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내 수고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만나는 삶
[라이프] 내 수고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만나는 삶
  • 글 | 강태욱(에스와티니, 기쁜소식만지니교회 선교사)
  • 승인 2023.08.16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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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8회)

건축을 진행하며 만난 형편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하지만 안 될 것 같은 문제가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돕는 자를 한 분 한 분 만나는 동안 ‘복음의 일은 내 수고나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것을 만나는 삶’임을 깨달았다. 이번 호에서는 1년여 동안 단층 예배당을 건축하며 하나님을 경험한 간증을 나누고 싶다. 

‘하나님이 모두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따라
건축학교를 시작하기 위해 학교의 설립 취지와 우리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자원봉사로 일해 주실 강사를 찾던 중, 에스와티니에서 가장 큰 중심도시인 만지니 시청에서 일하다 퇴직한 건축 엔지니어 다미니 씨가 우리를 돕기로 하셨다. 한 가지 문제점은 다미니 씨가 이론 교육은 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 센터 건축을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실습을 진행하고 건축 과정도 감독하려면 현장 경험이 있는 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퇴직한 엔지니어들 가운데 현장 경험과 기술을 갖춘 분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다미니 씨가 난색을 표하셨다. ‘에스와티니 사람들은 돈을 주지 않으면 일을 안 한다. 나처럼 자원봉사로 강사가 되어줄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알고 계신 분이 있으면 만날 수 있게 소개만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내 마음만 형편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께서 건축학교를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고 믿고 계속 나가 보면,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분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다미니 씨가 건축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을 초청해 주어서, 예배당 부지에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함께 만남을 가졌다. 그분은 혼자 오지 않고 다른 중년 한 분과 함께 왔다. 나는 그분들에게 우리가 왜 건축학교를 시작하려고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는지 소개하며 “나는 외국인이지만 에스와티니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타국에 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스와티니 청년들이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게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다미니 씨의 초청을 받고 온 건축가는 “나는 공직에서는 은퇴했지만 현재 여러 건축을 감독하고 있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습니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더니 대뜸 함께 온 중년 남성을 가리키며 소개를 시작했다. 
“이분은 저에게 건축을 가르쳐주신 음칼리피 교수님이십니다. 강사 자격도 있고 실전 경험도 풍부하시니 건축학교를 하시려면 이분과 잘 말씀을 나눠 보세요.”

“제 모든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십시오.”
그러고는 자신은 바빠서 먼저 가보겠다며 교수님만 남겨놓고 일어났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음칼리피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 선교회와 국제청소년연합(IYF)이 펼치고 있는 활동들을 소개하는 등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대화가 끝날 무렵 교수님이 입을 여셨다. 
“저는 스와질란드 국립 기술대학교에서 교수로 9년간 재직했습니다. 기술대학교가 개교할 무렵부터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함께했습니다. 그 후, 남아공 정부의 요청을 받아 건축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건축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과정을 훈련시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만지니의 이웃 도시인 마차파 시에서 부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조기 퇴직하였고, 지금은 건축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제가 건축학교 학생들을 위한 이론 및 실습 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저희 회사가 예배당을 짓는 시공사가 되어드리면 선교사님이 건축하는 데 법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갖추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일에 너무도 합당한 조건과 경력을 갖춘 분이어서 ‘어쩜 이렇게 딱 맞는 인물이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님이 우리가 이야기한 내용을 잘 이해하고 무료로 도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외국인 선교사인 나를 상대로 한몫 챙기려는 것인지 의도를 빨리 파악하는 일이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교수님이 저희 일을 도와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교수님에게 월급을 지급할 만한 형편이 못 됩니다. 게다가 교수님의 건축 회사가 시공사가 되어주어도 비용을 지불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교수님이 저희와 뜻을 같이해서 하나님의 복음의 일을 돕고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해주시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자 음칼리피 교수님이 입을 열어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제가 가진 모든 지식, 제 두 손이 익힌 모든 기술들을 여러분이 쓰고 싶은 대로 쓰십시오. 회사도 관련 서류를 다 드릴 테니 건축 허가를 받는 데 필요한 곳에 제출하십시오. 비용은 일체 받지 않겠습니다.”
