과 함께 신음했다. 돌아가신 예수님이 무덤을 대신해 만든 텐트에서 손전등을 켜고 부활할 때 모든 사람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했다. 너무 부족하고 열악한 공연이었지만 이런 공연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너무 흥미로워했다. 
공연 후에 내가 말씀을 한 시간 전했는데 참석자 모두 말씀에 빨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멘! 아멘!”을 외치며 말씀을 아주 달게 들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일 년이 막 지난 때여서 우리 교회는 성도도 몇 명 없었고, 말씀 시간마다 졸고 있는 단기선교사들의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질 때가 많았는데, 그날은 큰 예배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반응해 신나게 말씀을 전했다. 

부활절 칸타타 공연으로 얻은 것들
두 번째 공연장인 교육부 장관님의 교회는 시골에 있었는데, 그곳에도 천여 명이 모였다. 예배당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창문 밖에서 공연을 보고 기뻐했다. 그 교회에서는 공연 중에 웃지 못할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장면에서 공연을 보던 한 청년이 갑자기 로마 군병의 망치를 빼앗으며 싸우려 달려든 것이다. 그 순간 모두 당황했는데, 교육부 장관님이 나서서 청년을 설득해 다행히도 예수님은 성공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다.
다음 날, 세 번째 공연 약속이 잡힌 대형 교회는 이상하게 경계가 삼엄했다. 주차장에 경찰차가 보이고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도 서 있고, 예배당 맨 앞에는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 교회는 국왕의 왕비 중 한 분과 공주가 다니는 교회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1,500여 명의 교인들과 왕비 앞에서 공연하고 말씀을 전했다. 왕비는 말씀을 유심히 들으면서 필기도 하고 손을 들고 “아멘” 하기도 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이 겸비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시작한 어설픈 부활절 공연이었지만 그 공연을 계기로 큰 교회 비숍들을 알게 되었고, 왕비와 공주, 교육부 장관, 그리고 높고 낮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 시작은 내 속에 들리는 ‘어렵다, 안 된다’는 소리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었던 열매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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