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종의 음성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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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23.09.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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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기쁜소식
믿음의 발걸음 | 선교사 이야기 1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종을 주시고 그 종에게 말씀을 깨달을 지혜를 주셔서, 그가 깨달은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길 원하신다. 룻은 시모의 음성을 좇아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고 보아스의 발치 이불로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보아스가 일해서 룻의 삶이 복되고 아름다웠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해 나타내신 약속을 마음에 심고 내디딘 발걸음마다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7월에 한국에서 가진 ‘선교사 모임’에서 나눈 선교사들의 간증을 2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캄보디아 하철 선교사 / 짐바브웨 심재윤 선교사 
케냐 김요한 선교사 / 키리바시 윤태현 선교사

콜롬비아 박준현 선교사 / 르완다 고봉진 선교사 
독일 오영신 선교사 / 중아공 신성욱 선교사 (다음 달)

 


 

캄보디아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산 것밖에 없지만

글 | 하철(기쁜소식프놈펜교회 선교사)

 

1996년 3월,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목회를 하면서 문서 일을 함께 하고 있던 나는 해외 선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하 형제, 자네는 원래 캄보디아 사람인데 운 좋게 한국에 태어나서 그동안 잘 살았잖아. 이제 자네 나라에 가서 복음 전하다가 그곳에 뼈를 묻게.”라는 하나님의 종의 음성을 따라 아내와 외동딸을 데리고 선교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당시 캄보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5개국 가운데 하나였고, 지식층이 다 죽어서 다시는 잘살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나라라고 했다. 
처음에는 만화 전도지를 번역해서 뿌리기도 하고, ‘휴거’ 영화를 서투른 솜씨로 더빙해서 집회를 하기도 하고, 설교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번역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만들고 보니 당시에는 그 책을 읽을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내가 느끼기로는 문맹률이 40~50퍼센트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외국인이 캄보디아어를 배울 수 있는 시스템도 전혀 없었다. 사전도 ‘캄보디아-영어’ 사전 딱 하나뿐. 말을 못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배웠던 기억, 언어가 부족하니 말씀을 전하려면 준비하는 데 서너 시간 걸리고 그렇게 준비해 사람들을 찾아가서 한 시간 말씀을 전하면 반응이 전혀 없어서 힘이 빠져 오토바이를 타고 터덜터덜 돌아왔던 기억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27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돌이켜보면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은 다 무너졌다. 내가 열심히 했던 것, 내가 의도했던 것들은 부끄러움만 남겼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간 광야 40년의 길을 뒤쫓아가 보면, 흙 속에 감추어진 배설물만 남아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 형제, 300평 정도 1만 불이면 못 사는가? 땅을 사서 작은 예배당을 짓게. 예배당이 있으면 집세 안 내도 되잖아. 먹을 것이 없으면 형제들과 같이 기도하고, 자네가 캄보디아에서 그렇게 주님을 섬기면 좋겠네.” 
프놈펜교회 형제 자매들을 다 합쳐야 10여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목사님의 음성을 따라 발을 내디뎠을 때 하나님이 좋은 예배당을 주셨다. 예배당을 짓고 박 목사님을 모시고 헌당 예배를 드릴 때, 시골에서 올라온 형제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들어오던 모습이 기억난다. 마치 ‘이제 우리도 우리 예배당 있다!’ 하는 것처럼.
2003년에 아내가 몸에 암이 생겨 한국으로 갔고, 2005년까지 3번에 걸쳐 암 투병을 해야 했다. 아내가 ‘림프종’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성경도 읽을 수 없고, 기도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하나님, 하나님’만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김 자매는 괜찮아!”라는 하나님의 종의 말씀 한마디가 내 마음에 들렸고,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는 벌써 18년째 건강하게 나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다.
2009년에는 세계 10개국에서 월드캠프를 했다. 그때 하나님의 종은 ‘2010년에는 30개국에서 월드캠프를 할 것’이라고 하셨다. “제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입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큰데, 목사님이 저렇게 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하시는데… 하나님, 천 명이 모일 수 있는 홀만 있으면 캄보디아에서 캠프를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한 교육대학 건물을 빌려서 캠프를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너무 더워서 행사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 400~500명이 들어가면 적당한 홀에 천여 명이 모이니 에어컨이 감당을 못한 것이다. 박 목사님이 오셔서 캠프 장소를 가까운 곳에 있는 ‘나가월드호텔’의 홀로 바꾸셨다. 그곳은 카지노장이 있어서 원래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는데, 학생들이 너무 좋아하면서 하루하루 참석자가 늘어났다. 마지막 날 칸타타 공연에는 부모들도 참석해 문을 열어놓고 행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월드캠프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어떤 해에는 학생들이 우리가 종교를 강요한다고 교육부에 투서를 넣어, 캠프 이후 계획된 교육부와 IYF 간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취소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그해에 한국 월드캠프와 함께 처음 개최된 ‘세계 청소년부 장관 포럼’에 참석한 교육부 차관님, 동행한 벨티그룹 회장님이 박옥수 목사님의 마인드강연을 듣고 마음을 바꾸셨다. 마지막 날, 차관님은 대동한 직원에게 이렇게 보고서를 쓰라고 하셨다. “IYF는 종교 단체가 아니다. 불교에서 경전으로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끌듯이 IYF는 성경을 통해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철학을 가진 단체다!” 지금은 두 분 다 IYF의 고문이 되셔서 우리 활동을 돕고 계신다. 하나님은 월드캠프를 통해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셨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결론적으로, 내가 캄보디아에서 애썼던 모든 일에는 열매가 없다. 나는 그저 형편이 어려워서 힘들어했고, 내 연약함에 빠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당신의 종을 통해서 하신 말씀들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고 있다. 나는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그냥 캄보디아에서 산 것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길을 여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올해는 씨엠립의 ‘근로자 협회’와 연결시켜 주셔서 3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여셨다. 
이번 7월에 한국에서 가진 선교사 모임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공로패는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받으신 것이라 생각한다. 선교사 모임에서 선교사들이 나눈 간증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 종의 음성을 따라 나갔을 때 주님이 은혜를 베푸셨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교회의 음성을 따라, 하나님 종의 음성을 따라 발을 내디딜 때 주님이 우리를 통해 더 힘있게 일하실 줄 믿는다.