교수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흥분되고 감격스러웠다. 처음에는 ‘할일이 없어서 친구 따라 미팅에 참석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던 분이, 알고 보니 건축 및 실습 강사는 물론이고 건축 회사의 사장으로 시공사에 현장 소장까지 되어 줄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업무 능력과 자격을 갖춘 딱 맞춤 인재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쩌면 이렇게 합당한 분을 보내주셔서 센터 건축뿐만 아니라 건축학교까지 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지,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하셨는데도 그 사실을 모른 채 ‘건축이나 건축학교가 부담스럽고 갖춰진 것이 없다.’고 이런저런 형편을 탓하며 피하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 상식과 형편을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
그처럼 자격과 경력을 두루 갖춘 강사 두 분과 함께 본격적으로 건축학교를 시작했다. 학생들을 모집하여 50여 명의 입학생을 받았다. 굴착기로 정리해 놓은 터 위에 텐트를 쳐서 책상과 의자를 몇 개 놓고 수업을 시작했다. 임시 교실과 학생, 강사와 교육 내용을 모두 갖춰놓고 보니 ‘하루 종일 학생들을 교육하고 실습으로 단층 예배당 공사를 시키려면 점심식사는 반드시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한 가지 뜻을 정했다. 당시 우리 만지니교회 형편을 보면, 교회 전체 성도 수가 50명 남짓으로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성도는 몇 명뿐이었고, 청년들 중 예배당 건축 일을 하는 인원도 10명이 채 안 되었다. 그렇다고 예배당 건축을 진행하며 한국 교회나 박옥수 목사님만 바라보고 모든 걸 의지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들이 믿음을 배울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보내주신 물질은 자재 구입 등 건축에 필요한 용도에만 아껴서 쓰고, 그 밖에 필요한 건축 봉사자들의 식사 등의 비용 일체는 교회 헌금이나 후원을 받아 진행하기로 했다. 
먼저 아내에게 ‘이제부터 없으면 굶더라도 건축 물질은 식비로 쓰지 말자. 하나님이 주시는 길을 찾아보자.’고 했다. 고맙게도 아내는 단기선교사들, 형제 자매들과 함께 팀을 짜서 이곳저곳 후원을 요청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건물도 하나 없고, 지금까지 내놓을 만한 성과도 없는 우리를 과연 사람들이 뭘 믿고 후원해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길이 없었기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50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점심을 매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식자재가 필요했다. 옥수수 가루, 빵, 채소, 식용유, 달걀, 고기, 과자, 음료 등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후원을 요청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도우셔서 한 달도 안 되어 매달 옥수수가루 200kg과 달걀 24판. 매주 식빵 100봉지와 각종 채소, 필요한 만큼의 식용유 등 많은 식자재를 후원받았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공급해 주신 것처럼 느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기부 문화가 활발하지 않고, 더욱이 흑인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백인인 우리에게 후원해주는 것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상식과 형편을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건축학교를 시작한 2019년부터 우리에게 후원해주었던 회사들 거의 대부분이 2023년 8월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후원해주고 있다. 처음보다 양을 더 늘려서 후원해주는 곳도 있고, 점심식사 외에 건축 봉사자들이 때때로 먹을 간식도 후원을 받고 있다. 
식자재뿐 아니라 건축 자재도 여러 곳에서 후원을 받았다. 페인트나 작업 공구는 물론, ‘아프리삼’이라는 큰 시멘트 회사에서 기적적으로 50kg짜리 구조용 시멘트 680포(총 34톤, 700만 원 상당)를 후원해주어 단층 예배당을 짓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여러 곳에서 후원의 길이 열리는 것을 보며 하나님은 우리가 발걸음을 내디뎌 건축을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셨음을 느꼈다. 형편이 갖춰지면 건축을 시작하려고 했던 내 좁은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을 믿고 먼저 발걸음을 내디뎌 나가 보니,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모든 것을 발견하는 ‘여호와 이레’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첩첩산중인 형편, 어마어마한 비용…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건축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면서 막막한 형편과 어려운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아프리카니까 행정이나 법적 절차는 별로 까다롭지 않게 진행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혀 보니 행정 절차나 관련법은 영국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터라 갖춰야 할 것들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만지니 시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현지 건축협회에 등록된 설계사, 구조 설계사, 전기 기술자, 시공사 등 각 분야별 기술자와 전문 회사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들은 비용을 어마어마하게 요구했다. 
먼저, 가장 시급하게 현지 설계 회사의 승인을 받은 건축 설계 도면, 그리고 책임 시공을 하겠다는 구조 설계사의 편지가 필요했다. 마침 설계사를 한 사람 알게 되어 그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귐을 가졌고, 교회 건축에 필요한 설계를 그 설계사의 회사 이름으로 제출해주기로 했다. 
다음으로, 실제 공사를 진행할 시공사, 그리고 구조 설계 및 책임 감리를 맡아줄 회사가 각각 필요했다. 시공사는 음칼리피 건축학교 강사님이 당신 회사의 서류를 제출해 비용을 전혀 받지 않고 시공사가 되어 주기로 하셨고, 일은 건축학교 학생들과 우리 형제들이 함께 하면 되었다. 
