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아담을 돕는 배필
[설교] 아담을 돕는 배필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3.09.13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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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창세기 강해(7편)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신 후, 19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 2:19)
하나님이 아담을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하신 뒤,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종의 각종 새를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생물들을 아담 앞으로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은 그것들을 보고 이름만 지었지 사랑하는 배필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창세기 2장 20절 전반부에 보면,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짐승이나 새들에게 이름을 주었지 그것을 배필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20절 뒷부분에 보면 여전히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이 다시 일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 2:21~22)
아담이 그 여자를 보았을 때 사랑스러운 마음이 일어나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여자를 만드신 이야기이지만,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아담이 배필이 없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배필, 즉 신부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에는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들짐승을 만들어 아담에게로 이끌어 냈을 때 아담은 그것을 보고 만족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신 뒤 아담의 몸에서 갈빗대를 빼내어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왔을 때 아담이 여자를 보고 만족해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신부를 만들어 주려고 하셨습니다.
여자가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남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려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아담이 깊이 잠들었을 때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 되는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을 얻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깊이 잠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는데,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피는 우리 죄를 씻기 위한 피였습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와가 아담의 몸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에게서 나와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라야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의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귀한 은혜를 얻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와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땅에 산다면, 수십 년이 지난 뒤 이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들이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마음에 들어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그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함으로, 영원히 사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 함께하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배필이 됩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낳을 수 있는 귀한 역사가 그 사람을 통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하나의 도덕적인 가르침이나 종교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며 죄를 짓지 않고 헌금하고 착하고 진실하게 살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점점 좋아져서 하늘나라에 가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보면, 대목대목마다 인간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또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못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담이 배필이 없었을 때에 하나님이 흙으로 짐승을 만들어 아담에게 이끌어 와도 아담이 그것을 보고 만족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아담이 자기 몸에서 나온, 자신의 갈비뼈로 만든 여자를 보고 만족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사는 삶이라야 예수님을 만족하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 가운데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며 주님을 섬긴다면, 여러분 보기에는 어떠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심판 날에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그때 예수님이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서 버림을 당하는 자,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자,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봉사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자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죄를 씻음 받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해서 배필의 관계에 도달하지도 못 한 채,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일한 행위와 자기 공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석구석마다 우리 선행이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한몸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여러분의 죄가 하나도 남김 없이 눈처럼 희게 씻어졌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여러분 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참된 신앙의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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