 


 

짐바브웨
믿음으로 보내신 교회가 있어서

글 | 심재윤(기쁜소식하라레교회 선교사)

“가장 믿음 없는 사람들을 먼저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월드캠프 후에 가진 선교사 모임은 이 말씀으로 시작됐다. 모든 선교사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말씀이었다. 선교사들에게는 종종 선교지의 막막한 형편 속에서 믿음 없는 자신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던 기억들이 있다. 그런데 선교사 모임에서 하나님의 종이 하신 이 말씀은 본래 믿음 없는 우리를 믿음으로 보내신 교회와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다. 
2017년 6월 짐바브웨로 파송을 받았을 때, 부끄럽지만 나는 걱정 속에서 출발했다. 짐바브웨의 전기와 물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영어도 제대로 못했고, 비자 문제는 큰 부담이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구원받고 당시 쉰 살까지 복음전도자로 살아왔다. 교회의 인도를 받다가 해를 입은 적이 있었는지 따져보았다. 때론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경우가 있었지만 교회의 인도를 그대로 따랐을 때 항상 복이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출발했다. 
남아공에서 짐바브웨 국경을 넘을 즈음 박옥수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들었다. 말씀 중에 목사님은 로마서 2장 4절을 언급하셨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롬 2:4) 
말씀을 듣는 동안, 하나님은 그 어떤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인도하고 있는 하나님을 모르고 선교하려는 내 모습을 보여 주셨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회개케 하셨다. 
그해, 교회가 많이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박옥수 목사님은 짐바브웨를 방문하셨다. 당시에 기독교 지도자 모임에서 말씀을 들은 현지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물과 전기 사정이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 또 한국 월드캠프에 참가했던 장관님은 우리가 비자를 얻을 수 있도록 양해각서를 맺고 도움을 주었다. 짐바브웨에서 만났던 막막한 형편은 모두 복으로 바뀌었다. 
3년 전에는 단기선교사들과 함께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저녁 무렵 허허벌판에서 자동차가 고장난 적이 있었다. 강도를 만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죠셉’이라는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차를 견인했고, 그 마을에서 이틀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 얼마 전 무전전도여행 중에 다시 그 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 그 마을에서 여러 사람이 구원받았다.
코로나19로 현장 예배가 금지됐던 시절 뒷마당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하루는 지붕 자재를 구입하러 시내에 갔다가 돈이 모자라 허탈하게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일꾼 한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어려운 시기에 괜한 일을 시작했다는 자책을 했다. 그런데 돌려 생각했다. ‘오늘은 자재도 없고 문제가 생겨 일은 못 하지만 복음은 전할 수 있잖아. 이 예배당은 복음 전하려고 짓는데 오늘은 복음만 전하자!’
쓰러졌던 청년 크리스토퍼는 다행히 얼마 후 안정을 되찾았다. 나무그늘 밑에 누워 있던 그에게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복음을 전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그와 함께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자 공사 책임자인 냐주바 씨가 다가와 내게 말했다. 
“목사님, 우리는 이곳에 돈을 벌러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모두 결정했습니다. 이 건물은 우리 교회입니다. 앞으로 이 교회에 나오겠습니다!” 
알고 보니 일이 없던 일꾼들 모두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냐주바 형제의 아들 비기는 나중에 선교학생이 되었다.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기쁜소식동대문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번 월드캠프에도 함께했다. 선교지에서 만난 여러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늘 약속대로 인도하셨다. 
올해 한국 월드캠프에는 모두 16명의 짐바브웨 사람이 참가했다. 대학 총장, 목회자, 시청 공무원, 학생 대표 등. 월드캠프 강연 때마다 박 목사님은 레위기와 히브리서 등을 통해 복음을 자세히 전해주셨다. 월드캠프 후에도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개별 면담을 가져, 짐바브웨에서 뒤늦게 한국에 온 공무원들과 학생들까지 모두 구원받고 기뻐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우리 선교사들은 월드캠프와 캠프 후에 가진 선교사 모임에서 즐겁고 행복했다. 선교회의 명절인 한국 월드캠프에 모인 우리는 주님 안에서 만난 오랜 가족이며 친구들이다. 선교사들은 모든 것을 품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아버지 같은 교회의 마음을 느끼며 새 힘을 얻었다. 
모임 첫 시간, 박옥수 목사님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말씀으로 선교사가 입는 은혜를 설명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그가 잘하고 못하고’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의 도구였다. 또한 우리가 전하는 복음 속에 이미 능력이 있고 모든 역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담대하게 더 널리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작년에 이런 기도를 했다. “내년에도 선교사 모임 때 가장 앞줄 첫자리에 앉게 해주십시오.” 내가 마음이 어두우면 그 자리가 부담스럽고, 또 누군가가 뒤에 앉으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도 그 자리를 주셨다. 제일 먼저 마음을 표현하고 간증했다. 항상 부족하고 믿음 없는 나이지만 믿음으로 나를 보내신 은혜 안에서 언제까지나 즐겁고 감사해하는 선교사로 살고 싶다.

 


 

케냐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글 | 김요한(기쁜소식나이로비교회 선교사)

올해 3월에 박옥수 목사님이 아프리카 6개국 전도여행 중에 케냐에 방문해 대통령을 비롯해 영부인 및 많은 목회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그 일이 있기 전인 1월, 한국 시각으로 새벽에 박옥수 목사님이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내가 3월에 케냐에 가는데, 이번에 케냐에 가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가?” 그 당시에는 대통령 면담이 확정된 것은 없었지만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목사님은 “이번에 대통령을 만나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네.” 하시면서 케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해주셨다. “케냐를 마인드교육의 시범국가로 선정하고,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마인드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서 마인드교육을 하고 싶네.”라고 하시며 “이렇게 대통령에게 말씀을 드리면 되겠는가?” 하셨다. 나는 또 “예”라고 하였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같았다. 지금까지 이곳저곳에서 마인드교육을 시행해 보았지만 ‘어떻게 케냐 전국에서 마인드교육을 시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내가 배운 것은, 내 생각과 맞지 않지만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그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박옥수 목사님이 케냐에 오셨을 때 “요한아, 신앙은 한 음성만 듣는 거야.”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기억나면서,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과 하나님의 종의 음성을 그대로 받을 때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했다. 


