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설교]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 글 | 홍오윤(기쁜소식대구교회 목사)
  • 승인 2023.09.19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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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기쁜소식
CLF 강연 | 진정한 회개와 자백(제4강)

 

회개와 믿음은 신앙의 전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중요하지만, 그 기초가 되는 회개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잘못된 회개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참된 믿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막연한 신앙생활 속에서 맴돌며 시간을 보냅니다. 목회자 여러분은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정확히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정말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 먼저 회개에 관한 정확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흉내내는 사람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그 사랑을 받아들일 때 행복합니다. 그것이 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 사랑이나 지혜나 소망을 받아들일 때 행복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자기 생각과 계획, 원함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불행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들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 자체에게는 아무것도 없게 하셨습니다. 생명도, 의도, 지혜도, 선도 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자리에 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듣는 것을 고통스러워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나 초능력자가 되길 원합니다. 사람들이 왜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를 만들었습니까?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상의 인물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영화를 보고 간혹 자신의 원함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슈퍼맨~” 하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합니다. 
잘못된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흉내내도록 가르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시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네가 하나님이 되어라’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며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도 잘 모르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을 따라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깨달으라고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은 사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 된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흉내내고 싶어 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처럼 스스로 무엇인가를 행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
죄를 의미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받아 누리면서 살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위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높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사이에서도 더 뛰어난 존재가 되려고 합니다. 
이처럼 죄에 물든 인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가 포도나무고 너는 가지야. 가지가 나무에서 끊어지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질 수밖에 없어.” 실제로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결코 선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말을 받아들여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죄가 들어왔고, 그로 말미암아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져, 아무것도 공급받지 못한 채 말라비틀어진 가지처럼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계란은 유정란과 무정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유정란은 암탉과 수탉이 교미해서 수탉이 암탉에게 정자를 넣어서 낳은 알이고, 무정란은 수탉 없이 암탉 혼자 낳은 알입니다. 유정란은 암탉이 품으면 그 안에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지만, 무정란은 아무리 품어도 병아리가 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이 생명 없는 육체뿐인 무정란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역사하지 않는, 육체뿐인 것입니다. 

죄를 씻음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신앙생활을 하려면 먼저 인간이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담 안에서 죽었구나. 내가 생명을 얻어야 하는구나.’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있는데,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표현한 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지 못하면, 사장이든 유명한 목사든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진 신학자든, 육체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아담 안에서 죽은 존재인 것을 깨닫고 정확히 죄를 사함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없으면 인생은 무정란으로 끝날 뿐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다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죄를 씻음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떤 일을 해도 생명이 없는 아담 안에서 죽은 인생일 뿐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하나님의 생명을 갖도록 거듭나게 인도하지 못하면, 껍데기 교인을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모든 죄를 씻음받고 생명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그 생각을 버리고
사람들은 죄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몇몇 가지 잘못이나 마음에 품은 악한 생각들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열심히 살았고 희생하며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근본 죄는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선하려고 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죄인 것입니다. 인간이 살면서 범하는 여러 가지 죄악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흉내내는 죄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요즘 많은 나라에서 마약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마약을 파는 조직에는 두목이 있고, 조직원들이 있고, 제일 밑에 마약 전달책이 있습니다. 마약 조직원이 한 꼬마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꼬마야, 내 말대로 하면 10달러 줄게. 저기 맥도날드 가게 앞에 쓰레기통이 있잖아. 그 옆에 서 있으면 어떤 사람이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면서 올 거야. 낮이지만 그 사람에게 ‘좋은 저녁’이라고 인사해. 그러면 그 사람이 봉지를 너에게 줄 거야. 그걸 나에게 가지고 오면 10달러를 줄게.”
이런 아이들은 백 명을 잡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두목을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거짓말했거나 사람을 미워하거나 음란한 생각을 품은 일로 양심에 가책을 받고 그런 삶에서 돌이키려고 하는 것은 백 번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약 전달책 꼬마를 잡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목을 잡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떠나 나를 믿고 살았습니다. 내 생각을 믿고, 내 계획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믿고 사는 것 때문에 이 세상에 전쟁과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믿는 데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6~7) 우리 조상 아담이 사탄의 마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욕망을 받아들여 모든 사람이 사탄이 넣어준 욕망에 감염되었습니다.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좇아 걷는 길에서,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우리에게 지혜가 없고 능력이 없고 선한 것이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혜도 능력도 선도 없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구약 시대에 드렸던 속죄제사에서, 사람이 지은 죄를 깨우치면 흠이 없는 염소나 양을 찾았습니다. 죄를 씻으려면 속죄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마음 중심에서 예수님을 찾습니까? 죄를 짓는 사람,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나을 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여서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안식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한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사도행전에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헤롯이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는데도 편히 잠을 잤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마음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받아들인 예수님의 마음으로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세상에 오셨고,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건너갔습니다. 예수님이 그 죄를 지고, 구약시대의 속죄제물이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에 큰소리로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우리 죄를 씻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더이상 죄에 매여 지내지 않게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죄가 많아서 지옥에 가는 사람은 없다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 원인이 아주 단순한 데에 있습니다.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우리를 해방시키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밧줄에 묶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에 묶여 있습니다. 
죄가 많아서 지옥에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씻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도 씻어졌기에 누구라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을 따라가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결코 죄가 많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생각의 주인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계속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희는 이 정도 사람을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그런 계산속에서 살았는데, 하나님의 세계는 너희가 알고 있는 세계와 달라.’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 몸의 비중이 물보다 크기 때문에 물 위를 걸을 수 없지만 예수님은 걸으셨습니다. 그 또한 우리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생각에서 벗어나야 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려면 죽어야 합니다. 수천 미터만 올라가도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가쁜 몸을 가지고 어떻게 하늘나라에 가겠습니까? 이 몸을 벗고 신령한 새 몸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처럼 우리 생각을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는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마음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끝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서도 죄가 끝나야 합니다. 마음에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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