문제는 구조 설계 및 감리를 해줄 회사였다. 자격을 갖춘 회사가 많지 않다 보니, 찾아가는 곳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요구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건축 허가를 받으려면 먼저 책임 감리를 맡겠다는 구조 설계 회사의 편지가 필요한데, 그 편지를 써주는 데에만 최소 몇 백만 원씩을 요구했다. 
설계사의 소개로 ‘셀루무사’라는 구조 엔지니어의 회사를 찾아갔다. 셀루무사 씨에게 우리가 하는 활동과 예배당 겸 청소년센터를 건축하는 이유를 자세히 소개하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분은 당시 우리가 지으려는 단층 예배당 건물에 대한 구조 설계 비용으로 건축 예산 전체의 4%에 해당하는 2,500만 원을 요구했다. 말문이 막혔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으니 그냥 돌아올 수는 없어서 내가 어떻게 구원받고 에스와티니에 선교사로 오게 되었는지 쭉 간증했다. 
“저는 에스와티니 청소년들을 위해 어떤 급여나 사례도 받지 않고 사는 자원봉사 선교사입니다.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함께 도와주시면, 이 나라 청소년들이 큰 혜택을 볼 것입니다.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셀루무사 씨가 물었다. 
“급여를 받지 않는다면 선교사님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합니까? 그리고 선교사님 자녀들은 어떻게 학교에 보냅니까?”

“하나님께서 돕는 분들을 저도 돕겠습니다!”
나는 선교사로서 지금까지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입고 살았는지 간증을 시작했다. 
“에스와티니에 와서 아이들을 보낼 학교를 찾아보았는데, 모두 학비가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적지만, 생기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가 필요한 데 먼저 쓰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형제 자매들과 그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는 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면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말고 이 교회에 나오지 마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저를 도우시고 우리 가족을 돌보시면 여러분도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살아보세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도우실 줄 믿습니다.’
어느 날, 한국에서 집회 강사 목사님이 오셨는데 저희 집이 좁아 가까운 곳에 숙소를 얻으러 갔습니다. 숙소 주인을 만나 방을 얻으려고 이야기하던 중, 주인이 ‘신문에 마인드교육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났던데, 혹시 당신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희가 한창 교사들 대상으로 마인드교육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 기사가 신문에 나가면서 사진을 보고 저를 알아본 것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마인드교육을 소개하던 중 숙소 주인이 ‘내가 사립 유치원, 초등학교를 운영하는데 아이들에게 마인드교육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마인드교육을 해줄 테니 우리 아이들을 그 학교에서 공부하게 해줄 수 있냐?’ 했더니,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학비를 내지 않고 저희 아들 둘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학교를 잘 보냈는데, 학교 이사장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학교 재정이 어려워 더 이상 학비를 후원해 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한 학기에 70만 원씩 1년에 총 210만 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하나님께서 더 크고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하시려나 보다.’ 싶어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하고 더 이상 그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훨씬 크고 좋은 사립 초·중·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제가 청소년들을 위해 하고 있는 활동들을 소개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마인드교육과 음악 교육을 해주시면 선교사님 자녀들의 학비를 감면해 주는 MOU를 맺어 활동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들을 보낼 학교를 찾고 있던 차에 교장 선생님이 너무도 완벽한 조건으로 제안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그 학교와 MOU를 맺어 학생들을 교육해 주면서, 저희 아이들은 학비를 전혀 내지 않고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이끌어오신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마쳤을 때, 셀루무사 씨는 “하나님이 돕는 분들을 저도 함께 돕겠습니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준비해두셨다가 만나게 하신 분이었다. 셀루무사 씨는 에스와티니에서 큰 공사들을 맡아 하는 구조 엔지니어이자, 컴퓨터 판매 회사도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단층 예배당 공사 때부터 인연을 맺어 구조 설계 및 감리에 드는 모든 비용을 무료로 해주었고, 현재 완공된 예배당 외에 층당 300평 4층짜리 센터를 추가로 건축하는 일에 있어서도 구조 설계 및 감리를 맡아 해주고 계신다. 또 자신이 아는 전기 설계사와 감리사도 소개시켜 주셔서 총 4억 원 가량의 비용을 절감하게 해주는 등 자기 일처럼 건축에 마음을 쏟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을 만나는 구경꾼의 삶
이렇게 한 분 한 분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돕는 자들을 만나고, 어렵고 안 될 것 같은 문제가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동안, ‘복음의 일은 내 수고나 열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교회와 종의 음성을 듣고 따르며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모든 것을 만나고 누리는 구경꾼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18년 12월에 건축학교 개교와 함께 시작한 단층 예배당 및 숙소(190평 규모) 공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들과 함께 1년여 만인 2019년 12월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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