대통령께 복음을 전하다
3월이 되었다. 박옥수 목사님의 아프리카 6개국 순방이 시작되었다. 목사님이 첫 나라인 콩고로 출발하셨을 때까지도 케냐 대통령과의 면담은 확정되지 않았다. 대통령 비서실에 면담 요청 공문을 보내고 찾아가고 계속 연락했지만 통화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 목사님이 콩고에 도착해서 대통령과 면담하시고, 아프리카 선교사들의 채팅방에 면담 사진이 올라왔다. 나는 그 사진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그대로 보냈다. 15분 정도 지나 비서실장에게서 처음으로 먼저 전화가 왔다. 비서실장이 이야기했다.
“면담 결정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박옥수 목사님이 케냐에 오시면 3월 18일 오전 9시에 대통령궁에서 대통령과 면담하시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박옥수 목사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비서실장이 대통령 면담이 안 된다는 공문을 벌써 우리에게 보냈지만, 비서실장이 면담이 가능하다는 공문을 다시 보내 3월 18일 오전 9시에 면담이 이뤄질 수 있었다. 
박 목사님은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재직할 때 만나 이미 복음을 전하신 적이 있었다. 이번 면담 때에도 목사님이 대통령께 다시 복음을 전하자 대통령께서 아주 행복해하셨다. 이어서 목사님이 대통령께 마인드교육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케냐가 발전하려면 케냐 사람들의 마인드가 변화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자, 대통령께서 동감하셨다. 그리고 팀을 만들어서 한국에 보내 그들이 마인드교육에 대해 더 배워 오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케냐 전국에 이 마인드교육을 하겠습니다
8월 둘째 주에 대통령께서 비서실장, 내무부 차관, 교육부 차관, 지방정부 차관, 공무원부 차관, 비서실장실 차관 및 대통령실 실무진과 비서진을 포함하여 총 11명을 한국에 보내셨다. 그분들이 처음에는 마인드교육과 한국의 발전 사례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박옥수 목사님이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면서 마인드교육에 대해 분명히 아는 계기가 되었다. 마인드교육이 성경을 토대로 성경에서 얻은 지혜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마인드교육이 마음의 세계뿐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때 진정한 변화가 온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배우면서 진정으로 마인드교육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었다. 
8월 9일 수요일 저녁, 대통령 비서실장이 케냐로 돌아가기 전 그라시아스합창단이 공연한 ‘한여름 밤의 음악회’에 참석해 마인드교육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 모든 죄가 씻어진 사실을 알았고, 케냐에 돌아가서 이 복음을 전파하겠습니다! 그리고 케냐 전국에 마인드교육을 하겠습니다!”
나는 비서실장에게 케냐 전국에 마인드교육을 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비서실장이 복음을 듣고 마인드교육을 받으면서 복음과 마인드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전국에 교육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어가시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케냐에 도착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 비서실장님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고, 동행했던 차관님들로부터 빨리 마인드교육을 진행하자고 연락이 오고 있다. 또한, 8월 20일 주일에는 대통령 비서실장님이 아내와 함께 기쁜소식나이로비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해 ‘마인드교육과 성경 말씀을 통해 축복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우고 왔다’고 간증하셨다. 

대통령 영부인실을 통해 케냐 전국에 열린 복음의 문
뿐만 아니라 대통령 영부인께서도 3월에 박옥수 목사님이 케냐에 방문하셨을 때, 3월 9일에 있었던 기쁜소식나이로비교회 헌당 예배에 참석해 복음을 듣고 너무 행복해하셨다. 목사님의 말씀을 다 듣고 “우리는 한때 모두 죄인이었으나 저는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라고 간증하면서 기뻐하셨다. 그 후에 영부인께서 대표로 있는 단체와 IYF가 파트너십을 맺었고, 영부인이 주관하는 단체의 모든 직원 600명을 우리 교회에 초청하여 마인드교육을 할 수 있었다. 영부인께서는 이틀 동안 우리 교회에 12시간이 넘도록 지내셨고, 우리는 영부인을 비롯해 영부인실 비서실장 및 모든 직원들과 가족같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또한 영부인실을 통해 케냐 전국에 마인드교육을 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케냐 119개 교도소에 복음의 문이 열리다
지난 7월에 있었던 한국 월드캠프에는 케냐 부교정청장, 경찰청 본부에서 1,200명의 교목과 상담을 관리하는 최고 경목이 참석하였다. 두 분은 강사인 박 목사님이 전하신 복음을 매시간 들으면서 구원을 확신하고 마음을 활짝 열었다. 케냐에는 119개의 교도소가 있다. 그 가운데 우리가 50여 개의 교도소에서 마인드교육과 신학교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소자들만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는데, 재소자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교도관들에게도 마인드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해 와서 교도관들을 위한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한국 월드캠프에 참석하고 돌아온 부교정청장은 50개의 교도소뿐만 아니라 나머지 교도소에도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란다며, 남은 69개 교도소에서도 신학교 개교식을 갖자고 먼저 제안했다. 경찰청에서도 경목들을 다 모아 마인드교육과 신학교 과정을 진행하며 복음을 전하기로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나 혼인 잔치에 참석한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다. 하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었다.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포도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에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 이야기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너무 신기한 것은, 하인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따랐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기적을 케냐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내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케냐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케냐 전국에서 마인드교육을 하고 싶네!”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도 케냐에서 힘있게 살아 일하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키리바시

마음에 심긴 말씀의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글 | 윤태현(기쁜소식타라와교회 선교사)

나는 2016년에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키리바시로 파송받았다. 지난 7년 반 동안, 불가능한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통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은 내게 믿음의 세계를 가르쳐 주셨다. 
교회가 개척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2017년 1월 16일, 박옥수 목사님이 피지에서 키리바시 대통령을 만나시면서 18일에 키리바시에 방문하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도저히 길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적을 만드셨다. 박옥수 목사님은 키리바시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1,500여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육부·청소년부·경찰청과 양해각서를 체결하셨다. 목사님은 시민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외치셨고, ‘이 나라가 복음으로 축복을 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을 전하셨다.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통해서 마음껏 역사하셨고, 내 눈에는 너무나 열악하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키리바시를 향한 당신의 뜻과 소망을 분명하게 나타내셨다. 
박옥수 목사님은 차로 이동하면서 틈틈이 나에게 교제해주시고, 앞으로 키리바시에서 어떻게 복음의 일을 해야 할지 말씀해주셨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많은 청소년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우리가 학교를 시작해서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국토의 평균 폭이 100미터가 채 안 되는 좁고 긴 작은 섬에 수많은 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키리바시에 목회자들이 많은데 절대로 공격적으로 하지 말고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쳐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부에 땅을 기증해 달라고 해서 그 땅에 교회와 청소년 센터를 건축하고 복음을 전하자’고 말씀하셨다. 
50년 전, 차가운 예배당에서 당신의 종에게 남태평양의 수많은 섬 사람에게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선교사를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 일을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어가시는 현장에 나를 부르셨다는 것이 감격스럽고 감사했다. 
박 목사님은 키리바시를 떠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당신의 종을 통해 분명한 말씀의 씨앗을 심어주셨고, 7년 반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모든 말씀의 씨앗은 놀랍고 아름다운 열매와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말씀과 형편 사이에서 갈등하던 1년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소망의 말씀이 내 마음에 심기고 계속 메아리쳤지만, 부끄럽게도 내가 보는 형편이 너무 컸기 때문에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우리가 학교를 시작해서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자’고 하신 말씀은 너무 좋았지만, 학교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책상과 의자도 없고 교사도 없는 상황에서 학교를 한다는 것은 10년, 20년 후에나 이루어질 것 같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목사님이 다녀가신 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2018년 1월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를 시작하지 못했다. 거의 1년 내내 내 마음은 하나님의 종이 하신 말씀과 내가 보는 형편 사이에서 심하게 갈등하고 있었고, 내가 보는 형편과 절망 속에 점점 더 빠져가고 있었다. 
하루는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나는 걸을 수 없어. 내 다리에는 힘이 없어.’라는 생각 속에서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와 내가 똑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늘 내가 보는 형편과 부담을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 말씀을 의지해서 발걸음을 내딛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였다. 학교를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말씀을 의지해 시작한 대안학교 ‘애벌레에서 나비로’
우리가 임대해서 살고 있는 집 안에 작은 홀을 교실로 쓰고, 가지고 있는 테이블에 의자를 좀 더 사서 20명의 학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아내는 음악을 가르치고, 단기선교사들은 댄스와 태권도를, 현지 청년들은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고, 나는 마인드교육을 하기로 했다. 학교의 이름은 ‘애벌레에서 나비로’라고 지었다. 그 이름에는 키리바시 청소년들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발견하고 변화되어 마음껏 날아오르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학교라고 하기에는 누가 봐도 비웃을 것 같은 초라한 시설에서 자격도 없는 교사들이 아무 경험도 없이 시작한 학교에 누가 오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방황하던 20명의 학생들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그 학생들을 온 마음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우리가 준비한 어설픈 프로그램에도 너무 즐겁고 행복해하며 마음을 활짝 열었다. 마인드교육 시간에 복음을 전하자 한 사람 한 사람 복음을 받아들여 변하기 시작했다. 절망 속에서 살다가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고 소망을 얻은 학생들의 변화된 간증은 때론 나와 교사들에게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선물해주었다. 
학생들의 간증을 소개하고 싶어서 학예발표회를 하기로 했고, 기적처럼 첫 발표회를 국회에서 모든 장관들과 국회의원들 앞에서 개최할 기회를 얻었다. 장관님들은 학생들의 간증을 듣고 태권도와 리코더 공연을 보면서 놀라워했다. 그때부터 많은 장관님들이 우리를 마음으로 돕기 시작했다. ‘학교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귀한 학생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받지 못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악했는지를 깊이 알 수 있었다. 

대안학교를 통해 CLF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하나님
그 뒤로도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부모님과 교회 지도자들, 정부 인사들을 초청해 키리바시에서 유일한 광장인 ‘바이리키 스퀘어’에서 학예발표회를 가졌다. 참석한 모든 분이 학생들의 공연을 보고 간증을 들으면서 눈시울을 붉힐 만큼 감동을 받고 기뻐하고 감사해했다. 
키리바시는 전체 인구 10만 명 중 절반이 카톨릭 신자고 나머지는 개신교 신자인데, 개신교 교단 중 성도가 만 명이 넘는 가장 큰 교단의 총회장 목사님이 학예회발표회에 참석해 마음을 활짝 여셨다. 그전까지 CLF 모임을 시작해보려고 해도 현지 목회자들이 우리를 경계하는 마음이 커서 할 수 없었는데, 큰 교단의 총회장 목사님이 학생들의 변화된 간증에 감동을 받고 우리 교회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열리는 CLF에도 참석해 박옥수 목사님도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2019년 2월, 때마침 한국에서 세계 최고 목회자 과정이 개설되어 키리바시 기독교단KPC 총회장이신 바라니떼 목사님을 모시고 참석했다. 바라니떼 목사님은 40년 이상을 목회했지만 죄로 인해 마음에 큰 갈등과 고통을 가지고 계셨다.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신 누가복음 10장의 ‘강도 만난 자’ 말씀을 듣고 죄 사함을 받고 ‘드디어 내 모든 죄의 짐을 벗었다’고 기뻐하셨다. 총회장님의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우리 선교회와 MOU도 체결하고 앞으로 기쁜소식선교회의 모든 말씀과 가르침을 자신의 교회에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셨다. 
키리바시에 돌아온 바라니떼 목사님은 기쁜소식선교회와 한 가족이 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수도 타라와 섬에 있는 성도 1,000여 명과 대통령, 국회의장을 초청해 축하 연합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교단 소속 100여 명의 목회자를 모아 한국에서 오신 강사님을 모시고 CLF 모임을 개최하셨다. 또한 교단 산하의 신학교에 나를 초청해 모든 신학생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신앙 훈련을 받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꿈을 꾸는 것만 같았고, ‘목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쳐 주라’고 하신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 번 경험하면서 하나님은 나를 믿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믿는 믿음 편으로 내 마음을 옮겨주셨다. 
지난 4년 동안 바라니떼 목사님 교단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교회 지도자들, 청년들이 대부분 우리 선교회가 전하는 순수하고 참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이제 키리바시 기독교단과 우리 선교회는 한 교회처럼 가까워져서 연합하여 일하고 있다. 

대안학교 발표회를 통해 정부로부터 IYF 센터 부지를 받다 
키리바시는 국토 면적이 너무 작아 땅이 귀하고 비싸다. 하나님의 종이 정부에 땅을 요청해서 IYF 센터를 짓자고 하셨는데, 내 마음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종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마음이 들어서 국토부에 대안학교 설립을 위한 토지 임대를 신청했다. 그러나 역시 국토부는 우리에게 임대해줄 땅이 없다고 답변했고, 지난 수년간 국토부 담당자를 수십 번 찾아갔지만 항상 같은 대답을 할 뿐이었다. 좋은 위치에 비어 있는 정부 땅을 발견하고 그 땅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 땅은 이미 다른 커뮤니티에 임대한 땅이라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몇 번 시도하다가 안 되면 늘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형편의 소리와 절망의 소리에 져서 포기하던 사람이었는데, 도저히 불가능한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의 종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기적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소망이 내 마음속의 절망을 이겨주었다. 
얼마 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회에서 열린 대안학교 발표회를 보신 고용노동부 장관님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박옥수 목사님과 화상 면담을 하며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셨다. 장관님은 너무나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키리바시 청소년들을 위해 온 마음으로 일하는 IYF를 돕고 싶다고 하셨다. 자신의 삼촌이 국토부 장관이신데, IYF가 정부로부터 땅을 받을 수 있도록 알아봐주겠다고 하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장관님은 우리가 제출한 공문을 가지고 국토부 장관님을 만났는데, 놀랍게도 국토부 장관님의 막내아들이 우리 교회 산하 ‘새소리어린이합창단’의 단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토부 장관님이 돕겠다고 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셨다. 
이후, 국토부 장관님이 국토부 직원에게 IYF에 임대해줄 땅을 찾아보라고 지시하셨고, 그 직원은 임대 관련 규정을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거기에 ‘정부 토지를 임대받은 사람은 1년 안에 계획대로 토지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내가 전에 신청한 땅을 임대받은 커뮤니티가 그 규정을 어긴 것이 밝혀졌다. 그 직원은 그 땅을 환수받아서 우리가 임대받도록 일하기 시작했다.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올해 1월에 최종적으로 우리는 국토부 장관님으로부터 250평의 땅을 임대받는 서류를 받았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불가능한 조건과 형편을 넘어 당신의 종의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다.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기쁨과 감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 마음에 떨어진 약속의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나는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버리지 않고 키리바시에 보내셔서 믿음의 세계를 조금씩 가르쳐 주셨다. 내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종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것을 보게 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한 민족과 나라를 구원하시고 변화시켜 가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셨다. 지금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종이 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꿈을 꾸듯 영광스럽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마음이 든다.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룻 3:5) 아무 조건이 없는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행했을 때,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오벳을 낳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룻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나에게도 룻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을 허락하셨다는 마음이 든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당신의 종을 통해 하신 약속을 모든 불가능한 형편을 넘어 분명히 이루시는 분이다. 그런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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